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걷고쓰는사람

옛것에 새것을 버무려

이천 예스파크로 떠난 나들이


이천 예스파크는 이천도자예술마을로도 불린다. 홍보물이나 기사를 보면 명칭을 함께 적는데 앞서 세라피아 사례도 있었듯 명칭을 하나로 확정하고 그 이름이 우리말 명칭이면 더욱 좋겠다. 고민을 거쳐 정한 이름이겠지만 예스파크라는 이름에선 도자도 이천도 떠올릴 수 없다. 내실을 갖췄다면 파주의 헤이리 예술마을처럼 직관적인 이름이 훨씬 좋지 않을까.




예스파크가 위치한 곳은 이천 도자문화가 부활한 신둔면이다. 칠기가마가 있었던 수광리와 3km 정도 떨어진 신둔면 고척리 40만㎡(약 12만 평) 부지에 예스파크가 들어서 있다.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신도시 빌라촌에 들어선 느낌이라서 어디를 어떻게 둘러봐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차가 없으면 방문하기 까다로운 위치인데다 보행 친화적으로 설계되지 않아 차도를 중심으로 구획된 거리를 두리번댔다. 도로변에 인도가 있긴 하지만 도로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마음 놓고 걸어 다닐 수 있는 ‘파크’는 결코 아니다. 녹지 많은 설봉공원이 그리워졌다.




방문자가 아닌 이곳에 상주하는 예술가 측면에서 보면 편리한 구조인지도 모른다. 도자 작품은 무겁고 주의해서 다루어야 하므로 이를 운반하기 위한 자동차 출입이 공방 앞까지 자유로워야 할 테고 늦은 시간까지 작업하는 사람들은 자가용 이용이 필수일 것이다. 그러나 예스파크는 도자기 생산단지가 아니다. 대부분 공방이 제품 판매와 체험 행사를 운영하는 중이고 예스파크의 설립 취지 역시 예술가와 방문자가 상생할 수 있는 종합예술마을이다. 마을을 즐기는 보행자를 위한 산책로와 넓은 광장, 마을의 중심축이 될 수 있는 복합문화시설이 조성되었다면 어땠을까.




한편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도예마을인 사기막골 도예촌은 예스파크에서 차로 10분 떨어져 있다. 예스파크의 등장으로 전보다 방문객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규모만 다를 뿐 같은 기능을 하는 곳이라 그렇다. 그나마 이천도자기축제 때 행사가 열려 예스파크의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 뭔가 차별화가 되면 좋으련만 오래된 도예촌이 더 위축되는 것 같아 아쉽다. 사기막골 도예촌은 산자락에 있어 자연 속에 동화된 느낌이다. 공방은 40여 개로 이미 예스파크를 돌아본 이에게는 심심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도 대부분 20년 이상 된 공방들이라 그 나름의 예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예스파크는 가마마을, 회랑마을, 사부작마을, 별마을, 카페거리 등 크게 5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카페거리를 제외하고 대부분 구역은 공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자를 중심으로 공예, 미술, 음악, 조각, 사진, 한지, 옻칠 등을 주제로 240여 개 공방이 들어서 있다. 건물들도 획일적이지 않은 설계로 서로 다른 외관을 자랑한다. 상주 예술인은 약 500명이다. 공방 안팎으로 작가의 개성이 드러난 다양한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화분, 화병, 그릇, 다기 등 실용적인 제품과 감상과 장식을 위한 작품들도 보인다. 물레 체험, 핸드 페인팅 등의 과정을 통해 도자기를 직접 만드는 일일 강좌는 여러 공방에서 운영한다. 그중에는 이천시 도자기 명장이 운영하는 공방도 여럿이다. 즉흥적으로 마음 가는 공방에 들어서도 좋지만 예스파크 홈페이지에서 공방 정보를 미리 알아보고 가면 도움이 된다.




2018년에 문을 연 예스파크는 어느덧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이천에 거주하는 예술인의 연대가 전보다 긴밀해졌고 개별적으로 작은 전시나 이벤트를 기획하는 일도 잦아졌다. 이천도자기축제의 주 무대는 설봉공원에서 예스파크로 옮겨왔고 국제 도예 교류전 등 도자 관련 행사도 종종 개최한다. 마을별로 공예품 전시와 노천 시장, 체험 행사 등을 벌이고 때때로 공연도 열린다. 따라서 신도시 빌라촌이 아니라 볼거리가 다양한 마을을 경험하고 싶다면 미리 행사 일정을 알고 가는 편이 좋다. 행사가 없을 때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수에게 더 좋은 방향으로 달라지리라 믿는다.





예스파크의 공방거리를 모두 둘러본 이들이 향하는 마지막 장소는 주로 카페거리다. 파크 내에서 목도 축이고 궁둥이도 붙일만한 유일한 장소다. 그중 달항아리와 돌, 한지 등의 소재를 이용해 한국 전통 디자인을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의 인테리어로 ‘SNS 인증사진’ 성지로 불리는 한 카페를 찾았다. 듣던 대로 전체적인 설계와 실내 장식에 신경 쓴 티가 역력한 카페였는데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메뉴였다.




치장에만 전념하느라 정작 음료와 음식은 질이 떨어지는 카페가 태반인데 이곳은 지역성을 살린 메뉴로 이천시의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있었다. 대표메뉴는 쌀밥빙수다. 밥 짓는 솥 모양으로 맞춤 제작한 용기에 곱게 간 우유빙수가 쌀밥처럼 수북하게 담겨 나온다. 마치 반찬처럼 세 개의 종지에 팥, 튀밥, 인절미도 함께 나온다. ‘반찬’을 끼얹어 먹다 보면 솥 바닥에는 누룽지를 표현한 캐러멜시럽에 버무려진 견과류가 등장한다. 비주얼과 맛 모두 훌륭하다. 이 디저트를 개발하기까지 오랫동안 고심했을 것 같다. 옹기 티라미수도 돋보인다. 작은 옹기에 수북하게 담은 티라미수 표면의 코코아가루가 마치 흙처럼 보였다. 한 가운데 허브잎을 꽂아 작은 화분 같기도 하다. 쌀알처럼 만든 쌀케이크, 이천의 또 다른 특산물인 복숭아로 만든 복숭아케이크도 있다. 이천의 특산물을 실제 원료로, 그리고 형태로 표현한 참신한 디저트 메뉴에 여러 번 감탄했다. 카페에 들러 디저트를 먹은 이라면 누구라도 ‘이천’이 각인될 수밖에 없으리라.




지역홍보와 지역경제 살리기를 담당하는 것은 그럴듯한 이름만 지어놓은 둘레길도, 모양만 달리한 팥빵도, 여기저기 걸어놓는 출렁다리도 아니다. 새것에 옛것을 버무릴 줄 아는 아이디어다. 그러려면 베끼지 말아야 하고 묻어가지 말아야 한다.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카페에 앉아 요즘 시대에 전통을 이어가는 방식, 지역성을 잃지 않는 법에 대해 생각했다. 좋은 아이디어는 또 다른 아이디어를 낳는 법이다. 예스파크 전체가 이곳 카페처럼 새로운 자극을 주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41권 『우리들의 캠퍼스- 경기 남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이천시 : 흙,물,불,혼>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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