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보기

경기문화재단

국민 건축 교과서를 집필한 이유

문화 분야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들』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들』

김광현 지음, 뜨인돌, 2018









국민 건축 교과서를 집필한 이유


김종락 -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사람은 건축물 안에서 태어나고 죽는다. 온갖 건축물에 둘러싸여 살며 그 안에서 일하고 생각한다. 건축물은 집을 떠나 어딘가를 여행해도 가장 중요한 볼거리거나 목적지다. 이렇듯 사람은 건축과 함께하지만 건축에 관심을 가진 이는 많지 않다. 건축 문화를 향유하는 데 서툴고 건축을 통해 생각할 줄도 모른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정규 교육 과정에서는 건축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대학에서 만 42년간 건축을 가르친 저자가 교수 은퇴에 즈음해 ‘국민 건축 교과서’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쓴 것은 이런 사정을 바꾸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할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건축을 알게 하겠다는 것이다.


건축 교과서를 자임한 만큼 책은 건축에 대한 모든 것을 담으려 했다. ‘집은 왜 짓는가’에서 시작해 ‘건축 이전의 건축’ ‘사회가 만드는 건축’ ‘시설, 제도, 공간’ ‘건축은 작은 도시’ ‘신체와 장소’ ‘오늘의 건축을 만드는 힘’ ‘정보가 건축을 만든다’ ‘시간의 건축과 도시’ ‘건축은 모든 사람을 가르친다’ 등의 제목으로 건축의 숲과 나무를 이야기한다. 물론 책을 관통하는 생각이 있다. 우리 모두가 건축가이고, 사회가 건축을 만든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건축은 건축가나 전문가가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다. 건축은 모든 인간의 일상이고 삶의 모습이다. 집을 지은 이는 누구나 건축가이고 이들이 지은 모든 것은 건축이다. 쓸모와 튼튼함과 아름다움. 고대 로마 이래 널리 알려진 건축의 3요소다. 이 책은 이를 뭉뚱그려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건축, 건축의 진실성으로 요약한다. 저자가 지향하는 기쁨의 건축, 건축의 진실성은 르 코르뷔지에의 대표작인 롱상성당과 아프리카 케냐의 이름 없는 고교에 지은 빗물 코트 건축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알려지다시피 롱상성당은 현대 건축의 문을 연 르 코르뷔지에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외관은 완벽하며 환상적인 빛이 교차하는 내부는 신비의 장막 속에 들어앉은 느낌을 자아낸다. 건축을 하는 이는 누구나 경탄하는 20세기 건축의 최고봉이자 현대 건축사의 전환점으로 꼽힌다. 그런데 저자는 이 성당 건축을 실패작이라고 말한다. 이 성당이 실패작이라는 확신은 세 번째로 찾은 이곳에서 직접 미사를 드려보고 난 뒤에 생겼다.


“사제는 내부가 너무 어두워서 미사 경본을 읽을 수가 없었다. 독서대는 멋지게 내부 높은 곳에 조형되어 있었으나 그 위에서 읽는 소리는 불과 10미터 떨어진 이에게도 잘 들리지 않았다. 성가 소리는 허공에서 엉키며 소음처럼 어수선하게 감겼다.” 걸작이라는 평가와 달리 신도들이 직접 미사를 드리는 공간으로서 롱상성당은 평범한 성당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곳 신도들이 이 건축물이 아닌, 또 다른 롱상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이에 비해 케냐 산간의 마히가 호프 고교에 만든 농구 코트의 지붕은 걸작과는 거리가 멀다. 물이 귀한 이곳의 건축물이라고는 국제비영리기구의 제안에 따라 만든, 농구 코트를 덮는 지붕과 빗물을 모우기 위한 장치가 전부다. 지붕을 따라 설치한 홈통을 한 곳으로 모아 물을 모으고 지붕에 설치한 태양광 전기로 자외선 처리해 깨끗한 물을 얻는다는 단순한 구상이다. 지붕과 빗물 저장고는 교사와 지역 주민 그리고 건축가가 함께 만들었다.


겉보기에 지붕일 뿐 별것도 아닌 구조물의 힘은 셌다. 이 구조물 덕분에 학생들은 멀리까지 물을 길으러 갈 필요가 없어졌고 방과 후 가족들에게 깨끗한 물을 가져다줄 수 있게 되었다. 햇볕과 비를 막아주는 전천후 농구장이 생기니 학생들의 체력이 좋아졌고 물 길으러 가는 시간이 줄어드니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 지붕이 있는 농구장은 결혼식장으로도, 영화관으로도, 회의장으로도 사용되었다. 이후 이곳에는 여러 시설이 더 생겨났고 전국 600개 고교 중 성적이 가장 낮던 이 학교는 18개월 만에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는 학교가 되었다. 기쁨의 건축, 건축의 진실성이 지닌 위엄이다.


저자는 기쁨과 진실성을 키워드로 건축의 다양한 면을 풀어낸다. 물론 우리 건축의 대종을 이루는 아파트에도 할 말이 많다. 책에 따르면 전국의 아파트가 똑 같은 이유가 있다. 아파트 단지의 계획과 설계에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묻지 않고 상품으로만 본 탓이다. ‘집=부동산’이라는 인식만 있었다. 책은 학교, 치안센터, 주민센터, 경로당, 도서관, 경찰서, 소방서 등 한결같이 비슷비슷하면서 재미없이 지어지는 공공 건축물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런 건축물은 국민이, 국민을 대신한 공무원이 건축주로서의 책임을 외면한 결과다.


좋은 공공 건축물의 사례도 나온다. 2011년 대한민국 공공 건축상을 받은 건축물로 부산 문현동의 푸른솔 경로당이 그것이다. 산동네에 소방도로를 개설한 뒤 남은 작은 구유지에 지은, 작은 경로당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로당’으로 평가받은 이유는 건축가의 재능 덕분만은 아니다. 평소 드나들던 자투리땅을 살리고 싶었던 주민들의 마음은 건축가에게 전해졌고, 이 공간을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던 건축가의 마음은 공무원에게 전해졌다. 공무원들은 그 작은 땅을 좋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주민과 건축가의 마음을 살리려 동분서주했다. 그러니까 푸른솔 경로당은 건축가 혼자가 아닌, 주민과 공무원이 함께 지은 건축물이었던 것이다.


안토니 가우디가 19세기 후반, 130~140년 뒤 완공을 목표로 설계하고 짓기 시작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사람들은 가우디의 천재성을 말하지만 이 성당의 건축에는 그의 천재성 이전에 그의 가치를 알아주고 건축가의 제안을 받아준 사회가 있었다. 가우디의 계획안을 보며 그 건축에 미래를 걸었던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안목이 있었던 것이다.


건물은 건축가 혼자 짓는 것이 아니다. 사회 모두가 심고 자라게 하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힘을 모아 만드는 것이다. 40여 년 동안 건축학도를 가르치다 은퇴하는 건축학 교수가 건축학도뿐만 아닌, 온 국민이 모두 읽었으면 하는 건축 교과서를 집필한 것도 이 때문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서현 지음, 효형출판, 2014


『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 건축사』

임석재 지음, 북하우스, 2011


『건축 강의』(전10권)

김광현 지음, 안그라픽스, 2018






김종락 -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문화일보에서 20년 가까이 기자로 재직하며 북 리뷰 및 학술, 종교 담당, 북 리뷰 팀장, 문화부장 등으로 일했다. 2011년 인문학 공동체인 대안연구공동체를 개설해 강의와 세미나, 출판 기획, 잡부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스코트 니어링 평전』을 번역했고 여럿이 쓰는 몇 권의 책에 글을 보탰다.




information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