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실학박물관

실학박물관, 이 시대 지역 박물관의 역할과 의미를 되새기다 2

특별전 《그림으로 다시 쓰는 자산어보》



  실학박물관은 특별공연 '실학연희'에 앞서 개관 15주년 기념 특별기획전도 열었다. ‘그림으로 다시 쓰는 자산어보’ 전이다. 지난 4월 30일 개막해 특별공연이 있은 10월 27일 막을 내렸다. 전시 기간 동안 10만 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지역 박물관으로서 의미 있는 성과다. 개막 후 지역사회를 넘어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면서 3개월 만에 5만 5000명이 방문하는 등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필자도 당시에 전시를 관람했다. 더 고무적이고 유의미한 것은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 단위 관람객의 증가가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그림으로 다시 쓰는 자산어보’ 전은 실학자이자 정약용의 형으로 유명한 정약전(1760~1816)이 쓴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소재로 했다.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흑산도(정약전은 ‘자산’이라 표현)에 유배됐을 당시 섬 주변의 바다생물을 관찰·연구해 집필한 해양생물 백과사전이다. 낙지나 해삼·문어·전복·꽃게 같은 것은 물론 해파리·바다거북·가마우지 등 150여 종 220여 생물의 생김새, 특성, 잡는 법, 활용법 등을 정리했다.


 직접 확인·실험·연구한 객관적 사실로 진실을 탐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 실용적인 학문방법론이라 할 실사구시, 실학정신이 잘 녹아든 기록유산이 바로 ‘자산어보’다. 기획전은 ‘자산어보’의 내용과 가치, 관찰과 탐구의 과정, 생물들의 특성, 활용 방법의 이해 등으로 구성됐다. 전시를 통해 실학자의 삶과 학문 태도, 이 시대 실학정신의 의미나 가치를 되새겨보도록 한 것이다.




 기획전은 사실 거창하기보다 소박한 전시였다. 드넓은 전시장에 평소 보기 힘든 국보, 보물 같은 희귀한 유물이 출품된 전시가 아니다. ‘자산어보’를 통해 실학정신의 21세기적 가치를 살펴보는 주제는 학술적으론 중요하지만 대중적 관심을 끌기 쉽지 않다. 딱딱하고 무겁다는 게 실학에 대한 통념,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시는 많은 관람객을 불러 모았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전시 기획 단계부터 ‘관람객 주도형 체험전시’를 지향했다는 게 돋보인다. 실학박물관은 기획전을 준비하며 “기존 전시와는 다른 새로운 변화로 관람객 주도형 체험 전시를 시도했다”고 밝혔다. 기존 전시 관행의 혁신이다. 전시품 중심의 전시가 아니라 관람객 중심의 전시다. 관람객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전시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체험하게 함으로써 특별한 전시 경험, 문화 향유를 하도록 시도한 것이다.




 물론 관람객 주도형 체험전시를 위해서는 갖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튼실한 전시 내용은 기본이고 전시장 공간 구성과 디자인, 전시품의 배치, 관람객 동선, 조명 같은 세심하고도 정교한 전시 기법 등이 요구된다. 전시의 구성 요소들의 조화도 이뤄져야 한다. 실학박물관은 무엇보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이 찾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높이나 넓이, 색감, 크기 등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전시 보조물들을 갖춘 것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전시 설명도 중요했다. 여기에 점자와 음성 지원,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물리적 장애물의 최소화, 특히 ‘컬러 유니버설 디자인’(CUD)도 적용했다. CUD는 ‘디자인 민주주의’로 불릴 만큼 남녀노소, 장애 유무에 관계 없이 모두를 즐기는 디자인을 말한다. 색약자를 위해 색감까지 세밀하게 고려한다. 그야말로 ‘모두를 위한 디자인’으로, 선진 박물관·미술관에서는 보편화되고 있다.




 관람객 주도형 체험전시는 관람객의 전시 참여와 체험을 이끄는 다양한 방식을 제공해야 한다. ‘그림으로 다시 쓰는 자산어보’ 전은 퀴즈 풀기, 색칠하기, 퍼즐 맞추기 등을 마련했다. 최근 주목받는 멀티미디어, 인공지능(AI)도 활용했다. 전시 주제 음악 같은 청각 요소도 곁들였다. 보다 선진적이고 빼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현대 전시는 관람객에게 시각만이 아니라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전시를 보면서 청각, 촉각, 후각, 미각 체험까지 동원하는 것이다. 관람객 오감을 자극함으로써 보다 진한 예술적 체험, 감동을 안기는 것이다.


 ‘그림으로 다시 쓰는 자산어보’ 전은 협업 노력도 빛났다. 초등학생 피아니스트 조현서가 전시 주제곡을 작곡해 전시에 활용됐다. 발달장애 예술가 39명은 한젬마 러쉬코리아 부사장의 감독 아래 ‘자산어보’ 속 생물들을 자신만의 상상력, 표현력으로 그려냈다. 그 작품들은 전시의 요소가 됐고, 전시를 한층 다채롭게 만들었다. 실학박물관은 장애인의 예술활동 기회 확대라는 값진 사회적 가치까지 창출한 것이다. 여기에 박철민·정인기 배우의 전시 음성해설 참여는 전시를 보다 풍성하게 느껴지도록 했다.



 전시와 연계한 교육프로그램도 관람객의 참여 확대, 소통 강화 측면에서 중요하다. 실학박물관이 여름방학 기간에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을 대상으로 AI를 활용해 ‘자산어보’와 관련된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려보는 프로그램 마련, 어린이날 체험 활동 운영 등이 대표적이다.  관람객 주도형 체험전시의 도입, 협업을 통한 전시의 다채로움,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등이 ‘그림으로 다시 쓰는 자산어보’전의 성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실학박물관 김필국 관장은 “국제박물관협의회(ICOM)는 2022년 박물관의 정의에 접근성과 포용성, 다양성, 지속가능성 등의 개념을 추가했다”며 “박물관이 기존 틀에서 한 단계 나아가 ‘모두를 위한 박물관’을 지향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실학박물관 구성원들은 기획전을 준비하며 ‘관람객 주도형 체험 전시’, 접근성 향상을 통한 ‘모두를 위한 박물관’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김 관장은 “박물관의 새로운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 실학박물관 구성원들의 노력은 새로운 도약의 디딤돌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실학박물관의 올해 상반기 관람객은 지난 해 동기 대비 약 30% 증가했다. 관람객 수의 큰 폭 증가는 기획전의 영향이 컸다는 게 실학박물관의 분석이다.  실학박물관의 사례는 지역 주민 관람객의 적극적인 참여, 호응을 기대하는 전국 지역 문화예술기관들이 곱씹어 볼 만하다. 지역 문화예술기관들은 기존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변화, 혁신을 통해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나아가 문화향유권을 확장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문화예술기관의 존재의 이유 아니겠는가.


세부정보

  • / 도재기 경향신문 문화부 선임기자(전 논설위원, 문화부장)

    사진/ 최원일, 김준태

    편집/ 박한별(실학박물관 학예연구팀)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6

    관람시간/ 10:00~18:00(17:30 입장마감)

    문의/ 031-579-6000

    누리집/ http://silhak.ggcf.kr

글쓴이
실학박물관
자기소개
실학박물관은 실학 및 실학과 관련된 유·무형의 자료와 정보를 수집·보존·연구·교류·전시하며 지역 주민에게 교육과 정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다목적 차원의 문화복합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건립한 국내 유일의 실학관련 박물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