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걷고쓰는사람

비로소 이름을 부른다

서울대 안양수목원을 돌아보며


안양예술공원의 구성을 큰 분류로 나누면 초입에는 박물관단지, 중간에는 열린 미술관, 마지막에는 수목원이 있다. 사실 수목원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이들도 많다. 오랫동안 비공개 연구용으로 감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입장이 자유롭지 않고 가을에 한시적으로 개방되었던 서울대학교 관악수목원은 서울대 안양수목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지난 2025년 11월 5일부터 시민에게 전면 상시 개방되었다.  





서울대 안양수목원의 전신은 1907년, 현재 경기상상캠퍼스가 자리한 수원의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부지에 조성한 수원농림학교 수목원이다. 현재 자리에 안양수목원이 조성하기 시작한 해는 1967년이고 1971년에는 대통령령으로 설치가 공표되며 수목원의 모습을 갖춰갔다. 그때 심은 나무들은 이제 지천명을 넘겼으니 완연한 중년이다. 하늘을 받칠 만큼 높이 뻗고, 깊이 뿌리 내린 나무들이 따로 또 같이 수목원에 산다. 귀룽나무, 물푸레나무, 서어나무, 노간주나무, 벚나무, 황벽나무, 개암나무, 때죽나무···. 산에 가면 한 번씩 스쳤을 나무들인데 이곳에서 비로소 이름을 부른다.




수목원은 1.6km의 넓은 산책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한두 그루씩, 혹은 군락을 이루어 다양한 나무들이 이름표를 달고 서 있다. 연구와 보전, 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었던 만큼 경관에 신경썼다기 보다는 다양한 식물을 갖추었음을 볼 수 있다. 그래도 전면 개방한 만큼 이런저런 시민 이벤트가 열리는데, 마침 내가 방문했을 때는 손님맞이 행사로 수목원 입구에서 부스를 만들어 녹차를 대접하고 아로마오일을 이용한 손 마사지 강습을 열고 있었다. 행사를 진행하는 숲해설사들의 설명에 따라 차를 천천히 음미하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하루도 쉬지 않는 기특한 손을 주물러 줬다. 마무리는 두 팔로 내 어깨를 감싸고 스스로 토닥여 주기. 나무들 사이에선 모두가 품이 넓어진다. 사람들도 예쁘고 나도 예쁘고 모든 게 아름답다.




삼성천을 따라 수목원 후문 쪽으로 걷다 보면 계곡과 언덕길이 나온다. 계곡은 내내 곁에 흐르고 있던 삼성천이다. 수목원 내에는 2001년 설치한 삼성천보도 있다. 이곳의 식물들은 날씨가 가물어도 보가 있어 걱정 없다. 개느삼, 깽깽이풀, 망개나무, 모감주나무, 미선나무 등 관악수목원에는 멸종위기 및 희귀식물도 많다.




수목원 후문에 다다르면 비산동 도요지라는 표석과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수목원 면적의 30% 정도가 걸쳐있는 안양시 비산동 일대는 11~14세기에 걸쳐 도요지가 있었다. 대접, 접시, 항아리 등 생활 용기로 쓰였던 청자와 상감과 음각문을 새긴 백자 조각도 다수 발견되었다. 비산동 도요지는 서울 근교에서 발견된 유일한 고려 청자요지이며 국내 유일의 고려 후기 백자 가마터라 우리나라 도예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돌을 쪼는 사람도, 흙을 빚는 사람도 모두 안양 삼성산 자락에 모여 있었던 모양이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45권 『너머의 도시들 - 경기 중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안양시 : 예술이 된 낙토>에서 발췌해 현재 상황에 맞게 일부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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