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31호 | [프롤로그] 지금껏 생각지 못했던 방식으로

한 발 벗어나기




“등을 가만히 쓸어줄게, 내 사랑

아무 말 하지 않을게


등을 기대고 있어도 돼, 내 사랑

무릎을 내어줘도 괜찮을까”



노래를 만들었다. 편곡 하고 녹음을 하고, 믹싱과 마스터링 작업을 마치니 발매일이 다가왔다. 그러나 제목, 이 노래를 부르는 이름을 정하지 못했다. 노래를 처음 만든 순간에 붙여둔 이름은 ‘등을 가만히 쓸어줄게’였다. 노래 가사를 그대로 제목으로 쓰는 방식. 그동안 많이 해온 일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렇게 하는 마음이 영 개운하지 않았다. 짧은 노랫말이라 노랫말의 거의 전부가 제목으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다른 좋은 제목이 없을까. 노랫말에 등장하지 않는 말로 제목을 짓고 싶었다.



노래 속 마음이 필요한 사람에게 꼭 닿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제목만으로도 ‘이 노래 듣고 싶다’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 시간을 보낼 때, 이 노래의 제목을 발견하고, '이걸 들으면 내가 숨을 좀 쉴 수 있겠다,' 라고 느낄 수 있길 바랐다.



욕심이 생긴 거로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내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여겼다면 이번에는 이 노래가 어떻게 들릴 것인지를, 누가 들어야 하는지를 참견(?)하려는 마음이랄까. 그 마음을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노래는 듣는 이에게 가서 그 사람만의 이야기로 완성되는 면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들고 부르는 노래는 그런 운명을 타고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말이다.



어쨌건 이번엔 조금 달라졌다. 내가 아무리 참견해도 노래가 완성되는 건 분명 듣는 사람의 마음속일 것이다. 그러니 내가 조금 더 욕심을 부려봐도 되겠지. 보다 과녁을 노려봐도 되겠지.



주변에 묻기 시작했다. 이 노래 제목으로 뭐가 좋을까. 그리고 질문을 받았다. 어떻게 만들게 된 노래야? 이 노래 ‘제목으로 뭐가 좋을까’, ‘어떻게 만들게 된 노래야’는 마치 한 쌍 같았다.



그렇게 문답을 주고받으며 얻게 된 제목은 듣고 싶은 말이 있어, 가만히, 등을 가만히, 위로의 방법, 고요한 위로. 내가 가도 될까, 기다려, 옆에 있을게, 등을 내어줄게, 아무 말 하지 않을게 등. 그중 가장 끌렸던 제목은 '고요한 위로’였다. 고요한 위로. ‘위로’라는 직접적인 말을 쓰고 싶진 않았지만 ‘고요한’이 더해지니 ‘위로’라는 말이 순해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혹시 더 좋은 제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역시 '위로'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노래로부터 받는 '위로'란 이 노래를 듣는 사람이 '위로가 되었다' 하고 느껴야 생겨나는 것이지, 내가 먼저 '이것은 위로예요' 라고 할 수는 없었다. 위로. 이 말을 내세우지 않을 순 없을까.



더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해야 했다.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관점으로 이 노래를 바라보면 딱 맞는 제목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다. ‘꿈’ 이야기다. 자는 동안 꾸는 꿈. 나는 오래전부터 꿈의 신비를 풀고 싶었다. 꿈이란 무엇인지 이해하고 싶었다. 자주 찾아오는 악몽 혹은 가위가 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구스타프 융, 제레미 테일러 그리고 고혜경 (제가 아는 분만 썼습니다) 이러한 분들을 거쳐서 내게 당도한 메시지가 있다. 꿈은 누구나 매일 꾼다, 기억하지 않을 뿐이다. 의미 없는 꿈은 없다. 다시 말해 흔히 말하는 ‘개꿈’은 없다.



우연히 고혜경 님의 강의를 접하고, 책을 읽으며, 열심히 검색하여 그분이 진행하는 그룹 꿈 투사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꿈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하는 ‘꿈 작업’이다. 20명 남짓의 사람들과 매주 한 번씩 10주간 꿈 이야기를 나누는 워크숍이다. 꿈을 나누는 방법은 정해져 있다. 모일 때면 누군가 나서서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한다. 다른 이들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치 자신의 꿈인 듯 꿈속 장면을 그려본다. 상상한다. 그러다 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질문을 한다. ‘꿈속의 그 사람이 입고 있던 옷은 무슨 색이었나요?’ 같은 질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질문들. 꿈을 내놓은 사람은 때에 따라, ‘잘 기억나지 않아요.’ 라던가 ‘노란색이었던 것 같아요.’ 라는 대답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꿈을 상상하도록 돕는다. 질문이 줄어들면 이제 꿈 이야기를 들은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이 꿈이 내 꿈이라면요, 저는 이러이러한 기분이 들었어요.’ 같은 말로 시작한다. 여기서 중요한 규칙은 ‘이 꿈이 내 꿈이라면’이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꿈을 나눠준 이는 따로 있지만 들은 이들은 모두 자신의 꿈이라 상상하며 느꼈던 것을 말한다는 걸 꼭 집어둔다. 그러니까 남의 꿈을 두고 이야기를 하지만 실은 다 내 얘기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투사(projection)다. 내가 지금 투사하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아는 상황은, 뭐라고 해야 할까, 참 건강하다. ‘네가 내 꿈을 두고 하는 이야기는 네 이야기로구나,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이게 떠올라, 어쩌면 그게 이 꿈의 의미일 수도 있겠어.’ 라는 순간을 맞이한다.



살아온 시간만큼 각자의 경험이 있겠고 우리의 인식과 감정은 그 경험으로 다져진다. 한 사람의 꿈을 두고 ‘이게 내 꿈이라면, 나는 이렇게 느껴져.’라고 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겪어온 것들을 내비치는 것이고 (그것이 직접적인 것이 아니고 비유적일지라도),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꿈이 여러 이야기를 갖게 된다. 그 꿈을 실제로 꾼 사람은 하나의 꿈이 여러 버전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중에 꿈꾼 이에게 꿈의 의미를 이해할 실마리를 주는 이야기가 나타난다.



이러한 방법으로 꿈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유효한 이유는, 꿈은 무의식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 꿈에 등장한 모든 요소는 내 안에 있는 것이 상징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한다. 무의식이 은유적으로 표현한 언어를 의식으로 이해하려면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고, 나 혼자 내 꿈을 이해해보려 하는 건 무척 어렵다. 나의 의식은 내가 경험한 것만을 파악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다른 사람의 시선이 필요하다. 그는 그가 경험한 세상의 입장에서 내 꿈을 볼 것이다. 또 다른 이도 그만의 시각으로 이 꿈을 볼 것이다. 그렇게 여러 버전의 이야기가 되고. 그것 중의 하나가 내 꿈에 딱 맞아떨어지는 해석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다 합쳐져 비로소 내가 내 꿈을 이해하는 순간을 선물한다.



이제 와 생각하면, 새 노래의 제목을 정하지 못했던 건, 마치 꿈처럼, 내가 이 노래의 의미를 잘 몰랐기 때문은 아닐까.



노래 제목을 찾습니다 유튜브 사진_[Photo: 시와]



2021년 5월 18일에 몰랐던 것은 확실하다. 그날 유튜브 라이브를 했다. ‘노래 제목을 찾습니다’라는 주제로 라이브 스트리밍을 시작해 모인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들으니 어떤지, 뭐가 떠오르는지, 어떤 제목이 좋을지를 물었다. 노래는 세 번을 불렀다. 처음엔 아무 정보 없이 노래만 먼저 들려주었다. 어떤 느낌이 들었나 질문했다. 두 번째는 가사를 읽게 하고, 어떻게 만들게 된 노래인지 이야기하고 나서 불렀다. 이렇게 다시 들은 노래는 어떤 느낌인지 물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부르고 다른 사람들이 이 노래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 알고 난 후에 다시 들은 노래는 또 어떤지 물었다.



모인 이들이 노래를 들으며 떠오른 것들을 채팅창1)에 남겨주었다. 또한 제목으로 어울릴만한 것들도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제목을 받아 적은 노트 이미지 모음_[Photo: 시와]



한 시간 남짓의 실시간 스트리밍을 마쳤다. 스트리밍에 참여한 친구가 메신저로 바로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노래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더라. 신기했어.”



나는 무릎을 쳤다. 그래 이거지. 노래란 이런 거지. 내가 어떤 상황에서 이 노래를 썼든 노래는 듣는 사람에게 가서 그의 노래가 되는 거지. 내가 만든 의미 그대로 잡아두려고 할 필요도 없고. 잡으려고 한 의미보다 더 넓어지는 것, 그게 노래지.



제목을 정하지 못한 새 노래를 들으면서 어떤 이는 강아지를 떠올리고 어떤 이는 귀갓길을 생각했으며, 어떤 이는 먼저 발표한 노래 ‘다녀왔습니다’의 대답 같은 노래라고도 했고, 어떤 이는 산고를 겪으며 몹시 고통스러웠을 때 말없이 등을 쓸어주던 손길을 떠올렸다.



그날의 영상은 저장해두고 며칠이 지난 후에 다시 보았다. 약간의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복기하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그날 들은 이야기들과 추천받은 제목들이 내 안에서 뭔가 일으키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면서.



그룹 꿈 투사의 장면과 겹친다. 스무 명이 둘러앉아 나누는 꿈 이야기는 사실, 그날 바로 나에게 정답 같은 걸 주지 않는다. 꿈 작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필요한 일들을 하다가 문득, 며칠 후 다른 일에 몰두해 있다가도 문득. 꿈속의 그 장면이 이런 뜻이었나? 라고 갸웃하는 순간이 온다. 어떤 때는 ‘아하!’라고 할 만큼 정말 고개를 끄덕이는 의미가 찾아올 때도 있다.



노래 제목을 마침내 정하게 된 때도 비슷했다. 우선은 저장해둔 그 날의 영상을 보며 어떤 제목들이 나왔는지, 함께했던 이들은 어떤 느낌으로 들었는지 모두 받아 적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만히 읽어보았다. 이렇게 되돌아보고 나니 노래에 담긴 태도가 무엇인지 보였다. 아니, 그날의 사람들이 이 노래를 어떤 태도가 담긴 노래로 들어주었는지가 보였다.



이 노래에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담겨있었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에게 다가가 가만히 함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지만 그와 동시에 위로하고 싶어 하는 내 마음만 보느라,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는 마음이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물으며 위로의 방법을 찾아가는.



정리하며 말해보자면, 위의 표현들이 그대로 유튜브 라이브에 등장한 것은 아니다. 그날의 대화와 그것에 앞서 친구들에게 어떤 제목이 좋을까 의논하며 들었던 이야기들에 모두 영향을 받아 이런 생각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하며 제목을 정했다. <곁에 있어도 될까>



처음의 바람처럼 누군가에게 제목만 보여도 ‘이 노래라면 내가 숨 좀 쉴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하려나.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껏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노래의 이름이 나에게 왔다. 이 이름이 딱이다.



1) 채팅창 : 노래 제목 찾는 라이브 '새 이름을 찾고 싶어' https://youtu.be/bcjbpKIq5LU






시와 / 음악가
들여다보고 안아주는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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