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느긋한 우정] 동네 친구들의 공간 쌀(ssal)

31호 / 한발 벗어나기



상월곡역에서 성북정보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서울 안에서도 오래되고 낮은 건물과 주택들이 있는 정겨운 골목길이다. 그 골목 중간에 쌀(ssal)이라는 공간이 있다. 쌀(ssal)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2015년에 주민참여로 성북정보도서관 지하에 천장산우화극장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서울괴담 친구들, 월장석 친구들1) 이다. 이들은 몇 년간 공공공간을 활용하여 극장 운영과 문화예술 활동들을 실험했다. 작년 코로나 상황을 겪으면서 공공공간에서 활동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올해 천장산우화극장에서 내려와 민간의 공간을 만들어서 활동을 시작했다. 내가 이 공간을 사랑하는 이유는, 예술가들이 공간을 거점으로 동네 사람들과 작업을 하면서 주민으로 지역에서 활동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만들어진 공간을 처음 방문하는 설렘과 기대로 골목 어귀에 들어섰을 때 작은 카페 옆 통유리 창문의 깔끔한 공간이 보였다. 그 공간 앞에 반가운 두 사람 봉봉과 야호가 서있었다. 날씨도 좋고 골목의 풍경도 좋아 우리는 골목에 테이블을 놓고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터뷰는 야호(허혜윤)와 토스(김성환)가 함께 했다.




쌀(SSAL) 공간 사진_[Photo: 야호, 삐삐]




야호, 공간 쌀(ssal)을 소개해주세요


성북구 하월곡동 삼태기마을 입구 어귀에 있는 공간이에요. 이곳은 순창상회라는 쌀과 계란을 파는 가게였어요. 가게가 이사 가면서 한두 달 비어있는 것을 보고 친구들과 함께 공간을 마련했어요. ‘공간의 기억을 버리지 말고 좀 가지고 가보자’고 하면서 하늘색 동그라미 안에 붉은색 쌀이라고 쓴 스티커를 남겨뒀어요. 그러면서 같이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쌀에 대한 이야기가 먹는 이야기, 먹고 사는 이야기로까지 이어졌어요. 공간에서 활동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친구들과 동네 사람들이 쌀집으로 불러줬어요. 그래서 ssal(쌀)을 다시 풀어서 Sang Social Art Lounge(상월곡 소셜 아트 라운지)로 이름을 지어 사용하고 있어요. 쌀집은 작은 부엌과 마시고 먹을 수 있는 테이블, 바 공간, 그리고 차고였지만 지금은 창고로 사용하는 공간으로 되어있어요. 봉봉, 오배우, 제이, 토스, 야호, 끼루, 얼곰, 소소, 디디 9명의 다양한 일을 하는 친구들이 공동으로 투자하고 어떤 일들을 할까, 어떻게 살아갈까, 어떤 예술을 할까 고민하는 공간이에요.




함께하고 있는 친구들과 이 공간에서 작당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마을 입구에서 통유리를 통해 보고 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어떤 이야기를 발신할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진행 중이에요. 서로 다른 이슈가 있지만, 각자가 가진 이야기가 ‘순환’이라는 키워드로 모였어요. 저는 환경, 좀 더 들어가면 비거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친구들과 계속해보고 싶어요. 늘 사람들과 이런 주제로 만나고 싶었는데, 쌀 덕분에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이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쌀집 메뉴는 비건과 논 비건 요리를 반반씩 정해서 우선 먹어보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채식메뉴를 찾고 함께 나눠 먹기 시작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경험이 강렬했던 것 같아요. 책 읽고 공부하는 지식으로의 접근에서 실제 행동으로 옮겨보는 과정, 쌀집에 오는 사람들이 비건을 경험하는 과정을 만드는 것으로 변화했어요. 그래서 올해 저에게 작당은 ‘제가 요리를 하고 사람들이 먹는다’ 인 것 같아요.


도서관이 위치한 장소가 분명히 마을이기는 한데, 오히려 도서관에서 나오니까 마을이 더 잘 느껴져요. 골목 어귀에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저녁에 식당을 운영하니까 어두운 밤길에 늦게까지 밝은 불빛이 있어 귀가 길이 밝아서 좋다는 동네 사람들도 있고요. 동네 어르신들의 챙김도 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택배도 챙겨주시고…. 지난 5년간 천장산우화극장에서 사람들을 만났지만, 여기로 오면서 새롭게 마을과 관계를 맺는 기분이에요. 마을을 다시 느끼고 동네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다시 작당으로 돌아가서요. ‘어떻게 무엇을 먹지? 어떻게 먹고 살지?’ 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결해나가고 있어요. 오늘 진행하는 예술순환로2) 의 ‘미미쌀롱’도 그렇고, 제가 비건 요리를 하는 것도, 동네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마을을 다시 느끼는 것도, 진짜 어떻게 먹고 살지에 대한 이야기, 순환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환경에 대한 순환부터 세대 간의 순환, 경제적인 순환, 어떻게 공부를 할 것인가에 대한 것까지 모두 순환의 키워드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쌀과 함께하고 있는 동네친구들은 어떤 분들일까요?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 성북정보도서관 지하에서 만나는 월장석 친구들이라는 커뮤니티에서 마주친 친구들이에요. 원래 성북구 ‘예술마을 만들기’라는 프로젝트에서 처음 모였어요. 동네에서 어떻게 창작을 하면서 살아갈 건지 이야기하면서 일상의 관계를 만들어갔어요. 그러면서 2018년에 작은 공연들을 할 수 있는 동네 극장을 개관해서 활동했는데, 작년 코로나로 인해 활동이 딱 막혔어요. 그래서 그냥 밖으로 나왔어요. 그런데 그게 더 좋았어요. 여기 쌀집은 동네 예술가들, 주민들이 찾아와요. 모두 응원하는 마음, ‘망하지 말아야 해’ 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에요. 동네 친구이면서 동네 주민이고, 잘 먹고 놀고 창작하고 관계 맺으면서 어떻게 먹고 살까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에요. 공간을 열기 전에도 응원하고 지지해주셨고, 열고 나니 함께 고민을 나누려고 오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학교 친구들을 많이 부르고 싶어요.



공간 쌀(ssal)은 야호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앞의 이야기와 연결되는데, 대학을 졸업하면서 친구들, 선후배들이 다 흩어져서 만날 수가 없었어요. 이 지역에서 제가 이렇게 떠나지 않고 계속 활동을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 친구들을 지역에 초대하고 싶을 때 쌀집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책적인 용어로 생활문화나 일상 예술이 아닌, 동네에 사는 주민들과 우리가 그냥 함께 하는 예술공간, 예술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가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야호와 토스 인터뷰 전경_ [Photo: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예술교육과 교육하는 예술의 차이_예술을 나누는 과정의 차이_는 무엇일까요?


예술교육의 문제는 학교에서 미술 시간에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평가하면서 시작된 것 같아요. 예술은 그냥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걸 표현하고 표현한 것에 대한 가치를 작품에 부여하고 아름다움이 그냥 이쁜 아름다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야 하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학교 밖인 이 동네에서 서로의 선생님이 되어 배우는 학교를 쌀집을 통해 만들어가고 있어요. 동네 사람들이 자신의 예술성을 발견하고 예술성을 서로 읽어주는 것, 또 스스로 읽어내는 과정이 되게 중요해요. 또 내가 그림 그리는 작업자로 가지고 있던 시각에 연극이라는 다른 예술작업자의 시선을 더하고, 장르도 넘나들면서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서로를 읽어주는, 이런 과정이 예술을 나누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동네에서 5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요?


음…. 뭐랄까? 아직 진행형이여서…. 내가 어디에 발을 딛고 서 있는지, 내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주변에 누가 있는지를 잘 못 봤는데 이제 그 발바닥을 감각한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제가 학업 때문에 이 동네로 왔는데요. 이제야 이 동네가 어떤 동네인지 살펴보고 있어요. 내 주변에 누가 있지 한번 돌아보게 되면서 공연하는 사람 그러니까 배우, 연출, 음악하는 친구 등등 그들에게서 영향을 받아 작업의 형태 자체가 되게 많이 바뀌었어요. 동네에서 만난 할머니의 이야기로 공연도 하고 글도 쓰면서 제 작업이 아주 풍요로워졌어요. 배우 토스에게 변화는 서로의 감각을 배우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관계망을 갖게 된 것, 가장 큰 변화는 이 동네에 살게 되었다, ‘성북에 살게 되었다3)'에요.




쌀(SSAL) 공간 사진_ [Photo: 야호]



새로운 지역을 만나면서 떠나온 지역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너무나 이상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야호, 동네 사람의 친구이자 동네 문제의 해결사인 배우 토스, 그들과 함께 하는 다른 많은 예술가의 공간 쌀을 만났다. 그들은 공간 쌀에서 동네 예술가의 삶을 실험하기 위해 한 발 벗어난 공간, 카페이면서 밥집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나의 동네친구, 그들의 현재 진행형인 삶과 그 공간을 응원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고맙다.




1) 월장석친구들 : 월곡동, 장위동, 석관동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모임의 앞 자를 따서 월장석친구들이라고 부릅니다.

2) 예술순환로 : 예술순환로는 예술활동거점지역 활성화 사업으로 지역 내 창작자들의 예술 활동을 연결하고 지속가능한 예술생태계를 만드는 사업입니다. 서울 성북구의 월곡, 석관지역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3) 성북에 살게 되었다 : 현재 토스는 성북 예술가 주택에 입주해서 살고 있습니다.





(사)마을예술네트워크 성낙경은 그림을 그리면서 살기를 꿈 꿨으나, 결혼하고 아이 셋을 키우면서 마을예술창작소 공간을 운영하고, 다른 공간의 운영자들을 만나고 동네 예술가들을 만나서 문화예술과 일상 예술에 대한 고민과 실험을 하고 있다. mamkiki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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