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30호 |콜렉티브의 가능성, 콜렉티브 러닝

비평의 자격과 문화예술교육


공존이라는 실천, 돌봄


  '위드(with) 코로나' 시대. 전환적인 상상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자리 잡는 사이에 일 년이라는 시간은 지나갔다. 도시화가 극심한 지역에 살면서 기후 우울감을 느끼며 코로나 확진자 수를 발표하는 오전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020년 끄트머리, 한파가 불어 닥친 어느 날에 상자 하나가 문 앞에 놓여있었다. 반가운 택배인가 싶어서 집어 들자, 젖병과 함께 버려진 새끼 고양이가 상자 속에서 울고 있었다. 반갑지 않았다. ‘왜 하필 나야? 왜 하필 여기야?’ 순간 불안과 억울함이 올라왔다.

그 날의 한파는 가녀린 아기 고양이의 생사를 가를 만큼 매서웠으며, 비인간 동물과 지내본 적이 없는 내게는 암담한 현실로 다가왔다. 갑자기 찾아온 손님을 외면할 수 없어 부지런히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주변을 수소문했다. 다행히 여러 사람을 통한 연결로 아기 고양이는 따뜻한 보금자리를 찾았다.
  돌이켜 보면, 아기 고양이의 구조는 곧, 내가 구조된 것이기도 했다. 타자의 영역에 놓여 있던 것이 내 삶 안으로 들어오면서 코로나로 인해 멈춰있다고 느꼈던 일상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내게서 멀찍이 있던 비인간 동물, 식물들이 차츰 내 삶으로 들어왔고 나 스스로도 점점 기꺼이 그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고양이 구조를 통해 내 존재가 돌봄을 행했고 동시에 돌봄을 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변화로 타자와의 공존(共存)과 상생(相生)에 대한 준비운동을 시작할 힘을 얻고 ‘멈춤’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작은 워크숍을 준비했다. 잠시 멈추라는 자연의 호소에 대한 응답이었고 멈춤의 시간을 오롯이 보내면서 운동 에너지가 나아갈 방향을 잘 살펴보자는 동료 시민을 향한 제안이었다.




  멈추기 위해 한 데 모였다. 다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과 동시에 불과 얼마 전까지 안 되는 것이 없었던 세상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대다수가 알게 된 상황에서의 만남이었다. 일면식 없는 우리들은 얼굴 전체를 뒤덮는 마스크까지 쓰고 만났다. 움직임은 멈춰도 숨은 멈출 수 없다. 그래서 숨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다. 멈춤 속에서 감각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와 흔적을 나누며 워크숍은 흘러갔다. ‘나’를 이야기하며 ‘나’와 ‘너’의 경계를 뚜렷이 하기도 하고 때로는 허물어지는 대화와 행위에 주목하고자 했다. 교육자로부터 전수되는 기법과 기술교육, 그에 따른 결과물과 성과가 손에 쥐어지는 것이 익숙한 참여자들은 이런 상황을 낯설어했다. 그러나 독립적이면서도 공유된 이야기가 흐르는 시간을 통해서 ‘나’와 ‘너’,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느냐 뿐만 아니라 무엇을 공유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규정될 수 있다는 경험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였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무엇을 공유할 것인가’와 함께 ‘문화예술교육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떤 것인가’에 대해 탐구하는 일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협력하여 찾고 그것의 본질과 가치를 디자인하고 해석하고 번역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 과정 안에서 돌봄이 적극적으로 작동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다양함이 인정되고 삶과 예술이 계속되어 이야기가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만들어지는 현장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상호 협력하기 위한 지난하고 비효율적인 대화 속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번역하고 이해하는 과정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돌보며 배움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울퉁불퉁하게.


  상호 협력의 필요보다는 주체들 스스로에게서 동기가 발견되고 서로 공유될 때,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하고 그 다양성들이 다른 지향점 때문에 충돌하는 것도 인정해야 하는 일은 책임이 된다. 예술적 지향점이 다 같을 수는 없다. 다 달라도 우리가 이것을 통해서 예술이 현재 우리 사회와 무엇을 공유하고 싶고,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토론을 계속해서 해나간다고 하면 서로의 동의 지점이 찾아질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삶 속에서 오래전에 잃어버렸거나 놓친 삶의 가치와 관계를 회복하려는 다중들의 느슨한 연대와 적극적인 소통, 주체들의 책임으로 말이다.



콜렉티브, 지속 가능한 삶의 양식에 대해 질문


  언제 멈출지 모르는 불확실한 사회에서 좋은 삶과 좋은 일을 생각하기가 더 어려워졌음을 체감하고 있지만, 지속 가능한 삶의 양식에 대해 질문하고 개발하는 시간을 지내게 되었다. 절망을 넘어서는 희망을 위해 우린 끊임없이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 묻고 답해가야 한다는 다짐을 꾹꾹 눌러 담게도 되었다.


  비자발적인 멈춤의 일상이 빠른 시간 안에 익숙해져 버린 일상의 무게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하여, 멈춰서 더 도드라지게 보이는 제도화되고 규범화된 삶에서 야생성을 잃지 않기 위하여, 상투성에 고립되지 않기 위하여, 내 안에 자연스럽게 각인된 편견과 고정관념을 예민하게 알아채야 하고 그것들에 저항하며 질문해야 한다. 인간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형성 중인 존재이기에, 저항하며 질문하는 일은 생명을 유지하고 새롭게 하는 일이다. 이러한 작업은 스스로 알아차리고 일으켜야 하지만, 사유와 행위를 연결하며 지속적으로 재구축해 나가는 활동이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자기 책임성과 자기 주체성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집단적으로(collective) 일으키는 과정에서 지속적인 변화와 배움이 생성되고 감각된다. 상호 협력을 통해 생명이 유지되고 나와 타인과 사회가 새롭게 된다.


  또다시 코로나와 같은 상황이 우리에게 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적으로 생길 때, 단기처방과 임시처방으로 생태계는 지속될 수가 없다는 것을 작년 펜데믹 상황에 이어 지금까지 경험하고 있다. 회복 탄력성을 갖추기 위해서 머리를 맞대어 경계 안·밖과 협력하는 태도, 그리고 기술·경험·감각을 균형 있게 모아가는 방식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 이 와중에 나와 내 활동에 관한 질문, 그리고 문화예술교육과 세상, 세상과 내 활동의 관계에 대해 계속해서 묻고 답하는 현장 비평은 계속해서 작동되어야 한다. 이러한 실천들 속에서 단기처방이 아닌 생태계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백신이 나오지 않을까. 그토록 갈망하는 동료도 말이다.



콜렉티브 러닝

  교육은 인간에게 있는 그대로 존속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이들이 이 세계에 계속해서 진입하는 일과 관련이 된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고 우리가 죽은 후에도 남게 될, 이 세계를 새롭게 탄생할 이들을 위해 어떻게 사랑하고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와 관계한다. 사랑과 책임은 이 세계에 태어난 아이들이 간직하고 있는 새로움을 공유하고 이 세계에 소개함으로써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얼마나 새롭게 경신할지를 결정하는 사이에 놓여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형성 중인 우리에게도 다행히 변화의 기회와 힘으로 놓여 있다.


  문화예술교육 활동가는 저마다 간직하고 있는 새로움을 공유하는 만남의 장으로, 공동체에 소개함으로써 서로를 발견하고 공유된 무언가의 변화를 도모하는 놀이의 장으로 시간과 공간과 사람을 매개한다. 그리고 매개 활동으로 새로운 장소들이 창조된다. 그리고 곧, 프로젝트는 끝이 난다. 장소성이 계속 발현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활동이 전제되어야 하므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프로젝트가 완료된 이후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주체성을 가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문화·예술을 함께 경험하면서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를 완료한 후, 콜렉티브 그 자체가 구성원의 생산 방식을 구축하는 교육 플랫폼이 되는 가능성을 그려본다.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삶의 방식과 관점을 공유하고 함께 살아감에 대해 사유하며 예술철학, 지향성, 지속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시스템을 실험해 나가는 플랫폼으로 존재하는 가능성을 그려본다. 그리고 난 이러한 행위와 실천의 과정을 ‘콜렉티브 러닝’이라 불러본다.


  자신 속에서 언제나 새로운 탄생이 가능하다고 믿고 자기의 변화가 타인의 변화를 촉진하고 그것을 통해 세계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본다면, ‘함께 작당하고 행위할 동료’ 들을 찾게 될 것이고, 그의 동료가 될 것이다. 개개인의 새로움을 세상에 소개하도록 매개하며 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과 맥락을 함께 밟아 나가는 길벗으로 어깨를 걸고 걸을 것이다.


  콜렉티브, 즉, 공존과 상생의 실천은 추상적인 말이 아닌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판단하고, 의지를 발현시키고, 그리고 행동하는 것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 대한 책임과 사랑이 문화예술교육 활동의 주된 관심이 되어야 함을 상기하며 2021년 봄을 맞이한다.










세부정보

  • 웹진 '지지봄봄' /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2012년부터 발행하고 있습니다. ‘지지봄봄’은 경기도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까이 바라보며 찌릿찌릿 세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입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이라면 어디든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다양한 삶과 배움의 이야기와 그 안에 감춰진 의미를 문화, 예술, 교육, 생태, 사회, 마을을 횡단하면서 드러내고 축복하고 지지하며 공유하는 문화예술교육 비평 웹진입니다.

글쓴이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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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는 문화예술교육으로 함께 고민하고, 상상하며 성장하는 ‘사람과 지역, 예술과 생활을 잇는’ 플랫폼으로 여러분의 삶과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