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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국가주의와 한국인 디아스포라: 국경을 초월하는 음식 문화의 역동성에 관하여 1
2019-04-12 ~ 2019-04-12 /
이 글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코리안 디아스포라 국제 학술 컨퍼런스」 자료집에서 발췌되었습니다. |
I. 도입: 초국가주의와 음식 문화의 역동성
인류 역사에서 음식 문화는 터전의 이동과 함께 자연스레 변화하며 발전해왔다. 서로 다른 민족간에 고유의 음식을 소개하는 과정은 문화적 교류를 통해 나타나는데, 이러한 문화적 교류가 바로 터전의 이동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주민은 대개 기존에 갖고 있던 고유의 음식 문화와 식습관도 그대로 갖고 이동한다. 따라서 민족 고유 음식의 ‘세계화’는 기본적으로 터전의 이동에서 시작되는 셈이다. 여기서 음식의 세계화라 함은 특정 민족의 음식 문화가 다른 민족에 전파된 후 이들의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 들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음식으로 발전하는 전 과정을 일컫는다. 이주민의 음식 문화는 이주 지역의 기후와 재료, 문화 등에 영향을 받아 전혀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기도 한다.
인류의 이주와 음식 문화에 관한 역사적, 인류학적 연구는 무수히 진행돼왔다. 그 중에서도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1997)는 문명의 확산을 주제로 연구해온 대표적인 역사학자로 음식 및 음식 가공과 관련된 각종 기술과 문화가 유라시아 대륙을 통해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여타 대륙의 각 지역으로 어떻게 확산되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시드니 민츠(Sidney Mintz, 1985) 역시 이 분야의 대표적인 역사학자로 그는 인류학적 관점에서 전 세계 열강이 설탕 산업을 장악하기 위해 어떠한 방법으로 약자들의 이주를 강제했는지, 또 이러한 정치경제적 역동성 가운데 음식을 비롯한 서로 다른 문화가 어떤 식으로 혼합돼 왔는지를 풀어냈다. 이러한 연구 내용을 토대로 우리가 먹는 음식이나 조리법은 살고 있는 지역의 지리적 특징과 문화,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이주의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콩을 비롯해 간장이나 된장, 두부처럼 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음식은 중국 이주민이나 상인, 불교 수도승에 의해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지역으로 퍼져나갔을 가능성이 높다(Dubois, Tan and Mintz 2008).
이처럼 이주민을 통해 음식 문화가 전달되는 과정은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민족의 특색을 살린 음식 사업은 새로운 곳에 정착한 이주민이 가장 흔히 뛰어드는 사업 분야 중 하나다. 대표적인 예로 중국 식당은 북미 지역이나 오세아니아 대륙, 서부 유럽 국가 어디를 가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처럼 민족 고유의 음식은 이주민의 초기 정착과 사업 활동에 훌륭한 기반이 되곤 했지만, 유독 한국인에게만은 예외였다. 중국이나 일본, 태국 출신의 이주민과는 달리 한국 출신의 이주민은 한국 고유의 음식 문화를 적극적으로 상업화하지 못했다. 그저 같은 한국인끼리만 공유할 뿐이었다. 그나마 상업화 바람이 일기 시작한 건 최근 20년 사이 한류(Hallyu)가 확산되면서부터다. 중국이나 일본, 태국, 베트남 음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졌던 한국 음식은 한류의 태동과 함께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비록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과거 일본과 중국, 구소련 지역에 정착한 한국인 이주민 가운데서도 음식 사업에 성공한 사례는 다수 있었다. 또 북미 지역이나 오세아니아 대륙, 유럽 등지에 정착한 한국인이 스시 가게를 운영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들 식당의 메뉴는 전통적인 한국 음식뿐 아니라 이주 지역의 문화와 재료에 맞게 한국 음식을 변형하고 발전시킨 형태까지 모두 아우른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논문은 초국가주의에 기반한 음식의 상업화, 곧 전 세계로 흩어진 한국인 디아스포라가 전통적인 한국 음식을 이주 지역의 특색에 맞게 변형해 상업화에 성공한 사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 이주민이 특정 음식을 사업 메뉴로 선택하게 된 배경(이를 테면, 재미 한국인의 스시 사업, 재일 한국인의 호루몬야키 사업, 재중 한국인의 양꼬치 사업)과 더불어 구소련의 고려인 음식, 그리고 이들 음식이 대중화를 넘어 세계화될 수 있었던 이유를 밝히는 데 주력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전 세계 이주민들의 초국가주의에 기반한 문화적 태도와 깊이 연관돼 있다(cf. Willis 1992, 73).
II. 재일 한국인과 호루몬야키
오늘날 대부분의 일본 도심 지역에서는 호루몬야키(horumon yaki) 식당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나 돼지, 닭의 각종 내장을 숯불에 구워주는 곳이다. 이곳 식당에서는 테이블 가운데 놓여진 숯불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한국식으로 양념한 고기의 내장을 숯불에 구워 먹는다. 보통은 각종 나물(namul)과 한 두 가지 김치가 반찬으로 함께 나온다. 일본에서 호루몬야키는 야키니쿠(yakiniku)와 비슷하지만 김치나 지짐이(jijimi, 한국식 팬페이크)와 함께 먹는 한국의 전통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이주민이 민족 고유의 음식을 소개하는 것과 달리, 사실 호루몬야키는 한국 본토에서 유래한 음식이 아니다(cf. Song 2016). 이것은 재일 한국인(Zainichi, 일본에서 재일 한국인을 일컫는 이름)이 거주하던 빈민가에서 생겨난 음식이다. 식민 통치 기간에 일본에 거주하던 가난한 한국인 노동자들은 각종 고기의 내장을 양념해 익혀 먹곤 했다. 양념은 주로 고춧가루와 마늘을 이용해서 만들었다. 요컨대, 호루몬야키는 가난에 시달리던 재일 한국인들이 그저 생존을 위해 만들어 먹던 음식이었던 셈이다(Nomura 1999, 70). 전쟁 직후였던 1940년대와 1950년대 가난한 시절, 호루몬야키는 일본 전역의 한국인 빈민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처럼 먹을 것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먹었던 음식이었지만, 호루몬야키는 당시 재일 한국인 사이에서 아주 특별한 바비큐 요리로 인식되며 거듭 진화해갔다. 이후 1960년대에는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한국인이 만든 빈민가 음식이 수 차례의 변화와 개발을 거듭한 끝에 누구나 즐기는 맛있는 요리로 진화된 것이다. 호루몬야키의 소비량은 최근 들어 급격히 증가했는데, 이는 일본 거리 곳곳에 즐비하게 늘어선 호루몬야키 식당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Toshio 2005: 74). 비단 식당만이 아니다. 일본 내 한국 정육점과 슈퍼마켓에서는 병에 든 소스와 함께 호루몬야키를 판매하고 있어 주부들도 쉽게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또 일반적인 야키니쿠 식당은 물론 선술집에서도 호루몬야키는 빼놓을 수 없는 메뉴다. 호루몬야키가 이처럼 대중적인 음식이 되기까지는 지난 수십 년간 변형돼온 과정이 있었다. 이러한 변형은 단지 한 두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직접 요리를 하는 주방장을 비롯해 사장이나 고객, 미디어 등 식당 운영에 관계된 모든 이들이 만들어낸 기술적, 문화적, 사회적, 사업적 혁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호루몬야키는 일본에 있는 한국 이주민의 빈민가에서 태동한 음식으로 일본이나 한국 어느 한쪽의 고유한 음식 문화가 아니다. 그럼에도 일본 사회의 대중적인 음식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사회적, 문화적 변화와 관련이 깊다. 1960년대 일본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사회는 문화적으로도 매우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타 문화의 음식과 패션, 사상 등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더욱이 뭐든 아끼고 절약하는 일본인의 생활 방식은 고기의 내장까지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먹는 문화와도 잘 맞았다. 내장 요리는 이들에게 완전히 낯선 음식이었지만, 요리로 탄생시킬 수 있다면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바비큐나 야키니쿠 요리의 단점 중 하나는 숯불에 굽는 과정에서 고약한 연기와 냄새가 난다는 점이다. 바비큐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조차 야키니쿠 음식점에 갔다 오면 으레 옷에 배어나는 지독한 냄새는 기피한다. 하지만 1970년대 초반, 연기가 나지 않는 이른바 무연 숯불이 개발되면서 이러한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되었다. 1971년 신포(Shinpo)라는 기업은 무연 숯불을 개발해 시장에 공급하기 시작했고(http://www.shinpo-en.com/AboutusEN.html),이후 호루몬야키 및 야키니쿠 식당은 이전의 매캐하고 탁한 공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무연 숯불 외에도 호루몬야키 사업에는 이후 몇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과거에는 주로 낮은 등급의 고기 내장을 사용했으나, 오늘날 고급 식당임을 자처하는 대부분의 호루몬야키 식당에서는 최고 등급의 돼지고기나 소고기, 닭고기를 도축해 이들의 내장을 사용한다. 이들 고급 식당의 주방장은 고기를 자르는 기술도, 완성된 요리를 접시에 담아내는 기술도 아주 탁월하다. 예로부터 일본의 음식 문화에서는 고기나 생선을 자르는 기술을 매우 중요시했는데, 특히 정통 일식 주방장의 회(sashimi) 뜨는 솜씨는 예술의 경지나 다름없다. 이러한 기술은 호루몬야키 산업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래서 이들 식당에서 날 고기를 잘라 그릇에 담아내는 기술은 고도로 전문적이며 시각적으로도 커다란 기쁨을 선사한다. 그 중에서도 닭의 목 부위를 썰어낸 요리는 가히 정교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처럼 빈민촌 이주민의 음식이 고급 식당의 요리로 변화한 것은 좋은 육질의 고기를 사용하는 것과 더불어 예술의 경지라고 칭할 만큼 숙련된 썰기 기술, 정교한 상차림,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식당 인테리어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호루몬야키가 대중적인 음식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재일 한국인의 뛰어난 마케팅 전략도 빼놓을 수 없다. 식당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할 때부터 이들은 호루몬야키를 정력에 좋은 음식으로 홍보해나갔다. 실제로 도쿄와 오사카에는 조네츠 호루몬(Jonetsu Horumon)이라는 호루몬야키 체인점이 있는데 여기서 조네츠는 일본 말로 ‘정열(情熱)’을 뜻한다. 이와 함께 고기의 내장은 콜라겐이 풍부해 피부에 좋다는 식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따라서 오늘날 호루몬야키는 남성의 정력 증진과 여성의 피부 개선에 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홍보 전략 덕분에 호루몬야키 식당은 일본을 넘어 뉴욕(Takashi Horumon Yaki Restaurnt) 등 세계적인 도시로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III. 한국인 디아스포라와 스시 산업
최근 20년 동안 일본의 스시(Sushi)는 북미 지역을 비롯해 유럽과 오세아니아 등 세계 각지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Kumakura 2000).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스시 산업의 이러한 급속한 성장 뒤에는 이들 지역에 흩어져 살던 한국인이 있었다는 점이다. 최근 북미 지역이나 유럽과 오세아니아(호놀룰루를 비롯해 뉴욕, 파리, 모스크바, 시드니, 퍼스) 등 세계 각지에서 새롭게 문을 연 일본 식당이나 스시 바를 보면 상당수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다(cf. Park 1997, 54; Tanaka 2008). 실제로 로스앤젤레스나 뉴욕, 시드니, 오클랜드 등 세계 주요 도시의 한인 사회 안내책자에 나와 있는 일본 식당의 숫자를 바탕으로 추산해보면, 이들 지역에서 음식 관련 사업을 하는 한국인 가운데 약 20-25%는 일본 식당을 운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많은 한국인이 스시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문화적, 역사적 요인과 더불어 이주와 관련된 몇 가지 이유가 연관돼 있다.
1990년대 북미와 유럽,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일본 음식, 그 중에서도 스시가 인기를 얻기 시작할 즈음, 이곳에 정착한 한국인도 하나 둘 스시 산업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봐야 할 점은 북미를 비롯한 서구 국가에 정착한 한국인과 일본인의 이주 패턴이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바로 이 차이가 한국인이 스시 산업을 장악하게 된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1950년대 이후 미국으로 이주하는 일본인 숫자는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 같은 추세는 더욱 심화되어 1965년 이후 일본 출신 미국 이민자의 숫자는 연간 몇 천명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같은 시기 한국 이민자의 상황은 정 반대였다. 매년 수많은 한국인이 미국으로 이주했고, 이들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일본인들에 비해 미국으로 이주하는 시기가 다소 늦었던 한국인들은 최대한 빨리 자리를 잡아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에게 꼭 맞은 일자리가 필요했다. 그러나 언어적인 장벽 때문에 대부분의 이민자는 한인 사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고, 자연스레 한국인 이민자들 사이의 생업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한인 사회를 벗어나 새로운 사업 기회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러한 추세는 비단 미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한국인의 이주 열기가 뜨거웠던 헝가리, 폴란드, 체코 공화국, 발트 해 연안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동부 유럽국가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이들 국가로 이주한 일본인은 식당 사업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고, 한국인은 이것을 기회로 삼았다.
그렇다면 많은 한국인이 일식당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일본 음식이 한국 음식에 비해 준비 과정이 훨씬 간단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일본 음식에는 반찬이 없고, 사시미나 스시 같은 음식은 만드는 과정도 매우 단순하다. 사시미는 날 생선을 썰기만 하면 되고, 스시는 밥을 말기만 하면 된다. 또 한국 음식과 달리 일본 음식에는 각종 부재료도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것은 곧 재료비와 인건비로 직결돼 운영비가 훨씬 적게 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일식당 메뉴는 대체로 한식당 메뉴보다 비싸서 수익도 많이 남는다.
두 번째 이유로는 한국과 일본의 문화가 비슷하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서로의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이것은 20세기 초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더욱 두드러졌다. 사실 한국인은 이 기간 동안 스시 요리법을 배웠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한국의 김밥(kimpap)은 일본의 마키스시(makizushi)로부터 유래했고, 한국인이 김밥을 먹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와 함께 한국인과 일본인의 외모가 비슷하다는 점도 주된 이유로 작용했다. 서구 사람은 대체로 한국인과 일본인을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한국인은 이 점을 십분 활용했다. 대부분의 손님은 스시가 일본 음식이므로 식당 주인도 당연히 일본 사람일 거라 생각한다. 설사 주인이 한국인임을 알아차린다 해도 이들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한국인의 특성은 일식당 사업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이들은 현지인의 입맛에 맞춰 끊임없이 새로운 스시를 연구하고 개발해냈다. 대부분의 손님은 일본인이 아닌 미국과 유럽 현지인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메뉴판에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스시 메뉴가 추가되었다. 이들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정착지 현지의 문화를 구분 없이 넘나들면서 동시에 일본의 정통 문화를 담아내기도 했다. 이렇듯 북미와 유럽, 오세아니아 지역에 흩어져 일식당을 운영해온 한국인들은 우리에게 몇 가지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준다. 문화적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현상을 비롯해 문화적 혼종성과 표현력 그리고 국경을 초월한 기업가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시리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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