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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조(정의)
본 가이드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지지씨’는 경기도 소재 문화예술기관의 생산자료 등록과 확산을 위해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온라인 아카이브 플랫폼입니다.
② ‘회원’이란 소정의 가입 승인 절차를 거쳐 지지씨 글쓰기 계정(ID)을 부여받고, 지지씨에 자료 등록 권한을 부여받은 경기도 소재 문화예술기관 및 유관기관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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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본 가이드는 경기문화재단의 온라인 플랫폼 운영 정책 및 저작권 등 관련 법규에 따라 개정될 수 있으며, 가이드를 개정, 적용하고자 할 때는 30일 이전에 약관 개정 내용, 사유 등을 '회원'에 전자우편으로 발송, 공지합니다. 단, 법령의 개정 등으로 긴급하게 가이드를 변경할 경우, 효력 발생일 직전에 동일한 방법으로 알려 드립니다.
1. 본 가이드의 개정과 관련하여 이의가 있는 ‘회원’은 탈퇴할 수 있습니다.
2. 경기문화재단의 고지가 있고 난 뒤 효력 발생일까지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을 경우, 개정된 가이드를 승인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제4조(회원자격 및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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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조(회원 정보의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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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조(회원 탈퇴 및 정지‧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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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분류 | 외부기관 | 경기문화재단 |
---|---|---|
중분류 | 뮤지엄(박물관,미술관)/협회/문화예술공공기관/시군청 담당부서 등 | 본부/기관 |
아이디 | 사업부서명/사업명 | 사업부서명/사업명 |
글쓴이 노출 | 아이디와 동일(한글) | 아이디와 동일(한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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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박다교’가 소리를 하고 싶었던 때가 언제였던가 ~
경기학광장Vol.2 _ People & Life
< ‘박다교’가 소리를 하고 싶었던 때가 언제였던가 ~ >
- 경기학광장Vol.2 _ People & Life -
경기학광장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하는 계간지입니다. 경기도와 31개 시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고자 합니다. 전문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경기학광장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문화재는 우리가 살아왔던 역사를 보여 주는 귀중한 유산이다.우리의 조상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으로 거기에는 그들의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유적답사를 가면 볼 수 있는 옛 성곽이나 무덤, 불상이나 불탑, 그림이나 도자기, 고문서 등은 눈으로 보고 조상들의 지혜를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판소리나 탈춤 등 노래나 춤, 전통 기술처럼 형체는 없지만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 예로부터 전해 오는 것 등을 ‘무형 문화재’도 있다.
또한 자연유산으로서 우리의 일상생활 및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중요하다하여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천연기념물이라고 하여 문화재에 포함하기도 한다.
이렇듯 조상들이 남겨놓은 유형·무형의 문화재는 우리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우리 미래의 문화 발전에 기본 바탕이 되기 때문에 보존되어야 하며, 우리가 잘 지키고 가꾸어 후손에게 길이 물려주어야 할 값진 재산이다.
이 가운데 무형문화재인 경기민요(京畿民謠)는 서울과 경기지방을 중심으로 불려지던 민요다. 일부 충청도 북부와 강원도 일부 지방의 민요도 포함하고 있어 중부지방 민요라고도 한다.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어 있다.
장단은 흥겹고 경쾌한 느낌을 주고 창법은 부드럽고 유창·명쾌하며 서정적이다.
전문적인 노래꾼들에 의해 불려지는 통속민요와 그렇지 않은 토속민요 등 구전을 포함해 전승에 전승을 이어가고 있다.
<군밤타령> <창부타령> <노랫가락> <방아타령> <양산도> <강원도아리랑> <오봉산타령> <사발가> 등의 통속 민요가 널이 알려져 있다.
연주형태는 앉아서 부르는 소리 좌창(坐唱)과 서서 부르는 소리 입창(立唱)이 있다.
<노랫가락> <오봉산타령> 등이 좌창에 속하고 <양산도> <방아타령> 등이 입창에 속한다.
예능보유자는 故 안비취(본명 安福植, 1997 해제) 명인이며 묵계월(본명 李瓊玉), 이은주(본명 李潤蘭) 선생 등이 함께 경기민요 명인이다. 수제자에는 김혜란, 이춘희(李春羲) 등이 있다. 이춘희는 스승에 이어 1997년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
이러한 명창들을 보며 어릴 적 시절부터 소리꾼의 꿈을 품어온 박다교(1959)는 2017년 1월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경기민요 예능전수자가 됐다.
예인 어머니들 가운데 자기가 했던 그리고 하고 싶었던 예능을 어린 딸에게 가르치는 경우가 있다. 춤을 가르치기도 하고 본인들이 공연하는 곳을 데리고 다니곤 한다. 그렇다고 딸들이 모두 그 어머니처럼 예인 된다는 보장은 없다.
아예 작정을 하고 조기교육을 통해 예인의 길을 가게 되는 경우는 더러 있다. 소개하려는 박다교 역시 따지고 보면 어머니의 현장 교육이 성인이 되어서 결실을 맺은 경우다.
▲어머니와 아버지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생각이 나실 때마다 회심곡을 자주 부르셨습니다. 어느 날은 정선아리랑 또 어떤 날은 긴아리랑을 부르셨어요.”
박다교는 새삼스럽게 오래전 추억을 들춰보기도 참 어렵다고 한다. 그 시절 어려서 들었던 노래를 열 여섯 살에 배우고 싶다고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다.
당시 의정부에 살고 있었던 박다교는 어느 날 어머니께서 ‘제일시장에 계월이 언니가 온다’고 해서 보러 가야겠다고 하면서 데리고 갔고 같이 따라 나섰다.
“제일시장에 도착하여 천막이 쳐진 안으로 어머니는 들어가시더니 ‘언니!!’ 하면서 천막 안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셨어요. 나는 어머니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고 그중 한 분이 ‘딸이구나 ~’ 하시면서 ‘딸내미 나한테 보내 잘 가르쳐 줄 테니~’ 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해요.”
▲어머니
당시 박다교는 그저 대답도 없이 듣고만 있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말씀하셨다고 한다.
어려서 함께 공부하셨다고 하시면서 그 언니가 故 안비취 선생님이라고. 어머니와 일 년 선후배라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故 안비취 명인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로 본명은 복식(福植)이라고 한다. 묵계월(墨桂月)·이은주(李銀株) 등과 함께 유명세를 자랑하던 경기민요 명인중의 명인이며, 명창 중에서 제일의 활동가였다.
박다교는 어머니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는 옛 생각에 잠기듯이 ‘계월이 언니나 은주 언니도 여전하네 ~’하시면서 소리 공부를 못하게 된 동기를 처음으로 그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9대 독자 오빠(외삼촌) 그 때문에 엄마가 못했지~’라고...”
그때는 ‘그냥 듣고 그랬구나’ 하고 지나갔는데 어느 날 문득 어머니가 소리 공부하고 싶으면 하라고 하면서 ‘하고 싶은 건 해야지~’ 라고 하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박다교는 나이가 들면서 알았다.
어머니가 국악을 경기민요를 하지 못한 것이 가슴에 한으로 남으셨다는 것을.
문제는 아버지였다. 어머니가 둘째(박다교)가 소리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데 시켜야겠다고 말을 하니 그날 이후로 계속 부모님의 언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고지식한 아버지는 딸을 기생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하면서 계속 반대를 하셨다.
이후에 어머니는 아버지가 안 계신 시간에 틈틈이 박다교를 데리고 소리 공부를 시키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은 긴아리랑을 배웠고 창부타령, 노랫가락 등 그때는 그저 좋아서 어머니가 가르쳐주시는 대로 불렀다. 목을 쓰는 방법, 숙청을 내면서 불러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 20대 시절의 박다교
30대 초반이었을까?
갑작스레 경기민요 발표회에 같이 서게 될 기회가 왔었다. 그때 이춘희 명창을 비롯해 김혜란 명창과 함께 장단을 치던 국악인 장덕화 선생을 처음 보고 그는 장구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장덕화 선생은 수업을 하다가도 박다교의 민요소리를 듣고는 연습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소리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고 하면서 ‘청이 너무 좋다’고 칭찬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박다교는 장덕화 선생과 점심을 같이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의정부 제일시장에서 있었던 어머니 대한 이야기를 드리기도 했다. 훗날 세월이 흘러 박다교는 방배동(이춘희 선생님께 사사 받았던 예술학교)에 가서야 그때 그 선생님이 장덕화 선생님인 것을 알았다.
지금도 박다교는 종로에서 학원을 했던 장덕화 선생님을 찾아뵙고 장구를 배우던 시간들을 기억하면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고 한다.
장구를 치면서 노래를 하셨던 어머니를 더욱 그리워했다. 그 이후에도 어머니 이야기를 간간이 말씀드렸다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얼굴을 보면 생각이 날 거라고 하셨을 때 사진이라도 가져다가 보여드릴 것을 그때는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 어머니
그렇게 성인이 되어 결혼 후에도 박다교는 틈틈이 경기민요를 혼자서 웅얼거리며 불렀다. 만족스럽지 못하여 민요를 가르쳐주는 학원에도 갔었다. 하지만 그의 목마름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세월은 야속하게 흘러갔고 직장생활을 하며 정신없이 살다 보니 아이들은 훌쩍 커 가고 소리는 잊혀져 가는 줄 알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했던가. 어머니의 피가 흐르는 것이었을까? 박다교의 두 딸이 국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큰 아이가 중학교에서 축제를 한다길래 꼭 오라 해서 갔는데 사물놀이반에 징을 맡아서 치고 있었던 것을 보았다.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며 징을 치는 모습을 보고 국악을 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덥석 한다고 하는게 아닌가.
▲ 아쟁을 전공하는 큰 딸 박나윤
또 작은 아이는 어떤가. 언니가 예술고등학교에 다니고 학교예술제를 보더니 자기도 국악을 하겠다고 하여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되었다. 비록 소리는 아니지만 큰 아이는 아쟁을, 작은 아이는 해금을 전공하는 것을 보고 박다교는 새삼 놀라웠다.
▲ 이춘희 선생님(사진 가운데)과 해금전공 작은 아이 박나예(사진 맨 왼쪽)
큰 아이가 대학원을 다니고 작은 아이도 대학 졸업을 앞둔 무렵 박다교 역시 민요를 다시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했다. 그때 아이들의 말이 박다교에 큰 힘이 되었다.
“엄마가 우리를 이렇게 배울 수 있게 도와 주셨으니 이제는 저희가 엄마를 뒤에서 응원하며 도와드릴 차례가 된 것 같아요! 당장 소리 공부 시작하세요!”
이 말을 듣고 박다교는 옛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것을 보며 아이들 앞에서 펑펑 울고 말았다. 하지만 막상 다시 소리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마침 그때 민요 반주를 많이 배우러 다녔던 작은 아이가 이춘희 선생님 이야기를 했다. 방배동에서 예술대학교를 운영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다음날 박다교는 그 학교를 무작정 찾아갔다. 망설일 것도 없었고 여기서 더 주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다교의 소리 공부는 이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었다. 아이들이 공부만 하고 생활비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눈물나게 참 고마웠다.
그렇게 학교에 다니며 전숙희 명창에게도 자연스럽게 사사받았고 다시 시작한 소리수업에 잘한다는 소리도 많이 해주셨다고 한다.
또 김혜란 명창에게 ‘여태 어떻게 참고 살았느냐’는 말을 들었을 때는 박다교의 가슴이 뭉클했다. 설움이 복받쳐서 집에 오는 내내 울었다고 한다.
여기에 서도민요 김광숙 명창 또한 ‘소리꾼 목을 갖고 태어났는데 왜 공부를 안했냐’고 야단아닌 야단을 맞기도 했다. 그러면서 어디서 배웠느냐고 했고 그는 어머니께 배웠다고 했다고 한다.
그때를 생각하며 박다교는 ‘세월을 너무 많이 보냈구나’ 하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오며 어머니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난 지금도 늦지 않았어.”
박다교는 다짐을 했다.
‘지금 이렇게 인정을 받은 것도 다행이라고…. 그리고 이 시간부터 더 열심히 하겠노라…. 언젠가는 날 알아 주겠지….’
아쉬운 게 한둘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이렇게 열정을 가지고 민요를 하게 될 줄을 모르고.
박다교는 여러 번의 기회가 왔음에도 놓친 것을 안타까워 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늦게나마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3호 서도 산타령 예능보 유자 이문주 교수를 만나 제자로서 열심히 잘 따르고 배우며 더 높이 오를 준비하고 있다.
▲월계동2013년도 행사
▲ 1997년 경기민요 발표회
2015년 8월 황해도무형문화재 제3호 서도선소리산타령 예능전수자가 되었고 이듬해 2월 서도산타령 예능보유자를 이수했다. 그리고 2017년 경기민요 예능전수자가 됐다.
박다교는 이제 마지막 나래를 펼치기 위해 준비를 한참하고 있다. 희망을 걸고 남은 인생을 꿈 찾아 더 많이 소리를 연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더욱 굳혀본다.
어릴 적 마음에 품었던 소리꾼의 꿈을 지금 이 순간에도 노력하며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박다교는 현 시대에 맞는 소리꾼으로 다시 재탄생하고 싶단 생각을 해본다. 지금도 안비취 명창을 비롯해 이은주, 묵계월, 김옥심, 이춘희, 전용 태, 전숙희 등 큰 선생님들의 노래를 자주 경청하며 그 명성을 따라 가려고 하고 있다.
경기민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귀가 행복하고 따라 부르는 입은 더욱 더 즐겁고 행복하다는 박다교는 “예전에 우리 어머니가 가르쳐 주셨던 기억이 나고 지금도 내 옆에서 항상 응원해 주심을 느낀다” 면서 “내가 죽는 날까지 배우려고 하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한테는 열심히 성심을 다해서 가르쳐 주겠다”고 다짐한다.
▲ 이문주 교수와 함께
박다교
<출생 및 학력>
1959년 2월 27일 생
2001 창덕통신여자고등학교 졸업
2018.8.31. 한국전통예술학교 전통음악과 전통예술학사 졸업
2019.03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문화학과 석사 재학 중
<전수증 및 자격증>
2015.10.2. 효국악지도사 사범
2015.08.19. 황해도무형문화재 제3호 서도선소리산타령 예능전수자
2016.02.27. 황해도무형문화재 제3호 서도선소리산타령 예능보유자 이수
2017.1.21. 국가무형문화재 제 57호 경기민요 예능전수자
<수상내역>
2015.10.24. 제3회 미추홀 전국 경기·서도·남도소리 경창대회 명창부 은상
2015.11.03. 제 7회 전국 서도·경기민요 경창대회 명창부 장려상
2018.10.31. 제 7회 전국동부민요경창대회 명창부
대상
글 이형찬 홍익대학원 국어교육과를 마치고 20여년 주간신문 및 인터넷신문 언론에서 활동했으며 현재 화성시에 기반을 둔 주간신문 화성저널에서 근무하고 있다. 성산
효대학원대학교에서 한국의 효문화를 연구하는 효문화학과 다문화학을 전공하고 경기학연구자모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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