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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28호 | 지지봄봄 10년, 갈 길이 멀다 - 첫번째 주제 "지지봄봄 과거를 돌아보며"

지지봄봄 10주년,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일시 : 2020. 10. 6(화)

프로그램 : 모두 토론

방식 : 유튜브, 줌 화상회의 이원화 현장 송출


주제 : 1) 지지봄봄 10년, 과거를 돌아보며

2) 코로나19 팬데믹 상황과 교육현장

3) 문화예술교육과 시민력

4) 야생성 살리는 교육


함께한 사람들 : 고영직(문학평론가), 김경옥(대안교육공간 민들레),

박형주(광주삶디자인센터), 임재춘(커뮤니티 스튜디오 104),

김월식(무늬만커뮤니티), 유다원(플러스마이너스1도씨)


첫번째 주제 "지지봄봄 과거를 돌아보며"



고영직: 내년이면 벌써 《지지봄봄》을 창간한지 10년이 된다고 합니다. 10년 동안 비평웹진이 공공기관에서 존속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긴 한데요. 오늘 그 의미와 앞으로의 숙제를 짚어보고자 하고요. 그래서 전체 제목을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렇게 정했어요. 자화자찬을 하기에는 우리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그런 말이 섞여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저희가 준비한 이야기는 크게 3가지 정도 될 것 같아요. 딱딱한 얘기가 될 수도 있는데요. 코로나 시대에 문화예술 교육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이 과연 시민력 형성에 기여하고 있는지. 그리고 《지지봄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중 하나가,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라는 미국인 선생님을 모시고 저희가 안양 평촌아트홀에서 포럼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 이 선생님이 야생성이라는 키워드를 저희에게 제시를 했었어요. 와일드니스(wildness)라는 게 저는 굉장히 왼쪽 가슴에 계속 남아있었는데, 어쩌면 코로나 시대에 야생성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하는 차원에서 야생성을 살리는 문화예술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 하는 이런 정도의 토픽을 가지고 참여하시는 선생님들과 함께 활발한 토론을 하려고 합니다.


지지봄봄을 처음 만들 때 주도하셨던 임재춘 선생님, 지지봄봄을 쭈욱 바라봐주셨던 김월식 선생님, 지지봄봄이 처음 만들어질 때, 편집기획위원으로 참여하신 민들레의 김경옥 선생님. 편집위원으로 함께해주셨던 박형주선생님, 지지봄봄을 매개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스터디를 진행해왔었던 독자의 입장으로 참여하신 플러스마이너스1도씨의 유다원선생님 이렇게 다섯 분이 함께해주셨고요. 선생님들이 생각하시기에, 《지지봄봄》에서 기억에 남는 아이템이 있습니까? 덕담도 좋고요. 혹은 욕을 하셔도 좋을 것 같고요.



박형주: 현재 출장이 어려운 상황이라, 줌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수원시 평생학습관 얘기도 했는데, 팬데믹 상황에서 다시 어떻게 우리가 교육적으로 만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게 되는 거고. 그런 상황에서 만남이란 게 뭘까.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을 더 깊게 할 수 밖에 없게 되더라고요. 오히려 그 전에는 만남이라는 것이 가까이 붙어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의외로, 아까 비로소라는 말씀도 하셨는데, 코로나 상황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함으로써 여백을 만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어요. 오히려 약간의 거리가 생기니까 그동안 의식하지 못하고 너무 개입했던 것들에 틈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까 그 안에서 되는대로 해보는 약간 주도성, 자발성, 이런 것들이 움트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관객의 만남의 거리가 어느 정도여야 될까에 대한 것을, 이번 상황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고, 오히려 일정한 약간의 틈이 아이들의 자발성을 더 끌어내고, 자기들끼리 뭔가 해볼 수 있는 동력을 만들고, 그리고 오히려 저희같은 사람들은 그런 동력을 옆에서 부추기고, 비슷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친구들과 묶어주고, 한 그룹안에서 조금 에너지가 떨어지는 친구는 또래들과 새로운 시도를 해보게 하고, 이러한 학습자 주도성이라고 하는 것들이 조금 더 눈에 들어오게 되고, 그런 방향으로 뭔가 앞으로 가야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고 있다고 해야될까요.



임재춘: 아마 《지지봄봄》을 떠올릴 때마다 기억하는 것들이 저마다 다를 것 같아요. 저는 이걸 만들 때 주무 팀장이었었고, 처음 만들 때 에피소드가 있어요. 제 윗사람이 사업계획서를 제 얼굴에 던졌던 순간이 생각나요. 무슨 얘기냐면, 그때 당시 문화예술교육이나 공공기관들이 어떤 사업을 만들 때, 예산도 많지 않은데, 많은 사람들이 많이 경험할 수 있는 사업을 해야지. 이거 누가 본다고. 그리고 비평은 무슨 비평. 그냥 하면 되지. 뭐 이런 것. 평가나 비판 이런 것에 굉장히 두려워하는 시선이 하나가 있었고요.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뭔가 복지처럼 혜택을 줘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게 해야 된다고 하는, 가시적이고 양적이고, 이런 걸 되게 중요한 성과로 보았던 분위기가 팽배했던 시기 중에 하나였던 것 같아요. 그것이 지금도 다르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때 당시 그랬었고, 근데 저는 한정된 재원으로 재단이, 교육지원센터가 사업들을 구상할 때 어떤 게 중요하고, 어떤 걸 우선해서 보아야 되겠다는 판단들이 사실은 되게 첨예하게 이뤄지거든요. 그때 많은 예산은 없었지만, 거의 이 사업에 올인 했었던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적지 않은 예산으로, 《지지봄봄》을 해야 되겠다. 그때는 《지지봄봄》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이었죠. 어떤 비평 웹진, 비평 미디어를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었을 때는, 그런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문화예술교육현장이 뭔가 좀,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의미 있는 활동이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활동의 주체들이 왜 문화예술교육을 하는지, 정답이 있는 건 아닌데, 저마다의 이유와 의도가 있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이 활동을 하는지, 자기 언어로 설명해내지 못한다는 판단을 좀 했던 것 같아요.


근데 그런 와중에 평가나 모니터링이라는 활동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매우 형식적이고, 행정적 절차상 필요한 정도였지, 서로 신뢰나 서로가 합의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도 있는 것 같고요. 여러 가지로 복잡한 마음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을 하나로 투영해서, 가능성들을 만들어보자. 이게 딱 답이라고 생각한 건 아닌데,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좀 같이, 연결고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떤 포괄적인 사업이 하나 필요하다. 그것을 교육비평, 현장을 좀 비평하면서, 그들을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 하지만 막연한 응원, 잘한다 잘한다는 칭찬이 아니라, 정확하게 읽어주고, 그 행위를 통해 서로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주고, 그래서 소통, 교감하면서 연결되었다고 하는 연대감? 이런 것들이 가능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좀 하면서 그때 기준으로는 망상 같은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때 저는 좀 확신이 있었던 거 같고, 저 혼자만의 확신이 아니라 주섬주섬 선배들을 만나가면서 이런 거 하려고 하는데 말이 될까요, 안될까요. 지금의 언어로 보면, 리서치 같은 거죠. 그런 작업들을 하고. 사실은 그때 함께 일했던 친구들도 생각나요. 그런 친구들하고, 이런 거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뭐 하면서 같이 궁리했던 시간들. 이런 시간들 덕분에 과감하게 《지지봄봄》이라는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네 그렇지만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 서류가 날아가던 풍경이죠.



고영직: 드라마의 슬로우모션이 연상되는데요. 박형주 선생님께서 교육은 만남이라고 말씀하셨고, 임재춘 선생님도 비평웹진을 통해서 일종의 동료들과 함께 해석할 수 있는 공동체를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김월식 선생님께, 궁금한 게 ‘천국으로 가는’ 포럼이었던가요 참여를 한 적이 있는데, 히말라야 세파가 오셔서, 국제 포럼을 한 셈인데요. 인상적이었어요. 처음에는 교육과 이게 무슨 관련이 있어? 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까 교육과 관련이 있었던 거죠. 제가 교육의 폭을 너무 좁게 생각했던 거죠. 그런 배경이라든가, 감회도 간략히 말씀해주시죠.



김월식: 제가 교육지원센터와 계속 많은 관계를 맺으면서 여러 일들을 많이 해온 상황에서, 《지지봄봄》의 중요성을 많이 역설했었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문화예술교육 포럼을 맡아서 진행해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개인적인 욕심이었던 건데. 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몸으로 사유하고, 몸으로 만난다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런 것들이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몸을 많이 쓰시는 제주도 해녀학교의 교장선생님, 히말라야의 셀파, 이런 분들을 초청해서, 이야기를 들은 거죠.


그 때 재미난 얘기중 하나가, 오래되신 해녀님들은 물속에 들어가면 물질할 때 물이 들어오지 않게 귀가 접힌다고 합니다. 그리고 셀파들은 설상을 걸을 때 자기 눈을 믿지 않는다고 해요. 그런 것들이 너무 재밌어서, 그때 농담 삼아 제가 이후로 사람들을 만나면, 여러분 생각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거라고 생각해보세요. 이두박근과 삼두박근 사이에 뇌가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장딴지와 허벅지 사이에서 생각을 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훨씬 재밌지 않겠습니까?


그런 농담을 하게 되었는데, 뭐 거기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대만. 아시아 각국에서 몸을 활용해서 문화예술교육을 하시는 분들을 모셔서, 포럼을 열게 됐죠. 지금 생각하면, 약간 문명화되면서 소외된 감각이기도 하고, 비과학적이라고 합리적이 못하다고 된, 약간 퇴화된 감각일 수도 있고, 전 예술가로서 순전히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려고, 그렇게 진행했던 포럼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티벳말로 천국으로 간, 몸을 사용하는 상상력이 결국 천국을 이끈다. 그런 의미의, 포럼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영직: 알겠습니다. 흑심 가득한 포럼이었고요. 김경옥 선생님도 초창기부터 편집위원으로 참여하시면서, 특히 10대 청소년들의 교육에 대해서, 저는 10대 시절에 가출도 하고 그랬습니다만, 나중에 들어보니까 중학교 선생님을 때려 치셨대요. 어떤 마음으로 참여하셨고, 《지지봄봄》에 대해서 어떤 감회가 있으신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경옥: 제가 때려치웠다고 표현을 하시니까 굉장히 용감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사실 전혀 그렇진 않고, 그냥 고양이 같이 슬며시 그만둔, 나간, 그런 사람인데. 교사였죠. 어릴 때부터, 잘살고 싶었던 거 같아요. 좋은 삶이란 뭔가? 잘산다는 건 뭔가. 이런 거를, 10살이면 10살, 14살이면 14살, 그 수준에서 그 고민을 많이 하면서 컸던 사람이었던 것 같거든요. 그런 사람이 학교라는 시스템 안에 들어갔을 때, 그때도 그런 욕구, 욕망이 있는 거죠. 잘 살고 싶다. 좋은 삶을 살고 싶다.


정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뒤통수가 따갑지 않은 행위를 하고나면 뿌듯해지거나, 흥분이 되거나, 보람이 있거나, 이런 하루하루를 보냈을 때, 아마도 좋은 삶을 살고 있는 징조일 텐데. 제가 했던 교사생활은 그렇지는 못했어요. 하루하루가 언제나 좀 뒤통수가 따가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까, 그러다 어느 날 어떤 핑계를 대면서 슬며시 교사를 그만두고. 시간 간격을 두고 새롭게 시작했던 일이, 제가 민들레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인데, 민들레가 내걸었던 일종의 슬로건이라고 해야 되나, 그게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사람. 이런 표현을 쓰는데, 어떤 한 존재가 뿌듯하거나 가슴 벅차거나 이런 상태가 되는 건, 스스로, 자기 앞가림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고단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두는, 존재로 되었을 때,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고. 그런 인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도록 도와주는 게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건 이후에 민들레에서 활동하면서 조금 정리가 되었던 건데. 그러면서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사람으로 나아가는 길에 작은 역할이라도 하면 좋겠다. 이게 제 개인의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사람으로 나아가는데 매개가 저는 문화예술이라고 생각한 거죠. 아까 교육은 만남이다. 여러 가지 교육에 대한 정의 같은 것들이 있는데, 결국 한 인간의 성장을 돕는 역할이 교육이라고 한다면, 그 교육을 잘 해내는 매개가 진짜 저는 문화예술만큼 좋은 것도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여러 활동을 하고 있었던 거죠.


그러면서 그때 당시 15년 전, 10년 전 만연해있던 문화예술교육은 대부분이 기능적으로 접근하는 것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기능보다는 존재로 접근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문화예술교육은 일종의 매개인거고, 그 사람을 훨씬 더 풍요롭게 만들거나, 그 사람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지려는 어떤 욕구가 있는 사람으로 도와주거나 이런 걸 격려, 부추겨주는, 응원해주는 이런 매개가 저는 문화예술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문화예술을 하시는 분에게는 죄송하지만, 교육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그걸 하나의 매개로 잘 사용하고 싶었고, 그게 확실한 일종의 쓰임이 있다는 나름의 확신이 들 때였던 거 같아요.


《지지봄봄》을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그래서 저는 제가 해왔던 일이랑 우리 동료들이 해왔던 일이랑 《지지봄봄》을 만들려고 했던 사람들이 하는 일이랑 또는 그 어떤 바람이 서로 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거를 모의하거나 작당하거나 저는 임재춘 선생님이 서류뭉치 날아오는 걸 받으신 분인 줄은 모르고, 제가 만났을 때는 이미 되게 의욕을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저는 그 의욕이나 에너지가 굉장히 반가웠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만나는 아이들, 동료를 넘어서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한 인간의 성장에 문화예술이라는 게 얼마나 잘 쓰일 수 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우리가 모여서, 전문가가 모여서 얘기하는 게 아니고, 그야말로 현장에 있는 사람, 욕구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고민도 해보고, 같이 해석도 해보고, 해석한 것들을 각자의 현장에 가지고 와서 다시 한 번, 쓸모 있게 만들어보기도 하는, 이 선순환이 만들어지는 그 과정에 있는 게 상당히 즐거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지봄봄》의 한 호 한 호를 기획하는 것도 그 흐름을 만드는 선순환을 만드는 작업이었던 것 같고, 그러다 가끔씩 고영직 선생님이 말씀하신 크리스를 초대한다든지, 이런 망치로 얻어맞는 경험도 《지지봄봄》이 하게 해주셨잖아요. 잔잔한 흐름을 만들기도 하고, 그야말로 번개 치듯 충격을 주는 이벤트도 기획하거나 곁에서 곁불을 쬐는 것 같은 느낌으로 있거나 하는 것이 즐거웠던 것 같고, 그러네요. 지금 새삼스럽게 얘기를 하니까 굉장히 즐거운 일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고영직: 네 알겠습니다. 오늘 참여하신 패널 중에 박형주, 김경옥 선생님, 그리고 저, 이번 호에 다른 세션에 참여하고 계시는 강원재 선생님. 이 네 명이 편집위원으로 활동을 했었고요. 오늘 유일하게 독자의 입장이신데, 유다원 선생님은 날카로운 독자일 것 같아요. 그동안 《지지봄봄》을 어떻게 보셨는지?


유다원: 날카로운 독자가 아니라 엄청 따뜻한 시선으로 봤고요. 저는 사실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현장은 사실 외로운 일 인거 같아요. 현장에서 자기가 잘하고 있나? 이 활동이 잘 가고 있나?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고민들이 많이 드는데, 보통은 사업을 받으면, 모니터링, 컨설팅을 하러 오시는 선생님들은 그걸 친구처럼, 아니면 도움으로서 얘기해 주신다기보다, 우리를 평가할 것 같은 생각들이 많이 든단 말이죠. 그래서 굉장히 흔들리고, 더 흔들리고 꺾이고 싶을 때, 저희한테는 공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공부를 늘 그래서 동네에서 하려고 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도 같이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그 공부의 매개체가 저희한테는 《지지봄봄》이라는 책도 있고요, 그리고 저희가 사랑하는 《시각지》라는 두 가지 책이 있는데, 아까 임재춘 선생님이 비평미디어를 말씀하셨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공공미술을 좀 새로운 방식의 예술의 형태, 예술이 좀 밖으로, 전시장, 공연장을 넘어서, 다른 형식의 예술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고민을 가지고, 여러 지역, 현장에서 공공미술을 하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을 많이 담아내주고, 읽어주고 재해석해주는 비평 미디어가 없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현재 공공미술은 1프로 조형물 형식으로 돌아왔거든요. 저는 굉장히 좀 마음이 아픈데요, 문화예술 교육을 하는 현장들이 굉장히 많고, 이렇게 현장에서 굉장히 흔들리고, 내가 하는 교육이 정말 일방적인 교육이 아닐까? 아까 말씀하신 대로 야생성을 살리게 하는 일들인가, 이게 진짜 더 어렵거든요. 개인의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때 《지지봄봄》이 저희한테 중요한 역할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은 교육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기획자도 있고, 예술강사도 참여하고 그것을 같이 기록해주고, 정리해주는 보조강사 선생님들도 같이 있거든요. 이 사람들이 함께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을 공유하고 생각의 다름 자체를 받아들이고 흡수하고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현장에서의 호흡을 맞추는 게 너무나 중요하거든요. 그러려면 이야기의 도구가 굉장히 필요한데요. 《지지봄봄》은 저희에게 그런 이야기의 도구였던 것 같아요. 이런 좋은 책을 제가 도구라고 말씀드려서, 불쾌하신 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좋은 도구였던 것 같아요. 다른 생각을 가진 예술강사 선생님, 문화예술교육의 판을 같이 까는 기획자로서, 그리고 그것들을 계속 기록하고 이야기들을 쌓아가는 보조강사 선생님들과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지금 현재 놓치고 있는 것들, 그리고 교육을 하면서 기억해야 될 것들, 좀 더 다른 방식의 교육을 하기 위해 사례도 중요한데, 그런 사례들도 다양하게 담겨 있었어요. 현장에 있는 사람이 다른 현장을 탐방 간다던가, 어깨 너머로 배우는 일들은 흔치 않은 일이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온라인으로 찾아보거나, 이런 책들을 보고 많이 공부를 하는데, 그때 많이 도움이 됐던 것 같고, 그게 저희한테 항상 지팡이 역할을 해주고, 저희가 동네에서 스터디를 할 때도 다시 읽었던 굉장히 독자로서 감사한 책이었고, 그래서 현장 교육하는 분들한테도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고영직: 방금 유다원 선생님이 말씀하셨지만 비평이라는 말이 영어로 크리틱이잖아요. 이 크리틱이라는 말하고 영어로 위기라는 말이 크라이시스라는 말이에요. 크리틱하고 크라이시스가 어근이 똑같습니다. 뭔가 위기의 순간에 사람들의 비평정신이 살아난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공공미술이 최근에 상당히 위축된 것은 비평의 부재에 있었던 것은 아니냐는 지적은 우리가 《지지봄봄》이 왜 존속해야 되는가라는 차원에서 중요하게 생각해 볼 주제인 것 같습니다.



[오프닝, 가을밤과 어울리는 노래를 들려주신 ‘싱어송라이터 하이디, 기타리스트 이병욱’ 두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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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진 '지지봄봄'/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2012년부터 발 행하고 있습니다. ‘지지봄봄’은 경기도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까이 바라보며 찌릿찌릿 세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입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이라면 어디든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다양한 삶과 배움의 이야기와 그 안에 감춰진 의미를 문화, 예술, 교육, 생태, 사회, 마을을 횡단하면서 드러내고 축복하고 지지하며 공유하는 문화예술교육 비평 웹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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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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