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마지막 단관극장의 기적을 꿈꾸며

동두천 동광극장에서 영화 한 편


동두천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동광극장에 들러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왔다. 동광극장은 전국에 마지막 남은 단관 개봉관이다. 개관한 때는 1959년.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현역 개봉관이기도 하다. 언제 폐관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그 상징성 덕분에 간신히 운영되고 있다.


사실 동두천시에는 그간 멀티플렉스 극장이 없었기 때문에 동광극장의 ‘생존’이 조금 더 유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21년 결국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동광극장에서 2km 떨어진 곳에 지어졌다. 동두천 사람들은 양가적인 감정이다. 멀티플렉스 극장의 등장이 반가우면서도 내심 추억이 묻어 있는 옛 극장이 문을 닫을까 봐 걱정인 것이다. 운명의 기로에 선 극장은 동광극장뿐만이 아니다. 2개관을 가진 문화극장도 마찬가지.


동광극장과 문화극장은 300m 떨어져 있는 이웃극장으로 한때 동광극장이 ‘문화극장 3관’으로 흡수된 적도 있었다. 현재는 원래대로 각각 다른 극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두 곳 모두 1970~80년대, 멀티플렉스 극장이 등장하기 전 동네 번화가에 있을 법한 극장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이제는 드라마 세트장이나 추억의 거리를 재현한 테마공원에서나 볼 법한 외관이다. 1층의 낮은 건물, 외벽 알림판에 게시해둔 손으로 쓴 영화 시간표, 반원의 구멍이 뚫린 외부 매표….상영 영화 포스터 간판이 그림이 아닌 점이 아쉬울 지경이다.

1980년대까지 동광극장은 영화 간판을 그리는 화공, 영화 포스터 붙이는 직원, 영사기 기사 등 10명에 이르는 직원을 둔 동두천의 대표 문화시설이었다.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찍힌 사진을 보면 미군들로 북적이는 거리 중심에 동광극장이 자리함을 확인할 수 있다. 오랜 역사를 증명하는 35㎜ 구형 영사기는 동광극장의 명물로 극장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 지금도 정상 가동이 되지만 가끔씩 ‘특별한 볼거리’를 원하는 손님들을 위해서 시범적으로만 영사기를 돌린다. 현재 운영 중인 1개 스크린에는 2009년 교체된 디지털 영사기로 영상을 올린다.


영화관 로비는 수집광의 만물상 같았다. 크고 작은 수족관과 영화 캐릭터 피규어, 이런저런 골동품들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벽에는 동광극장이 잘 나가던 때의 풍경을 찍은 옛 사진이 걸려 있고 대기 중인 관객들을 위한 안마의자도 비치되어 있었다.


극장 주인의 취향이 진하게 묻어나는 공간이었다. 내부 조명이 어두워서 은밀한(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 아지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누군가는 정겹다고, 또 누군가는 어수선하다고 느낄 것 같다. 그런데 스크린실은 외부와는 완전히 다른 면모를 자랑한다. 겉보기보다 넓은 내부는 1,2층의 283석 규모로 1층은 전석 리클라이너 소파와 간이 테이블을 설치한 프리미엄석이다. 2층 좌석 또한 넓고 안락하다. 스크린과 좌석 모두 최신식 설비로 여러 차례 구조 변경을 거쳤다.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해 괜시리 뭉클했다.


동광극장에서 서너 명의 관객과 함께 관람한 영화는 <기적>이었다. 다른 선택권이 없었으므로 보게 되었지만, 공교롭게도 제목과 내용이 동광극장과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영화는 기차역이 없어 위험을 감수하고 선로를 걸어 먼 역까지 걸어가는 벽촌 주민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민들은 마을에 기차역이 생기는 기적을 바라는 가운데, 수재 소릴 듣는 남학생과 기관사인 그의 아버지를 주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동광극장의 존속은 기적에 가까운 일일까. 개관 이후 동광극장에서 상영한 영화는 2,500편이 넘는다. 얼마나 수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영화를 보고 또 자신들만의 영화를 만들었을까. 동광극장과 얽힌 개인들의 추억을 스크린으로 옮긴다면 영영 끝을 볼 수 없는 긴 영화가 될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이들이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을지언정, 영화관이 곧 없어진다고 해서 갑자기 관람객이 몰려와 매진사례를 빚진 않는다. 그중에는 추억은 마음 깊이 묻어두고 새로 문을 연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향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극장의 명맥을 이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수는 있을 것이다. 클래식 무비를 틀어주는 테마 영화관, 노년층을 위한 실버영화관, 저예산 독립영화를 개봉하는 예술극장 등 기존의 사례를 참고해 노선 변경을 타진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개봉관의 타이틀은 내려놓게 될 것이다. 아예 헐리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개봉관은 동광극장의 정체성이기도 해서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매한가지다.


서울 종로의 42년 터줏대감 서울극장도 적자를 어렵게 버티다가 지난 2021년 8월 완전히 문을 닫았다. 서울극장은 동광극장과 비교할 수 없는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이었지만 동일한 이유로 먼저 폐관한 단성사, 피카디리 등 근처 대형 극장들의 수순을 밟았다. 예고된 운명인 듯 극장의 단골 관람객들도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중에는 나도 있었다. 문을 닫기 며칠 전, 내 생애 첫 극장이자 청춘의 조각들을 남긴 서울극장에서 마지막으로 영화를 관람했고 극장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극장과 이별했다.


영원한 것은 오직 ‘영원한 것이 없다’는 진리뿐이라는 말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으로는 동광극장의 ‘기적’을 바란다. 동두천이 앞선 내 바람대로 ‘K-POP의 도시’로 발전한다면 동광극장도 할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 개봉관의 타이틀은 유지하면서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나 콘서트 실황을 보여주거나 소극장 공연 등을 겸하는 공간으로 거듭난다면 어떨까. 꿈과 희망은 본디 충만한 상태에서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배부른데 더 먹으려하는 마음은 욕심이지만 비었으므로 채우려는 마음은 본능이다. 화려했던 과거가 묻힌 쇠한 땅에서, 풀 한 포기 자란 적 없는 불모지에서 꿈을 꾸고 희망을 품는다. 다시 도약하리라는 꿈, 언젠가 꽃으로 피어날 것이라는 희망. 그래서 이곳 동두천의 캐치프레이즈가 마음에 든다. 극장 문을 나서 다시 역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에 리듬이 실린다. 두드림Do Dream 동두천!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33권 『50만 살의 청춘- 경기 북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동두천시 : 걷고 노래하고 꿈꾸라>에서 발췌했습니다.

세부정보

  • 동광극장

    주소/ 경기도 동두천시 동광로 33

    문의/ 031-867-3030

    누리집/ dongkwang.petitec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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