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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백인걸선생 묘 白仁傑先生 墓

경기도기념물 제58호





조선 선조 대의 문신 백인걸白仁傑(1497~1579)의 묘이다. 백인걸은 조광조趙光祖의 문인門人으로 1519년(중종14)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스승과 동지를 모두 잃고 금강산에 입산하였다. 1531년(중종26) 생원시에 합격하고, 1537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1545년(명종1)에 을사사화乙巳士禍로 파직되고 1547년 정미사화丁未士禍에 연루되어 안변에 유배당하였다. 1565년(명종20) 승문원교리로 등용되었고, 선조 때 대사헌을 역임하면서 권신權臣을 논핵하다가 사임하고, 다시 1578년(선조11) 우참찬右參贊에 기용되었으나 사퇴하였다. 1579년 이이李珥와 함께 동서분당의 폐단을 논하고, 군비강화를 주장하였다. 그는 성리학에 대한 탐구를 열심히 하였으며, 계속되는 훈구勳舊 세력의 발호에 맞서 사림파士林派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선조 때 청백리에 선정되었다.


백인걸선생 묘역 입구,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백인걸선생 묘,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백인걸선생 묘비,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묘역의 봉분은 단분으로 비교적 규모가 크게 조성되었으며, 부인 순흥안씨順興安氏와의 합장묘이다. 봉분을 중심으로 앞에 상석과 향로석이 놓여 있고, 우측으로 원수방부형圓首方趺形 묘비가 위치하고 있다. 상석 앞으로는 장명등이 설치되어 있고, 그 좌우측으로 동자석, 망주석, 복두공복형幞頭公服形의 문인석이 각 1쌍씩 배치되어 있다. 묘역 아래에는 신도비가 있는데 이수螭首, 비신碑身, 기대基臺, 대좌臺座의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찬하고 송준길宋浚吉이 글을 썼으며, 김수항金壽恒이 전액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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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시대/ 조선시대

    규모/ 1기

    / 단분, 묘비 1기, 상석 1기, 향로석 1기, 문인석 1쌍, 장명등 1기, 망주석 1쌍, 신도비 1기

    주소/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산26

    지정일/ 1981.07.16

    소유자/ 수원백씨 휴암공파 종중

    관리자/ 백씨종중(백인현)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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