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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쓰는사람

피판의 도시, 판타지아 부천

부천, 축제의 계절이 돌아왔다


원미동으로 대표되는 ‘삶의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도시 부천을 대중이 주목하게 된 계기는 놀랍게도 ‘판타지fantasy’였다. 판타지란 무엇인가. ‘착각으로 보이는 것’이란 뜻의 프랑스어 ‘fantaisie’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오늘날 현실과 다른 왜곡된 요소, 공상 혹은 상상의 산물을 뜻한다. 보통 소설, 만화, 영화, 게임 등의 매체에서 하나의 장르로 분류한다.


부천의 공식 슬로건은 ‘판타지아 부천’이다. 판타지아fantasia의 사전적인 뜻은 형식의 제약을 받지 않고 악상의 자유로운 전개로 작곡한 낭만적인 악곡으로 환상곡을 가리킨다. 실제 쓰임은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무드를 표현하는 ‘판타지’와 비슷한 맥락으로 폭넓다. 부천은 어쩌다가 환상성의 도시가 되었는가.



사진=부천시


2023년,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ucheon International Fantastic Film Festival)는 총 51개국 262편의 작품이 출품돼 부천시청 잔디광장·어울마당, 판타스틱큐브, 한국만화박물관, CGV소풍 등에서 11일간 14만여 명의 관객들을 만났다. 온라인을 통해서도 축제에 ‘로그인’해 상상력이 발휘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어 영화마니아들의 호응이 잇달았다.


혹자는 상영 장소만 부천에 모여 있을 뿐 부천의 정체성은 알기 어려운 행사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프랑스의 작은 휴양도시 깐이 깐느영화제(Cannes Film Festival)의 무대로 얻은 세계적 명성을 상기하면 판타스틱영화제, 나아가 영상예술 그 자체를 곧 부천의 정체성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더욱이 예술 도시로서 그 입지를 단단하게 다져주는 또 하나의 대형 이벤트,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ucheon International Animation Festival)도 있다.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은 2023년 제25회를 맞이했고 10월 21일부터 25일까지 닷새간 부천만화박물관과 부천시청 잔디광장 등을 중심으로 36개국 118편의 애니메이션 작품을 선보였다. 보다시피 두 영화제 모두 20대 중반을 훌쩍 넘긴 청년의 나이가 되었다. 아장아장 성장하던 시기는 이제 지났고 이제 온전하게 자리를 잡고 도약하는 시기에 접어든 것이다.



사진=부천시


1997년 시작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1999년 시작한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 국내를 대표하는 영상 축제로 안착한 시기는 2000년대 후반이다. 그 명성이 매년 높아져서 장르영화에 관심이 없던 나 같은 사람들도 ‘피판(PiFan, Puchon International Fantastic Film Festival의 줄임말)’은 알았다. 피판은 부천의 로마자 표기가 바뀌면서 2015년 ‘비판(BiFan, Bucheon International Fantastic Film Festival)’으로 바뀌고 공식 호칭은 ‘비팬’이 되었지만 여전히 피판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연혁을 되짚어 보면 부천은 꽤 오랜 시간, 부단하게 도시 브랜딩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그 결실로 ‘판타지아 부천’을 새롭게 창조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과거 원미동으로 상징되는 부천 소시민의 일상과 오늘날 영화제로 대표되는 스크린 속 판타스틱한 가상현실은 간극이 크다. 따라서 부천이 물리적으로 눈에 보이는 장소를 ‘판타스틱’하게 연출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이를 사람들도 당연하게 수긍한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판타지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상상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순간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천이 할 수 있는 것은 왈순아지매 동상을 자유시장 입구에 세워두고 송내역 로데오거리에 둘리 동상(현재는 철거되었다)을 세워두는 정도다. 2017년, 송내대로 주변 아파트 외벽에 선보인 만화벽화는 꽤 신선한 볼거리이긴 했다.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외관은 만화책의 한 페이지를 보는 듯 순정만화 속 주인공이 채색되고 웹툰 속 귀여운 얼굴이 ‘만화도시 부천!’을 외치는 말구름이 그려지기도 했다. ‘판타지아 부천’을 홍보하는 일종의 광고판이다.



2025년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영리한 도시 브랜딩이다. 도시 안에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볼거리가 부족해도 ‘판타지아 부천’은 상관없다. 부천이 지향하는 이미지는 핸드폰이든 극장 스크린이든 이북이든 ‘ON’ 버튼만 누르면 재생할 수 있는 콘텐츠가 무궁무진하게 생산되는 판타지아다. 꼭 결과물이 있어야 할 필요도 없다. 상상하기 좋은 도시, 공상이 자유로운 도시로 대중에 인식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적이다. 문득 평범한 사회 일원으로 일상생활을 하다가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남몰래 변신해 초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슈퍼히어로가 떠오른다. 슈퍼히어로는 원미동 연립주택에 거주할 수도 있고 부천역 앞 광장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판타지는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창조되기 마련이다. 해마다 열리는 영화제는 숨어있던 슈퍼히어로에게 스크린과 무대에 설 기회를 주고 슈퍼히어로의 활약을 상상하던 관객들을 모으는 장으로 이 도시가 ‘판타지아 부천’임을 한 번씩 일깨운다. 영화제는 또한 판타지아 부천이 단지 슬로건에 그치지 않는 문화적 실체로 존재함을 증명한다.



사진=부천시


다른 도시들이 역사와 전통에서 정체성을 찾고 관광자원을 개발할 때 부천은 무형의 자원을 도시 안으로 들이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 원미동을 문학으로 옮긴 것은 작가 개인의 선택이었고 소설의 인기로 도시 지명도가 상승한 것은 우연의 산물이었지만, 장르영화와 애니메이션의 판을 깐 것은 도시의 적극적인 의지였다. 더욱 주목할 만한 부분은 종합영화제가 아닌 판타스틱영화제를 내세워 고유성과 특수성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더욱이 부천시가 안목이 있었는지 시대가 흐를수록 영화는 물론 여러 예술 장르에서 판타지, SF의 인기는 더욱 올라가고 있다. 더욱이 판타지에 만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장르다. 영화 이전에 만화가 있었고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구현한 판타지 세계 이전에 손으로 그려낸 네모 안의 판타지가 있었다. 실사 영화 속 장면에 갑자기 2D 만화 캐릭터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장르가 판타지 영화다. 오늘날 부천은 확실히 ‘원미동의 부천’보다는 ‘피판의 도시’, ‘판타지아 부천’으로 이미지를 굳혔다.


부천은 소위 특색 없는 도시들이 어떻게 도시 브랜딩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모범 사례가 되었다. 숱한 국내 도시들이 브랜딩을 한답시고 몰개성한 홍보에 집중하고 대규모 예산 대비 무용한 시설들을 설치하는 등의 아쉬운 사례를 많이 보아왔기에 부천의 사례가 자랑스러울 정도다. 혹자는 판타지 영화와 만화를 내세우는 부천을 일컬어 ‘오타쿠의 도시’로 부르기도 한다. 주로 만화나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 등 특정 대중문화에 몰두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 단어 오타쿠オタク는 일본에서 유래한 단어이지만 이제 ‘덕후’, ‘덕질’ 등의 신조어로 우리나라에 정착했다. 그러면서 특정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가 됐든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명실상부 덕후의 시대가 도래했고 덕후가 성공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해서 나는 부천을 오타쿠의 도시라고 부르는 현상 또한 매우 긍정적으로 본다. 도시가 숨은 덕후들에게 ‘판’을 깔아주면 덕후들은 알아서 저들의 문화를 확장시켜 간다. 덕후들에는 당연히 영화와 만화를 만드는 예술인과 관련 제작자들도 포함된다. 말하자면 이 덕후판은 가물지 않는 샘물과 같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45권 『너머의 도시들- 경기 중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부천시 : 리얼리티와 판타지>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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