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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로 시대를 풍미하고 새 시대 여는 성우, 윤소라

경기학광장Vol.4 _ People & Life

< 목소리로 시대를 풍미하고 새 시대 여는 성우, 윤소라 >


- 경기학광장Vol.4 _ People & Life -



경기학광장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하는 계간지입니다. 경기도와 31개 시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고자 합니다. 전문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경기학광장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경기도 광명에 거주하는 유명 성우 윤소라는 남녀노소 각기 다른 이미지로 존재한다. 외화 더빙 시대를 즐겼던 시청자라면 그의 얼굴보다는 아름답고 당당한 여주인공의 목소리로 기억할 것이다. 지상파 인기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한 사람이라면 ‘무한도전’ 속 그녀를 놓쳤을 리 없다. 최근에는 유튜브를 비롯한 개인방송으로 원로 성우 윤소라를 새롭게 인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맞춰 ‘목소리 배우’로서 자신의 자리를 부단히 찾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운명처럼 연극영화과 선택한 여고생

유명 성우 윤소라는 착실한 여고생이었다. 취미로 하는 연극을 제외하곤 공부도 제법 잘하는 딸이었다. 문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녀의 취미 생활이 곧 미래가 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중앙대 학교가 개최한 문화예술제에서 연극으로 수상하고 특전으로 동 대학의 연극영화과 입학 특전이 주어진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연극영화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연극이 참 재미있고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방법을 몰랐던 제게 길이 펼쳐진 거였죠. 문제는 ‘우리 집에 딴따라는 없다’며 강하게 반대하시는 부모님이셨어요.”
연기를 갈구했던 소녀 윤소라는 부모님과 ‘얼굴을 팔지 않’고 ‘목소리 배우’로 활동할 것을 약속하면서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학창 시절 연극 무대에 오르며 얼굴을 드러냈지만, 직업을 선택할 때에는 그 약속을 지키게 된다. 직업인으로서의 성우는 방송사 공채 시험을 치러야만 입성할 수 있었던 터라 ‘방송사에 대한 로망’을 품었던 젊은이로서 당연한 선택이었다. 여기에 더해 당시 라디오 드라마와 외화 더빙 등의 인기에 힘입어 많은 사람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선망하던 직업이라는 점이 그녀의 선택을 부추겼다.
“중학생 때 동화 구연 대회에 나가서 2등 정도 되는, 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어요. 주변에서 ‘소리가 정말 좋다’고 해주셨는데 성우라는 직업이 저와 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직업으로 선택할 당시 성우의 매력이 또 있었는데,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연기한 것을 소장할 수 있다는 점이었죠.”
연극 무대가 끝난 이후 남은 한 장의 사진 대신 연기한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는 성우에 더 끌렸던 그다. 결국 방송사 공채 시험을 치르고 단박에 합격한다. MBC 성우극회 8기로 입사해 본격적으로 성우 인생을 시작한 그녀는 얼마 가지 않아 더빙 외화 속 여주인공 자리를 꿰차며 우리나라 대표 성우로 자리매김한다.

 

탁월한 연기력 인정받은 성우

방송국에 입사한 윤소라에게 주어진 전속 성우로서의 첫 임무는 라디오 드라마 속 ‘행인 1’과 같은 엑스트라 목소리 연기였다. 신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허드렛일도 있었는데, 내용을 알고 나면 그 가치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필름 시대에 값비싼 필름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라디오 드라마 4편가량 녹음하고 난 필름을 깨끗하게 지우는 것과 원고를 연습장에 갖다 놓는 일 등이 그것이다. 이중 필름의 녹음본을 지우는 일은 허투루 했다가는 수십여 명의 성우와 스텝이 라이브 방송을 망칠 수 있기에 그 중요도가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윤소라씨의 새내기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타고난 목소리와 폭넓은 연기력을 인정받아 외화 더빙과 라디오 드라마에서 주·조연을 차지하며 명성을 쌓았다. 윤 씨를 ‘유명 성우’ 자리에 올려놓은 것은 청순한 여성부터 섹시한 캐릭터까지를 해내는 소화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윤 씨는 외화 <지·아이·제인>, <롱키스굿나잇>, <터미네이터> 등에서 여전사로 등장하는 여주인공 역할을 목소리로 연기했다. 더불어 <사랑과 영혼>의 청순가련한 데미 무어부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속 여리여리한 멜라니까지 다채로운 인물을 소화했다. 이 같은 필모그래피는 성우 윤소라의 강점을 방증한다. 한 마디로 ‘제대로 연기하는 성우’로 인정받은 셈이다.


연극배우를 꿈꿨던 소녀가 자의든 타의든 성우로 일하면서 ‘얼굴을 드러내고 연기하는 것’에 대한 갈증은 없었을까. 이 질문에 그녀의 대답은 “나이가 든 지금은 아쉽지만, 한창 일할 때는 전혀 없었다”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무대나 브라운관에 등장하는 배우는 분장과 소도구, 무대 미술 등 다양한 보조 장치와 어우러져 좀 더 쉽고 분명하게 자신이 맡은 캐릭터와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성우는 다르다. 이야기의 배경을, 순간의 상황을, 그리고 그때의 감정 등을 오직 목소리만으로 전달한다. 성우에게 연기력은 필수 조건인 셈이다. 나아가 성우로서 성공하자면 연기력은 필수 조건 그 이상의 절대적인 조건이 된다.
“성우로서 이름을 날린다는 것은 연기력이 가장 중요하고 빠질 수 없는 요소인 것 같아요. 지금 성우들은 이미 완성된 애니메이션과 영화 더빙을 주로 하면서 과거 라디오 드라마처럼 새로운 연기를 창조하는 경험을 할 기회가 거의 없죠. 후배들이 주도적으로 좋은 소리를 만들고 연기하는 기회가 없이 흉내 내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아쉽고 안타까워요.”
그녀가 아쉬워하는 것이 더빙 영화의 몰락이다. 안방극장에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즐겼던 더빙 외화나 애니메이션을 이제는 쉽게 볼 수 없다. 이 지점을 두고 윤 씨는 원로 성우답게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나라 문맹률이 낮다고 하지만 어쨌든 글을 읽지 못하는, 읽을 수 없는 사람이 전 국민의 1%대에 달해요. 그런데 방송에서 자막이 불편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어요. 방송은 공익사업이잖아요. 적은 사람이라도 자막 대신 더빙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안정보다 더 넓은 세계 선택한 프리랜서

더빙 시대에 성우로서 영광을 누렸던 그로서는 많은 것을 내어주고 수동적으로 활약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성우계와 후배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상대적으로 성우로서 화려한 시기를 누렸기에 그 마음은 더 클 듯 하다. 그는 방송국 전속 성우로 3년 활동 이후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인정받은 방송국에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도 있었지만, 방송사에서 벗어나 좀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싶어 퇴사를 결심한다.
“방송사 전속 성우는 영화 더빙이나 광고 더빙 등의 좀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없는 구조에요. 프리랜서로 활동하면 여러 분야, 여러 방송사로 활동 폭이 넓어졌죠.”
그렇게 방송국을 나와 좀 더 다양하고 넓은 무대에서 목소리 연기를 펼치고자 한 윤 씨가 가장 많이 한 일은 한국영화 더빙이었다. 윤 씨는 80년대 후반 저물어가는 한국영화 더빙의 마지막 주자였다. 동시녹음이 이뤄지지 않았던 영화계에서 유명한 여배우로 다작했던 엄앵란을 비롯해 주연 여배우의 목소리 연기를 도맡았다. 촬영이 끝난 영화를 상영관에서 개봉하기 직전의 후시녹음(後時錄音)이 그의 주된 일이었다. 한국 영화산업이 한창 불붙은 때여서 영화 제작이 많이 이뤄지고 더불어 성우에게 후시녹음 의뢰가 끊이질 않았는데, 개봉일에 맞춰 급하게 녹음하던 터라 영화 한 편을 1~2일 꼬박 밤새워 작업하기도 했다고.




“선배들 말씀으로는 한국영화 전성기에 영화 더빙이 한창일 때에는 ‘집에 가면 온몸에서 현찰이 나왔다’고 할 정도였대요. 지방에서 영화제 작하겠다고 ‘주먹’들이 돈 보따리를 들고 올라와서 개봉하려면 더빙을 서둘러야 하니까 성우 섭외하고 현찰로 임금을 주고 그랬으니까요. 제가 한국영화 더빙할 때에도 당시 월급이 30만 원 수준이었는데 영화 한 편을 1박 2일 녹음하고 나면 50만 원가량 받았어요. 한편 녹음에 전속 때 월급만큼 받았던 거죠. (웃음)”
짧은 시간 일하고 목돈을 받는 ‘짭짤한 한국영화 더빙’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꽤 두둑한 배짱이 필요한 일이었다. 작업 과정 탓이었다. 촬영본 필름을 돌리면서 한 장면 한 장면 대사를 녹음하는데 마이크 앞에서 선 채로 영상을 보며 10분 단위의 한 롤이 끝날 때까지 목소리 연기를 맞춰나가야 한다. 한 편의 영화 러닝타임이 최소 90분이라면 최소 9개의 롤을 녹음해야 한다. 한 롤의 필름을 영사기에 걸어 놓고 후시녹음을 하는데 아날로그 방식이어서 아무리 짧게 끊어도 한 번에 최소 몇 분씩 걸리는 한 장면을 NG 없이 녹음해야 ‘오케이’를 받을 수 있었다. 대사 많은 주인공부터 외마디 내뱉는 엑스트라까지 누구라도 자칫 실수하면 이 장면을 다시 녹음해야 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이 때문에 지친 감독들이 쌍욕을 퍼붓고 불 끄고 현장에서 나가버리는 등의 상황이 흔했다고. 이러니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깡’이 없으면 더빙은 해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한국영화 더빙의 마지막 주자로 불려 다닌 윤 씨에게 탁월한 연기력에 남다른 배짱이 있었음을 예상케 하는 지점이다.

시대 변화에 따른 또 한 번의 선택

“광고도 필름으로 찍던 시절이 있었어요. 15초, 30초짜리 광고의 시간을 맞추려고 엔지니어가 가위로 진짜 필름을 잘라 스카치테이프로 붙여 작업하는 것을 자주 봤죠. 4~5년 광고 녹음을 하다 보니 어느 날 디지털이 등장했는데 소리를 내면 심장 박동처럼 그래프가 생기고 흘러가는 것이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어떤 엔지니어는 ‘목소리가 예쁜 사람은 예쁜 색깔로 나온다’고 놀리기도 했어요.”
시대 변화에 따른 기술력 발전은 성우계의 많은 것을 바꾸며 큰 영향을 미쳤다. 급기야 더빙 시대가 저물고 외화조차 모두 목소리 대신 자막이 대신하면서 성우들의 할 일은 크게 줄었다. 그러한 가운데 새로운 성우 후배들이 속속 등장했고 자연스럽게 윤 씨는 ‘원로’ 성우에 진입했다. 그녀가 유명 성우이기에 앞서 훨씬 멋진 직업인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그녀는 화려했던 시절의 영광을 그리는 대신, 능동적으로 성우로서 할 일을 찾아 나섰다.
“다른 이들의 책 낭독 프로그램을 듣는데 그냥 소리를 낼 뿐 ‘잘 읽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당연히 성우로서 제가 읽고 싶었죠. 그런데 저는 원로 성우이자 ‘비싼 성우’로 분류돼, 굳이 돈 안 되는 책 낭독 등의 일에는 섭외 리스트에도 올리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하자고 덤볐어요. 제 인생의 가장 능동적인 결정이자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그 첫 번째 결과물로 책 읽어주는 팟캐스트 <윤소라의 소라소리>를 기획, 제작했다. 스튜디오와 녹음·편집·방송이 가능한 후배의 도움을 받아 3년 6개월 동안 책을 오롯이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다. 기존의 책 낭독 프로그램이 드라마화하거나 일부분을 요약해서 읽어줬다면 한 권의 책을 온전히 섬세하게 들려주는 것이 제작 취지였다. 여기에 ‘윤소라식 해석과 표현’을 가미했는데, 이것 역시 섬세한 감정선을 연기 할 자신감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어쨌든 그 자신감과 그녀의 인생 최초 능동적인 자세로 완성한 결과물은 좋은 성과를 냈다. 책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는 팟캐스트 1위에 올라 주목받았고 해외에서도 10위 안에 들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수익구조 문제와 저작권 등의 많은 문제로 오디오북 제작은 잠시 중단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그는 “곧 새로운 모습으로 보여 드릴 시즌 2를 기획 중이고 현재 유튜브와 오디오 클립을 통해 시즌 2를 서비스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윤 씨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초부터 팟캐스트에 올렸던 내용을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유튜브를 통해 재발행하고 있다. 동시에 그녀가 목소리 연기를 했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주제로 한 유튜브 방송 <윤소라의 삐딱소리>를 제작 방영 중이다.
그녀는 또 전국을 누비며 발음, 연기력, 낭독 등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방송국이나 일터가 가까워서 수십 년 동안 살았지만 잠자는 곳에 불과했던 광명시도 그녀의 새로운 무대로 떠올랐다. 광명시의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이웃과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있다. 나아가 강습을 공간에 한정 짓지 않고 일대일 화상 강습을 진행하며 더 많은 사람과의 소통을 꾀하고 있다.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제대로 책을 읽는 것을 배운 적도 없고 제대로 된 발음과 발성의 목소리도 듣기 힘든 시절이잖아요. 방송에서조차 바른말을 듣기 힘든 사회니까요. 여러 이유로 우리 말이 많이 망가졌죠. 강습에서는 책을 낭독하면서 잘못된 발음과 발성을 교정해가고 궁극적으로 제대로 말하는 법, 잘 말하기를 가르쳐요. 지금 하는 일 중에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이고 사명감으로 하는 일이에요.”
청춘을 뛰어넘는 열정으로, 성우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그녀의 내일이 기대된다. 



글 류설아

수원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지식재산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신문과 방송사에서 15년 동안 취재기자로 활동, 한국기자상을 수상하고 인간의 삶에 주목하는 다양한 저술을 펴냈다. 현재 구술사 채록 등 프리랜서 인터뷰어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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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경기학광장 Vol.4 _ 2020 봄호

    발행처/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

    발행인/ 강헌

    기획/ 이지훈, 김성태

    발행일/ 202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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