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29호 | ‘공간’, 그 경계를 넘어 ‘공존’으로

삶과 공간의 변화 - 앞당겨진 초연결 사회 속으로의 ㅋㄹㄴ ㅅㅍㅇㅅ의 모험

양쿠라(시각예술가)




(흘곶마을 바다 풍경, 사진출처 양쿠라.2020)



바닷가 시골 작업실


나의 작업실은 경기도 대부도 서쪽 끝에 위치한 흘곶마을이다. 이 마을은 근래 보기 드문 서로 공생하는 지역이다. 어촌계를 중심으로 갯벌체험을 통한 수익을 나누고 관리하며, 주민 모두가 함께 가꾸어 나간다. 도심에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커뮤니티를 만들어가고 있다. 대부분의 타지역 마을들이 이미 관광지가 되고, 개인주의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흘곶마을의 대다수는 노년층이다. 마을의 청년이라고 할 수 있는 대상도 최소 60세는 넘어야 한다. 인적이 드문 탓에 매일 들리는 새 소리가 귀에 익을 정도다. 이따금 주말에 캠핑을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가끔 들리는 것은 스피커로 들리는 마을 통장님 목소리뿐이다. 마을의 경조사나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방송이 그것이다.


개인적으로 본인은 해양생태에 대한 관심을 예술작품으로 표현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부도 흘곶마을 작업실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가격리 공간의 최적의 조건


지난 9월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예술 프로젝트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고 했다. 아울러 자가격리를 위해 내가 쓰는 대부도 개인 작업실에 2주간 머물 수 있는지 물었다. 당시 나는 제주도에 있는 ‘예술곶산양’이라는 예술창작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작업실은 빌려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코로나 19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지역 특성상 노인층이 많다보니 그것에 대한 전파력 때문이었다.


결국 절대 집 밖을 나가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그에게 작업실을 빌려주었다. 작업실은 다주택이 아닌 단독주택이었다. 앞마당과 옥상이 있는 구옥으로 간단한 운동도 집에서 충분했다. 더욱이 마을 중심에서도 100m 이상 떨어져 있었다. 자가격리를 위한 최적의 조건이었다.


이후 입소문이 났는지 외국 작가들을 초대하는 기획자들에게 여러 문의를 받았다. 하지만 외국인의 경우 국가적 차원의 관리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게 이때쯤이었다. 전국적 코로나 확산과 외국인의 사건 사고가 연이어 터졌다. 그 후 외국인은 국가 지정 시설을 의무적으로 이용해야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다행히 작업실 대여는 한 번의 경험으로 끝낼 수 있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작업실에 만족하지만, 지인들은 너무 멀리 살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었다. 젊은 나이에 시골에 살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농담처럼 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면서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작업실에 놀러오고 싶다, 바람 한 번 쐬러 가고 싶다 등 아무래도 코로나로 도심 속에서 느끼는 답답함이 많았던 탓이었다. 물론 시대적 상황과 환경에 따라 공간이 지닌 선호도와 목적성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역전되는 이러한 상황이 아이러니하기만 했다.



기대 이하의 현실


얼마 전 외장하드 연결부위가 고장 난 적이 있었다. 과거 작업 사진과 문서 등이 들어있는 매우 중요한 외장하드였다. 하지만 고장으로 당장 쓸 수가 없었다. 다수의 제안서와 결과보고서를 제출해야 했기에 매우 난처한 상황이었다. 개인적으로 여러 대의 컴퓨터를 가지고 작업을 한다. 데이터를 분산 저장한다고 하지만 게으름에 중요 정보를 버린 것이다. 나중에 다시 복원을 하더라도 당장에 필요한 데이터와 정보는 사용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무수한 복제와 그것의 편리성, 신속성에 매료되어 있다. 또한 그것을 맹신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순간의 실수로 데이터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 이러한 디지털 데이터와 시스템은 어느 순간에는 물리적으로 실존하는 대상들보다 생명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동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선진국의 시스템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들에게는 초기 대처라는 것이 없었다. 마스크, 방호복 지급과 진단키트를 대량 생산하는 라인이 없었다는 것도 문제였다. 즉, 물리적인 생산이 가능한 실존 시스템이 없었다. 흔히 아는 선진국들은 연구와 개발중심의 산업 시스템으로 전환되어 직접적인 생산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값싼 노동력을 활용한 OEM(주문 위탁 생산)방식의 산업구조가 익숙했다.


자본력은 있지만 값싼 노동력과 대량생산 설비가 부족한 선진국은 급변하는 전염병 확산 시기에 방역물품을 확보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서로 자본을 앞세워 경쟁하고, 일부 국가는 그것에 대해 수출을 금지했다.


물론 이와 비슷한 펜데믹이 과거에 벌어졌다면 더 심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정보의 빠른 분석과 정보전달이 세계적으로 공유가 가능했기에 조금은 신속한 대응이 가능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물리적으로 실존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꼈다.




환경오염과 자연치유 능력


  


(인도 뉴델리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사진. 사진출처 CNN.2020)



코로나19의 영향은 엄청났다. 나라간의 교류는 멈췄고, 각 나라마다 지역 봉쇄, 통금 시간 부과 등 세계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겪고 있다. 나라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이동을 제한함으로써 코로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자연은 달랐다. 인간이 멈추자 반대로 치유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봄철 황사와 중국발 미세먼지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이따금 작업실에서 보이는 서해상의 수많은 섬들이 확연히 드러나 보여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러한 사례는 전세계적으로 나타났다. 인도의 경우 대기오염이 사라져 히말라야 산을 다시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이탈리아 베니스의 배들이 멈추자 물이 맑아져 돌고래가 수로에 다시 나타나는 일도 생겼다. 하지만 꼭 이런 아름다운 현상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본 대마도의 경우 해안 정화 청소 프로그램을 취소하기도 했다. 대마도는 해류 특성상 다수의 한국 쓰레기가 해안가로 몰려드는 곳이다. 넘치는 해양 쓰레기를 두고, 어차피 관광객이 없기에 청소를 안 한다는 말부터 사람이 모이는 행위 자체를 할 수 없기에 청소를 못한다는 말도 있다.


물론, 해변으로 밀려오는 해양쓰레기를 보고 혐오스럽고 위험하다고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수의 해양 쓰레기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있는 상황에서 사람이 수거할 수 있는 위치까지 흘러와 준 것은 고마운 일이다. 매년 태풍이 해양 쓰레기를 끌고 오기에 우리는 자체 정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대마도 해변에서 발견되는 한국 쓰레기들. 사진출처 양쿠라. 2018)





국경과 생태 연결고리


지난 몇 년간 동북아시아의 해양쓰레기를 주제로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일본, 대만 등 동북아시아 지역의 해양쓰레기가 이동하는 상황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것은 여름철 동남아시아에서 북으로 올라오는 쿠로시오 해류를 따라 대만, 제주도, 대마도를 잇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서해상의 해양쓰레기 상황에 관해 다수의 중국발 쓰레기로 서해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뉴스를 많이 접했다. 하지만 한국의 쓰레기 또한 제주도를 거쳐 대마도로 많은 양이 유입되고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보통 국경선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책임은 해당 지역에서 질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공간’의 경계를 쉽게 생각하면 매우 위험하다. 사실 그 ‘경계’는 실제로 다양한 물질의 이동과 연결되어 있다. 이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영역에 위치하고, 하나의 공간이 오염이 되면 옆에 있는 다른 지역으로 전위되는 것과 같다.


해류를 따라 이동하는 쓰레기는 국경선을 벗어나 순환하는 하나의 대상이다. 이 때문에 한 국가에 책임여부를 묻기가 매우 힘들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해양쓰레기가 일차원적인 문제라고 한다면 보이지 않는 오염물도 있다. 이를 테면 방사능 오염수는 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동북아시아의 바다는 정치적, 군사적으로 매우 예민하다. 하지만, 미래에는 그 ‘공간’이 하나의 경계가 아닌, ‘공존’의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경적인 부분만큼은 서로 협력이 필요한 것이다. 공간은 개인이 사유화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부터, 국제관계 속의 지역들까지 포함할 수 있는 단어이다. 서로 다른 영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라면, 공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쓰레기와 국경에 대한 관심


쓰레기와 국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군 제대 이후 서해상의 사승봉도라는 무인도에서 캠핑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북한에서 떠내려 온 것으로 추정되는 오브제를 발견을 했다. 그것은 붉은색 바탕 위에 흰색으로 프로파간다적인 문구가 적혀 있는 일반적인 나무판이지만, 그것은 당시 내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유는 군 생활을 경기도 김포 해병대에서 근무하면서 한강 하구로 떠내려 오는 것들을 감시하는 역할로 대다수의 시간을 북한의 그것을 망원경으로 관찰하고 사물을 분석하는 행위로 보냈기 때문이다.





(북한쓰레기 사진출처 양쿠라 2014)


북한의 오브제가 예상치 못한 경계를 뚫고 접안을 한 모습이 사실 신기했다. 다른 사람 눈에는 그저 하찮은 나무판이었겠지만 낡고 덧칠해진 페인트 사이로 읽히는 글의 내용과 색감은 강렬했다. 그리고 그 주위에 다양한 중국발 쓰레기들과 한국쓰레기들이 서로 엉켜있는 모습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보다 더 평화롭고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또한 그 장소가 연평도 포격사건과 연평해전이 벌어졌던 같은 바다였다. 이러한 장소의 특수성은 본인에게 더 복잡한 현실과 환경 그리고 경계지점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그때의 경험은 이후 지금은 동북아시아의 서해상을 포함한 남해와 동해 그리고 육상분단 지역인 DMZ 경계지점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며 작업을 진행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사승봉도 쓰레기 사진. 사진출처 양쿠라 2016)



대마도에서 작품 활동과 한국


2017년 이전까지는 대한민국 서해상으로 몰려오는 외국발 해양 쓰레기에 대한 내용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리서치를 하고 작품을 진행할 때마다 문득 한국쓰레기들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해류의 흐름상 왠지 대마도로 흘러들어갈 것이란 예상을 하고, 부산항에서 대마도를 들어가는 배편을 구입하게 되었다. 1시간 반 이후 대마도 북쪽에 있는 히타카츠라는 곳에 도착하고 렌트카를 빌려 대마도 해안선을 리서치하기 시작했다. 


(대마도 리서치 과정, 사진출처 양쿠라 2017)



무작정 대한민국 쓰레기들을 찾으러 떠난 여행이라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시작한 리서치였다. 혹시 쓰레기가 없다면 어쩌지. 궁금증으로 시작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해안선을 뒤덮은 쓰레기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곳은 한국발 쓰레기들이 넘쳐났다. 미우다 해수욕장이라는 대마도 북섬의 유명한 휴양지 우측 해안선 절벽 밑이었다. 그곳은 다소 위험하고 접근하기 힘들어 일반 관광객들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또한 해수욕장 관리인들조차 청소가 까다로운 장소인지 상당히 많은 쓰레기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기대 이상의 한국쓰레기들을 만날 수 있어 초반에는 신이 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이곳에 대다수의 쓰레기들이 한국발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매우 씁쓸함과 동시에 미안함과 창피함이 들었다.


1차 대마도 한국쓰레기 현황을 리서치하고 이후에 두 세 차례 개인적인 리서치를 하면서 우연히 CAPPA 라는 환경단체를 만나게 되었다. 대마도에 있는 민간 환경단체로 개인 생업들이 있으며 시간을 내서 주변 쓰레기를 정화하고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활동을 하는 단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대마도 환경단체 대표인 우에노상이 지역 어린이 환경교육을 가려고 하는데 같이 참여 할래요? 라고 물었고 지역 어린이들의 생각과 교육프로그램이 궁금하여 참여를 하겠다고 했다.


교육프로그램은 대마도에서 수거한 쓰레기들을 보여주고 환경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내용들로 구성이 되었다. 교육에 사용되는 쓰레기 중에 대한민국의 상표가 적혀 있는 쓰레기들이 함께 포함이 되어 있었는데, 어린이들 중 한 명이 “한국 쓰레기다!”라고 연신 외쳐댔다. 사실 나는 그 상황이 너무 창피하고 미안함이 들었다. 하지만 바로 환경단체 대표가 말을 이어 “한국쓰레기가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 일본 쓰레기들은 하와이로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라고 어린이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이 한국인 예술가가 참여를 하고 있기에 배려해서 말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어린이들에게 환경교육을 하고자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 이후 7차례 더 그곳을 방문을 하고 개인적인 작업을 진행했고, 환경단체 CAPPA는 ‘환경’이라는 주제로 활동하는 대한민국 예술가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7년도에 ‘잊힌 통신사’라는 주제로 작업을 1차로 시작했다. 이후 2018년에는 환경단체CAPPA가 정식으로 초대하여 대마도 주민을 대상으로 한 환경예술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후 친구들과 함께 대마도에 머물며 리서치 작업을 진행함과 동시에 교육에 필요한 오브제들을 직접 대마도에서 준비하고 진행했는데 약 300명 정도의 각계각층의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대마도 환경교육 단체사진. 사진출처 양쿠라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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