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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교’가 소리를 하고 싶었던 때가 언제였던가 ~

경기학광장Vol.2 _ People & Life

< ‘박다교’가 소리를 하고 싶었던 때가 언제였던가 ~ >


- 경기학광장Vol.2 _ People & Life -



경기학광장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하는 계간지입니다. 경기도와 31개 시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고자 합니다. 전문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경기학광장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문화재는 우리가 살아왔던 역사를 보여 주는 귀중한 유산이다.우리의 조상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으로 거기에는 그들의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유적답사를 가면 볼 수 있는 옛 성곽이나 무덤, 불상이나 불탑, 그림이나 도자기, 고문서 등은 눈으로 보고 조상들의 지혜를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판소리나 탈춤 등 노래나 춤, 전통 기술처럼 형체는 없지만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 예로부터 전해 오는 것 등을 ‘무형 문화재’도 있다.

또한 자연유산으로서 우리의 일상생활 및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중요하다하여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천연기념물이라고 하여 문화재에 포함하기도 한다.


이렇듯 조상들이 남겨놓은 유형·무형의 문화재는 우리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우리 미래의 문화 발전에 기본 바탕이 되기 때문에 보존되어야 하며, 우리가 잘 지키고 가꾸어 후손에게 길이 물려주어야 할 값진 재산이다.

이 가운데 무형문화재인 경기민요(京畿民謠)는 서울과 경기지방을 중심으로 불려지던 민요다. 일부 충청도 북부와 강원도 일부 지방의 민요도 포함하고 있어 중부지방 민요라고도 한다.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어 있다.

장단은 흥겹고 경쾌한 느낌을 주고 창법은 부드럽고 유창·명쾌하며 서정적이다.

전문적인 노래꾼들에 의해 불려지는 통속민요와 그렇지 않은 토속민요 등 구전을 포함해 전승에 전승을 이어가고 있다.

<군밤타령> <창부타령> <노랫가락> <방아타령> <양산도> <강원도아리랑> <오봉산타령> <사발가> 등의 통속 민요가 널이 알려져 있다.

연주형태는 앉아서 부르는 소리 좌창(坐唱)과 서서 부르는 소리 입창(立唱)이 있다.

<노랫가락> <오봉산타령> 등이 좌창에 속하고 <양산도> <방아타령> 등이 입창에 속한다.

예능보유자는 故 안비취(본명 安福植, 1997 해제) 명인이며 묵계월(본명 李瓊玉), 이은주(본명 李潤蘭) 선생 등이 함께 경기민요 명인이다. 수제자에는 김혜란, 이춘희(李春羲) 등이 있다. 이춘희는 스승에 이어 1997년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

이러한 명창들을 보며 어릴 적 시절부터 소리꾼의 꿈을 품어온 박다교(1959)는 2017년 1월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경기민요 예능전수자가 됐다.




예인 어머니들 가운데 자기가 했던 그리고 하고 싶었던 예능을 어린 딸에게 가르치는 경우가 있다. 춤을 가르치기도 하고 본인들이 공연하는 곳을 데리고 다니곤 한다. 그렇다고 딸들이 모두 그 어머니처럼 예인 된다는 보장은 없다.

아예 작정을 하고 조기교육을 통해 예인의 길을 가게 되는 경우는 더러 있다. 소개하려는 박다교 역시 따지고 보면 어머니의 현장 교육이 성인이 되어서 결실을 맺은 경우다.



어머니와 아버지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생각이 나실 때마다 회심곡을 자주 부르셨습니다. 어느 날은 정선아리랑 또 어떤 날은 긴아리랑을 부르셨어요.”

박다교는 새삼스럽게 오래전 추억을 들춰보기도 참 어렵다고 한다. 그 시절 어려서 들었던 노래를 열 여섯 살에 배우고 싶다고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다.

당시 의정부에 살고 있었던 박다교는 어느 날 어머니께서 ‘제일시장에 계월이 언니가 온다’고 해서 보러 가야겠다고 하면서 데리고 갔고 같이 따라 나섰다.

“제일시장에 도착하여 천막이 쳐진 안으로 어머니는 들어가시더니 ‘언니!!’ 하면서 천막 안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셨어요. 나는 어머니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고 그중 한 분이 ‘딸이구나 ~’ 하시면서 ‘딸내미 나한테 보내 잘 가르쳐 줄 테니~’ 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해요.”


어머니


당시 박다교는 그저 대답도 없이 듣고만 있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말씀하셨다고 한다.

어려서 함께 공부하셨다고 하시면서 그 언니가 故 안비취 선생님이라고. 어머니와 일 년 선후배라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故 안비취 명인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로 본명은 복식(福植)이라고 한다. 묵계월(墨桂月)·이은주(李銀株) 등과 함께 유명세를 자랑하던 경기민요 명인중의 명인이며, 명창 중에서 제일의 활동가였다.

박다교는 어머니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는 옛 생각에 잠기듯이 ‘계월이 언니나 은주 언니도 여전하네 ~’하시면서 소리 공부를 못하게 된 동기를 처음으로 그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9대 독자 오빠(외삼촌) 그 때문에 엄마가 못했지~’라고...”

그때는 ‘그냥 듣고 그랬구나’ 하고 지나갔는데 어느 날 문득 어머니가 소리 공부하고 싶으면 하라고 하면서 ‘하고 싶은 건 해야지~’ 라고 하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박다교는 나이가 들면서 알았다.

어머니가 국악을 경기민요를 하지 못한 것이 가슴에 한으로 남으셨다는 것을.

문제는 아버지였다. 어머니가 둘째(박다교)가 소리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데 시켜야겠다고 말을 하니 그날 이후로 계속 부모님의 언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고지식한 아버지는 딸을 기생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하면서 계속 반대를 하셨다.

이후에 어머니는 아버지가 안 계신 시간에 틈틈이 박다교를 데리고 소리 공부를 시키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은 긴아리랑을 배웠고 창부타령, 노랫가락 등 그때는 그저 좋아서 어머니가 가르쳐주시는 대로 불렀다. 목을 쓰는 방법, 숙청을 내면서 불러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