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29호 |모름을 따라가는 문화예술교육

삶과 공간의 변화 - 앞당겨진 초연결 사회 속으로의 ㅋㄹㄴ ㅅㅍㅇㅅ의 모험

정은혜(생태예술가, 예술치료사)





그림 . 2018-2019년 ‘에코 오롯’에서 진행한 산호뜨개 작품의 예이다. 산호뜨개는 꼬불꼬불하게 뜬다는 원칙은 있지만, 규칙이나 패턴이 없는 열린 방식의 커뮤니티 뜨개 방식이다. 제주와 서울에서 500여명의 시민들이 함께 했다.




모름을 따라가는 문화예술교육:

“IN CASE OF EMERGENCY, BREAK DANCE”



“모름을 따라가라.” 미술치료, 미술교육, 환경교육 등의 영역에서 강의를 할 때, 이 말을 오랫동안 해왔었다. 그런데, 이 말에 사람들이 답답해했고, 화를 내기도 했다. 대놓고 눈을 굴리거나 한숨을 쉬는 사람도 있었고, 교실을 박차고 나가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연속 강의인 경우에 첫 시간이 지나면 수강생이 우두둑 떨어졌다. 한번은 교육생이 쉬는 시간에 앞으로 찾아와서 눈물을 글썽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교수님, 제발, 뭐를 하라는 건지 칠판에 써 주세요.” 나는 그들의 당혹스러움이 와 닿지를 않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미안하다.


“모름을 따라가라”는 말에 설명을 요청하는 그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전문가로 이미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고급 기술을 배우러 오신 분들에게, 기껏해야 “답이 없으니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말했으니 얼마나 재수가 없었을까?


그런데, 요즘에는 나의 이러한 메시지에 교실이나 회의실이나 zoom 방을 박차고 나가는 분들이 없다. 답답한 사람을 혼자 가슴 치게 두지 않고, 그래도 설명을 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변화의 가장 큰 이유는 예측할 수 없고 그래서 준비할 수 없는 “모름”의 시대가 왔음에 있다. 우리는 모르는 세상을 만나버렸고, 길이 없는 공간에 서 있다. “모름”의 공간에서 어떻게 한 발 한 발을 뗄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듣기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내 말이 씨알이 먹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우리의 삶은 예측 가능한 것들과 예측 가능하지 않은 것들의 랜덤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예측을 필요로 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준비해 본 적이 없고, 시뮬레이션해 본 적이 없는 세상으로 들어왔다. 새로운 공간이 열렸는데, 여기에서 저기라던가, 이거하고 저거라던가 하는 순서나 지시나 방향이 모호하다.


경제학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세상의 시스템들을 프래질과 안티프래질의 개념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깨지기 쉬운 소포나 비행기 수화물에 ‘프레질(fragile)’이란 스티커를 붙인다. 충격을 가하면 깨지기 쉬우니 주의하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단어와 뜻이 반대되는 단어는 무엇일까? 저자는 ‘프레질’의 반대말은 ‘충격이 가해지면 더욱 성장하는’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단어가 없으므로, 프레질 앞에 ‘안티(anti)’라는 접두사를 붙여서 ‘안티프레질(antifragile)’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고, 이 책을 통해 그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프레질한 것은 딱딱하지만 충격이 가해지면 깨진다. 유리병도 그렇고 견고한 시스템도 그러하다. 반면 안티프레질한 것은 부드럽지만 충격이 가해지면 더 강해지는 것들이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안티프레질하다. 창조적인 것들도 안티프레질하다. 무거운 것을 들면 근육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고, 회복이 되면서 더 무거운 것을 들 수 있게 된다. 피부의 상처는 아물면서 조직이 세 배나 두터워진다. 예술은 알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열린 공간에서 하나의 자국, 한 움직임, 하나의 음표를 채워 넣으면서 혼란과 파괴와 친구하면서 나아가는 과정이다.  


안티프레질한 것들은 스트레스를 통해서 더 강해지고 성장한다. 하지만 표준화, 시스템화, 안정의 추구는 삶을 견고하고 딱딱하게, 그리고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무너지는 연약한 시스템, 즉 프레질한 시스템으로 만들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우리는 지금 몹시 불안하고 불확실한 세계에 산다. 코비드-19(COVID-19)은 지구상에 있는 우리 모두를 흔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나라 전체의 사람들이 아사 직전에 있었던 예멘에서의 내전은 코로나 때문에 멈췄다니 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방정식을 배우고, 조선 시대 왕의 이름을 외우고, 바이엘부터 체르니까지 순차적으로 피아노를 배우고, 그림을 배우기 위해 석고상을 반복해서 그리고, 공부를 착실하게 해서 미래의 직업을 보장받고자 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창조적인 작업을 제외한 많은 일들을 인공 지능 기능을 가진 컴퓨터가 더 잘하게 될 것 같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정보 중심 교육의 대부분이 필요 없어지고, 미래에는 인간 본연의 능력이자 안티프레질한 능력인 창조성, 호기심, 공감력 등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우리는 견고하고 확실하고 예측 가능해 보이는 프레질한 시스템에서 안정감과 안도감을 느끼도록 교육받아 왔다. 하지만 삶의 절반은(탈레브가 말하기를 “더 흥미로운 반은”) 안티프레질하다. 그리고 이 절반에 깊숙이 자리를 잡아야 하는 것이 예술교육이다. 안티프레질한 영역에서는 알고 있는 것을 붙잡을 것이 아니라 ‘모름(unknown)’의 길로 나서야 한다. ‘모름’의 영역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교육이나 멘토링이나 확실한 답이 아니라,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배운 바 없는 길을 찾아 나아가게 하는 용기와 창조성이다.


삶이 안전하거나 예측 가능하거나 불안하지 않았던 적은 한 순간도 없다. 삶에서 랜덤은 그 자체이다. 좋고 싫고의 항목이나, 선택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항목이 아니다. 삶은 랜덤하다. 그 안에서 우리는 규칙을 찾고, 안전을 추구하고, 시스템을 잘 구축하게 되었을 뿐, 한번도 랜덤을 없앨 수 있었던 적은 없다. 삶이 예측 불허할 때,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은 용기이다. 그리고 이 용기를 키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교육이 예술교육이라고 믿는다. 왜냐면 예술은 끊임없이 빈 페이지와, 빈 캔버스와, 빈 무대를 마주하면서, 모름에도 불구하고 그 앞으로 나아가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연습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림 . 2019년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진행했던 산호뜨개 수업의 한 장면. 한명도 같은 것을 뜨지 않는다. 패턴이 없이 뜨는 것이어서 똑같이 뜰 수도 없다.


얼마 전에 “IN CASE OF EMERGENCY, BREAK DANCE”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티셔츠를 보고 빵 터진 적이 있다. 빨간 볼드체로 쓰였는데, 버스나 전철 등에, 불이 났을 때, 여기를 깨시오라는 문구와 모양이 똑같기 때문이다. “비상시, 이것을 깨시오”라는 “IN CASE EMERGENCY, BREAK THIS”에서 마지막 단어 하나를 바꾼 것이다.



이 문구를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우리는 지금 비상시를 살고 있고, 무엇인가를 깨서 어떤 망치든 꺼내서, 상황을 종료시키던지, 문제를 해결하던지 하고 싶다. 하지만, 브레이크 댄스(BREAK DANCE) 춤을 추라. 또는 그림을 그려라, 또는 시로 말하라, 또는 노래를 부르라! 이것이 정말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잃어버렸고, 이제는 길이 없음을 한탄할 것이 아니라, 창조성을 끌어올려서, 길이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공간성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용기는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시기에는 배울 수 있거나 경험해 볼 수도 없다. 그리 이미 길이 다 나와 있다면 그곳에는 창조가 깃들 자리가 없다.


이 과정에서 경계해야 할 목소리가 있는데, 예술교육을 하면서 두렵지 않아도 창조할 수 있다고 말하는 목소리다. 미지의 공간으로 나가는 일은 두렵다. 창조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을 나아가는 것이지, 두려움을 없애는 순간, 우리는 과거의 길을 찾아 헤매는 것과 똑같다. 그런데, 마치 주어진 과정을 따라가면, 주어진 재료를 조합하기만 하면, 헤매지 않고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하는 예술교육이 많다. 이 과정은 결과적으로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만들게 도울 수는 있겠지만, 예술교육을 통해서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하는 중요한 기회를 놓치게 한다. 코로나 시대, 기후변화 시대, 예측할 수 없는 지금의 시대에 우리가 예술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확실하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모름의 영역에서 나의 길을 찾는 능력을 예술교육을 통해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 산호뜨개를 서귀포 앞바다에 있는 범섬 돌 사이에 끼워보았다. 범섬 주변은 연산호 군락지다. 수심 20미터 정도 아래에는 꽃같이 아름다운 산호들이 산다.




그림 . 산호뜨개를 서귀포 앞바다에 있는 범섬 돌 사이에 끼워보았다. 범섬 주변은 연산호 군락지다. 수심 20미터 정도 아래에는 꽃같이 아름다운 산호들이 산다.


“산다는 것은 채워야 하는 빈 종이를 자꾸자꾸 마주하는 일이다. 빈 종이의 두려움을 기꺼이 마주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실패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고 헤매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헤매지 않으면 성장할 수도 없고 변화할 수도 없다. 빈 종이가 두렵더라도 그 두려움을 끌어안고 빈 종이에 점이나 선이나 색으로 자국을 만들어보자. 한두 번으로 삶이 변화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자국들이 모여 그림을 만들고, 또 그 그림들이 변화하면서 당신의 삶이 변화할 것이다. 변화하고 싶다고 말을 늘 하지만, 그제와 같은 어제,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낯선 것을 마주하는 두려움을 끌어안아야 오늘을 조금이라도 다르게 살 수 있다.  



헤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만드는 디자인과 스스로 만드는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자기를 믿는 힘이 생겨난다. 숫자를 따라 그리는 그림(painting by number)처럼 주어진 대로만 열심히 칠하면서 남들이 가는 길, 남들이 안전하다고 설정해 놓은 길만을 가다 보면 자신의 삶을 창조할 수 없다. 미로에서 길을 찾을 때처럼, 창조적이고 치유적인 여정에서 만나는 헤맴과 모름은 우리를 자신의 중심으로 안내하며, 이 중심을 통과할 때 우리는 변하고 성장한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헤맬 수 있는 길을 나서는 용기를 그림을 그리면서 배울 수 있다.”(정은혜, 『변화를 위한 그림일기』, 샨티, 2017, 200쪽)



그림 . 눈을 감고 그린 바람 그림







세부정보

  • 지지봄봄/ 웹진 '지지봄봄'/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2012년부터 발행하고 있습니다. ‘지지봄봄’은 경기도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까이 바라보며 찌릿찌릿 세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입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이라면 어디든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다양한 삶과 배움의 이야기와 그 안에 감춰진 의미를 문화, 예술, 교육, 생태, 사회, 마을을 횡단하면서 드러내고 축복하고 지지하며 공유하는 문화예술교육 비평 웹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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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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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는 문화예술교육으로 함께 고민하고, 상상하며 성장하는 ‘사람과 지역, 예술과 생활을 잇는’ 플랫폼으로 여러분의 삶과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