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보기

경기문화재단

시인이라는 운명

문학-현대-운문 분야 『정본 윤동주 전집』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본 윤동주 전집』

윤동주 지음, 홍장학 엮음, 문학과지성사, 2004









시인이라는 운명


여태천 - 동덕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윤동주는 살아 있는 동안 동시 몇 편을 발표했을 뿐이다. 정식으로 시를 발표한 적이 없으며 자신의 시집을 출간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엄격히 말해 시인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하지만 자신의 쓴 작품 가운데 19편의 시를 직접 골라 대학 졸업 기념으로 출판하려고 했을 만큼 누구보다 시인으로서 자신의 운명을 굳게 믿었던 사람이다. 시를 읽으면 시를 쓴 시인의 마음이 투명하게 보이는 경우가 드물게 있는데, 윤동주의 시가 여기에 해당한다. 윤동주의 시는 시인의 내면을 맑고 선명하게 비춰준다. 가까이에 그의 시집이 있다면 어디든 펼쳐 찬찬히 읽어보라.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지닌 한 젊은이가 고뇌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윤동주는 1917년 북간도 용정에서 태어났다.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라는 혹독한 시기를 겪고 있을 때다. 그가 태어난 명동촌은 그 무렵 항일운동의 거점이었으며, 그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이러한 환경과 문화는 유년기 윤동주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윤동주는 명동소학교 시절 〈새명동〉이라는 잡지를 직접 만들기도 하고, 서울에서 발행되는 잡지를 구독할 만큼 문학에 대한 열망이 매우 컸다. 이후 평양의 숭실중학교를 다니다 학교가 무기휴교를 당해 고향으로 돌아와 광명중학교를 졸업했다.


윤동주가 다시 고향을 떠나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해는 1938년이다. 졸업 후 1942년 일본 도쿄의 릿쿄(立敎)대학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학과로 옮겨 공부하던 중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리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되어 의문의 생체 실험으로 1945년 2월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8세의 젊은 나이에 옥중에서 삶을 마감하였다.


1948년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정음사에서 출간되어 많은 사람이 그의 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는 그가 연희전문학교 졸업 기념으로 출간하려 했던 시집의 원고들과 친구들이 보관하고 있던 유작을 합친 31편의 작품과 그리고 정지용의 서문이 함께 실렸다. 무명의 시인으로 끝날 수 있었던 윤동주의 시를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한국문학사의 축복이다. 󰡔정본 윤동주 시집󰡕은 윤동주의 유고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실리지 않은 작품들까지 모두 포함하여 전체 4부로 구성하였다. 1~2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의 시 108편을 시대별로 배치하였다. 3부에는 미완성 삭제 작품 11편을, 4부에는 4편의 산문을 각각 수록하였다. 여기에 ‘작가 및 작품 연보’와 ‘어휘 풀이’를 덧붙여 그의 시를 처음 읽는 이도 어려움이 없게 구성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작품의 출전과 작품을 제작한 날짜를 명시하여 시가 창작된 시기와 배경 그리고 시의 변화까지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게 한 것은 이 시집의 큰 장점이다.


이 시집은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을 저본으로 삼아 지금까지 출간된 중요한 윤동주 시집을 면밀하게 비교하고 대조하여 윤동주 시의 원전을 획정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 예컨대 아름다운 화해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별 헤는 밤」의 경우,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마지막 연의 4행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일홈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이 최초 육필 시고에 없었음을 밝히고 원전에 넣지 않았다. 윤동주는 시를 쓰고 작품을 쓴 날짜를 대부분 명기하였는데, 육필 시고에는 이 부분이 “1941년 11월 5일” 날짜 표기 다음에 첨가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이 보여주듯이 이 시집은 육필 시고에서 발견되는 퇴고의 흔적과 윤동주가 시를 쓰기 위해 어떤 책을 읽고, 어느 시인의 작품을 읽었는지, 그리하여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등을 충실히 고려하여 시인의 의도에 최대한 다가서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별 헤는 밤」에서처럼 윤동주는 시를 통해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었지만 그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계는 현실에서도 시에서도 가혹한 시대와 언제나 겹쳐져 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대면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로 인해 항상 갈등했다. 그 갈등은 언제나 자기 성찰로 이어진다. 윤동주의 많은 시편에서 내면적 갈등이 어떻게 깊은 성찰로 이어지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예컨대 1941년 9월 여름방학을 이용해 고향에 다녀온 체험이 담겨 있는 「또 다른 고향」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자아의 결단을 촉구하는 소리가 뚜렷이 드러난다. 「참회록」은 윤동주가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준비하던 1942년 1월 24일에 쓴 것으로 굴욕감을 무릅쓰고 창씨개명을 하여 유학을 준비했던 일이 그에게 큰 부끄러움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윤동주가 쓴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쉽게 씌어진 시」가 창작된 1942년 6월 3일은 그가 릿쿄대학을 다니고 있을 무렵이다. 일제가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우고 내선일체를 강조하며 전쟁 참여를 독려하던 상황 속에서 시만 쓰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깊이 성찰하고 있다. 윤동주는 이처럼 가혹한 시대를 정직하게 살아내려고 노력했으며, 그로 인한 번민과 갈등을 솔직하고 담백한 언어로 표현했다. 그의 시가 쉽게 읽히고 감동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동주는 인간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운명과 우주에 대해 깊이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했다. 그의 시에 넓게 드리워져 있는 강인한 의지를 발견할 때면, 저항시인이라는 수식어가 없어도 우리는 큰 감동을 받는다. 그러므로 그가 직접 시집을 내려고 하면서 시집의 맨 앞자리에 세워 자신의 고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던 「서시」는 가벼이 읽을 수 없는 작품이다. 윤동주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생각하며 쓴 시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문제와 닿아 있다.


윤동주가 스스로에게 던진 그 질문은 이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윤동주의 시는 윤동주만의 것이 아니다. 윤동주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어려운 시대를 살다간 한 젊은이의 순수한 삶을 되살려내는 일이며, 그래서 그의 시를 읽을 때면 우리는 또 한 명의 젊은이가 되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시집을 다 읽고 나면, 「병원」에서 화자가 가슴을 앓고 있는 여자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그녀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바랐던 것처럼 어느샌가 따뜻한 손이 우리의 손을 잡고 있다는 놀라운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윤동주 평전』

송우혜 지음, 서정시학, 2014


『초판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윤동주 지음, 소와다리, 2016


『윤동주 시 함께 걷기』

최설 지음, 서정시학, 2017 






여태천 - 동덕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동덕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2000년 『문학사상』신인상에 시로 등단하였으며, 저서로는 시집 『저렇게 오렌지는 익어 가고』 『스윙』 『국외자들』과 비평서 『경계의 언어와 시적 실험』『김수영의 시와 언어』 『미적 근대와 언어의 형식』 등이 있다. 제27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information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