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보기

경기문화재단

내 낡은 서랍 속의 소중한 기억, 동두천 양키시장

경기학광장Vol.2 _ Village & History

< 내 낡은 서랍 속의 소중한 기억, 동두천 양키시장 >


- 경기학광장Vol.2 _ Village & History -



경기학광장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하는 계간지입니다. 경기도와 31개 시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고자 합니다. 전문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경기학광장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양키시장이라는 곳이 있었다. 지금은 ‘과거형’, 또는 ‘과거완료형’ 등으로 남아 있는 공간이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들이 주로 거래되면서, 상인들이 당국의 관세법 등 관련 법규에 따른 단 속을 피해 숨바꼭질하듯 팔았다는 의미에서 도깨비시장이라고도 불렸다. 흥(興)하고 쇠(衰)하며 성(盛)하고 퇴(退)함이 다 부질 없긴 하지만, 그래도 한때는 분명 번성했던 곳이었다.

동두천 양키시장 후문.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양키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미2사단 등 미군부대들이 주둔했던 동두천에 들어섰다. 이들 부대로부터 군복류와 군화, C레이션이라고 불리던 전투식량과 초콜릿, 전자제품 등이 공급됐다. 제품도 거 래됐고, 시장도 형성됐다. 동두천 양키시장은 그런 곳이었고, 양키 시장 가운데는 단연 으뜸이었다. 서울 광장시장과 남대문시장을 비롯해 인천 부평과 동인천 등지에서 거래됐던 물건들의 공급처도 대부분 동두천 양키시장이었다.
양키시장은 산업화시대가 성수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도태되고 동두천 생연동 등 일부에서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동두천 양키시장은 그래서 고독하고 쓸쓸하고, 애잔하다. 바이올린 음색 으로 표현하면 구슬픈 단조다. 과거는 오롯이 영화(榮華)였지만, 현재는 침체(沈滯)했다. 찾는 이들의 발길도 부쩍 뜸해졌다. 하지만 다시 영화(榮華)를 꿈꾸는 그런 곳이다. 우리의 낡지만, 소중한 기억 속의 골목이기도 하다.

동두천 양키시장에서 지척인 동두천 중앙역 앞으로 젊은이들이 지나가고 있다.

동두천 양키시장에서 어린이들이 종종걸음을 치고 있다.

박제(剝製)가 되어버린 번화가

동두천 한복판에는 신천이라는 개울이 흐른다. 건너편에서 서울을 출발해 달려온 전철이 플랫폼에 멈추는 소리도 들려온다. 한국 전쟁 격전지인 백마고지로 이어지는 동두천 중앙역이 한달음 거리 다. 소요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 위로 한여름의 햇빛이 능청스럽게 내려앉고 있었다. 그 능청스러움이 지루한 일상을 향해 끊임없이 농을 친다. 신천을 건너가는 다리에서 오른쪽으로 옛 시가 지가 펼쳐져 있다. ‘구도심’이라는 다소 낯선 이름으로 불리는 이곳은 행정지명으로는 생연동이다.

동두천 양키시장이 위치한 생연동은 제법 멋을 내고 꾸민 간판의 상점들과 그 뒤로 그만그만한 건물들이 웅크리고 있는 곳이다. 노래방과 술집과 양주집, 패스트푸드 음식점과 찻집과 그 흔한 프 랜차이즈 커피점, 그리고 편의점과 세탁소와 꽃집과 철물점과 모텔 등 어느 도시에서도 흔한 풍경이지만, 까닭 모를 의연함까지 느껴진다. ‘양키 물건’을 파는 상점들은 편의점과 꽃집과 막국수를 파는 음식점과 세탁소 사이사이에 갓 시집 온 신부처럼 부끄러운 듯 숨어있다.
동두천 양키시장은 해가 중천에 떠야 문을 연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개구쟁이들이 흙투성이 발을 개천에 담구면서 멱을 감느라 내는 “철벅철벅” 같은 의성어도 들려온다. 100m 남짓 펼쳐진 양키 시장 골목을 걷다보면 어디에선가 ”박제가 되어 버린 번화가를 아느냐”고 속삭이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따분한 적막감을 흔들어 깨우는 택시의 경적 소리가 아스팔트 위로 뒹군다. 한 때는 제법 흥청거렸을 시장 구석구석에선 아직도 그때의 수선거림이 행인들의 발걸음에 푸석푸석 일어난다.
쏟아지는 한여름 햇볕을 외면하려 땅만 내려다보면서 걸었기 때문일까. 한 어르신이 “양키시장을 가려면 이쪽으로 가야 될 텐데” 라고 일러준다. 방향을 바꿨더니, 일식집과 당구장이 들어선 건물 오른쪽으로 아치형 구조물이 올려다 보였다. 마치 차이나타운을 알리는 패루 같았다. 군청색 바탕에는 흰색으로 ‛양키시장’이라고 적혀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분홍색 작은 글씨로 ‘애신시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너머로 앉은뱅이책상처럼 그만그만한 키의 건물들이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동두천시 생연동 양키시장 입구에 양키시장 알림판이 차이나타운의 패루처럼 설치돼있다.

동두천 양키시장 한 점포 앞에 진열된 미군 군화들.

어제와 오늘, 그 어중간한 지점에서 이방인을 기다리다

동두천 양키시장 초입에선 편의점과 족발을 파는 음식점 등이 이방인들을 맞이한다. 얼핏 보기에는 파주나 포천 등 군부대가 많은 경기북부 어느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진부하고도 평범하게 보이는 모습 속에서도 차별화된 디테일이 숨어있다. 산업화시대 양키시장과는 뭔가 달라도 달라 보이는 모습의 첫 번째 광경은 진열대가 밖으로 특별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컴컴한 쇼윈도 안을 들여다봐도 그렇다.
경기가 좋지 않은데다, 세관 등 당국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일까? 양키시장 근처에서 50여 년째 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정수 어르신(78)의 대답은 그래서 의외였다. “옛날부터 동두천 양키시장은 다른 도시의 양키시장처럼 길바닥에 자판을 깔거나, 가게 앞에 요란하게 좌판을 벌이지 않았지요. 행인들에게 아는 척하거나 발길을 끌지 않아도 늘 단골손님들로 북적거렸던 곳이 동두천 양키 시장이었습니다.” 산업화시대 상인들 사이에선 양키시장 가운데도 양질의 물건들로 풍부했다는 동두천 양키시장만의 자긍심이 잔뜩 녹여져 있었다.
산업화시대 당시 국내 상품들의 품질은 미군부대 PX 등지에서 취급하던 물품들보다 열악했다. 그러다 보니 부유층 등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 양키시장이 각광받던 시절도 있었다. 특히, 동두천 에는 미2사단 등 미군부대들이 대거 주둔하면서 미군부대에서 비공식적으로 유출되던 상품들이 많아 전국 최고의 번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이름을 밝히기 꺼려하는 상인(85·여)의 기억을 소환해보자. “옛날에는 무기 빼고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미제 물건들이 없는 게 없었지요. 그뿐인가요. 물건들도 서울 광장시장 양키시장보다 고급이었 답니다.” 그래서 그 어르신의 기억은 아직도 어젯밤 일인 듯 뚜렷하다. 그 어르신의 기억을 복기해 1960~1970년대로 돌아가 보자. “그때는 양키시장 근처만 가도 미제 초콜릿에, 사탕에, 커피까지 즐비하게 진열된 화려한 모습에 입가에 군침이 돌면서 ‘아 바로 저런 곳이 아메리카’라는 행복한 환상에 빠졌던 시절이기도 했지요.”
한국전쟁을 경험한 어르신들은 지금도 전쟁 중에 동두천 양키시장 한 복판에 있었던 고아원(보육원)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한국 전쟁 이후 이 땅에는 그 참담하고 혹독했던 전쟁의 여파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많았고, 이들을 수용했던 복지시설인 보육원들도 많았다. 동두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가운데, 현재의 동두천 양키 시장 한복판에도 보육원이 있었는데, 그 보육원의 명칭이 ‘애신보육원’이었다. 지금까지 동두천 양키시장을 ‘애신시장’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연유다.
동두천 양키시장의 또 다른 별칭인 애신시장의 기억은 비교적 젊은 층인 최병삼씨(52)도 기억하고 있다. 동두천 중앙시장 쪽에서 들어오다 보면 맨 처음에 위치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아버 님이 동두천 양키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하실 때 가게로 놀러 오면 어르신들이 애신보육원에 대해 말씀을 나누곤 하셨습니다. 제 또래 친구들 가운데도 애신보육원에서 학교를 다니던 애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시청 앞으로 옮겼지만 말입니다.” 최 씨의 유년시절 동두천 양키시장은 제법 넓었고, 북적거렸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동두천 양키시장은 한때 애신보육원이 위치했다는 이유로 애신시장이라고도 불렸다. 지금은 동두천시청 앞으로 옮겼다. 명칭도 애신아동복지센터로 바뀌었다.

동두천 양키시장의 주거래 품목은 양주와 군인용품 등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양상이 좀 달라졌다. 10여 곳 남짓한 상점마다 공통적으로 미군 전투복이나 전투화 등 위주로 진열돼 있었기 때문이 다. 200m 정도 이어지는 양키시장 상인들에게 말을 건넸지만, 계속 손사래를 친다. 경기도 좋지 않은데다, 가끔씩 주말에 젊은이들이 스마트폰으로 물건들을 촬영해 블로그에 올리면 어김없이 단속이 이어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는 탓이다.

“무기 빼놓고 없는 게 없답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부대가 동두천에 주둔하면서 미군부대에서 넘어오는 물건들은 다양했습니다. 그때는 절대빈곤시대여서 미국 제품(미제)은 모두 환영받았습니다. 하다못해 못이나 나사도 미제 라면 일단 반기던, 뭐 그런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이 골목에선 중참 정도에 해당되는 60대 초반의 상인의 기억을 빌리면 당시 동두천 양키시장에서 거래되던 물건들은 서울 광장시장이나 남대문시 장 등지에서 거래되던 물건들보다 저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두천 양키시장이 도매시장이었던 셈이다.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물건들의 종류도 다양했다고 한다. 이름과 나이를 밝히기 꺼려하는 한 여성 상인은 (동두천 양키시장이) 요즘은 사양길에 접어들었지만, 그래도 미군용 고어텍스 야상(야전잠 바 상의)은 없어서 못 팔정도라고 귀띔해줬다. 가격도 미군 PX에서 윗도리는 170 달러 정도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건은 상점들마다 비슷하지만, 요즘에는 한 푼도 깎아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발품을 들이면 좀 깎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되물었지만, “거의 힘들다”는 답변이 되돌아 왔다. “인터넷을 통해 미리 가격대를 확인하고 오는 고객들이 많기 때문이죠. 특히, 요즘에도 고객 연 령대가 과거처럼 젊은 층들이지만, 과거의 고객들과 요즘 고객들은 한참 다르더라고요. 요즘 젊은이들은 대부분 홈쇼핑이나 스마트폰 등으로 미리 상품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들을 알아보고 오니까요.” 이 여성 상인은 가게를 직접 찾아오는 고객보다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온라인을 통한 거래가 더 빈번해졌다고 설명했다.
미군 병사들이 입는 내복도 아직까지는 인기 아이템이다. 옷 안쪽에 방한장치가 잘 되어 있어서일까. 입어본 고객들에 의해 입소문이 나서 자주 찾는 상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윗도리 목 부 분이 약간 올라와 있어 바깥에 보드복을 입어도 밖으로 보이는 경향이 일부 마니아들에게 인기를 끄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미군들이 신는 양말도 다양하다. 색상은 국방색과 검정색 등에 스몰과 미디엄, 라지 등으로 3등분돼 나온다고 한다. 젊은이들이나 중장년층이 등산용 등 레저용으로 찾는다고 한다. 가끔씩은 미군 병사용 황색군화나 장교용 부츠 등도 인기 상품이다.


동두천 양키시장 인근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이는 신천


동두천 양키시장 인근 신천 모습

동두천 양키시장 내 미군 군복들이 걸려있는 점포 앞으로 주민이 지나가고 있다.

남성들 사이에서 미군들이 먹는 전투식량도 레저용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박스로 포장됐고 A형과 B형 12봉 2박스로 구성됐다. 대부분 박스 단위로 거래되는데 값도 그렇게 비싸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각 2박스에 12봉이 다른 종류니까 24식이 틀린 종류로 구성됐다. 내용물도 주식, 간식, 주스, 커피, 음식 등을 데울 수 있는 키트 등에 비스킷, 치즈 등 다양하다. 대부분 군대생활을 추억하며 즐기는 식품들이다.
또 하나 빼먹을 수가 없는 아이템이 술이다. 우리가 흔히 양주라고 부르는 것들인데, 군용물건이다 보니 세금이 없어 들어오는 가격도 싸게 들어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술 종류도 위스키에서 와인 까지 다양하다. 다만, 우리가 흔히 고급 양주라고 하는 주류는 팔지 않는다. 스파이 가방이나 수입 의류 등도 선보이고 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디자인은 군용이어서인지 다소 획일적이다. 단순 하고 심플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마니아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두천 양키시장 후문


동두천 양키시장 한복판으로 어르신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5060 청춘로드 조성… 과거의 영화(榮華) 찾다

동두천 양키시장은 한때 미2사단을 비롯해 캠프 호비(Camp Hovey), 캠프 님블(Camp Nimble), 캠프 캐슬(Camp Castle) 등 미 군부대 6곳이 주둔하면서 성황을 이뤘다. 하지만, 미2사단을 남기고 캠프 님블, 캠프 캐슬 등은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이들 미군부대 부지는 동두천 전체 면적의 42%를 차지할 정도였다.
상인들은 동두천시가 추진하고 있는 생연동 구도심 맥을 복원하는 두드림 5060 청춘로드 조성사업에 기대 반 걱정 반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경기도 특별조정교부금 67억 원으로 추진된다. 특히, 양키시장은 군부대와 관련된 업종을 육성하고 상징 조형물도 세우고 거리축제도 여는 등 1950∼1960년대를 연상케 하는 감성 거리로 꾸며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방침이다.


동두천 양키시장 입구에서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최병삼씨. 그는 "동두천시가 추진하고 있는 두드림 5060 청춘로드에 나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정이 경북 문경이라는 영월 엄씨 어르신(85·여)은 “못 살던 시절이었지만, (동두천 양키시장 상인들은) 이곳에서 자식들을 다 대학까지 가르치고 결혼까지 시켰다”며 “지금은 비록 뒷전으로 밀려 있긴 해도 언젠가는 옛날처럼 흥청거릴 때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두천시가 양키시장을 살리기 위해 상인 참여형 방식으로 두드림 5060 청춘로드를 조성한 다고 하니 희망을 가져 본다”고 덧붙였다. 동두천 양키시장 상인들은 그래서 지금은 비록 상권이 침체됐지만, 언젠가는 옛날의 영화를 되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양키시장 물건들


글 허행윤

한국외대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했다. 경기일보에서 30년 동안 사회부, 정치부,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발품을 들여 경기도의 문화와 역사 등에 대해 천착했다. 은퇴 후에도 경기도와 관련된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더 많은 경기학광장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 바로가기]



information

  • 경기학광장 Vol.2 _ 2019 가을호

    발행처/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

    발행인/ 강헌

    기획/ 이지훈, 김성태

    발행일/ 2019.10.18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