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걷고쓰는사람

호숫가 오래된 집

군포 반월호수를 산책하며


수리산탐방센터에서 대야미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갈치저수지가 있다. 1984년 농업용수 공급용으로 조성된 작은 저수지다. 갈치저수지에서 3km 떨어진 가까운 곳에는 반월호수가 있다. 반월호수도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57년에 조성되었다. 둘 다 같은 목적으로 축조된 물 저장소인데 하나는 저수지고 다른 하나는 호수다. 크게 보면 호수가 저수지를 포괄하는 개념이겠으나 굳이 달리 부르는 까닭은 반월호수가 좀 더 ‘관광화’된 친수 공간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리라. 요즘은 어디나 저수지를 호수로 개명해 부르는 추세다.


두 곳 모두 주거지에서 도보로 걸어오기엔 거리가 있고 주변에 상권이 없어서 사람들이 많이 오가진 않는다. 2000년대까지는 강태공들의 성지와 같은 곳이었지만 2011년 낚시금지구역으로 지정되었다. 그런데도 늦은 밤 낚싯대를 드리우는 이들이 있는 모양인데 그들에게 경고(?)하듯 길치저수지와 반월호수는 귀신 목격담이 유난히 많다. 도심과 떨어진 저수지의 밤은 누구에게나 으스스하기 마련일 테다.


군포 시민의 휴식처 반월호수


규모가 큰 반월호수는 오래전부터 군포 시민의 휴식처로 통했다. 이웃한 의왕시가 왕송호수와 백운호수를 자랑한다면 군포시는 반월호수를 내세울 수 있다. 일산 호수공원이나 인천 송도, 청라신도시처럼 여러 신도시가 아파트 건축과 함께 일부러 호수를 만들어 신도시의 ‘가치’를 높인다는 데, 산본신도시는 자연 속 신도시라는 이미지에 맞춘 듯 호수를 품지 않고 곁에 두고 있다. 호수는 반월이라는 이름 때문에 군포시가 아닌 반월공단으로 유명한 안산시 관할이 아닌가 할 수 있다. 실제로 반월호수는 안산시 반월동와 군포시 둔대동 접경지역에 있다. 그래서 호수 남쪽 일부분은 안산시 반월동에 걸쳐 있기도 하다. 그런데 반월(半月)이라는 이름은 수리산 줄기의 속칭인 ‘반월산’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반월은 안산에 친숙한 이름이나 그 유래는 군포에 더 가깝다.


호숫가에는 몇 곳의 카페와 식당이 있고 호수 둘레를 잇는 산책로가 잘 갖춰져 있다. 총 3.4km의 둘레길은 한 시간 정도면 모두 돌아볼 수 있다. 판판한 데크길은 힘든 구간 없이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고 무엇보다 눈앞에 아파트나 높은 빌딩이 보이지 않아 완전히 자연 안에 묻힌 듯하다. 호수가 도심 외곽에 있는 덕분에 콘크리트 숲은 보이지 않고 시야는 푸른 산과 하늘로 채워져 편안하다. 호수 동쪽으로 경부선 고속철도가 지나고 있어 간간이 열차가 지나가는 모습만이 눈에 띈다.



반월호수가 축조되기 전 호수의 자리는 둔터마을이었다


많은 저수지가 그렇듯 반월호수가 축조되기 전 땅은 농가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현재 반월호수 북변에는 둔터마을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본래 마을의 면적은 지금보다 넓었고 지금은 물에 잠긴 땅이 둔터마을의 아랫말이었다. 호수 일대의 법정동명인 둔대동이 순우리말 둔터의 한자식 명칭이다. 호숫가 마을이 된 둔터마을의 윗말은 이제 행락객들을 손님으로 맞는 매운탕집, 백숙집 등의 식당과 카페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마을 깊숙한 자리에 오래된 집이 한 채 남아 있다. ‘둔대동 박씨고택’이다.



근대가옥으로 연구가치가 높은 호수변 박씨 고택 ©군포시


지난 2019년 군포 향토유적1호 지정을 기념하며 현판식이 거행되기도 했던 이 집은 1927년 건축되었다. 100년이 다 된 집이지만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전통적인 ‘ㅁ’자 형태의 가옥 구조와 규격화된 유리창과 철골 등이 어우러진 현대식 건축이 혼합된 근대 가옥으로 연구 가치가 높다.

이 집의 주인은 박용덕(1898~1970) 씨였다. 그의 할아버지가 군포 지역 일대의 손꼽히는 부자였던 덕분에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교사에게 신교육을 받았다. 마침 배재학당 출신의 가정교사 황삼봉 선생이 계몽운동에 뜻을 두고 있어 박용덕 씨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신식 교육과 종교 활동을 병행했다고 한다. 주민들이 모여 강습과 예배를 받던 곳이 바로 박씨 고택과 이웃한 둔대교회다. 박씨 고택을 나와 이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좁고 으슥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교회 모습과는 다른, 시골 가정집처럼 작고 아담한 외형의 교회가 있다.



반월호수 근처에 위치한 박씨 고택 ©군포시


둔대교회라 적은 나무명패와 입구의 아치형 철기둥에 달아 놓은 십자가로 겨우 교회임을 알아볼 수 있다. 야학 등 농촌계몽운동이 활발했던 장소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지만 아쉽게도 보수를 여러 번 거친 현재의 건물에서는 옛 예배당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박용덕 씨의 농촌계몽운동은 안산 샘골교회에서도 이루어졌다. 샘골교회는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인 채영신의 실제 모델인 최용신 선생이 활발한 농촌계몽운동을 펼쳤던 주무대이다. 샘골교회의 야학 강습소는 박용덕 씨가 본인 소유의 부지를 기증한 덕분에 설립될 수 있었다. 최용신 선생 또한 둔대교회를 여러 번 다녀갔다고 한다. 이후 박용덕 씨는 2019년 교육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 받았다. 호숫가 오래된 집의 사연이 호수보다 유구하고 웅숭깊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45권 『너머의 도시들- 경기 중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군포시 : 수리수리 마수리>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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