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불운한 지식인의 이야기

사회 분야 『대리사회』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리사회』

김민섭 지음, 와이즈베리, 2016







불운한 지식인의 이야기


김성신 -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겸임교수





지난 2015년 11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가 출간되었을 때만 해도 김민섭은 이름조차 자신의 책에 내 걸지 못했다. 이 책의 초판본에는 저자명이 ‘309동1201호’로 적혀 있다.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만 글을 쓸 당시 그가 살았던 아파트의 동호수다. 조금 엉뚱해 보이지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매우 영리한 전략이기도 했다. 그는 대학의 실상을 알리고 사회적 차원의 개선책을 함께 모색해보자는 취지로 이 책을 썼다. 즉 내부고발이나 폭로 등으로 자신이 속한 대학과 교수 그리고 동료들을 부끄럽고 곤란하게 만들 의도는 없었던 것이다. 만일 숫자만 보고도 주소를 단번에 알아챌 만큼 친한 동료라면 분명 공감하며 같이 아파해 줄 것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일종의 사인을 보낸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편 독자들을 향해서는 자신만이 겪은 어떤 특별한 일이 아니라 보편성을 가진 이야기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요구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예측은 조금 빗나갔다.


오랫동안 동고동락했기에 자신을 믿어주고 공감하고 격려해줄 것이라 믿었던 동료 중 몇몇은 그에게 등을 돌렸다. 오늘의 유머 게시판에서 연재 당시 그들은 암호 같은 필명을 굳이 추적해 집으로 찾아와서는 글을 삭제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동료들의 등을 봐야 했던 그의 참담한 심정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또 하나 그의 빗나간 예상은 독자의 반응이었다. 처음엔 대학에 속한 시간강사들이나 조용히 호응해주리라 판단했다. 하지만, 그가 연재하는 동안 독자들의 지지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가 제기한 문제는 그 자체로서 충격적인 대학의 실상이었고, 게다가 국문학을 전공한 그의 문체는 독자들이 충분히 공감하고 함께 가슴 아파하기에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났다. ‘오늘의 유머’ 게시판을 거쳐 인터넷 매체인 ‘슬로우 뉴스’와 웹진 ‘직썰’에 연재하는 동안 그의 글은 누적 조회 수 200만을 넘을 정도로 큰 관심을 얻는다.


그리고 이어진 출판사의 출간 제안. 그는 책을 내기로 결심한다. 책은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정말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고자 하는 취지와 내용으로 구성하기로 한다. 하지만 책 출간은 당시의 김민섭으로선 일생일대의 결단이고 선택이었다. 소셜미디어에서의 반응을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책이 일으킬 사회적 파장을 그때쯤은 충분히 짐작을 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이 서평을 쓰고 있는 나는 김민섭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가 나오고 나서 당시 내가 진행하던 tbs 〈TV책방 북소리〉라는 대담 프로그램에 그를 초대했다. 녹화를 끝내고 나는 그에게 다시 만나기를 청했다. 며칠 후 나는 그의 이야기들을 상세히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나는 걱정을 담아 그에게 물었다. “학교에서 괜찮겠어요? 문제가 없나요?” 그가 답했다. “문제는 벌써 생겼습니다. 얼마 전 학교에서 나오기로 결정되었습니다.” 나는 계획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글을 계속 쓰는 삶을 살고 싶은데, 가능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처와 아이가 있으니 생활비가 필요하고, 그래서 그해 연말까지는 벌이와 글쓰기를 병행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일정한 금액 이상을 벌지 못하면 당장 내년부터는 취업을 하든 다른 직업을 알아보려고 한다는 대답을 했다. “제가 지금 대리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그럭저럭 당장 생활은 됩니다.” 그의 대답 말미에 딸려온 말이다. 그 순간 나는 물개박수를 쳤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걸 씁시다. 젊은 지식인이 대학을 나와 대리운전을 하며 보고 느낀 이야기들을 기록해 사회비평서로 내면 좋겠네요.”


이어서 그런 내용이면 홍세화 선생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도 겹쳐 떠오르지 않느냐고도 했다. 1995년에 출간된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는 ‘왜곡된 한국의 현대사에 의해 왜곡된 직업과 삶의 공간을 강요당한 불운한 지식인’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김민섭이 새로 쓰게 될 ‘대리운전’ 이야기는, 저 문장 중 ‘한국의 현대사’ 부분을 ‘한국의 사회상’으로 교체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왜곡된 한국의 사회상에 의해 왜곡된 직업과 삶의 공간을 강요한당 불운한 지식인 김민섭.’ 1995년과 2016년. 그 20년 동안의 세월에도 여전히 고단하고 척박한 한국 지식인들의 삶, 그 기막힌 정황을 가슴 아프게 지켜보며 독자들이 지금의 우리 사회를 성찰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대리사회』라는 제목은 김민섭이 대화 중에 제안했다. 그의 어린 아들이 우리 집 마루와 부엌을 폴짝거리며 뛰어다니는 동안 『대리사회』의 골격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김민섭은 돌아가 그날로부터 곧장 집필에 돌입했고, ‘다음스토리펀딩’에 연재를 시작했다. 동시에 나는 출판사를 물색했다. 당시 대한교과서에 재직 중이던 조은희 상무는 『대리사회』 기획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계약 의사를 밝혔다. 기획제안서 한 장 없이 계약이 이루어졌다. 김민섭이라는 저자에 대해 이미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게다가 초판 1만 부를 제작하겠다는 조건까지 있었다. 달랑 책 한 권 낸 저자와의 출판권설정계약으로는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김민섭은 글을 대단히 빨리 쓴다. 독자들의 지지와 응원에 힘입은 듯 그는 가히 빛의 속도라 할 만큼 빠르게 연재를 이어갔다. 그는 서울과 원주를 오가며 밤에는 여전히 대리운전을 계속했고, 새벽에 잠시 자고는 하루 종일 글을 쓰는 일과를 반복했다. 그렇게 해서 『대리사회』 는 기획하고 연재를 시작한 지 불과 5개월 만인 2016년 11월 와이즈베리에서 출간됐다. 이 책을 통해 김민섭은 본인이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유명해졌다. 하지만 지식인으로서 저술가로서 그는 이미 처음부터 작가적 전략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증거가 그의 저작들이 ‘나-사회-시대’의 순으로 분명한 확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첫 책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바로 김민섭의 ‘나’에 해당한다. 그 책에서 김민섭은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며 여기서 이대로 사는 것이 과연 옳으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어진 『대리사회』는 그가 설정한 순차적 맥락에서 ‘사회’에 해당하는데, 김민섭이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이 세상에 등장하는, 말하자면 ‘서론’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는 이후 2017년 9월에는 『아무튼, 망원동』을, 2018년 7월에는 『고백, 손짓, 연결』을 출간했다. 이 두 권의 책 역시 ‘김민섭의 사회’에 해당하는 일련의 저작들로 볼 수 있다. 그가 2018년 안에 출간을 목표로 지금 쓰고 있는 책의 가제는 『훈의 시대』다. 이제 ‘사회’에서 ‘시대’로 시야와 지평을 확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맥락에서 보자면 김민섭의 다음 행보 역시 ‘시대’일 것이며, 당분간 그는 ‘시대’라는 전제에서 본론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을 줄기차게 펼칠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는 『대리사회』에서 매우 예리하게 우리 사회의 폐부를 파고든다. 김민섭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지금 우리의 사회를 비평할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대한민국 사회에 은밀하게 자리를 잡은 이른바 대리사회의 괴물은 이제 그 누구도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서 행동하고, 발화하고, 사유하지 못하게 만들며, 우리 모두를 누군가의 욕망을 대리 수행하는 대리인간으로 만들어 낸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주체라는 환상을 덧입힌다.” 우리 사회에 대한 그의 진단과 분석은 예리하고 탁월하다. 대리운전기사로서 일과를 마치고 타인의 운전석에서 내린다고 해도 저자는 자신이 더 이상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김민섭은 바로 이 지점을 지극히 섬세하게 포착한 후, 자신에게 ‘순응하는 몸’이 만들어졌다고 표현한다. 『대리사회』는 저자가 거리에서 만났던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통해, 이미 주체성을 잃고 ‘순응하는 몸’으로 변형되어버린 ‘대리사회의 괴물들’이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임을 깨닫게 만든다.


그의 첫 책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지금 검색하면 저자명이 김민섭으로 명기되어 있다. 만약 ‘309동1201호’로 적힌 초판본을 가지고 있다면 중고책방에 내놓지 말고 잘 보관하길 바란다. 김민섭의 행보를 볼 때, 언젠가는 그 책이 정가보다 훨씬 비싸게 거래될 가능성이 크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김민섭 지음, 은행나무, 2015


『아무튼, 망원동』

김민섭 지음, 제철소, 2017


『고백, 손짓, 연결』

김민섭 지음, 요다, 2018





김성신 -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겸임교수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출판사에 입사했다. 저작권회사를 창업하기도 했다. 현재 KBS 1라디오 「생방송일요일아침입니다」의 책 소개 코너에 16년째 고정 출연 중이다. tbs의 서평 프로그램 「TV 책방 북소리-해결책 코너」의 진행 외에도 10여 개의 방송에 고정 출연하고 있으며, 스포츠경향과 조선일보, 〈기획회의〉등에 칼럼과 서평을 쓰고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 창의융합교육원 겸임교수다. 지은 책으로는 『북톡카톡』 등이 있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참여자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