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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29호 |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레오나르도 2빈치』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삶과 공간의 변화 - 앞당겨진 초연결 사회 속으로의 ㅋㄹㄴ ㅅㅍㅇㅅ의 모험

정연복(미술사가)




1. 2020년, 지구인들은 영화에서나 볼 법한 세상을 살았다. 몇 달이면 끝나겠지 했던 생활이 1년이 다 되어 간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질 못하고 친구나 가족끼리 마음껏 악수를 하지도 껴안지도 못한다. 길을 가다가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누군가가 맞은편에서 걸어오면 슬그머니 방향을 돌리기 일쑤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말이 진리로 통용되는 ‘타인의 지옥’이 도래한 세상. 전 세계적으로 2021년 1월 10일 기준 9천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사망자는 190만 명을 넘어섰다. 이런 규모의 전염병은 암흑의 시대라고 불렸던 중세에서나 있는 줄 알았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아서, 주거환경과 위생상태가 열악해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21세기에 일어나다니.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이미 문학 작품과 영화를 통해 이와 비슷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바 있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 피렌체 교외의 별장에 10명의 인물들이 모인 이유는 바로 흑사병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돌아가며 한다는 설정을 통해 죽음과 절망의 시기를 견디는 중세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보카치오와 달리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를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비극적 상황에 맞서고 투쟁하는 인간의 연대의식을 보여준다. 전염병이나 좀비, 지진, 쓰나미, 핵공격 등 상상하기도 끔찍한 환란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숨죽이며 지켜보는 재난영화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뉴스를 장식하는 기후와 환경 문제에까지 이르면 과연 인류가 이 지구에 언제까지 살아갈 수 있을지 아득해진다.




2019년 10월부터 2020년 2월까지 레오나르도 사후 500년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루브르에서 열렸다. 사진을 찍은 것은 1월 말. 코로나 바이러스가 스멀스멀 유럽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지만 전시장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이 유심히 레오나르도의 작품을 보고 있다-2020년 1월



2. 번역을 하기 위해 『레오나르도 2빈치』를 처음으로 접한 때가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하던 3월이었다. 일독했을 때 솔직한 느낌은 이게 뭐지? 였고 두번째는 잔잔한 감동이, 세번째는 웅장한 교향곡을 들었을 때의 전율이 일었다. 500여년 전의 르네상스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살았던 15세기 후반, 16세기 초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문화적 상황의 급박함이 지금, 여기의 상황과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생경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부분은 만삼천년 후의 지구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과연 지구가 무사할까. 기원후 겨우 2천년만에 지구는 전쟁과 바이러스, 세균, 공해, 핵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만년을 넘기고도 여전히 지구인이 살아서 미래를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설정 자체가 초현실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3. 이야기는 만오천년대, 미래의 지구에서 시작된다. 카오스의 마지막 회오리가 지나가고 운석이 여기 저기 떨어지는 듯한 곳에 비행물체가 나타나 유리 피라미드와 루브르 박물관 상공을 선회한다. 두 우주인이 박물관에 잠입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에서 뭔가를 채취한다. 그 다음 장면에서 아이가 태어나는데, 그가 바로 복제된 레오나르도 2빈치이다. 이후 시각은 1519년 4월 22일. 그림에 마지막 손질을 가하던 레오나르도가 쓰러진다. 책은 죽음의 침상에서 들려주는 레오나르도의 고해성사와 미래 인간 레오나르도 2의 성장과 활약상을 씨실과 날실삼아 전개하면서 서로를 거울처럼 비춰보게 한다. 두 인물이 하는 대부분의 대사는 다빈치가 남긴 7만 2천여개에 이르는 메모 중에서 가져왔다. 두 레오나르도가 읊조리듯 툭툭 내뱉는 말들은 그 뜻이 분명하지 않고 모호한 경우가 많은데, 르발루아의 일러스트와 어우러져 한 편의 시가 된다. 도대체 르발루아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걸까?



4. 우선 『레오나르도 2빈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전기로 읽을 수 있다. 독자는 앞으로 나아갔다 뒤로 되돌아가기도 하면서 르발루아가 우주에 무수한 별처럼 펼쳐놓은 의미망들을 유추해 간다. 이렇게 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의 눈앞에는 마치 홀로그램처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소환된다. 그는 엄마의 사랑을 받는 사랑스러운 아기였고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미묘하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탐색했던 예술가였으며 시체를 수십구 해부하며 정확하고도 미적 가치가 뛰어난 해부도를 남긴 과학자였다. 비행물체, 대운하 공사, 각종 군사무기 개발 등, 그의 탐구심은 지칠 줄 모르고 다양한 방면으로 뻗어나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레오나르도의 고해성사는 회한과 죄의식으로 가득차 있다. 사생아로 태어나 아버지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고 정식교육을 받지 못해 고전으로 단련되는 엘리트 교육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동성애자로 고발당해 평생 트라우마로 시달렸고 자신이 개발하려고 했던 대량살상무기들이 결국엔 인류에게 고통만 안겨주는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으리라는 점에서 괴로워했다. 인체의 비밀을 알고 싶은 호기심은 신조차 두렵지 않게 했고, 연구에 몰두하게만 해준다면 그 어떤 흉악한 사람(그를 후원했던 루도비코 스포르차나 체사레 보르자는 악명높은 권력자였다)의 후원도 기꺼이 받았다. 책장을 넘길수록 독자는 다빈치의 ‘재능’보다 그의 ‘회한’이 던지는 묵직한 울림을 외면할 수 없다. 르발루아의 관심이 ‘천재적인’ 인물로서의 다빈치가 아니라, 자신의 허물과 결점을 알고 반성하며 ‘성찰하는’ 인간에게 있음을 알 수 있다. “저는 살인자였습니다”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통렬한 독백은 비단 그만의 것일까?



5. 이제 1500년대 초에서 벗어나 과거와 현재, 지구와 우주공간의 ‘르네상스’를 자유롭게 오가며 입체적으로 읽어 보면, 『레오나르도 2빈치』는 영웅이 귀환해 미래 지구를 구하는 SF 그래픽 노블이 된다. 복제된 레오나르도 2빈치에게 지구인들이 거는 기대는 외계인을 물리칠 신무기를 개발하는 것이다. 2빈치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며 레오나르도의 모든 예술작품, 연구성과뿐 아니라 우주와 자연의 섭리에 통달한다. 그는 무엇이든 뚫고 나가는 천하무적의 장갑차, 대포, 성능이 막강한 화살 발사기 등 모든 무기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공언한다. 적과의 대전투가 예상되는 일촉즉발의 순간, 놀랍게도 2빈치는 적장을 루브르로 데리고 간다. 무기 대신 박물관이, 전쟁 대신 예술이, 증오 대신 감동과 눈물이 지구를 구한다. “인간을 증오했고”, “인류의 3분의 1이 죽기를 바랐다”던 레오나르도의 회한이, 복제되어 돌아온 영웅의 선택으로 치유되는 결말이다. 또다시 의문이 든다. 무기가 아니라 예술이 어떻게 지구를 구원한단 말인가?



6. “존재하는 것은 어떤 것도 무로 돌아가지 않는다.” 고해성사를 시작하며 레오나르도가 하는 말이다. 복제된 레오나르도 2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말이기도 하다. 레오나르도는 악과 죄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며 회개하고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고, 그렇게 만들어낸 작품으로 인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존재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회한은 자연스럽게 21세기 우리 시대를 돌아보게 한다. 2020년 오늘 우리는, 인류가 해왔던, 그리고 만들고 소비하고 폐기처분했던 모든 것이 ‘다시 돌아와’ 부메랑처럼 우리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시대를 목도한다. 인류는 자연의 신비를 하나하나 깨우치며 편리하고 새로운 것을 ‘빨리, 많이’ 만들어내며 발전해왔다고 믿었지만 자연의 속살을 파헤친 다음, 결코 없어지지 않을 온갖 위험한 쓰레기들을 바벨탑처럼 쌓아올린 셈이다. 인간의 욕망이 엮어낸 이 고리를 끊지 않으면 결코 우리는 바이러스와 세균, 전쟁, 공해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2빈치가 무기를 들지 않고 적장을 루브르 박물관으로 데리고 간 것은 바로 그 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 아닐까. 레오나르도는 말한다. “화가의 영혼은 거울과 같아야 한다. 거울에 비친 것처럼 사물 본연의 색깔을 절묘하게 찾아낸다.” 예술이라는 거울은 우리에게 가던 길을 멈추고 비춰보고 반성하고 성찰하도록 이끈다.



7. “모든 형상은 끊임없이 모양을 제멋대로 바꾼다.” 오비디우스가 했던 말을 2빈치가 반복한다. 르발루아는 2빈치의 조수인 우리엘을 구름으로 표현하는데, 인터넷을 기반으로 자료를 저장하고 데이터를 처리하기도 하는 인공지능(‘클라우드’)의 절묘한 구현이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형태로도 변신가능했던 제우스의 그리스 신화의 세계뿐만 아니라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대표되는 동양철학도 떠올려볼 수 있다. 레오나르도 2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영원히 우리 곁에 존재할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을 수도 있다는 양자역학에서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떠오른다.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공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는 책이다.







8. 『레오나르도 2빈치』의 또 하나의 미덕은 스테판 르발루아의 뛰어난 일러스트에서 온다. 르발루아는 2년간 루브르의 데생 보관실을 오가며 연구한 끝에, 레오나르도의 데생과 판화를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모사했다. 심지어 왼손잡이인 다빈치의 해칭(선이나 면을 반복적으로 그려서 평면에 음영 등, 다양한 효과를 표현하는 기법)을 그대로 따라하기 위해 보통 오른손잡이들이 하듯이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가는 방향이 아니라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떨어지게 선을 그었다. 르발루아는 우리의 상상력이 미치기 어려운 미래 인간과 우주공간도 다빈치의 창작의 창고에서 꺼내어 표현했다. 레오나르도의 구름, 독특한 꽃 데생은 그대로 인공지능과 외계인의 전함이 된다. 태초의 공간에서 아득한 먼 미래로 우리를 데리고 가는 듯한 매력적인 일러스트만 따라가면서 읽어도 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안내로 우주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에 잠길 수 있다. 때로는 숨죽이며 침묵의 공간을 가로지르고 때로는 장엄한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듯한 우주의 대서사시 한 편이 펼쳐진다.



9. 작가 스테판 르발루아는 <에어리언>, <콩: 스컬 아일랜드>, <해리 포터> 시리즈 등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판타지 세계를 창조했던 그래픽 아티스트다. 영화뿐 아니라 광고, 비디오 게임 분야에서 스토리보드와 디자인 작업을 했고, 타임워너와 마블 스튜디오의 캐릭터 연구에도 참여했다. 르발루아는 이 책에서 15세기, 16세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끈질긴 탐구심으로 진리를 추구하며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허물었듯이, 예술사와 만화, 예술가의 전기와 SF적 스토리를 용광로에 넣어 버무렸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마당은 루브르에서 펼쳐주었다. 루브르 박물관 출판 총책임자인 파브리스 두아르의 말에 따르면, 만화에 친숙한 미래 세대들에게 가장 고전적인 예술작품이 소장된 박물관을 낯설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루브르 만화 컬렉션’ 시리즈가 기획되었다. 그리고 루브르는 만화가들에게 전권을 위임한다. 지금까지 출판된 30권 이상(우리나라에서는 열화당에서 11권 번역출간)의 책들은 모두 판형, 형식, 내용이 제각각이다. 옛것을 고집하거나 엄숙주의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예술매체인 만화에 루브르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 이러한 전적인 신뢰와 자유,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질문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예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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