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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낡거나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백석의 시편들

문학-현대-운문 분야 『정본 백석 시집』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본 백석 시집』

백석 지음, 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2007







낡거나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백석의 시편들


박상률 - 시인






정본은 正本(정본)이며 定本(정본)이다. 正本은 원본을 이르거나 원본과 똑같은 것을 이른다. 定本은 원본이 여러 이본(異本)으로 알려진 경우 하나를 정해 표준으로 삼는 것을 이른다. 『정본 백석 시집』은 백석 시의 여러 이본을 비교하여 원본을 확정하기도 하고, 원본의 오류, 즉 오자나 탈자 등을 바로 잡기도 했다. 그러기에 定本이며 正本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백석 시에 많은 이본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발표할 때와 나중에 수록되는 지면에 따라 표기상의 차이나 편집상의 오류가 조금 나타나 있을 뿐이다. 엮은이 고형진은 처음 발표된 시와 나중에 수록된 지면을 비교 검토하여 최대한 오류와 차이를 밝혀내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준다.


일반에 잘 알려진 시 「여우난곬족」 의 경우 〈조광〉지에 처음 발표할 때는 8연이었는데 시집 「사슴」에 수록할 때는 4연으로 바뀌어 있고, 나중에 『현대조선문학전집』에 수록할 때는 다시 8연으로 바뀌어 있다. 엮은이는 이런 일련의 개작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시인의 내면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들여다보게 했다. 특히 그런 개작 과정을 독자가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발표 지면마다 달리 수록된 ‘같은 제목’의 시 전문을 모두 수록하였다.


시 「여우난곬족」의 본문을 들여다보면 낱말과 낱말 사이를 붙이기도 하고 띄어쓰기도 한 것이 이채롭다. 이는 당시에 막 제정된 맞춤법에 따라 그렇게 한 까닭도 있겠지만 시인의 내면 의식이 미세하나마 변화가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문장을 꼼꼼히 대조하며 읽으면서 이런 미세한 차이를 느껴보는 것도 재미있게『정본 백석 시집』 읽는 방법이다.


이 책의 미덕은 단지 오류를 잡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백석 시가 지니고 있는 특장을 밝히는 데도 의미가 있다. 엮은이는 무엇보다도 먼저 백석 시에 많이 들어 있는 평안도 방언의 풀이에 공을 들였다. 방언의 낱말 풀이를 평안도 출신 사람들에게 확인하여 최대한의 뜻을 알 수 있게 하였다. 나아가 평안도 지방의 구체적인 생활을 반영한 백석 시의 올바른 해석을 위하여 민속, 지리, 언어 등과 관련한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시의 속뜻을 세밀하게 밝혀냈다.


백석 시는 일반인은 물론 시인들이 특히 더 좋아한다. 그러한 까닭은 시를 구성하는 시어가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낡거나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되레 신선하게 느껴지고 시인들이 시를 쓸 때마다 염두에 두는 ‘낯설게 하기’가 자연스레 되어 있다. 이는 일반인이 백석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어가 어렵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고답적이지도 않고 아주 생경하지도 않으면서 일상의 모습을 그려냈다. 다른 시인들의 시에서는 찾기 어려운 편안함과 익숙함을 느낄 수 있으며 이로써 색다른 위로를 받거나 읽는 재미가 있다.


『정본 백석 시집』을 엮은 고형진은 백석은 시마다 우리말의 구문들을 다채롭게 활용했다는 걸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밝힌다. 백석의 시가 일반 독자들은 물론 시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까닭은 구문을 다채롭게 활용했기 때문이라면서.


엮은이는 ‘김소월은 우리말의 율격을 세우는 데 힘을 쏟았고, 정지용이 우리말의 감각을 다듬는 데 힘을 쏟았다면, 백석은 우리말의 문장 구조를 잘 파악하여 효과적으로 활용했다’고 본다. 그런 구문 활용이 오늘날 젊은 시인들도 백석의 시를 좋아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백석이 가장 즐겨 사용한 것은 반복과 나열과 부연으로 어떤 사실이나 정황 등을 줄줄이 이어나가는 ‘엮음’의 구문이라고 밝힌다. 엮음의 구문은 흥미와 속도감은 물론 장면 극대화의 효과를 낸다고 진단한다.


나아가 정제된 운율로 가지런하게 말을 늘어놓던 전통적인 시 형식을 백석은 과감하게 뛰어넘었다고 본다. 백석은 많은 시에서 사설체 형식을 도입하여 장황하게 묘사하거나 서술하여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를 느끼게 한다. 이는 ‘서사 지향적인 시’ 또는 ‘이야기 시’로 부를 수 있는데, 이는 다른 시인의 산문시나 서사시와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독특함이 있다.


백석은 문장상으로 상당히 짧은 시도 여러 편 썼다. 하지만 두 줄짜리 시인 「비」 「노루」, 세 줄짜리 시인 「산비」 「청시」 「하답」 같은 시에도 이야기가 들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의 시엔 길든 짧든 시 한 편에 이야기 한 편씩이 들어 있다. 이는 그가 본격적인 시작을 하기 전에 단편소설로 신문 신년현상 공모문예를 통과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백석은 이미지를 다채로운 감각으로 표현했다. 주로 시의 회화성에 치중하던 시적 전통에서 벗어나 그는 냄새와 맛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다. 그의 시에 후각 이미지와 미각 이미지가 많이 나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후각 이미지, 미각 이미지뿐만 아니라 청각 이미지, 촉각 이미지 등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각은 거의 나온다. 고형진은 특히 후각과 미각은 구체적인 생활 현장의 체취가 묻어나는 감각으로 본다. 백석의 시에는 음식물이 많이 나온다. 이는 미각에 바탕을 둔, 구체적인 생활에 바탕을 둔 백석 시의 뚜렷한 특징이다. 음식은 필시 풍속과 연결된다. 어쩌면 풍속을 그리다 보니 자연스레 음식 얘기를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구체적인 생활을 반영했기에 다 가능한 일이다.


엮은이에 따르면 백석 시가 현대시 역사에서 가장 크게 이룬 성취는 뭐니 뭐니 해도 모국어인 한국어를 확장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백석은 토속어, 방언, 고어를 비롯한 아름다운 우리말을 시에 사용함으로써 우리말의 영역을 넓혔다. 이는 많은 연구자가 이구동성으로 인정하는 바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백석의 맛』

소래섭 지음, 프로네시스(웅진), 2009


『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다산책방, 2014


『내 사랑 백석』

김자야 지음, 문학동네, 1996





박상률 - 시인


진도에서 1958년에 태어나 자랐으며, 1990 년 한길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진도아리랑』『하늘산 땅골 이야기』『배고픈 웃음』『꽃동냥치』『국가 공인 미남』 등을 썼다.




information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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