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도박물관

새롭게 만나는 경기도 박물관 10

2020-09-20 ~ 2020-12-31 / 경기도의 근현대, 한국 최초 경인선·공중용 시외전화 등

2020 중부일보 연재 시리즈 〈새롭게 만나는 경기도 박물관〉은 개관 25주년을 맞이하여 전시실 전면 개편을 진행한 경기도박물관이 중부일보와 함께 2020.06.28부터 2020.09.20까지 총 10회 시리즈로 제작한 콘텐츠입니다. 더 자세한 〈새롭게 만나는 경기도 박물관〉을 만나보고 싶으시다면, 중부일보 홈페이지에서 원문으로 즐기실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수원 장안문(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에 기록된 일제강점기의 수원 장안문 모습이다. 유리건판은 감광유제를 유리판에 발라 건조시킨 일종의 필름으로 20세기 초 널리 이용되던 사진기술이다. 조선총독부는 이 기술을 이용하여 조선의 문화재, 건축물, 민속 등을 기록했다.


경기도의 근현대

경기도는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한반도의 중심지로 외세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중요한 목표 지점이 되었다. 경기도는 외세에 의한 근대화의 중심지이자 침탈에 맞선 항쟁의식이 가장 드센 곳이었다. 고종 즉위 이후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을 강행했다. 대원군이 천주교를 박해하자 프랑스군은 이를 핑계 삼아 강화도를 공격했다(병인양요). 대원군은 쇄국정책을 더욱 강화했고 미국의 강화도 공격도 막아냈으나(신미양요), 개항에 대한 외국의 요구와 무력시위는 점점 늘어만 갔다. 결국 조선은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조약을 시작으로 나라의 문을 점차 열게 된다.



미국 극동 함대의 기함 콜로라도 호

미국은 제너럴셔먼호 사건에 대한 배상을 명분으로 조선에 개항을 요구하며 강화도를 침략했다. 콜로라도 호는 미국의 아시아함대 군함 중 하나로 길이 80m, 3,500톤 급의 매우 큰 기함이었다.


근대와 마주한 경기

1880년대에 들어서면 서양 열강들과 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 개항장에 외국 상선들이 오가고 외국인 상점이 생겼으며 외국 물품들이 유입된다. 1890년대에는 철도와 전차가 신설되면서 서울의 모습도 크게 변화하였다. 공사관, 호텔 등이 들어서고 외국인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이렇게 유입된 서양인들은 한국과 한국인의 문화를 인정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신들의 문화를 우수한 것으로, 한국의 문화는 빨리 개선해야 할 미개한 것으로 상정하는 문명론적인 시각에서 조선을 바라보았다.


신편동물학

1908년 발행된 동물학 교과서이다. 이 책을 인쇄한 보성사는 1905년 보성학교에 설치된 인쇄소로 보성학교 교사들은 교과용 서적을 많이 집필하였다. 동물을 분류한 후 동물의 본능 및 진화를 다루었다. 각 장마다 해당 동물의 해부도 삽화가 있다.


근대 사람이 되다

개항 이후 근대 문물과 과학 기술이 들어오면서 철도·건축·의식주 생활 등에서 많은 변화가 나타난다. 정부는 서구의 우수한 기술문물을 도입하기 위하여 각종 개화정책을 마련했다. 한국 최초로 부설된 철도인 경인선,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등의 철도가 경기도를 지났다. 1902년에는 최초로 공중용 시외전화가 서울과 인천 간에 개통됐다. 이러한 새로운 서구기술의 도입은 조선을 근대화하고 삶의 편리함을 가져온 측면이 있지만, 사실은 침략의도를 가진 일본의 지배 편의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교육제도에도 새로운 개혁의 바람이 불었다. 1894년 갑오개혁은 교육제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제도가 폐지되고 근대 교육제도가 수립되면서 정부는 근대 교과서 간행을 추진했다. 일본의 거세지는 침략에 맞서 교육으로 실력을 키워 대항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지식인들은 민중을 계몽하기 위해 외국의 역사, 전기, 소설, 서양식 교과서를 출판했다. 그러나 1906년 통감부 설치를 시작으로 일본의 교육 정책 간섭은 점차 심해졌고, 민족의식을 높이는 교과서 간행을 금지하고 고등교육의 기회를 축소하면서 교육 통제는 심해져 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1919년 중국 상하이에 있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사진으로 엽서에 인화된 형태이다. 아래쪽에는 ‘대한민국 원년 10월 11일 재중화민국 상해 법계 하비로 321호’라는 시기와 주소가 자세히 적혀있다. 시기와 주소까지 남아있는 유일본이다.


독립을 향한 염원

일제의 수탈에 대항하는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구심점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였다. 경기 지역의 독립운동은 어떤 지역보다도 격렬하게 진행됐다. 서울과 인접한 경기도는 만세운동 소식을 빠르게 접했고, 3~4월에 걸쳐 만세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가장 먼저 일어난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일 수원군 북문 만세 시위였으며, 뒤이어 개성, 시흥, 양평, 평택, 안성 등으로 이어져 경기도 전체로 점차 확대된다. 경기도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횟수의 만세운동과 가장 많은 참여 인원을 기록했다. 3.1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민족적 대단결이 이루어지면서 독립운동의 중심이 되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임시정부는 대통령 이승만과 국무총리 이동휘를 비롯한 국무위원들로 정부를 구성했고, 현재의 국회에 해당하는 임시의정원을 세웠다. 임시정부는 헌법인 임시헌장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 명시함으로써 우리 역사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가 되었다. 임시정부는 외교 활동에 힘을 기울이면서 연해주와 만주에서 활동하는 독립군과 함께 1945년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항일 활동을 전개했다. 임시정부를 이끈 경기도 출신의 대표적 독립운동가로 조소앙, 박찬익, 여운형, 엄항섭, 신익희 등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 신년 축하식

대한민국 3년(1921년) 1월 1일 중국 상하이의 융안백화점 옥상에서 이루어진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 신년축하식 때 찍은 사진이다. 2번째 줄 왼쪽에서 4번째에 예관 신규식의 모습이 보인다.


경기도의 오늘과 미래

경기도는 1945년 광복 이후 우리나라 산업화의 주요 현장이었다. 많은 공장과 산업단지가 경기도에 만들어졌고, 이는 한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1970년대 이후 전기, 전자, 반도체, 휴대전화 등 첨단산업이 경기도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경기도의 문화적 정체성은 위기를 맞았고, 수도권으로 위치하면서 서울에 종속되는 경향이 심화되어 갔다. 2000년대 들어 경기도는 세계로 도약하는 발판으로 발돋움했다. 2005년 고양시 킨텍스(KINTEX)가 문을 열었고, 서해안 고속도로, 평택항 등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기반이 되는 교통시설이 건설되었다. 경기도는 글로벌 시대의 한류 중심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지인(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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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새롭게 만나는 경기도박물관〉

    기획 및 발간/ 경기도박물관, 중부일보

    원문 제공/ 중부일보(http://www.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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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은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의 전통을 밝히고 계승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박물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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