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불편한 조선시대를 다시 보게 하다

인문 분야 『조선의 힘』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의 힘』

오항녕 지음, 역사비평사, 2010










불편한 조선시대를 다시 보게 하다


김영수 - 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






기원전 108년 한의 침공으로 고조선이 멸망했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고조선은 1차의 접전(패수)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이후 약 1년에 걸쳐 한의 군대에 맞서 완강하게 대항하였다. 그러나 장기간의 전쟁으로 지배층의 내분이 일어나 왕검성이 함락되어 멸망하였다(기원전 108). 고조선이 멸망하자 한은 고조선의 일부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여 지배하고자 하였으나, 토착민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그리하여 그 세력은 점차 약화되었고, 결국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소멸되었다.”


고조선 멸망을 기록하고 있는 기본 사료는 사마천의 『사기』 권115 「조선열전」이다. 「조선열전」의 마지막 대목은 “그리하여 마침내 조선을 평정하고 4군을 두었다”이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이 대목에 주목하여 『한서』에 나오는 이른바 ‘한사군’, 즉 낙방, 진번, 현도, 임둔의 위치를 비정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한사군의 위치는 대체로 한반도 이내로 비정되었고, 한국사의 출발은 타국의 식민지로 시작되었다는 식민사관 내지 반도사관의 틀이 만들어졌다. 이후 한국 고대사를 둘러싼 논쟁은 대부분 고조선의 강역을 비롯하여 한사군의 위치에 집중되었다. 일제가 의도적으로 만든 ‘강역 프레임’에 걸려 한국 역사학계는 100년 가까이 내부 투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고조선이 내분으로 멸망했듯이.


그런데 신기하게도 식민사학자들이나 그들의 사관과 연구 방법을 계승한 친일 사학자들 누구도 『사기』 「조선열전」의 중요성을 지적하지 않고 있다. 「조선열전」은 고조선과 관련한 그 어떤 기록보다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첫째, 「조선열전」은 1차 사료다. 고조선이 멸망한 기원전 108년은 「조선열전」을 남긴 사마천의 나이 38세였다. 말하자면 당대사 기록이다. 둘째, 「조선열전」은 고조선과 관련한 가장 오래된 역사 기록이다. 『사기』 이전 일부 기록에 조선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체계를 갖춘 역사서에 별도의 기록으로 남겨진 것은 「조선열전」이 유일하다. 셋째, 한국 고대사의 뜨거운 감자인 한사군과 관련하여 「조선열전」은 어디에서도 사군의 명칭을 남기지 않았다. 사군의 명칭은 『사기』보다 늦은 『한서』와 그 이후의 역사서에 나타난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1차 사료 「조선열전」을 건너뛰어 『사기』보다 늦게 나온 『한서』 이후의 기록들을 가지고 한사군의 위치를 비정하는 데 열을 올렸던 것이다.


요컨대 식민사학자들은 조선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 고대사의 강역을 반도 이내로 축소하는 강역 프레임을 완벽하게 공들여 짜냈고, 우리 학계는 이 프레임에 걸려 지난 100년 가까이 내부 투쟁에 열을 올려 왔던 셈이다.


식민사학자들이 짜놓은 프레임은 한국 고대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당시와 가장 가까운 시대인 조선사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프레임을 짜서 조선사를 왜곡하고 심지어 날조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해방 이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결과 한국 역사 구석구석마다에 식민사관의 망령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재야가 되었던 역사학계 전체가 이 프레임을 돌파하지 않는 한 식민사관의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오항녕의 『조선의 힘』은 식민사관이 짜놓은 프레임을 돌파할 수 있는 저력이 있는 책이다. 드라마나 영화로 가장 많이 만들어졌고 또 만들어지고 있는 조선시대의 역사를 읽을 때마다 뭔지 모를 불편함을 비교적 시원하게 걷어내는 참신한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이 모두 비교적 쉽고 명쾌하게 읽힌다.


1장은 조선 문치주의의 핵심인 경연을 다루고 있다. 권력(권력자인 왕)에 대한 통제를 제도화하는 방법으로서 경연에 주목하고 있다. 말하자면 왕이라는 리더와 리더십을 둘러싼 자질 함양을 위한 집단 스터디를 부각시키고 있다. 2장은 사관들이 남긴 왕조실록을 다루고 있는데, 실록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인식하여 조선의 인프라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3장은 과거와 현재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개념인 예치와 법치, 헌법과 경, 헌법과 강상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4장은 조선시대 국가 정책으로서 가장 중요한 항목이었던 대동법의 시행을 다루면서 국정 시스템의 운영에 대한 의미 있는 통찰력을 제기한다.


5장은 조선의 문명을 이끌어간 사상으로써 성리학을 다루면서 성리학이 사상일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전반에 침투한 일상성의 사상이란 점을 부각했다. 성리학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대목이 적지 않다. 6장은 학계의 예민한 논쟁거리인 광해군에 대한 논의다. 그동안 학계와 재야는 광해군, 특히 그의 중립외교를 띄우기 위해 동원된 사실과 논리의 왜곡을 혹세무민으로 비판하는 한편 이 혹세무민의 뿌리가 식민사학에 있다는 점을 밝혔다. 이 문제는 앞으로 상당한 논쟁을 끌어낼 것으로 보인다. 7장은 언론과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는 재야 사학자들의 글에 대한 비판이다. 당쟁과 이기론을 둘러싸고 일부 역사학자의 날조와 조작, 단장취의와 같은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장에서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재야사학계 일부의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이분법적이고 대립적 사고와 연구방법, 역사학의 포퓰리즘 문제는 그대로 식민사학의 프레임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 8장은 단종과 사육신의 복권 문제를 다루면서 이 문제를 ‘역사 바로 세우기’에 비유한 점이 참신하다. 역사의 평가란 것이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 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의 역사는 여러모로 불편하다. 모두에게 익숙한 남존여비니 노비제도니 당쟁이니 하는 용어들이 일쑤 조선시대의 역사를 읽을 때마다 머리를 스치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이 외세에 시달리다가 일제에 의해 멸망했기 때문에 이런 불편함은 더 가중된다. 그래서 조선사의 자율성을 강조하기도 하고, 당쟁이라는 용어를 붕당정치로 바꿔보기도 했지만 대중들 사이에서 조선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여기에 대중을 자극하고 도발하는 데 유용한, 하지만 대단히 천박한 이분법적 사고와 방법론에 입각한 대중 역사서가 횡행하면서 조선사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와 상식적인 판단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조선시대는 지금 우리에게서 가장 가까운 과거다. 많은 부분이 연결되어 있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대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바른 인식은 한국사 전체에 대한 바른 이해와 인식을 위한 첩경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아주 좋은 다리 역할을 할 것이다. 저자의 다음 저작들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병자호란』 (전2권) 한명기 지음, 푸른역사, 2013


『왕을 참하라』(전2권)

백지원 지음, 진명출판사, 2009


『조선왕 독살사건』

(전2권) 이덕일 지음, 다산초당, 2009 







김영수 - 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



사마천과 『사기』를 30년 넘게 공부하면서 중국 역사와 역사 현장을 통해 중국 알기에 매진해오고 있다. 현재 현장과 접목한 『사기』를 완역하는 작업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중국 역사를 조직과 경영에 접목하여 리더십, 인재론, 인문경영 등을 주제로 기업, 교육기관, 공공기관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 『난세에 답하다』 『인간의 길』 『대륙의 거성』 등이 있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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