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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북한산 산영루지 高陽 北漢山 山映樓址

경기도기념물 제223호




<고양 북한산 산영루지>는 북한산성내 중흥사 근처의 계곡 암반에 위치한 산영루 일대를 일컫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삼각산三角山 서남쪽 중흥사重興寺 일대의 중흥동은 조선시대 한성부의 명승이었다고 한다. 원래 산영루는 북한산北漢山 행궁行宮의 부속건물로 중흥사 승려들이 관리하면서 유사시 왕이 사용할 수도 있는 시설이었다.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당대의 시인과 유학자들이 아름다움을 칭송하면서 기문과 시를 남겼다.


북한산성 선정비군과 산영루지, 일제강점기 ©국립민속박물관


북한산 산영루 소실전, 일제강점기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산영루의 최초 건립시기는 알려진 바 없다. 최초의 기록은 1603년 (선조36)으로 이정구의 『유삼각산기遊三角山記』에 ‘산영루 옛터’ 라는 기록이 있는데, ‘옛터’라고 기술한 것으로 보아 당시 누각은 소실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최초 건립 시기는 더 빨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산영루는 여러 차례 중수와 소실을 거듭하였다. 1714년 송상기의 『유북한기遊北漢記』에는 중흥사 승려들이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1745년에 편찬된 『북한지北漢誌』에는 소실된 것으로 나타난다. 가장 최근의 모습은 1885년 주한미국영사관의 G.C.Foulk이라는 공사직 대리가 촬영한 사진에 남아있는데, 장주초석위에 凸자 모양의 팔작지붕을 얹은 모습이다. 이후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소실되어 초석만 남아있다가, 2014년 고양시가 고양 600년 역사복원사업의 일환으로 복원하였다.


고양 북한산 산영루지 복원 이전, 2012 ©경기문화재연구원


고양 북한산 산영루지 복원 이후, 2013 ©경기문화재연구원


산영루의 초석은 부재들 중 가장 오래된 유구로서 1885년 사진자료 뿐만 아니라, 18세기 후반 소당 이재관 선생의 「북한산영루시회사생도北漢山映樓詩會寫生圖」에도 남아 있어 이때도 지금의 장주초석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암반위에 세워진 장주초석은 10개이며 초석들은 정방형에 가깝게 치석되었고, 상면 역시 균일하게 다듬어져 있어 뛰어난 균형미를 보인다. 정자의 평면은 정면 3칸의 정칸에 1칸을 덧붙여 凸자 형이며, 지붕은 겹처마를 두른 팔작지붕으로 지붕면이 만나는 추녀마루의 끝 일부에만 막새기와가 설치되었다. 마루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난간은 평난간으로 아자교란亞字交欄을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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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시대/ 조선시대

    규모/ 일원, 지정구역 8,279㎡

    주소/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237 외

    지정일/ 2013.06.07

    소유자/ 국유

    관리자 / 고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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