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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경기도 문화자산 5. 양평 몽양 여운형 생가·기념관


경기도 문화자산 

5. 몽양 여운형 생가·기념관


글, 사진 김준기(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에는 몽양 여운형 선생(1886-1947)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습니다. 경의선 전철 신원역에서 내리면 이곳으로 안내하는 표지판이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요. 이 표지판을 따라 언덕길을 10여 분 정도 오르면 아담하게 지어진 기념관과 그 위로 불쑥 솟아 있는 생가의 지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가는 도중에도 몽양 선생이 남긴 명언들을 바위에 새긴 몽양어록길과 쉼터가 있어 자신을 되돌아보는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경기문화재단 <어느날, 여기> 양평 경기옛길 평해4길(몽양 여운형기념관 소개) 


여운형(1886~1947)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좌익계통의 정치가였는데, 몽양은 그의 호이지요. 어머니가 치마폭으로 태양을 안는 태몽을 꾸었다고 하여 몽양(夢陽)이라는 호를 지었다고 합니다. 몽양선생의 기념관이 이곳에 건립된 이유는 그가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에 있는 자연마을인 묘골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기념관이 세워진 곳이 바로 그의 생가터이고요.


몽양 선생은 3.1운동에 큰 영향을 준 신한청년당을 만들기도 했고, 시대를 풍미한 연설가로서 일제의 압제에 시달리던 조선의 처지를 세계에 알리는 데 주력을 한 분입니다. 그러다 일제에 체포되어 고역을 치르기도 하였지요. 물론 선생은 고려공산당에 가입하기도 한 좌익운동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온건좌파로 분류할 만한 인물이었고, 온건우파인 김규식과 함께 해방 이후 좌우합작정부를 추진하며 이승만 대통령과 격렬한 언쟁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선생은 극좌·극우 양측으로부터 소외를 당하다가 극우파 한지근이란 사람에 의하여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몽양 선생이 지녔던 좌익 성향 때문에 한동안 그의 이름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잊혀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선생의 명예가 회복된 것은 2000년대 초의 일이었고, 이로 말미암아 2005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이어 200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된 것이지요.


몽양 선생이 태어난 원래의 생가는 함양여씨가 처음 양평에 자리잡았던 1715년(숙종 41년)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몽양 선생은 이 고가에서 1886년 출생한 후 부친의 탈상을 끝낸 뒤 서울로 이사를 하는 1908년까지 살았지요. 하지만 이 고가는 6·25 전쟁 중에 소실되고 맙니다. 그러다 2001년 양평 군민들의 노력으로 생가터가 정비되고 이듬해에는 기념비도 건립되었습니다. 200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된 것을 계기로 서거 64주년인 2011년 생가가 복원되었는데, 이때 군립 기념관도 설립이 되어 2011년 11월 27일에 개관하였습니다. 2012년에는 이 생가·기념관이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인 현충시설로 지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좌) 복원된 여운형 생가 (우) 1919년 11월 도쿄 방문 당시의 몽양 여운형(출처 뮤지엄 허브 양평)


몽양기념관은 선생이 서거 당시에 입고 있었던 혈의, 장례식에 사용된 만장, 서울 계동 집에 있던 책상, 2008년 추서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등의 유품과 그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가 전시되어 선생의 삶과 정신을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습니다. 또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자 웅변가로 활동하였던 그의 업적과 1947년 암살되기까지의 연대기 등을 소개하고, 선생이 생전에 썼던 유품과 저서 등도 전시하고 있지요.


그런데 몽양 여운영 생가·기념관에서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생가 건너편에 있는 널찍한 공간에 다양한 체육시설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혹시 여운형 선생이 당시 유명한 ‘몸짱’이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단단한 체구, 카이젤 수염, 부리부리한 눈, 넓은 이마를 가진 만능 스포츠맨. 이것이 선생의 트레이드마크이자 또 다른 매력이었지요.


몽양 선생은 일제에 억압받고 있던 조선인의 한을 풀기 위해 일장기말소사건을 주도했으며, 각종 체육단체의 장으로서 조선 체육의 질적향상을 도모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또한 당시 조선체육계가 안고 있는 현안의 해결책을 모색하고 세계 스포츠무대에서 조선인의 우수성을 과시하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광복 후에는 자주국가로서 신생독립국인 대한민국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올림픽대회의 참가를 주도하는 등 한국의 체육발전을 위해 평생을 바친 진정한 체육인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에 몽양 선생은 조선체육회(대한체육회의 전신) 회장과 미군정기 군정청 체육부장을 지내기도 했지요. 몽양기념관에 체육시설이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양평군에서는 2017년 ‘몽양 여운형 선생 서거 70주기 추모 양평군수배 족구대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이 대회는 생활체육의 보급 및 스포츠 정신을 강조한 여운형 선생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건전한 여가 활동 및 생활체육 정착에 그 취지를 두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양평군에서는 여운영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뮤지컬과 특별 추모전 등의 행사를 개최하고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몽양역사교실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양평군의 노력은 이념의 갈등 속에서 그의 업적에 비해 걸맞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이 고장 출신인 몽양 선생의 위상을 되찾는 길이 될 것입니다.



**경기도박물관 전시 연계 특강 다시 보기 클릭: [명사 특강] 백년 전 그들의 선택: 여운형과 민원식


세부정보

  •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주소 / 경기 양평군 양서면 몽양길 66

    관람시간 /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 입장마감 오후 4시 30분

    대표번호 / 031-775-5600

    입장료 / 성인 1천원, 중고생,군인 8백원/ 초등 5백원

    누리집 / https://www.yp21.go.kr/museumhub/index.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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