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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민진장 묘역 閔鎭長 墓域

경기도기념물 제199호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군국軍國의 중무重務를 맡았던 민진장閔鎭長(1649~1700)의 묘이다. 민진장은 여흥민씨驪興閔氏로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69년(현종10) 20세에 진사가 된 뒤 현령을 지내던 1686년(숙종12)에 별시문과에 장원하였다. 할아버지 민광훈閔光勳, 아버지 민정중閔鼎重에 이어 3대가 장원하여 삼세문장三世文壯이라 불렸다. 승정원승지·예조참판·승정원도승지를 거쳐 1696년(숙종22) 병조판서가 되었고, 1700년(숙종26) 우의정에 올랐다. 효행이 뛰어나서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민진장 묘역,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묘역의 봉분은 단분으로 호석護石을 둘렀으며 부인 의령남씨宜寧南氏와의 합장묘이다. 석물로는 묘비 1기, 상석·혼유석·향로석 각 1기, 망주석·문인석 각 1쌍 및 계체석 등이 있다. 봉분 좌측에 묘비의 음기陰記의 지은이는 알수 없지만 금원군錦原君 박사익朴師益(1675~1736)이 글을 써서 1734년(영조10)에 건립한 것이다. 문인석은 양관조복梁冠朝服에 홀笏을 들고 있는 형상이다. 양관은 삼량관三梁冠으로 무武에는 여의운문을 장식하였다. 조복의 앞자락에는 여의운문의 전형인 원형의 문양이 양각되어 있고, 뒷면에는 꽃문양이 있는 대대大帶·후수後綬·패옥佩玉을 묘사하였다.


민진장 신도비,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묘역 아래에 배치된 신도비의 비문은 이재李縡가 찬하고, 홍봉조洪鳳祚가 글을 섰으며, 민진원閔鎭遠이 전액篆額을 써서 1743년(영조19)에 건립한 것이다. 신도비는 이룡옥개석螭龍屋蓋石·비신碑身·기대基臺의 형태이다. 팔작지붕의 옥개석 위에 두 마리의 이무기가 몸이 뒤엉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얹은 것이 특징적이다. 기대基臺의 전면에는 연꽃들 속에서 물결을 헤엄치는 현무玄武가 목을 뒤틀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형상을 양각하였다. 그리고 기대의 좌우 측면에는 1마리의 해태를 앉아있는 형태로 양각하였고, 후면에는 연화당초문을 양각하였다. 이와 같은 신도비는 그 예도 드물뿐더러 조각 수법이 뛰어나 예술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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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시대/ 조선시대

    규모/ 일원

    / 단분, 묘비 1기, 향로석 1기, 혼유석 1기, 호석,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 계체석, 신도비 1기

    주소/ 여주시 점동면 부구리 산8-4

    지정일/ 2004.05.06

    소유자/ 여흥민씨 종중

    관리자/ 여흥민씨 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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