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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쓰는사람

가깝고 먼 도시, 익숙하고 생소한 도시

평택역 앞에 서서


가깝고 먼 도시, 익숙하고 생소한 도시

기실 이웃한 도시들, 나라들의 사이가 보기 좋은 경우는 드물 듯, 안성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도 평택은 가깝고도 먼 도시였다. 토박이 어르신들은 안성장시의 규모라든가 한양으로 가는 사통팔달의 길목이었다든가 하는 안성의 옛 명성을 들어 ‘평택과 다른’ 근본을 내세우기도 한다. 상수원보호구역 갈등, 안성 한경대와 평택 복지대 통폐합 문제, 평택시의 안성천 명칭 변경 추진 등 실제 지역 간 문제도 꾸준히 있었다. 지역 간 경쟁 심리가 오랜 세월 은근하게 작동해온 것인데 요즘 세대들은 부동산 호재에 관련한 것이 아닌 이상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 않다. 안성에서 나고 자란 나로선 안성을 편애할 수밖에 없는데 특히 평택과 접경한 안성의 서쪽 끝 공도읍에 거처를 마련한 뒤부터 생활권이 평택으로 확장되면서 이웃 도시에 관한 관심이 증폭됐다.     



평택역 앞 평택 오거리 풍경 


개인적으로 평택은 서울 이전의 ‘첫 번째 도시’였다. 백화점도 있고 대형 극장도 있으며 기차도 다니는, 안성보다 훨씬 번화하고 세련된 도시였다. 좀 논다는 아이들은 평택 도심으로 나가 놀았다. 그러한 이미지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굳혀져 있었다. 내가 아는 평택은 아주 일부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행작가로 한참 일하며 취재로 미군기지가 인접한 신장동과 평택항이 있는 포승읍 일대를 드나들면서였다. 여느 고장이나 동네마다 분위기는 다르기 마련이지만 평택은 지역마다 그 색깔의 차이가 유난했다. 특히 1995년에 평택시에 통합된 송탄은 여전히 별개의 지자체처럼 느껴지고 포승은 바다와 접해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마다 새롭다. 어디까지나 이웃한 내륙 고장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의 고정관념일 테지만 평택을 조금 다녀본 이라면 이 지역의 색채 스펙트럼이 무척 넓다는 점을 인정할 것이다.   


내게 ‘익숙한 평택’이란 평택을 3등분으로 나누었을 때 동남쪽에 해당하는 시가지다. 평택역을 중심으로 번화한 통복동, 비전동, 세교동 일대로 대부분 아파트로 이루어진 여느 평범한 도심이다. 요즘은 평택 하면 대기업 생산공장들이 모여 있고 대단지 아파트들이 신축된 고덕국제신도시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를 포함한 대다수 사람은 평택역이 자리한 원도심을 먼저 떠올린다. 고덕국제신도시가 있는 송탄 일대나 평택항이 있는 안중, 포승 중심의 서부지역에 비해 원도심이 차지하는 평택의 면적은 작은 일부일 뿐이다.  



미군기지가 인접한 신장동 일대. 현재는 이곳보다 캠프 험프리스와 인접한 팽성읍 안정리 일대가 좀더 번화하다. 


평택역에서 평택 사람 찾기

‘평택 사람’은 평택역 주변에 산다. 그럼 송탄과 안중에 살면 평택 사람이 아니란 뜻인가? 그들은 그들 스스로 송탄 사람, 안중 사람이라 소개하고 또 그렇게 불린다. 오랫동안 그리 해와서 여기 사람들은 ‘평택 살아요?’하고 물었을 때 ‘아니오. 송탄 살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와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서울 살아요?’ 물었는데 ‘아니오. 강남 살아요’라고 대답하면 질문한 누구라도 얼굴에 물음표가 생기겠지만 말이다. 현재는 평택으로 묶인 지역들, 즉 송탄과 안중, 포승, 청북 등 평택 서부지역 일대가 과거 서로 다른 지자체로 존재했던 이유가 크지만 비단 평택뿐만이 아니라 서울 외 많은 지자체의 시민들은 시청이 소재한 원도심과 그 외 지역을 아예 다른 동네처럼 분리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아무리 동네가 달라도 한 이름으로 묶이는 동향(同鄕)의 정이 왜 없겠냐마는, 장 보러 가는 읍내가 서로 다른 와중에 강이나 산이 경계를 긋고 있으면 그 거리감은 서울보다도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물며 평택 사람에게 바다는 아득하고 포승 사람에게 바다는 코 앞이니 사람을 가르는 것이 안성천과 진위천 때문만은 아니다.

평택 사람에게 평택의 중심지 혹은 이정표 역할을 해줄 기준점을 묻는다면 누구나 평택역을 가리킬 것이다. 평택역은 덩치가 크다. 수원역처럼 백화점이 역사(驛舍)를 안고 있다. KTX는 서지 않지만 서울과 삼남을 오가는 무궁화호, 새마을호가 평택역에 정차한다. 서울서부터 아산까지 오가는 1호선 전철 또한 수시로 다닌다.



백화점과 연결되어 있는 평택역 


기차를 타기 위해 평택역을 자주 드나드는 내게는 개인 생활 반경에서 사람들의 밀집도가 가장 높고 심야를 제외하고 온종일 번잡한 곳이다. 역 근처에 다다르면 몸이 살짝 경직되면서 발걸음이 빨라진다. 열차 시간 때문이 아니라 유유자적 여유를 부릴만한 환경이 못 된다. 광장에는 후원을 호객하는 각종 봉사단체와 수상한 종교인들, 이따금 농성을 벌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그 사이로 인종도 나이대도 다양한 사람들이 역사를 오르내린다. 역 광장 앞으로는 평택 시내를 지나는 거의 모든 버스가 정차하고 오거리에서 뻗어나간 다섯 갈래 길목으로 촘촘한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평택역을 품은 AK백화점은 평택에서 가장 큰 쇼핑몰이고 고속버스터미널과 시외버스터미널이 평택역과 이웃한다. 도시에 있어야 할 필수 요소들이 역 주변에 ‘몰빵’되어 있다. 수도권과 대도시의 도심역 주변과 닮은, 사실 새삼스러운 것도 없는 풍경이지만 혹 경기 최남단이라고 한적한 소도시 역을 생각했다면 다소 놀랄만한 혼잡함이다. 하물며 KTX도 서지 않는 역인데 말이다. 경기 남부의 관문은 다른 여지 없이 평택이다.



평택항이 있어 국제 무역도시로도 활약하는 평택 


평택역은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개업했다. 당시 행정구역은 진위군 병남면 통복리였다. 현재 역사보다는 안성천 쪽으로 조금 더 치우쳐 있었고 주변은 민가조차 드문 황무지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오히려 구도심과 먼 위치 때문에 일본인들의 정착이 유리했고 안성천 수로를 통해 평택평야의 쌀과 아산만에서부터 들어온 해산물 등을 받아들이기 편했다. 1910년 이후 역 서쪽으로 시가지가 몸집을 키워나갔고 일본인 상업지구가 생기며 인구가 급증했다. 그 결과 경기 남부의 중심 상업지구였던 안성시장은 규모가 축소되고 상인들은 평택역 앞 일본인 거리인 본정통과 새로 개설된 평택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수순이었다. 이후 평택역 주변은 교통, 금융, 상업, 교육의 중심으로 발달해갔다. 일본에 의해 1931년 평택역이 자리한 진위군 병남면은 진위군 평택면이 되었고 1938년 행정구역을 조정하면서 진위군은 평택군이, 평택면은 평택읍이 되었다. 근대도시 평택은 점점 덩치를 불려갔다. 기찻길은 도시의 발전을 가속화시켰지만 평택은 기찻길 이전에 이미 해상무역로와 한양으로 향하는 대로가 나 있는 글로벌 도시였다. 평택역을 기점으로 한 평택에서의 여정은 바다와 옛길을 둘러보며 국제도시의 원류를 찾는 시간이 될 것이다.    



평택 중심가에 자리한 배다리저수지. 주변은 온통 아파트단지다.  


AK백화점의 옥상정원에 오르면 평택역 오거리와 역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역 앞에 섰을 때는 어수선하기만 느껴졌던 도심의 모양새는 새의 시야에서 반듯한 선과 각으로 구획된 정돈된 모습이다. 비로소 발에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세상살이는 늘 그런 식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말을 나는 곧잘 높은 빌딩 전망대나 산 정상에서 곱씹곤 한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을 나가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고작 수십, 수백 미터의 물리적 높낮이 차이에도 마음의 질량이 달라진다.  


사람들이 급물살처럼 밀려왔다 멀어지고 들이쳤다 나아간다. 역을 빠져나가는 이들의 외양으로 그들의 목적지를 추측해본다. 저 흑인은 험프리스 미군기지로, 저 청년은 고덕산업단지로, 저 아이 엄마는 소사벌 아파트단지로….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철로가 놓이기 전, 삼남과 한양을 잇던 옛길 삼남길이 평택역에서 동쪽으로 3km쯤 떨어진 소사벌을 지난다. 현재 도보코스로 정비된 경기옛길 삼남길의 끄트머리다. 삼남길에 이르기 전에는 배다리저수지를 만난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41권 『우리들의 캠퍼스- 경기 남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평택시 : 정주, 이주, 유랑의 광장>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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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석구석을 걷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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