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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사회 분야 『개념 의료』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념 의료』

박재영 지음, 청년의사, 2013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강양구 - 지식 큐레이터




풍문으로 들었었다. 의사 출신 저널리스트 박재영이 2년간 미국 생활을 하면서 한국 의료 현실을 정리하는 책을 준비한다는 소식은. 아툴 가완디의 『나는 고백한다 현대 의학을』부터 에릭 토플의 『청진기가 사라진다』까지, 그의 감수 또는 번역을 거친 책을 즐겨 읽었던 터라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접한 『개념 의료』를 펴자마자 한달음에 읽었다.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한국 의료를 쾌도난마로 정리하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한국 의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의 원인을 국민건강보험이 시작된 197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추적한 대목은 이 책의 백미다. 고령 사회, 과학기술이 바꿀 의료의 미래를 예측한 부분도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특히 이 책은 계속해서 한국 의료의 쟁점이 되었던 문제를 놓고서 불편한 진실을 전한다. 2018년 1월 1일부터 흔히 ‘특진비’라고 불리는 ‘선택 진료비’가 없어졌다. 2013년에 나온 이 책에서 저자는 선택 진료비를 폐지하거나 혹은 국민건강보험으로 보장해주는 것이 능사인지 물었었다.


“선택 진료비를 없애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환자들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좋지만, 병원들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중략) 이럴 경우, 병원들은 그 적자를 어디서 메우게 될까? (중략) 결국 유일한 방법은 환자들에게 그만큼의 비용을 더 부담시키는 수밖에 없다. 고가의 검사를 더 많이 시행할 것이고, 상급 병실료와 같은 비급여 항목의 가격도 올릴 것이다. (중략) 선택 진료비를 급여화하는 경우는 어떨까? 환자들의 부담도 줄어들고 병원의 매출은 그대로 유지된다. 하지만 많은 부작용이 예상된다. 우선 국민건강보험 재정으로 선택 진료비를 지불하게 되면, 국민건강보험 혜택이 주어져야 할 다른 어딘가에 쓸 돈이 없어진다. (중략) 지금도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대형 병원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여기까지는 선택 진료비 폐지를 주장했던 이들도 한 번쯤 생각해봤을 법한 부작용이다. 실제로 선택 진료비가 폐지되고 나서 그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지만 대형 병원 쏠림 현상이 오히려 심해졌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간다. 선택 진료비를 없애라는 주장은 과연 합리적이었나?


“갓 의사 면허 혹은 전문의 자격을 획득한 의사와 전문의가 되고 나서 10~20년 동안 경험을 축적한 의사를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까,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까. (중략) 대형 병원까지 찾아가는 것은 좀 더 전문적이고 수준 높은 진료를 받기 위해서인데, 대형 병원에서 선택 진료가 아니라 일반 진료를 받을 권리를 보장하라는 주장은 어딘지 모르게 모순되는 것 아닐까?”


평소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지식이 낳은 가치를 홀대하는 한국 사회에 문제의식을 느껴온 사람이라면, 이런 저자의 주장은 뜨끔할 수밖에 없다. 대형 병원에 선택 진료비 부담까지 책임지라고 현실적으로 강요할 수 없다면, 결국은 그의 지적대로 적절한 규제를 통해서 애초의 제도를 보완하는 게 최선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저자는 의료 민영화(“영리법인 병원을 허용하면 과연 「식코」와 같은 일이 한국에서 벌어질까?”), 의료의 공공성 강화(“공공 의료 기관을 늘리는 것이 과연 공공성 강화의 유일한 해법인가?” 같은 난제를 놓고서 도발적인 질문을 책 곳곳에서 던지고 있다. 모두, 그의 시각에 동의하든 않든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만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그는 민간 의료 보험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국내의 민간 의료 보험 시장 규모가 약 17조 원(2011년 기준)으로 국민건강보험 재정의 절반이 넘는 규모라는 사실을 개탄한다. 시민에게 훨씬 이득인 국민건강보험이 “보험료도 조금 내고 혜택도 조금 돌려받는” 한계 때문에 민간 의료 보험에 비해서 홀대받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소득이 아니라 소득 분배의 평등성이야말로 건강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라는 건강 불평등에 관한 통찰을 진지하게 숙고하자는 주장이나, 과학기술이 제공한 새로운 의료 기술이 환자의 치료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의료비 급등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경고한 대목도 경청해야 할 대목이다.


물론 이 책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읽는 이에 따라서는 특히 2000년 ‘의료 대란’을 언급한 부분을 읽고서는, 의사의 입장이 강하게 투영된 것은 아닌지 불만을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결정적인 대목에서 목소리를 흐린 점이 더 유감이었다. 한국 의료의 문제를 늘어놓긴 했는데, 정작 그것을 해결할 주체는 너무나 모호하게 처리한 것이다.


실타래를 풀려면 칼을 빼들 주체가 필요할 텐데, 도대체 누구인가? 의사인가? 아니다. 이 책은 오히려 의사를 개혁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의사 역시 이 책을 읽고서 썩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시민 사회인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책은 시민운동의 논리를 비판하는 데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한다. 역시, 유쾌하게 읽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인가? 이 대목에서 저자는 목소리를 흐린다. 하지만 『개념 의료』를 읽으면서, 나는 한국의 의료가 한차례 도약하기 위해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마련한 ‘1977년 체제’를 깨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 그런 충격요법을 시술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주체는 여전히 국가뿐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이런 상상을 해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마련한 ‘1977년 체제’가 깨지려면, 그래서 그럴듯한 ‘복지 국가’가 되려면 어쩔 수 없이 국민건강보험료를 현재보다 올려야 한다. 우리는 적게는 1만 원에서 많게는 10만 원이 넘는 금액을 다양한 이름의 민간 의료 보험에 제출한다. 여기에 1~2만 원 정도만 국민건강보험료를 올리면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고, 또 더 늦기 전에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이 책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든 ‘어처구니’ 한국 의료를 길들이기 위해서라도 꼭 읽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할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나는 고백한다 현대 의학을』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동녘사이언스, 2003


『청진기가 사라진다』

에릭 토폴 지음, 박재영·이은·박정탁 옮김, 청년의사, 2012


『건강할 권리』

김창엽 지음, 후마니타스, 2013






강양구 - 지식 큐레이터


지식 큐레이터. 연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2003~2017년까지 프레시안에서 과학·보건의료·환경 담당 기자로 일했다. 현재 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의혹을 최초 보도했고, 제8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 1, 2』『과학수다 1, 2』(공저)『과학은 그 책을 고전이라 한다』(공저) 등이 있다.


information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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