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걷고쓰는사람

천 리 강물 내려다보면 네가 보일까

연천 호로고루, 아름답고 그리운 꽃밭을 찾아


삼국시대 당시 서울과 평양을 잇는 교통로는 자비령로, 방원령로, 재령로 등 크게 세 갈래였다. 그중 자비령로는 서울에서 양주-파주-장단-개성-금천-평산-서흥-황주-평양으로 이어지는데 그 길목에 호로고루가 위치한다.




고구려는 이곳에 국경방어사령부를 두고 임진강 방어선을 관리했다. 임진강 하류에서 배가 없이도 건널 수 있는 곳에 접한 중요한 성이라서 『삼국사기』에도 이곳에서의 전투가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다. 수백 년간 삼국의 각축장이자 고구려의 주요 요새였던 것이다. 호로고루는 남한에서 가장 많은 양의 고구려 유물이 발견된 곳이며 시대별 층위도 명확하게 구분되어 삼국시대 역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토성과 석성의 장점을 결합한 고구려의 축성기술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한편 고구려가 최초로 쌓은 안쪽의 높은 성벽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데 반해 나중에 신라가 쌓은 성벽은 편마암으로 쌓았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고구려가 오랫동안 임진강 일대를 지배한 까닭에 고구려의 석공들은 현무암을 다루는 기술을 터득했지만 신라 석공들은 그 기술을 단기간에 연마하지 못해 그들에게 익숙한 편마암을 멀리서 가져와 성벽을 쌓는 수고를 한 것이다.




호로고루는 당포성과 닮았지만 덩치는 훨씬 크다. 성의 높이가 10m가 넘다보니 옛 마을 주민들은 호로고루를 재미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오랫동안 고구려성인 줄 모르다가 6‧25전쟁 때 북한군이 이곳에 포대를 설치하면서 성벽이 많이 훼손되었는데, 이후 주민들이 뱀을 잡으려고 남쪽 성의 일부를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성벽 일부가 발견되었다. 당시 파헤쳤던 흔적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호로고루도 당포성과 마찬가지로 육로로 진입하는 방향인 동쪽에만 성벽을 세우고 나머지는 자연 절벽 그대로를 요새화한 성이다. 그래서 성은 수평으로 긴 동산의 형태로 남아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 호로고루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자연 명소든 인공 시설이든 역사 없는 땅은 없지만 요즘은 여행지의 기준이 ‘풍광이 아름다운 곳’, ‘사진이 예쁘게 잘 찍히는 곳’에 많이 치우친 듯하다. 그런 이유로 호로고루는 최근 연천의 간판 여행지로 부상했다.

SNS 상에서 호로고루는 ‘인생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명소다. 늦봄부터 초여름까지는 보리밭이, 가을에는 해바라기밭이 호로고루 앞에 드넓게 펼쳐진다. 특히 해바라기가 만개한 가을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여든다. 해바라기는 그 이름처럼 꽃송이가 해를 향해 있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때 해의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 동쪽에 축성된 호로고루와 해바라기 모두가 밝게 잘 나오는 때는 해가 뜨는 시각이다. 아침 6시부터 호로고루 앞 주차장은 만차다. 커다란 DSLR 카메라를 삼각대에 세우고 풍경 사진을 찍는 사진가부터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는 SNS 이용자까지 다들 약속한 것처럼 해바라기밭 앞에 서서 촬영 버튼을 누른다.

꽃밭 덕에 스러진 성벽만 남았던 곳이 인기 여행지로 변모했다. 그러고 보면 재인폭포와 당포성도 주변 조경에 신경 쓴 티가 역력하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유적지가 되기보다 꽃밭으로 눈길을 끄는 유적지가 더 낫다는 말은 하나마나한 말일 것이다. 처음 목적이야 사진을 찍는 데 있다 해도 일단 오면 적어도 성인지 동산인지는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실제로 한 아이가 함께 온 부모에게 “호로고루가 무슨 말이야?”라고 묻는 소리를 들었다. 마침 호로고루 앞에는 작은 규모의 호로고루홍보관이 위치해 호로고루는 물론 고구려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실은 나도 다른 곳은 다 ‘성’으로 부르는데 어째서 호로고루만 성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지 궁금했다. 막연하게 고어 같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발음이 귀엽다고 해야 할까, 이름 자체가 독특해서 입 밖으로 여러 번 이름을 되뇌곤 했다. ‘호로’는 삼국시대의 임진강 이름인 ‘호로하瓠蘆河’에서 따온 것이고 고루는 성, 누각 등을 의미하는 옛말이라고 한다.



호로고루는 성 자체도 크지만 성이 축조된 이등변삼각형 모양의 대지도 상당히 넓다. 그 광활한 면적이 다 잔디밭, 해바라기밭이라 산책하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린다. 성벽 서편에 난 나선형의 화강암 계단을 오르면 주변 전망을 시원하게 둘러볼 수도 있다.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끝에는 망향단이 갖춰져 있다. 그곳에 세워둔 시비에는 전윤호 시인의 작품 <호루고루>가 새겨져 있다.


이 절벽에 성을 쌓고/ 천 리 강물 내려다보면/ 네가 보일까/ 나라 잃은 설움 안고/ 황포 배들이 머문 포구/ 당에서 말갈에서/ 기병들이 몰려오는데/ 깃발을 올리고 북을 치면/ 네가 들을까/ 머물 곳 없는 슬픔이 현무암을 쌓고/ 스스로 문을 닫으니/ 백만 대군이 와도 열 수 없으리/ 임진강이 마르고/ 좌상바위가 평지가 된다 해도/ 내 마음은 무너지지 않으니/ 그대여 어서 돌아와/ 회군의 나팔을 불어주게/ 호로고루 호로고루/ 연천벌을 지나서 고구려까지/ 푸른 바람이 부는구나



한때 전쟁터였던 호로고루는 이토록 웃음이 만발하고 평화롭기만 한데 이 절벽에 서서 바라보는 북녘 땅은 오직 강물만이 닿을 수 있다. 두 발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온 이들의 마음을, 강이 마르고 바위가 모래가 되어도 무너지지 않을 그리움을 나는 헤아릴 길이 없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33권 『50만 살의 청춘- 경기 북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연천군 : 오래된 미래>에서 발췌했습니다.



세부정보

  • 연천 호로고루

    지정종목 / 사적

    지정일 / 2006년 1월 2일

    시대/ 삼국시대(고구려)

글쓴이
걷고쓰는사람
자기소개
경기도 구석구석을 걷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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