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참여기관/DMZ다큐멘터리영화제DMZ사무국갤러리위갤러리퍼플경기관광공사경기국악원경기도 문화유산과경기도문화원연합회경기도미술관경기도박물관경기도어린이박물관경기도자원봉사센터경기문화나눔센터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경기문화재단경기문화재연구원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경기상상캠퍼스경기상상캠퍼스그루버경기아트센터경기안성뮤직플랫폼경기창작캠퍼스경기천년경기콘텐츠진흥원경기현대음악협회경희대학교고양문화재단고양시해움새들광명문화재단광명시청년동광주시문화재단국립농업박물관군포문화예술회관군포문화재단군포시평생학습원극단날으는자동차나폴레옹갤러리단원미술관두루뫼사료관디마갤러리만해기념관맥아트미술관미리내마술극단미메시스아트뮤지엄백남준아트센터부천문화재단부천아트센터서해랑서호미술관설미재미술관성남문화재단세계민속악기박물관소다미술관수원광교박물관수원문화재단수원시립미술관수원시립합창단시서화시흥시청시흥에코센터실학박물관아트경기아트센터화이트블럭아트스페이스어비움안산문화예술의전당안양문화예술재단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양평문화재단엄미술관여주박물관영은미술관영집궁시박물관옆집예술용인시청유리섬미술관의정부문화재단이풀실내정원전곡선사박물관파주문화재단평택시문화재단포천문화재단포천아트밸리풀짚공예하남문화재단한국도자재단한국등잔박물관한국카메라박물관해움미술관현대어린이책미술관MOKA혜정박물관화성시문화재단

걷고쓰는사람

예술이 된 낙토, 안양예술공원 나들이

안양의 뿌리를 더듬는 여정


절터에 내린 도시의 뿌리

어느 고장이나 명당 혹은 영지로 불리는 땅이 존재한다. 대부분 자연 풍광이 아름답고 왕이나 이름난 학자들, 선사들이 한 번씩 지났거나 정주定住했거나 혹은 묻혔다. 안양은 이미 그 이름만으로 불교 세계의 낙토樂土와 같다. 불교에서 안양安養은 극락정토의 세계다. 일부 사찰에서 마주하는 안양루, 안양문의 안양이 이와 같다.

불교가 전파된 지 천년이 넘은 우리나라에서 불교 관련 지명은 열거하기도 벅찰 만큼 많다. 안양 역시 불성佛性이 느껴지는 이름이지만 상기한 이유로 대단히 특별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익히 알려진 지명 중에는 미륵불의 미彌, 아미타불의 아阿를 따온 서울 미아리, 부처님의 광명이 있다는 의미의 서울 불광동佛光洞, 새로운 절이라는 뜻의 서울 신사동(新寺洞) 등이 있다. 경기도에서는 탑이 많다고 해서 성남시 야탑동野塔洞, 연꽃의 다른 이름을 따온 양평 영서면 부용리芙蓉里, 부처님의 큰 자비가 있다는 의미의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大慈洞 등이 있다.



안양박물관에서 내려다본 안양사터 일원


그럼에도 안양의 지명을 짚고 갈 수밖에 없는 까닭은 지명의 뿌리가 고려 때 사찰인 안양사安養寺에서 기원했고 안양사터 주변이 안양의 역사, 문화, 예술의 거점이어서다. 안양의 뿌리를 가시적으로 보고 싶을 때, 안양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싶을 때 안양사터를 가지 않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안양사터는 오늘날 ‘안양예술공원’으로 불린다.



안양예술공원 초입에 자리한 중초사지 당간지주


안양예술공원을 꽤 자주 찾았다. 취재를 위해 처음 방문했고 그 이후에 좋아서 여러 번 갔다. 안양시민이 아닌 타지 사람이 ‘좋아서’ 찾으려면 그만한 매력이 있다는 의미다. 단순히 개인의 취향이 때문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공원을 이루는 다채로운 요소들이 통시적으로 유구하고 공시적으로 방대해서다.


풀장과 포도는 옛사람의 추억으로

안양예술공원은 안양 토박이들에게 ‘안양유원지’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고 중장년층에게는 공원 내 보양음식점들이 잘 알려져 있다. 간혹 ‘포도밭이 많던 곳’으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다. 1960~70년대, 안양예술공원은 서울과 수도권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피서지였다. 삼성산과 관악산에서 흘러 내려온 삼성천은 그 자체로도 천연 물놀이장이었지만 1932년 천에 바윗돌과 콘크리트로 둑을 쌓아 풀장을 만들면서 명소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서울과 지방 사람들까지도 안양유원지를 찾자 ‘안양풀장역’이라는 경부선 승강장이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원래 가장 가까운 역이 안양역이었으나 유원지까지는 2km가 넘는 거리로 걷기에는 멀었다.



삼성산과 관악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삼성천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풀장을 계획하고 조성한 사람은 1932년 당시 안양역장이었던 일본인 혼다 사고로였다. 피서객이 늘어나면 자연히 기차역 이용객이 늘어 수익을 챙길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었다. 풀장은 석수동 수영장(石水洞 水泳場)이라 불리며 안양유원지 전성기를 개막했다. 『탁류』의 소설가 채만식은 1940년 6월 5일 <매일신보>에 실린 산문 <안양복거기(安養卜居記)>를 통해 ‘여름 한 철이면 푸울(pool)과 포도와 수박으로, 그 밖에도 관악산 하이킹의 초입처로 두루두루 서울 주민들에게 잘  알려진 그 안양’이라고 쓴 바 있다. 그는 1940년부터 그 이듬해까지 안양에 살았다.



 김중업이 설계한 옛 유유제약 공장을 재단장해 개관한 안양박물관


안양유원지의 풀장이 안양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시기는 제법 길었다. 1969년에는 국민관광지로 선정되었고 70년대에 들어서서도 휴일에는 하루 5만 명이 안양유원지를 찾을 정도로 성시였다. 풀장뿐만 아니라 깊은 계곡 안쪽까지 물놀이하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천변에는 돗자리와 파라솔이 늘어섰고 근처 과수원에서 산 포도와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때만 해도 안양포도는 꽤 유명한 안양의 특산물이었다.

그렇게 30년 넘게 이어지던 안양의 여름 명소는 70년대 들어 조금씩 쇠락하기 시작했다. 이 일대가 개발제한구역, 도시자연공원 등으로 지정되면서 신축과 재건축이 까다로워졌고 피서객들로 인해 오염된 천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았다. 상류에 맘모스풀장, 만안각 풀장 등 인공풀장이 들어서면서 오염은 더욱 심각해졌다. 그러다 1977년 기록적인 대홍수로 상류에서 토사와 자갈이 쏟아져 내려와 기존의 천연수영장과 천변이 크게 훼손되었다. 이즈음 자동차가 크게 늘고 전국 곳곳에 안양유원지를 대체할 피서지들이 생기면서 안양유원지의 명성은 사라지고 1984년에는 국민관광지 지정마저 취소되었다. 그나마 삼성산 등산객들과 사찰 불자들이 오가면서 천변의 몇몇 식당들만이 유원지의 명맥을 유지했다.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로 안양예술공원에 설치된 미국의 아콘치 스튜디오의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


1999년에 이르러서야 안양시의 환경개선사업으로 하천 주변이 정비되고 공원을 탈바꿈하는 계획이 수립되기 시작했다. 재단장될 안양유원지의 테마는 ‘공공예술’이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공공예술이 일상적이고 대중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빌딩들 앞마당엔 건축법에 따라 으레 조각이 하나씩 서 있지만 바쁜 시민들의 발길을 잡지 못하고 일회적으로 열리는 거리, 광장의 예술축제만이 반짝 이목을 모을 뿐이다. 그러니 안양유원지를 공공예술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안양시의 선포는 다소 낯설 뿐만 아니라 예산만 낭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수반되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는 없는, 안양만의 ‘아트밸리’를 갖추고자 했던 다수의 욕망이 결국 2005년,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Anyang Public Art Project)라는 결실을 보았다. 민관이 협력해 하나의 틀을 짜고 예산을 만들고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섭외하고 또 작품들을 만들어 배치하기까지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했을지는 속사정을 듣지 않았어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안양예술공원의 상징과 같은 안양파빌리온과 덴마크 작가 미카엘 엘그린과 잉거 드락셋의 작품 공중전화부스 활용 작품 <나는 당신을 생각합니다>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이하 APAP)는 직접 작품들을 접하면서 후술하기로 한다. 어쨌든 안양유원지는 대대적인 탈바꿈으로 2005년 안양예술공원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60점 이상의 작품이 공원 곳곳에 자리해 지붕 없는 갤러리가 되었고, 이후 공원 초입에 문을 연 안양박물관, 김중업건축박물관이 지붕이 생겨도 무너지지 않을 든든한 기둥이 되어 주었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45권 『너머의 도시들- 경기 중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안양시 : 예술이 된 낙토>에서 발췌했습니다.

글쓴이
걷고쓰는사람
자기소개
경기도 구석구석을 걷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누리집
https://www.youtube.com/@yooseungh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