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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나를 만든 것은 무엇인가

인문 분야 『철학과 굴뚝청소부』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철학과 굴뚝청소부』

이진경 지음, 그린비, 2005










나를 만든 것은 무엇인가


임종수 -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1990년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나는 철학에 어떤 엄숙주의가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보고 ‘철학에 왜 굴뚝 청소부란 제목을 달아놓았을까, 그냥 철학을 가볍고 쉽게 설명하려는 여느 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2000년대 초 청소년들에게 철학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이 책을 다시 만났다. 그러니까 나는 동년배들보다 비교적 좀 늦게 이 책을 ‘만난’ 셈이다. 법정 스님 표현을 따르면 그제야 ‘마주침이 아니라 만남’이 이루어졌다고 할까.


1994년 초판, 2001년 개정판, 2005년 개정2판. 2015년 개정3판. 이처럼 『철학과 굴뚝청소부』은 개정과 증보로 변형되어왔다. 이렇게 오래도록 읽힌 힘은 무엇일까. 어떤 책이 오래 읽히는 데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또 판을 거듭하고 증보하는 데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이 책은 일종의 근현대철학 입문서로 읽혀온 듯하다. 이 책에는 우리 시대와 가장 가까운 철학적 사유가 등장한다. 이 점이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손쉬운 입문서가 아니다. 철학의 전통적 주제인 진리에 대해 묻고, 그 물음이 파열되고 해체되었으며, 그 안에서 주체의 문제를 묻는다. 진리를 묻는다는 것은 주체가 있어 가능한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주체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이 오늘 우리 시대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당장 책에서 이런 물음에 답을 찾고 싶은 독자라면 잠시 그 물음의 진원지를 거슬러 올라갈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이 책이 1994년에 초판이 나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이 책이 나오기 전 현실사회주의가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고, 포스트모던의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현실과 사상계는 새로운 판을 짜야 했다. 꽉 붙잡고 있던 기둥이 사라지는 현상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비판했던 곳에 가서 삶의 터전을 잡기도 하고, 이른바 ‘전향’을 한 사람도 있었으며 일상인으로 안온한 삶을 사는 것으로 그러한 흔들림과 해체를 겪어간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은 이러한 사상적인 공백과 공허를 체험하던 이들에게 단순히 철학사로 다가오진 않았다. 내가 몸담은 세계의 가치들, 주체, 진리 이런 이념들이 과연 무엇이었는가. 서양이 지배한 근대를 넘어서 탈근대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했다.


그런데 근대를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근대의 실체를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절대적 이념, 주체나 진리가 사라진 시대가 되었지만, 근대에 대한 이해 없이 근대를 넘어서서 사유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또다시 사상의 공황으로 치달을 수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의 문제의식이 담긴 말을 인용하면 이렇다. “근대란 무엇인지, 탈근대란 무엇인지, 근대를 벗어난다고 함은 무엇을 뜻하는지, 만약 근대를 벗어나려는 시도가 타당하다면 그 ‘벗어남’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탈근대적으로 사고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요구되는지를 검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 자체를 다시 명료하게 보여주는 건 책 뒤표지에 나온 내용이다.


“두 사람의 굴뚝청소부가 청소를 마치고 내려왔다. 한 사람은 얼굴이 더러웠고, 한 사람은 얼굴이 깨끗했다. 이 중 과연 누가 세수를 하게 될까? 얼굴이 깨끗한 사람이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서, 자기도 더러우리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대상이 갈라지면 인식된 것이 사실과 일치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럴 때 진리란 가능할까? 근대철학은 진리를 묻는다. 하여 저자는 데카르트를 출발로 삼는다. 다시 말하면 의심하는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는 주체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데카르트 이후는 점점 다른 면모를 보인다. 전통 신학에 대한 회의와 과학기술, 자본주의, 무의식의 발견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꾸어놓았다.


저자는 이러한 근대철학의 안과 밖의 경계를 데카르트 이후 근대 너머의 근대철학자 스피노자, 근대철학의 동요와 위기를 드러내는 유명론과 경험주의(로크, 흄), 근대철학의 재건과 발전을 보여주는 독일의 고전철학(칸트, 피히테, 헤겔), 근대철학의 해체를 알리는 근대(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와 탈근대 사이를 오가는 언어학과 철학의 혁명(훔볼트, 소쉬르, 비트겐슈타인), 근대 너머의 철학을 시도하는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레비스트로스, 라캉, 알튀세르, 푸코, 들뢰즈와 가타리)의 순서로 설명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근현대 철학의 내용을 사실적으로 기술하거나 나열하지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철학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철학의 역사 안에 그어진 경계선들을 찾아내고, 그 경계선마다 새겨진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의미를 읽어내려 한 이 책은 찬찬히 책장을 넘기면 근현대 철학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철학의 대중화라는 이름 아래 철학의 수준을 낮추어 서술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철학을 몰랐던 이들에게 철학을 알리는 대중의 철학화의 전범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무엇보다도 철학적 사고란 비판적 사고이고,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근거를 따져 묻는 작업이라면 이 책은 오늘 우리 시대가 어떻게 이런 모양으로 형성되었는지 알도록 따져 물어놓았다. 나는 여기에 이 책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내가 지금 어디에서 사는지, 어디에 놓여 있는지, 나는 누구인지. 서구가 만들어놓은 근대에 대한 물음과 탈근대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삶의 양식을 도모할 것인지를 묻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 책은 각 장의 이해를 위해 도판과 사진을 적절하게 배치해 사유의 흐름을 도와준다는 점이다. 시각 자료 자체가 들여다보고 있으면 사유를 하도록 자극한다. 단순한 보조자료 정도가 아니라 깊이 사유하게 하는 도판과 사진은 우리를 철학 하도록 이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다시 쓰는 서양 근대철학사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오월의봄, 2012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

철학아카데미 엮음, 동녘, 2013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이진경 지음, 그린비, 2010 






임종수 - 성균관대 초빙교수



대학에서 동아시아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연구원 생활을 거쳐 지금은 대학과 여러 인문학 공동체, 문화센터에서 동서양고전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마을 독서모임에도 관심이 많고, 인문학 주제와 관련된 책들과 함께 청소년을 위한 철학소설과 인문서를 집필 중이다.




information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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