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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정원, 동구릉에 시선이 머무르다

경기학광장Vol.1 _ Trip & healing

< 신들의 정원, 동구릉에 시선이 머무르다 >


- 경기학광장Vol.1 _ Trip & healing -



경기학광장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하는 계간지입니다. 경기도와 31개 시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고자 합니다. 전문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경기학광장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신의 정원이라 불리는 왕릉 숲은 직장 인들에게는 점심식사 이후 휴식과 함께 숲을 거닐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유럽의 조경 전문가들이 조선왕릉을 두고 신의 정원이라 했다던가? 한 왕조가 500년이 넘도록 유지되고 또 그 왕들의 무덤이 온전하게 보전된 유래가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경우라니 참 놀라운 일이다. 그 중에서도 동구릉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40기의 능 가운데 아홉 기가 자리하고 있다. 22.5퍼센트다. 1408년 태조의 건원릉이 조성된 이후 마지막으로 1855년 익종의 수릉이 이전해 아홉 개의 능을 이루었다. 191만 5,891제곱미터, 약 59만 평에 9릉 17위의 왕과 왕비들의 능이 조성되어 있다. 동구릉은 축구장 230여개의 면적을 차지한다. 이쯤 되면 왕릉이 숲을 품은 것이 아니라 숲이 왕릉을 품은 것이 아닐까?

햇살에 눈이 부시고 하늘이 푸르른 이른 봄날, 신의 정원 동구릉으로 간다. 숲을 가로질러오는 바람에서 봄 향기와 따뜻함이 함께 묻어온다. 짝꿍의 손을 꼭 잡고 뒤뚱대며 소란스럽게 숲을 산책하는 꼬마들을 지나, 휠체어에 앉아 맑은 웃음을 짓는 은발의 소녀를 지나, 푸른색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건장한 청년의 목덜미를 지나 그 바람이 다시 숲으로 달아난다. 500년 전에도 저 바람은 있었으리라.

동구릉을 들어서면 이름 모를 석공들의 문인석과 무인석이나 솜씨 좋은 목수들의 정자각보다 홍살문을 따라 양쪽으로 나있는 숲길과 먼저 마주한다. 각 왕릉의 금천교를 지나서 모인 맑은 물과 나무와 나무 사이를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날고 있는 아름다운 새들을 그 숲길에서 만난다. 운이 좋은 날은 새끼를 데리고 산책을 다니는 고라니와 함께 까마귀 울음을 흉내거나 고양이 울음을 흉내내 며 숲속을 날고 있는 어치를 만날 수 도 있다.

왕들이 잠들어 있는 왕릉 옆에는 어디든 숲길이 함께 한다. 산책로를 따라 잣나무 숲도 지나고 떡갈나무, 소나무 숲도 지나게 된다. 그곳이 왕릉이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 둔다. 숲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도란도란 주고받는 낮은 속삭임을 따라 걷다 보면, 햇볕이 예쁘게 모이는 길의 끝에서 계절을 따라 어김없이 잊지 않고 찾아오는 작은 풀꽃들에게 시선이 머무르게 된다. 그곳에서는 흔하게 밟히는 토끼풀조차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으로의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알록달록 화려하지 않아도, 천지를 감싸는 향기를 내뿜지 않아도 그것들이 얼마나 예쁜 존재인지를 아이들은 알고 있다.

왕릉 숲은 아이들에게 숲 놀이터를 제공하는 좋은 공간이기도 하다.

왕릉 숲에 있는 모든 것들은 새들과 곤충과 동물들의 삶의 공간이자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먹이그물로 얽힌 공간이기도 하다. 홍살문은 제 몸을 기꺼이 나누어 딱따구리를 길러내고 또 그들이 떠난 자리에 동고비 부부가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며 새끼들을 키우게 하고, 지난 가을 노랑털알락나방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던 참빗살나무는 막 돋아난 나뭇잎을 나누어 애벌레를 키워낸다. 그래서 초록이 넘치는 5월의 숲에는 알에서 막 깨어난 애벌레들의 줄타기 와 새끼들을 길러내는 어미 새들의 애벌레 사냥으로 분주하다.

         
동고비가 둥지를 튼 홍살문. 딱따구리가 떠난 둥지에 진흙으로 입구를 좁힌 후 새끼들을 키우고 있다.

노랑털알락나방 애벌레와 참빗살나무

시간이 허락하는 날은 멀리 치유의 숲길을 걸어 하늘정원에 있는 왕릉숲 쉼터에 닿으면 차를 마셔도 좋고, 눈이 베일 것 같은 푸른 정원을 내다보며 책을 읽어도 좋고, 이 세상 소리가 아닌듯한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앉아만 있어도 행복하다.

마음 한자락 붙일 곳 없는 어느 하루가 오면, 주저 말고 발걸음을 옮겨 흔들리는 마음 한 자락을 그곳에 내려놓고 오시길.... 사계절 쉬지 않고 피어나는 수많은 야생화와 수백 종의 나무들이 그대를 기다리는 신의 정원이 있다.

   
왕릉숲 쉼터

숲속 도서관

4월과 5월의 동구릉.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나는 야생화와 나무는 참 반갑다.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목에 피어 있지만 특별하게 눈 길을 주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작은 꽃들이 있다. 거기에 숲속에서 드물게 자라 쉽게 만날 수 없는 들꽃들을 보는 행운은 참 즐겁다.

나도개감채 Lloydia triflora Bak er
백합과
다년생 초본이며 우리나라 중·북부 이북의 깊은 산에서 자란다. 최근에는 남도의 높은 산에서도 드물게 자란다.

나도개감채는 국외반출 승인대상 식물이다. 기후 변화로 멸종 또는 감소 위기에 놓인 산림식물을 왕릉 숲에서 만날 수 있다. 무리지어 있지 않고 드문드문 피어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인걸까? 처음 만났을 때보다 개체수가 감소했지만 매년 찾아와 주니 반가울 따름이다. 넓은 숲길을 걷다보면, 매발톱나무 잎이 돋아나기 전에 서둘러 세상 밖으로 나와서 수줍게 자태를 뽐내며 햇빛을 받고 있는 나도개감채를 만날 수 있다.

남산제비꽃 Viola albida var.chaerophyllodies
제비꽃과
다년생 초본이며 산기슭 부식질이 많은 나무숲이나 길가에 자란다.

남산제비꽃은 세 갈래로 갈라진 잎이 다시 두 갈래로 갈라지는 형태여서 잎 모양만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생활하고 있는 주변에서보다는 생태보존이 잘 된 숲속에서 주로 자란다. 향기가 없는 제비꽃 종류가 많지만 남산제비꽃 만큼은 달큼하고 향긋한 내음이 진하게 난다. 동구릉 숲속 여기저기 하얀 제비꽃이 피면 향기와 함께 순백의 자태를 뽐낸다.

일본인 학자에 의해 일제 강점기 때 남산에서 채집되었고, 학명이 없던 이 꽃을 등록하면서 남산제비꽃이란 이름을 붙였다. 남산에서 처음 발견 된 제비꽃은 아닐 테지만(전국의 산지에서 발견 됨)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꽃과 나무에 처음으로 학명을 부여하고 등록하면서 일본인의 이름이 학명이나 발견자로 국제 사회에 등록된 식물중 하나로 아픈 역사의 한 토막을 보여 주는 꽃이다.

       
들현호색 Corydalis ternate Nakai
현호색과
여러해살이 풀로 중남부지방의 들에서 자란다.

현호색(玄胡索)은 씨앗이 검은색을 띈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기름진 땅이나 척박한 땅 등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는 의미도 있다. 전 세계에 약 200종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17종이 자라고 있다. 서양 사람들은 속명을 코리달리스라고 붙인 것을 보면 꽃 모양이 종달새 머리와 비슷해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잎의 모양이나 꽃모양, 꽃의 색깔에 따라 종류가 많다. 동구릉에도 온갖 종류의 현호색이 피어난다. 키가 작아서 숲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자주 밟히기도 하지만 무리지어 피기 때문에 쉽게 눈에 뜨인다. 1897년 민병호가 궁중비방에 서양의학을 접목시켜 개발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약인 소화제 ‘활명수’ 에는 현호색이 들어가 있다. 이 약의 판매대금의 일부는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였는데 당시 한 병당 가격은 50전, 막걸리 한 말과 설렁탕 두 그릇 정도를 먹을 수 있는 귀한 제품이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현호색의 한 종류인 들현호색의 학명에는 일제강점기에 우리 식물에 학명을 부여해서 등록한 일본인 Nakai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큰구슬붕이 Gentiana zollingeriFaw.
용담과
두해살이풀이며 물이 잘 빠지는 양지에서 자란다.

큰구슬붕이는 줄기가 5∼10cm로 아주 작게 바닥에 붙어있어 더욱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관심 있는 사람들의 눈에만 보이는 꽃이다. 씨앗이 떨어져 잎이 나온 후 다음 해에 꽃이 피는 두해살이 풀이라서 보물을 발견한 듯 더욱 예쁘다. 꽃말이 ‘기쁜 소식’이라던가? 신의 정원에 봄소식을 알리는 풀꽃이다.


노각나무 Stewartia koreana
차나무과
전남·전북·경남의 산중턱 이상에서 자란다.

노각나무는 나무껍질의 무늬가 사슴의 뿔을 닮았다고 녹각나무라 부르다가 노각나무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야산보다는 깊은 산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옆에 자리를 잡고 살아간다. 세계적으로 7종의 노각나무가 있지만 한국의 노각나무가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1917년 미국의 Wilson이라는 사람은 우리나라 노각나무 종자를 가지고 가서 Korean splendor라는 품종을 개발해 조경수로 널리 보급하기도 했다. 노각나무는 전통 목기를 만드는 나무로 쓰여 졌다. 남원 일대가 목기를 생산하는 지역으로 유명하게 알려진 이유도 지리산 실상사 스님들로부터 노각나무를 사용한 목기 제조기술을 전수 받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재질이 단단하고 습기를 잘 빨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최상의 목기 재료로 쓰인다.

앞 다투어 피던 꽃들이 거의 사라지는 초여름의 길목에서 커다란 꽃망울을 터트린다. 하지만 성장이 느리고 바람이 강한 곳, 햇빛이 강한 곳, 배수가 잘 안 되는 곳을 피해서 심어야 하는 까다로운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조경수로는 활용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겨울에 앙상한 가지와 함께 드러나는 나무껍질의 무늬를 보게 된다면 비단을 수놓은 듯 하다해서 비단나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다른 나무들 사이에서 화려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는 존재감을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을까?

때쭉나무 Styrax japonica
때죽나무과
산과 들의 낮은 지대에서 자란다.

때죽나무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 자연적으로 분포하며 종류가 120여 종이 있다. 많은 품종 중 한국의 때죽나무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품종으로 취급되고 있다고 한다. 영명으로 snow bell 이라고 부르는데 하얀 꽃이 2∼5 송이씩 모여서 달린 모양이 종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열매를 갈아서 물에 풀어 넣으면 열매속의 에고사포닌 성분이 물고기를 잠시 기절시키기 때문에 옛날에는 물고기를 잡을 때 쓰기도 했다. 또 제주도처럼 물이 부족한 섬에서는 지붕이나 나무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빗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했는데 때죽나무(족낭)에 띠를 엮어 줄을 매달아 항아리 위에 두고 물이 흘러내리도록 해서 받았다. 그렇게 하면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고 물맛도 좋아졌다고 한다.

5월 중순 동구릉에서 바람에 실려 오는 향긋한 꽃내음에 정신없이 취했다면 틀림없이 때죽나무일 것이다. 하늘정원에는 멀리서 보면 하얗게 달린 꽃이 구름처럼 보이는 수형이 그 어떤 때죽나무 보다 아름다운 나무가 한그루 있다. 또 꽃이 질 즈음에는 왕릉을 따라 흐르는 물위에 꽃잎이 별처럼 흘러 은하수가 되는 장관을 볼 수도 있다.


글 김미애

비영리민간단체 미래환경을 생각하는 모임 대표 및 구리시환경교육센터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환경교육 강사로 아이들과 함께 숲에서 뛰어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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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경기학광장 Vol.1 _ 2019 여름창간호

    발행처/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

    발행인/ 강헌

    기획/ 이지훈, 김성태

    발행일/ 2019.08.16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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