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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디아스포라, 이산에서 플랫폼으로 : 경기도의 이점과 역할 1

2019-04-12 ~ 2019-04-12 /

이 글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코리안 디아스포라 국제 학술 컨퍼런스」 자료집에서 발췌되었습니다.  

윤인진(고려대학교 교수)


1. 들어가는 말


지금껏 디아스포라는 ‘민족이산’(民族移散)으로 번역되며 한 민족이 모국에서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해외로 흩어져서 모국으로 귀환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이주와 그들의 공동체를 가리켰다. 대표적으로 유대인이 유대왕국이 멸망하면서 바빌론으로 포로로 끌려갔던 강제이주와 그 이후 로마 제국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전 세계로 흩어진 것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유대인의 디아스포라는 영어 대문자 “D”로 시작하여 “Diaspora”로 표기하는데,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바빌론 유수 이후 팔레스타인 밖에서 흩어져 사는 유대인 거류지” 또는 “팔레스타인 또는 근대 이스라엘 밖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가리킨다(Choi, 2003: 10). 유대인의 경험이 디아스포라로 각인되면서 디아스포라는 강제이주, 민족이산, 억압, 귀향 등으로 상징되는 비극적인 이주와 정착의 경험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디아스포라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제2차 세계대전 중 6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이 나치 통치하에서 학살당한 것이라 할 수 있고,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유대인 박해와 인종청소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종료되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60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해외로 흩어지는 새로운 디아스포라를 낳았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며 패러독스이다.


디아스포라가 처음부터 비자발적이고 비극적인 경험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다. 어원적으로 디아스포라는 그리스어 전치사 dia(영어로 “over,” 우리말로 “~를 넘어”)와 동사 spero(영어로 “to sow,” 우리말로 “뿌리다”)에서 유래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소아시아와 지중해 연안을 무력으로 정복하고 식민지로 삼은 뒤 그곳으로 자국민을 이주시켜 세력을 확장하였다. 이때 디아스포라는 이주와 식민지 건설을 의미하는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를 가졌다. 그리스는 농업에 적합한 지형이 아니었고 해안가에 위치했기 때문에 일찍이 해상무역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켰고, 지중해 인변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해서 영토를 확장했다(Niesbett, 2003). 지중해는 마치 ‘초고속도로’(super highway)처럼 유럽의 여러 문명들이 서로 교류하고 패권국가가 세력을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만일 우리가 디아스포라의 ‘원조’(original)로 돌아간다면 디아스포라는 결코 비자발적이고, 비극적이고, 수동적인 사건과 현상만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인간의 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1> 고대 그리스 해외 식민지


해외에 많은 수의 재외동포를 갖고 있는 국가들(예를 들어, 중국, 이스라엘, 이탈리아, 그리스, 인도, 멕시코)이 재외동포를 자국의 경제와 안보, 세계화 전략에 활용하게 되면서 디아스포라는 더 이상 이산의 의미보다는 초국가적 네트워크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전 세계 170개 국가들에 700만 명에 달하는 재외동포를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민적 지지를 받게 되면서 학계에서는 한민족공동체론이 제기되었다


성경륭·이재열(1998)은 한민족공동체 발전방안으로 거주국의 정치경제적 제약을 피하면서 급속도로 발전하는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전 세계에 있는 재외동포들을 연결하고 통합하는 방안으로 ‘한민족 네트워크공동체’ 개념을 제시했다. 이 개념은 “한민족의 혈통과 문화적 공통성(언어, 전통, 역사, 관습 등)을 기초로 한반도와 세계 여러 지역에 거주하는 한민족 구성원들이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와 정보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공동의 유대와 귀속감을 발전시키고, 문화적. 경제적 교류를 증진하며, 이를 통해 민족구성원들의 생존, 안녕, 발전, 복지를 함께 도모하는 문화·경제공동체”를 의미한다. 임채완·전형권(2006)도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모국과 재외한인 간에 초국가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을 형성케 하였고, 세계화 시대에 한민족공동체의 조건은 동일한 공간과 혈통적 동질성이 아니라 네트워크와 한민족으로서의 심리적 동일시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세계화 시대에 한민족공동체의 조건은 동일한 공간과 혈통적 동질성이 아니라 네트워크와 한민족으로서의 심리적 동일시라고 하였다. 윤인진(2009)은 초국가주의 관점에서 재외동포와 모국간의 상생적인 관계를 ‘글로벌 코리안 네트워크’로 제시하면서 이를 “한민족의 혈통과 문화적 공통성, 그리고 한민족 정체성을 기초로 한반도와 전 세계 여러 지역에 거주하는 한민족 구성원들이 형성한 인적, 물적, 정보 네트워크”로 정의하였다.


2. 플랫폼으로서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필자는 네트워크 개념에서 한 걸음 나아가 플랫폼으로서의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일상적으로 플랫폼은 기차역과 같이 기차와 승객이 만나는 곳을 연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인터넷과 IT의 발달로 구글과 네이버 같은 검색엔진,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위키피디아와 같은 인터넷 백과사전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공유 사이트와 같이 무한대로 확장되고 있다 좀 더 체계적으로 정의하면 플랫폼은 공급자와 수요자 등 복수그룹이 참여하여 각 그룹이 얻고자하는 가치를 공정한 거래를 통해 교환할 수 있도록 구축된 환경으로서 플랫폼 참여자들간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면서 모두에게 새로운 가치와 혜택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상생의 생태계’라고 할 수 있다(윤상진, 2015). 최근 들어 플랫폼 비즈니스가 성공하는 요인은 다수의 다양한 주체들이 상호이익을 추구하면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욕구를 충족할만한 새롭고 다양한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유튜브와 넷플릭스와 같은 인터넷 기반 미디어가 공중파 방송을 제치고 급성장한 것은 인터넷 공간에서 수많은 공급자들과 수요자들 간의 끊임없이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정보·지식기반 경제에서 플랫폼 비즈니스는 성공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ITC 분야에서 플랫폼의 개념을 가장 명료하게 정의한 것으로 알려진 아이스만·파커·알슈타인(Eisenmann, Parker, and Alstyne, 2008)은 플랫폼을 ‘사용자 간 거래(transaction)에 필요한 컴포넌트와 규칙의 합집합’이라고 규정하였다(최창현, 2017에서 재인용). 여기서 컴포넌트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 모듈을 포함하고, 규칙은 네트워크 참여자를 조율하거나 조정하는 규칙을 의미한다. 플랫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표준, 정보교환의 약속된 장치(protocol), 사용자의 행위와 경험을 지원하는 정책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이해관계자의 권리와 책임을 포괄하는 유기적인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최창현(2017)은 맞선클럽의 예를 들면서, 남성과 여성이 접촉하고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장’을 제공하고 이 장에서 서로 교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플랫폼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복수의 집단을 연결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플랫폼 전략의 핵심이라고 한다. 이런 전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① 연결기능(복수 그룹의 교류를 촉진하는 ‘장’을 제공하고 서로를 연결하는 기능), ② 비용감소기능(각 그룹이 개별적으로 처리하기보다 플랫폼이 대신 제공해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기능), ③ 검색비용절감 기능(플랫폼이 제공하는 브랜드가 사용자에게 일종의 안심과 신뢰를 부여함으로써 서비스에 대한 일정 수준의 질을 보장하는 기능), ④ 커뮤니티 형성에 의한 네트워크 효과(참가 그룹 간에 신뢰의 분위기가 형성되고 정보의 상호 교류가 일어나는 기능), ⑤ 삼각 프리즘 기능(언뜻 보면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두 개 이상의 그룹을 연결해 주는 기능)과 같은 5가지 기능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플랫폼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재외동포연구와 정책으로부터 ‘퀀텀 리프’(quantum leap)와 같이 크게 도약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산의 개념에서 네트워크의 개념으로 전환한 것도 큰 변화이지만 다시 네트워크에서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것은 창의적인 상상력과 기획력을 요구한다. 따라서 플랫폼으로서의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설계하기 전에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 정의와 방향성, 필요조건들을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플랫폼으로서의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전 세계의 재외동포들이 초국가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상호작용하여 서로에게 새로운 기회와 혜택을 주고받는 상생의 한민족 공영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이런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플랫폼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복수의 참여자, 상호이익, 공정한 거래, 개방성, 환경과 인프라, 조정자 등의 조건들이 선행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첫째, 거의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을 만큼의 다수의 참여자가 있어야 한다. 집단지성이 이뤄질 수 있도록 다양한 배경과 능력, 취향을 가진 참여자들이 플랫폼에 참여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상호이익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하고 개인 참여자가 충분하고 정당한 이익의 배분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지속적으로 플랫폼에 참여하게 되는 동기를 부여받게 된다. 셋째, 참여와 이익의 배분이 공정한 규칙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 넷째, 플랫폼이 작동할 수 있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 모듈(앞에서 언급한 컴포넌트)가 정비되어야 한다. 다섯째, 플랫폼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참여자들 간의 교류를 조정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입해서 해결할 수 있는 조정자가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들을 통해서 현재의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살펴보면 잠재력과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 기능하는 플랫폼으로 발전하기에는 부족한 점들이 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전 세계 170개 이상의 국가들에 700만 명의 재외동포를 갖고 있고 재외동포와 모국 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지만 이것이 시너지 효과를 내서 새로운 가치와 혜택을 생성하는데 한계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글로벌 코리안 네트워크가 주로 특정 국가의 재외동포와 모국간의 단선적인 관계이지 서로 다른 국가들에 거주하는 재외동포들 간의 복선적인 관계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다. 정치경제 체제, 언어와 문화, 이념, 세대, 계층 등의 차이로 인해 서로 다른 국가들의 재외동포들은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데 한계를 갖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글로벌 코리안 네트워크가 아직까지 정부 주도로 형성되어서 사용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재외동포재단이 운영하는 ‘코리안 넷’(www.korean.net)은 700만 재외동포들이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고 상호 교류하는 온라인 네트워크(On-Line Network)로 만들어졌다. 코리안 넷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의료, 법률, 농업 등 각 분야를 망라한 종합정보망으로서 필요한 콘텐츠와 인물, 단체DB를 통해 「온라인 통합 한민족네트워크 망」으로 상생, 번영해 나가기 위한 메타 포털(Meta Portal)을 지향한다. 하지만 코리안 넷을 방문해서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와 서비스를 검색하면 그 규모와 다양성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홈페이지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다양한 배경과 욕구를 가진 재외동포들을 유인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세 번째 이유는 재외동포들이 글로벌 코리안 네트워크에 참여해서 상호교류할 수 있는 동기 또는 이해(이익)가 약하다는 것이다. 네트워크를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것은 참여자의 이해인데 현재 상황에서는 굳이 글로벌 코리안 네트워크에 참여해서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뚜렷하지 않으니까 네트워크가 플랫폼으로 진화하지 못하는 것이다. 네 번째 이유는 플랫폼에서는 참여자들 간의 수요와 공급을 연결할 수 있는 연결기능이 필수적으로 중요한데, 코리안 넷, 세계한상대회 등과 같은 글로벌 코리안 네트워크는 공급자와 수요자가 서로 필요로 하는 콘텐츠와 서비스를 검색하는 기능이 취약하다.


이런 문제점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개선책이 필요하다. 첫째, 정부는 플랫폼의 인프라를 건설하고 조정자의 역할을 담당하는데 주력하고 실제 플랫폼의 운영은 개별 참여자들과 민간 조직들이 담당하는 방향으로 역할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중복사업이라고 비판받아온 재외동포재단이 운영하는 세계한상대회와 월드옥타(세계한인무역협회)가 운영하는 세계한인경제인대회를 통합하고 앞으로는 민간단체인 월드옥타가 세계한상대회를 운영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둘째, 복수의 행위자들이 플랫폼에 참여해서 다양한 콘텐츠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공급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개방적인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전 세계 재외동포들이 언어 장벽을 뛰어 넘어 효율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다국어 서비스가 개선되어야 한다. 셋째, 플랫폼에 참여해서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이익을 보장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유튜브에서 콘텐츠 시청의 이익을 배분하는 원칙을 벤치마킹해서 코리안 디아스포라 플랫폼에서도 정보와 지식, 미디어 콘텐츠, 유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할 때 그에 따른 공정한 이익이 배분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시리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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