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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DMZ아트프로젝트 – 다시, 평화》 2

Let’s DMZ 평화예술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지지씨에서는 오는 5월 20일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시작하는 Let’s DMZ 평화예술제 《DMZ아트프로젝트 – 다시, 평화》 전시를 전시 개론과 참여작가와 작품 소개 등 4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DMZ 평화예술제를 계기로 우리 곁에 새로운 평화가 다가오길 기대해 봅니다.

Let’s DMZ 평화예술제 《DMZ아트프로젝트 – 다시, 평화》 2

회화, 설치작품 | 강익중, 무늬만커뮤니티, 백남준, 송창, 이영섭, 정현


강익중 Ik-Joong Kang

1984년 유학 첫해 그의 뉴욕 생활은 하루 12시간의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학교를 다니는 것이었다.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던 그는 작은 캔버스를 여러 개 만들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오가는 지하철 안에서 작업을 하였다. 이것이 지금의 그를 있게 한 3인치 작품의 시작이다. 객차 안의 군상들, 일상의 단편, 영어단어암기 등 작은 캔버스 안에는 그의 하루가 문자나 기호, 그림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이미지들은 모두가 융합되어 강익중의 ‘나’로 표현된다. 동양과 서양, 선함과 악함, 얻음과 잃음, 기쁨과 슬픔 등이 커다란 줄기를 이루며 나타난다.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와의 융합과 포용을 나타내던 그의 작품은 더 강렬해진 어조로 세계의 평화와 한반도의 통일을 이야기 한다.


1994년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과 〈멀티플/다이얼로그〉전을 열었고,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하여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1999년 파주 헤이리에서의 <10만의 꿈>설치와 2001년 UN본부에서 , 2005년 무하마드 알리센터에 <희망과 꿈>을 설치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달항아리> <해피월드> <내가 아는 것> <오페라를 부르시는 부처> <영어를 배우자> <한자를 배우자> <사운드 페인팅> <금동미륵반가사유상> <꿈의 달> 등의 작품이 있고, 구겐하임 미술관, 대영 박물관, 휘트니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보스턴미술관, 독일 루드비히 뮤지엄, 삼성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강익중 작가의 꿈은 남과 북을 잇는 <꿈의 다리>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것이다. 남북한을 갈라놓은 임진강 위에 어린이들과 실향민들의 꿈이 담긴 수 백만 장으로 내부를 꾸미고 남북이 함께 부르는 노랫말로 외벽을 장식한 원형 모양의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다. 작가는 “꿈의 다리를 걸으면서 ‘이 다리를 건너서 북녘 땅까지 마음껏 가고 싶다’고 염원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통일이 더 빨리 올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구상은 남북한 어린이의 꿈을 담은 길을 만들어 DMZ 인근 파주에서 전시 했던 1999년의 <10만의 꿈> 프로젝트로부터 시작했다.


이후 2001년, UN본부에서 진행된 는 전 세계 5만 어린이들의 꿈을 모아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2004년에는 141개국의 12만 6천 어린이의 그림을 모아 <꿈의 달>을, 2009년 경기도미술관에서 <5만의 창, 미래의 벽>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2016년, 통일의 염원을 담은 실향민들의 그림을 담은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공공미술 작품을 런던 템즈 강물 위에 띄움으로써 통일과 평화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DMZ 아트 프로젝트에서 소개하는 강익중의 <꿈의 다리>는 이러한 작가의 염원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파주 평화누리 공원에 세워진다. 약 일 년 간 설치될 이 작품은 남북한 어린이들과 실향민들의 꿈을 담아 남과 북에 걸쳐 설치될 <꿈의 다리> 프로젝트의 실현될 그날, 평화와 공존이 실현되는 그날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강익중_꿈의 다리(작가스케치)


강익중, 〈꿈의 다리〉, 2021, 나무, 철, 기타 혼합재료, 500x350x700cm


무늬만커뮤니티 Seems Like Community

무늬만커뮤니티는 김월식 디렉터를 포함하여 곽동열, 박영균, 이아람 작가가 정규 멤버로 활동하는 예술가 그룹이다. 지역적 탐구를 기반으로 오랜 기간 지역민과 교류하며 예술의 영역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아트를 실천해왔다. 그들은 도시화와 근대화의 획일적 발전 논리 하에 잃어가는 제각기 다른 삶의 모습들에 주목하였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전체주의적 기치 아래 희생이나 의무를 강요받기보다는 서로의 다양한 시선을 존중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 무늬만커뮤니티는 이름 그대로 무늬뿐인, 즉 느슨한 관계로 개인의 활동과 재능, 참여 의지를 존중하는 커뮤니티라는 뜻이다. 결과로서의 작품보다는 커뮤니티 안에서 여유 있게 관계를 맺으며 삶과 예술을 가까이 하는 모든 수행들이 작품의 주요한 부분을 이룬다. 공동체 안에서 개개인의 욕망과 다양한 삶의 기술들에서 창조적 가능성을 바라보고 유대를 맺는 과정이 곧 무늬만커뮤니티의 예술적 수행이라 할 수 있다.


2005년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를 기점으로 안양시 박달동에서 지역 노인과의 협업을 통한 커뮤니티 아트를 선보이며 콜렉티브 활동을 시작했다. 이처럼 산업화의 주역이었음에도 그 가치를 주목 받지 못한 노인들의 삶을 조명하는 프로젝트는 2013년 해인사의 <매점불> 작품으로도 이어졌다. 전국에서 폐지를 수거하는 108명의 노인들에게 받은 것들로 부처상을 만들고 그들의 소원을 배 안에 넣어, 해인사의 매점이 위치했던 곳에 안치한 작업이었다. 2014년에는 네팔 카트만두와 수원 지동에서 지역 주민들과 협업을 통해 영적 존재에 관하여 리서치한 결과로, 각각 힌두교의 신을 골판지로 형상화 한 <가네샤>와 수원 지동 민간신앙을 바탕으로 한 <지동신>을 제작하였다.


이처럼 지역에 대한 관찰과 성찰을 바탕으로 커뮤니티 아트를 실천해 왔던 무늬만커뮤니티는 그 예술적 실천의 일환으로 프로젝트나 레지던시를 기획하였다. 2011년 생활문화재생레지던시 ‘인계시장프로젝트’, 2013년 중증 장애인과의 협업극 ‘총체적 난극’, 2014년 동시대 아시아 예술가들의 커뮤니티 연구 ‘Cafe in Asia’와 2015년 시흥시의 ‘모두를 위한 대안적 질문 A3레지던시’를 기획하고 진행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경기도미술관의 전시를 비롯하여,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 해인아트프로젝트 등 유수의 전시와 비엔날레에 다수 참여하였다.


신데렐라 동화에서 차용한 설치 작업 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이 제작한 상품들 중, (주)서도, (주)디스에이 ,㈜진 글라이더에서 기증한 손수건, 낙하산원단과 LED 램프로 제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신데렐라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관계와 사물, 판타지와 동화가 주는 희망적 교훈을 ‘개성공단’의 역사와 배경,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상징적으로 연결하는 설치 작업이다. 화려한 조명과 꺼지지 않는 조명, 파티장의 음악과 공단의 반복적인 기계음, 왕궁과 공단의 건물, 드레스와 유니폼, 춤과 체조, 호박마차와 물류차량(특히 개성공단을 급하게 빠져 나와야만 했던 철수 당시의 다급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던 뉴스의 차량들), 신데렐라의 벗겨진 채 남겨진 유리구두처럼,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기업인들이 어쩔 수 없이 남겨 놓은 채 떠나와야 했던 다양한 생산품과 희망, 또 그들의 추억을 상징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에는 총 2개의 개별적 설치물이 있다. 파티장에 빠져서는 안 되는 ‘샹들리에’와 호박마차를 상징하는 ‘UFO’가 그것이다.


 


무늬만 커뮤니티, , 2018, 개성공단 입주기업 ’(주)서도‘의 손수건 원단,

’(주)진글라이더‘의 낙하산 원단,나무, LED 램프, 210x320x320cm


무늬만커뮤니티, <샹들리에>, 2018, 개성공단 입주기업 '(주)디에스이‘의 LED 램프, 200x160x160cm



백남준 Nam June Paik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과 홍콩에서 중학교를, 일본 가마쿠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도쿄대학교에 진학해 미학을 전공한 후,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음악으로 졸업 논문을 썼다. 1956년 독일로 건너가 유럽 철학과 현대 음악을 공부하는 동안 동시대 전위 예술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기존의 예술 규범, 관습과는 다른 급진적 퍼포먼스로 예술 활동을 펼쳤다. 이 때부터 새로운 미디어를 이용한 예술의 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1963년 텔레비전의 내부 회로를 변조하여 예술 작품으로 표현한 개인전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을 통해 미디어 아티스트의 길에 들어섰다. 백남준은 1964년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비디오를 사용한 작품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비디오 영상뿐만 아니라 조각, 설치 작품과 비디오 영상을 결합하고,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는 비디오 신디사이저를 개발하였으며, 여기에 음악과 신체에 관한 끊임없는 탐구까지 더해져 백남준만의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였다. 1980년대부터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필두로 위성 기술을 이용한 텔레비전 생방송을 통해 전위 예술과 대중문화의 벽을 허무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으며,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 독일관 대표로 참가하여 유목민인 예술가라는 주제의 작업으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레이저 기술에까지 영역을 확장해 나가던 가운데 1990년대 중반 뇌졸중이 발병했다. 하지만 2006년 마이애미에서 타계할 때까지 백남준은 예술적 실천을 멈추지 않았다. 백남준은 미디어 아트의 개척자로서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실험적이고 창의적으로 작업했던 예술가이다. 예술가의 역할이 미래에 대한 사유에 있다고 보았으며 예술을 통해 전지구적 소통과 만남을 추구했던 백남준은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동시에 엔지니어인 새로운 예술가 종족의 선구자”, “아주 특별한 진정한 천재이자 선견지명 있는 미래학자”로 평가 받으며 여전히 가장 “현대적인 예술가”로서 우리 곁에 숨 쉬고 있다.


<호랑이는 살아있다>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세계 73개국 방송사가 공동 제작한 밀레니엄 프로젝트, ‘2000 Today’에 MBC가 소개한 한국을 대표하는 영상으로 전 세계에 송출되었다. 한국의 프로젝트 제목은 ‘DMZ 2000’ 이었다. 새로운 밀레니엄, 분단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 이 프로젝트에서 백남준은 “한국인들이여, 호랑이처럼 강하고 자신 있게 새 세기를, 새 밀레니엄을 맞자‘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품은 이 작품을 제작한다. 당시 백남준은 21세기의 디지털 혁명과 통일 한국에 대한 전망과 기원을 담은 글을 특별 기고할 정도로 이 작품 제작에 큰 의미를 두었다.


총 45분 분량의 <호랑이는 살아있다>는 밤 12시 정각에 임진각 평화의 종이 21번 울리고 난 직후에 <다시, 평화> 전시가 진행되는 이곳, 평화누리 공원에서 상영되었다. 상영은 비파와 첼로를 형상화 한 멀티모니터로 된 2점의 대형 비디오 조각을 통해 이뤄졌다. 방송을 통해 송신된 분량은 국내 14분, 세계 3분으로 압축되어 전 세계의 방송과 인터넷으로 소개되었는데, 이는 백남준이 1984년 프랑스와 미국을 실시간으로 연결하고 독일과 한국을 비롯한 세계 수 천 만 명에게 방송 되었던 위성 아트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역사적인 순간을 상기 시킨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전 지구적 평화와 공존, 통일에 대한 새 천년 한국인의 각오, 자신의 작가적 열망을 집약시켰다. 작품에는 백남준이 21세기 한국인의 표상인 동시에 백남준 자신으로 묘사한 호랑이의 이미지와 더불어 백남준의 대표적인 비디오 작품 “글로벌 그루브”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등 주요한 장면들이 편집되어 있다. 가장 의미심장한 부부은 백남준이 직접 ‘금강에 살어리랏다’를 부르는 장면인데, 어린 시절 한국을 떠나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아온 작가의 뇌리 속에 남아있던 고국의 노랫가락을 서투르게 부르는 그의 퍼포먼스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작가의 마음을 볼 수 있다.


백남준, <호랑이는 살아있다> (1999), 컬러, 유성, 45분,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송창 Song Chang

1952년 전남 장성 출생으로, 1980년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1990년 경원대학교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임술년’ 그룹전(서울, 부산, 대구, 강원, 광주)과 1983년 관훈미술관의 ‘젊은 의식전’, 1987년 그림마당 민에서 ‘민족통일 그림전’ 등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민중미술 15년전’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민중미술 전시에 참여하였다.


1986년 작가는 민족미술인협회에서 운영하고 민중미술 화가들을 주축으로 전시했던 그림마당 민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1980년대에 ‘임술년’ 동인으로서 민중미술 작가로 활동했던 그는 1982년 이후 도시의 빈민과 철거민의 험난한 생활상을 모티프로 한 <매립지> 연작을 선보였으며, 이후 1984년부터 중점적으로 DMZ를 비롯하여 분단 접경지대를 담은 풍경 작품을 그려왔다. 한국전쟁 당시 가족의 피난을 따라 전남 장성의 산골에서 성장기를 보냈던 작가는 전쟁이 남긴 가난과 고통의 폐해, 폭력적인 좌우 이념의 대립을 가까이에서 목도했다. 전라도의 풍토성과 더불어 당시의 기억은 작가가 분단 현실을 담은 풍경을 그리는 데에 영향을 끼쳤다.


송창은 40년 가까이 이르는 세월 동안 분단과 관련한 주제에 일관되게 천착해 온 작가이다. 그는 반추상적인 형상과 거침없는 필적으로 분단의 역사가 남긴 풍경을 처연한 심상으로 담아냈다. 특유의 정취로 표현된 풍경은 단순한 소재라기보다 분단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는 회화적 매개체라 할 수 있다. 이후 작가는 회화 외에도 설치나 실크스크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사회적 분열을 다룬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분단은 여전히 주목해야 할 문제임을 상기시킨다.


그는 분단이라는 강밀도의 선에 다른 하나의 미학적 선을 덧대어 긋는다. 통일대교, 주상절리, 덕진산성, 임진강 초평도, 의주로, DMZ, 노동당사, 장단…. 그가 발로 누볐던 풍경들과 그 숱한 풍경의 잔상들이 기억 속에서 엉겨 붙어 나타나는 ‘겹풍경’ 사이의 선을. 그 선에 전쟁으로 죽은 군인/사람들과 죽은 풍경들에서 자란 산 사람들이 있고, 산 풍경들에 깃들어 있는 죽은 침묵이 있다. 그의 회화는 분단이 내재화 된 풍경으로서의 분단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풍경의 사실(史實)로 ‘분단’이라는 실재를 그려온 화가인지 모른다. 회화로 써 내려간 역사화로서의 ‘내셔널 지오그래픽’일 수 있고, 분단 풍경의 보고서를 망각의 주체들에게 제출해 온 예술가일 수도 있다. 35년을 그려 온 분단풍경의 진면목이 그의 회화에 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 학고재갤러리 등 국내 유수의 미술관과 갤러리에 작품이 소장되어있다.


송창, <붉은 꽃>, 2008, 캔버스에 유채, 100x100cm



송창, <해빙>, 2014, 캔버스에 유채, 112x162cm



송창, <드렁칡>, 2015, 캔버스에 유채, 130x162cm



 송창, <여명-수종사에서>, 2007, 캔버스에 유채, 100x441cm



송창, <기다림(임진나루)>, 2008, 캔버스에 유채, 60.6x91cm

 송창, <의주로를 밟다>, 2017, 캔버스에 유채, 조화, 마끈, 218x291cm

이영섭 Lee Yeoung Sup
이영섭은 ‘발굴 조각’이라는 독자적인 조각 기법을 다져온 작가이다. 1963년 경기도 여주에서 출생한 작가는 부친이 운영했던 목공방과 도자기 공간을 운영했던 이모부를 통해 흙과 가마를 가까이 접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조각을 전공했던 작가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저서를 통해 한국의 미(美)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서구 미술 전통에 기반한 조각 기법과 철학에 매몰되지 않고 한국의 미학을 담은 조각을 탐구하는 데에 몰두했다. 1998년 우연히 목격한 고달사지 발굴현장에서 발굴의 행위와 출토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하며 전율을 느낄 정도로 선불교적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 경험을 통해 작가는 ‘조각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자문하며, 무언가를 깎고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기술을 넘어 시간성을 담아내는 조각을 만들어내기 위해 탐구하였다.

작가는 “시간의 중개인이자 전달자”를 자처하며 땅의 시간과 조우하는 특수한 조각 기법을 다져왔다. 발굴 조각은 땅 안에 콘크리트 시멘트를 부어 묻어두었다가 출토하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일반적으로 작가가 외부에서 정을 쳐서 형상을 다듬어내는 조각 기법과 달리 역전된 방식으로 땅을 파들어 간다. 시간의 지층을 담은 원석을 찾아 닦고, 콘크리트 재료의 비율과 흙벽의 삼투압 작용을 철저하게 계산하여, 용암을 흘려보내듯 일정한 속도로 재료를 땅에 붓는 절차를 거친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도를 닦는 듯이 수행적인 정신성을 필요로 한다. 일획으로 완성되는 한국화처럼 유기적인 제작 과정 끝에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내부에서 재료가 다듬어지고 작품으로 잉태되는 조각 기법과 과정은 시간과 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낸다. 현대조각의 영역 안에서 한국적 미학을 탐구해 온 작가는 작업 철학과 일관된 제작 방식을 고안하여 자연의 미와 시간의 흔적을 담아낸 조각 작품을 선보인다. 그의 작품은 경기도박물관과 모란미술관 등의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있다.

2016년경에 본격적으로 시작한 <어린왕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의 우바새(선한남자), 우바이(선한여자)와 달리 피안의 세계를 매개하는 ‘매개자’일 수 있다. 어린왕자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는 ‘영원한 아이’일 것이기 때문이다. 도솔천의 미륵이 현현한 존재이거나, 천국의 주인이 예지적으로 도래한 형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이영섭에게로 와 순수한 아이가 되고 미륵이 되었으니까. 임진각 평화누리에 6미터의 키로 서는 <어린왕자>는 남과 북을 평화로 잇는 매개자이다. 분열과 대립의 장소에서 어린왕자는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미래 한반도의 꿈을 보여줄 것이다. DMZ는 후고구려를 열망했던 궁예의 상징공간이기도 하다. 드넓은 영토와 대륙을 꿈꾸었던 궁예의 꿈이 또한 미륵의 형상이다. 두 손 모으고 아름다운 하나의 한반도를 빌어보자.
이영섭, <어린왕자>, 2018, 혼합재료, 600x270x180cm


(좌) 이영섭, <미륵>, 2018, 혼합재료, 320x100x100cm (우) 이영섭, <미륵>, 2018, 혼합재료, 250x80x80cm

정현 Chung Hyun
1956년 인천 출생으로, 1986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의 조소과를 졸업하고 파리로 건너가 1990년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 de Paris) 조소과를 졸업하였다. 프랑스 유학을 통해 독자적인 안목을 길렀던 정현은 1980-1990년대에 구체적인 형상을 제거하고 변형하여 실존적 인간상을 연상시키는 작품을 제작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 주로 철 조각이나 침목, 타르와 같은 산업 부산물을 재료로 사용하여 재료 자체가 지닌 본래의 역사와 미(美), 상징적 힘을 강조하는 작업을 해 왔다.

전후 1960년대 유년시절, 작가는 철도의 길목에서 장갑차가 지날 때 하중을 견디지 못한 땅이 울렸던 것을 기억한다. 군수 물품을 실은 기차나 탱크 등이 굉음을 내며 지났던 철도는 오랜 시간 그 무게를 견뎌내 왔다.작가는 폐침목이나 버려진 아스팔트 등 폐자재들은 조각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 인간의 이기를 위해 생산되고 희생되었던 재료들은 혹독한 시련 끝에 단단한 내력을 가진다. 작가는 이 날것의 재료들을 하나의 인간적 존재로 사유하며 그 자체가 지닌 본성을 이끌어내는 데에 주력한다. 열차의 무게를 견뎌낸 침목, 원유의 여러 정제 과정 끝에 남은 아스팔트 등에서 작가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사회적, 시대적 고난을 버텨내며 묵묵히 사회를 지탱해 온 보통의 삶들을 조명하게 한다.

그는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과 2009년 한국미술평론가협회상 창작부문 대상 등을 수상한 바 있으며,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 대표 작가로서 프랑스 파리 왕궁 정원(Domaine National du Palais-Royal)과 생-클루 국립 공원(Domaine National de Saint-Cloud)에서 전시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경기도미술관을 비롯하여 대전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 작품이 소장되어있다.

침목으로 제작된 정현의 인간 형상들은 미시사(微視史, microhistory)의 눈으로 역사를 보게 하는 어떤 궤적(軌跡)의 무늬들이 깊게 새겨져 있다. 전기톱으로 자르고 스크래치를 내고 그것들을 다시 잇고 붙이면서 드러난 흔적들이 ‘조형화’라는 조각적 과정에서 드러난 인위적 미학의 결이요, 어떤 에너지의 부산물이라면, 침목으로 탄생한 뒤에 철로로 사용되면서 갖게 된, 긁히고 뚫리고 짓밟힌 무수한 상처들은 한 나무의 생을 오롯이 증명하는 나무 그대로의 ‘생채기’같은 것들이다. 그렇게 한 나무/한 인간에게 새겨진 ‘결’과 ‘생채기’의 그것들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와 거대한 역사의 수레를 굴려야 했던 이름 없는 근대적 주체들의 초상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 나무인간의 형상은 한 인간이 아니라 근대적 주체들의 ‘모뉴망’(monument)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주체의 형상들이 20세기를 횡단하고 21세기로 넘어와 지금 여기의 ‘광장(평화누리)’에 서 있는 것이고. 바로 그곳에서 이 모뉴망들은 남과 북을 잇는 하나의 상징이 될 것이다.

정현, <서 있는 사람>, 2001-2021, 철도침목, 320x75x5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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