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걷고쓰는사람

바다가 흐르는 강

김포의 조강, 한강, 염하에서


이방인이 김포시를 전체적으로 훑어본다고 했을 때 애기봉은 삼각형의 가장 높은 꼭짓점이 될 수 있다. 나머지 두 꼭짓점은 서쪽의 대명포구, 동쪽의 장릉이다. 장릉으로부터 애기봉까지 올라왔으니 다음 행선지는 해가 지는 방향이다.



애기봉평화생태공원 전경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을 마지막으로 ‘DMZ 평화의 길’ 걷기 행사가 끝나자 담당자는 참석자들에게 전하는 선물로 백미, 현미, 흑미가 든 쌀 세트를 건넸다. ‘약곡’이라 이름 붙인 쌀이라서 그러지 귀하게 보였다. 김포 최북단 2개 면인 하성면과 월곶면에서 생산한 김포쌀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강신도시를 벗어난 후로 시야에 들어온 풍경은 내내 논이었다.



추수를 끝낸 김포평야는 철새들의 차지가 되었다.  


경기도에서 쌀하면 이천, 여주가 먼저 떠오르지만 김포 역시 김포평야로 대표되는 곡창지다. 평택은 반도체가 평택쌀을 쉬이 잊게 하고 김포는 공항(심지어 김포에 없는)과 한강신도시의 이미지가 김포쌀을 잊게 한다. 동국여지승람에서 김포를 ‘북쪽으로 한강하류에 임하여 토지가 평평하고 기름져 백성이 살기 좋은 곳’으로 묘사한다. 조강과 한강, 염하강 유역의 촉촉한 땅에서 김포에서는 5,000년 전부터 벼농사를 지었다. 강과 바다와 농지를 가진 이 고장은 얼마나 윤이 나고 풍요로운가.



썰물 때 모래톱이 드러난 조강 풍경


추수가 끝난 논을 바라보며 나아간 길 끝에는 염하강, 아니 염하가 가까워져 있었다. 내가 만난 김포 사람들은 염하를 자연스럽게 염하강이라 불렀는데 염하(鹽河)의 하가 강 하(河)자이므로 역전앞처럼 겹말이 된다. 염하는 인천광역시 강화도와 김포시 사이에 흐르는 좁은 해협이다. 짠 바닷물이 흐르는 강과 같다 하여 염하라고 불리게 되었다. 총길이는 약 22km, 폭이 좁은 곳은 200~300m, 넓은 곳은 1km 정도다. 염하가 아닌 강화해협이라는 지명이 더욱 명확하고 공식성을 갖는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프랑스가 조선을 침략한 병인양요(1866년) 때 프랑스 군인들이 염분이 있는 강(Rivière Salée)이라 일컬어 바다 지도에 썼고 이것이 일본에 전해지면서 염하라 번역되어 현재까지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침략자가 정한 이름이라는 점, 해협이 강으로 잘못 알려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염하라는 이름은 그만 써야 한다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의견이다. 그런데 염하라는 이름을 먼저 접해서인지, 또 강화해협이란 직관적인 이름이 딱딱하게 느껴져서인지 소금강이란 뜻의 염하가 입에 더 붙는다. 기암괴석이 있는 산이라면 죄다 소금강(小金剛)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의 어느 산이 아니라 소금江이다. 바닷물이지만 수변에서 보기에는 영락없는 강이다.



 DMZ 평화의 길 김포코스 중 평화누리길 3코스를 걷는 사람들 


조선시대 삼남 지방에서 올라오는 세곡선들은 염하를 거슬러 올라 조강으로, 조강을 통해 한강으로 들어갔다. 그중에는 북한 신의주까지 올라가는 배들도 많았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는 흉흉하고 어수선한 날이 여러 날이었다. 이곳에서 병인양요가 일어났고 그로부터 5년 후에 신미양요가 일어났다. 병인년, 프랑스인 신부 9명을 처형한 병인박해에 대한 항의를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한 프랑스 해군은 함대를 몰고 두 차례에 걸쳐 염화에 진입했다. 1차 침입 때는 도성을 불과 10리 앞둔 양화진까지 들어갔다가 퇴각했고 2차 침입 때는 강화도를 점거한 후 조선군과 싸워 패한 뒤 철수했다. 이때 이들이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되었던 왕실 도서와 문화재들을 약탈했다. 2011년, 재불 사학자였던 박병선 박사의 오랜 노력 끝에 그 일부가 ‘임대’ 방식으로 돌아왔다.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군의 군함 역시 염하로 진입했다. 미군은 강화도 초지진을 함락했고 광성보를 공격했다. 격전 끝에 미군이 물러났지만 조선군의 피해가 막심했고 이는 대원군의 쇄국책이 한층 강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염하에서 방어에 실패하면 수도가 함락되는 것은 시간문제였기에 염하를 따라 강화도와 김포 해안가 양쪽에는 군이 주둔한 포대와 돈대, 산성 등 방어시설이 여러 곳 축조되었다.



문수산성. 사진=김포시


애기봉에서 자동차로 20분, 걸어서 3시간 20분 떨어진 염하 해안가에 문수산성이 있다. 염하와 조강이 만나기 전, 적이 한강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마지노선의 방어시설이다. 애기봉에서 문수산성까지 이어진 길은 평화누리길 2코스 조강철책길이다. 수변보다는 밭길, 산길, 마을길을 주로 걷는 8km의 이 코스는 또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겠지만 나는 차량으로 움직였다. 완연한 가을, 낮이 짧아 해가 지는 시각이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45권 『너머의 도시들 - 경기 중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김포시 : 한강, 조강, 염하>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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