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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조(정의)
본 가이드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지지씨’는 경기도 소재 문화예술기관의 생산자료 등록과 확산을 위해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온라인 아카이브 플랫폼입니다.
② ‘회원’이란 소정의 가입 승인 절차를 거쳐 지지씨 글쓰기 계정(ID)을 부여받고, 지지씨에 자료 등록 권한을 부여받은 경기도 소재 문화예술기관 및 유관기관을 의미합니다.
‘생산자료(=콘텐츠)’란 ‘회원’이 지지씨 플랫폼 상에 게재한 부호, 문자, 음성, 음향, 그림, 사진, 동영상, 링크 등으로 구성된 각종 콘텐츠 자체 또는 파일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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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경기문화재단은 본 가이드의 내용을 ‘회원’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지지씨 플랫폼의 기관회원 등록 안내 페이지에 게시하여, 자유롭게 내려받아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합니다.
② 본 가이드는 경기문화재단의 온라인 플랫폼 운영 정책 및 저작권 등 관련 법규에 따라 개정될 수 있으며, 가이드를 개정, 적용하고자 할 때는 30일 이전에 약관 개정 내용, 사유 등을 '회원'에 전자우편으로 발송, 공지합니다. 단, 법령의 개정 등으로 긴급하게 가이드를 변경할 경우, 효력 발생일 직전에 동일한 방법으로 알려 드립니다.
1. 본 가이드의 개정과 관련하여 이의가 있는 ‘회원’은 탈퇴할 수 있습니다.
2. 경기문화재단의 고지가 있고 난 뒤 효력 발생일까지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을 경우, 개정된 가이드를 승인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제4조(회원자격 및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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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조(회원 탈퇴 및 정지‧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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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조(회원의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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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분류 | 외부기관 | 경기문화재단 |
|---|---|---|
| 중분류 | 뮤지엄(박물관,미술관)/협회/문화예술공공기관/시군청 담당부서 등 | 본부/기관 |
| 아이디 | 사업부서명/사업명 | 사업부서명/사업명 |
| 글쓴이 노출 | 아이디와 동일(한글) | 아이디와 동일(한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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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박물관
[모종의발견] (19) 아름다운 자연과 더 아름다운 사람들 속에서 - 활동가 연두
2025 실학박물관 지역활동가 아카이브
두물머리,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위로를 받는 이가 있다. 유랑농악단에서 북을 메고 두물머리 동네를 도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지역에서 만들어내고자 하는 신명은 어떤 것일까? 떠돌이의 삶을 살았다고 자처하는 연두를 정주하게 만든 두물머리에서의 신명 속으로 들어가보자.
Q. 간단히 자기소개 말씀 부탁드려요.
저는 연두라고 합니다. 지금 두물머리에서 살고 있는데 이 동네에서 산 지는 한 10년 됐어요. 2012년 쯤 농지보존투쟁 때 인연을 맺어서 사람들도 알게 되고 이 지역도 알게 되었어요. 한 3년 왔다 갔다 하다가 이쪽에 일자리 제안을 받으면서 아예 이사를 왔어요. 그 일자리는 금방 사라졌지만 친구들이 주변에 있어서 그 이후로도 계속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이 동네에서 살고 있어요. 두물머리에 이사 오기 전에는 ‘빈집’이라는 주거공동체 실험에 참여하면서 친구들과 용산 해방촌에서 좀 오래 지냈었습니다.

Q. 제안 받았던 일자리는 어떤 거였어요?
영농조합 사무직 일자리였어요. 농지보존투쟁 때 인연을 맺은 농부들이 많다 보니까 영농조합에 일자리가 생겼을 때 제 친구들한테까지 일자리 제안이 흘러 들어온 거예요. 사실 이 동네에서도 사무장 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기도 했어요. 제가 듣기로는 그때 내부적으로는 좀 쇄신해보자, 혁신해보자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해요. 사실 사무장 일은 해본 적은 없는데 쇄신, 혁신의 뜻을 모았던 몇 명의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일을 가르쳐줄 테니 함께 성장해보자고 저를 유혹했어요. 결국에는 내분이 있어서 실무자 혼자 남고 팀은 와해되고 말았지만요. 저한테 일자리 제안하고 또 저랑 같이 굉장히 밀착해서 일했던 당시 영농조합 대표도 알고 보니 무책임한 사람이었어요. 저는 두물머리에 집을 구하고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처음에 제안했던 급여나 근로 조건을 정말 쉽게 바꾸고는 출근 직전에 바뀐 조건을 일방적으로 통보했어요. 그때 두물머리에 올지 말지 엄청 고민했었어요. 그렇지만 제 인생에서 대단히 큰 변화를 결심했으니 믿고 가보자 싶어서 바뀐 근로조건을 수용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그런 경우, 결말은 이미 예정되어 있어요. 결국 일도, 관계도 틀어졌어요. 당시에는 순진하게 믿은 내 탓인 것 같아서 굉장히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 사람들도 그냥 지키지 못할 말을 한 사람이었다 생각해요. 그리고 생각해보면 저는 다시 제 원래의 삶, 떠돌이의 삶으로 돌아간 거예요. 저는 평생 알바 인생이었어요. 어디 정주하거나 확실한 일을 벌이는 성격이 전혀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두물머리에 뿌리를 내려보겠다는 각오를 했고 집을 얻을 때는 돈을 좀 빌리는 등 제 깜냥을 넘어서는 일을 벌였는데 일자리가 틀어지니까 충격이 커서 제가 흔들렸던 거예요.

Q. 4대강 농지보존투쟁 등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에게 마이너 감성이 늘 있었던 것 같아요. 학창시절에도 공부를 잘했던 시기도 있고 못했던 시기도 있는데, 공부를 잘했을 때조차도 내가 뭔가 주류라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저는 항상 외곽이나 주변부, 변두리에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있었어요. 친구가 있다, 없다, 많다, 적다 이런 문제와는 전혀 다른 거예요. 정서적으로 항상 매우 고독하고 외롭고 이 세상이 전혀 나를 이해하거나 안아주지 않는다고 느꼈다는 거예요.
‘내 고향별에서 내 친구들이 언젠가는 나를 데리러 온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굉장히 외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이 있잖아요. 제가 좀 그랬어요. 그래서 대학도 목표나 목적이 없이 얼마간 힘들게 다녔어요. 저는 학교를 졸업하고 평범하게 회사에 취직해서 남들처럼 돈을 벌어서 집을 사고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어요. 그런 상상이 되지를 않는 거예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세상에 무엇이 옳은 일이지? 약간 이런 철학적인 질문에 빠져 청년기를 보냈어요. 대학교 때도 공부하고 취업 준비하는 친구들과는 안 어울리고 아침에는 도서관에 출근해서 일을 했고 그렇게 돈을 벌어서 저녁이 되면 동아리 친구들과 술을 먹으면서 굉장히 규칙적으로 학교를 다녔어요.
어울리는 친구들과는 친하게 지내고 재미있게 지냈지만 제가 마흔이 넘어서 생각해보니 ‘아, 나는 내일이 없이 살았구나. 내일이라는 걸 한 번도 계획하거나 그려본 적이 없는 인생이었구나.’로 요약되더라고요. 이런 사람이다 보니 약자에 대한 감수성이나 사회적 정의에 대해 어떤 공감을 하는 것이 조금 더 쉬웠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이 뭔가 크게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이 엄청 고난을 받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거죠. 이들에게 저의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다면 기꺼이 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직접 행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하고 후원만 하다가 ‘빈집’이라는 데서 살게 되었는데 ‘빈집’에는 직접 행동을 하는 정말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청년들이 많았어요. 그 친구들이 먼저 이곳 팔당에 연대해서 계속 소식을 전해주며 오가다가 결국 몇 명이 먼저 이주했어요. 같은 마을에서 살던 친구들이 이사를 간 셈인 거죠. 그래서 저희도 놀러오거나 연대할 일들이 있었는데, 와서 같이 농지보존투쟁을 하자고 권유했을 때 기꺼이 움직일 수 있었어요.
여기 와서는 두물머리라는 이 장소의 매력에 홀딱 반했어요. 예를 들면 두물머리 농지보존투쟁 중에 강제집행이 예고됐을 때, 사람들이 있으면 함부로 강제 집행할 수 없으니까 텐트를 치고 사람들이 거기서 일주일을 사는 텐트촌 기획이 있었어요. 저는 투쟁 막바지에 텐트촌에 들어왔는데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식당에서 밥을 해서 나눠 먹었어요. 남한강과 북한강 만나는 꼭짓점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받아서 강가에 딱 앉아서 강물이 흘러가는 걸 보면서 밥을 먹는 거예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물아일체랄지 강물과 하나가 되는 기분, 제가 자연에 수용되는 기분이 들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외롭고 고독한 느낌이 기본 정서였는데 자연이 그걸 다 안아주는 느낌이었던 거예요. 자연의 순기능 중에 이런 기능이 실제로 있대요. 그때 두물머리에 열심히 왔던 친구들이 비슷한 말을 아주 많이 했어요. 농작물이 자라는 논과 밭 사이로 우리가 계속 왔다 갔다 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텃밭에서 일하면서 친구들도 자연에 편안하게 수용되는 감정들을 많이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두물머리로 이주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지금까지 유효한 것은 사람들하고의 관계죠. 두물머리가 아니어도 자연의 풍경이 만들어내는 위안과 수용이 있는 곳이면 저는 어디서든 비슷한 느낌을 느낄 수 있어요. 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가능하죠. 감흥의 규모는 좀 다르겠지만요. 오히려 여기 이 사람들이 다 같이 어디로 가자고 하면, 간다고 하면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조금 고민은 하겠지만 함께 갈 것 같아요.

Q. 집을 사셨다고 들었는데, 이사를 하실 수도 있어요?
제가 집을 사다니 놀랍죠. 정말 정말 놀랄 ‘노’자예요. 그런데 저는 떠돌이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별 대단한 결심도 아니었어요. 모 아니면 도였을 테니까요. 원룸에 살았는데 짐도 늘어나고 돌보는 강아지도 있어서 집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전세를 구하려고 했는데, 전세 가격에 매매는 있는데 전세가 없더라고요. 근데 마침 대출이 나온다고 하길래 그냥 산 거예요. 이사를 하게 되면 집이야 팔면 되고 안 팔리면 가격을 내리면 되고 손해는 보면 되니까요. 그런데 주변에서 제가 집을 산 것에 의미 부여를 많이 해서 제가 더 놀랐어요. 일단 가족들이 무척 안심을 해요. 친구들도 제가 이제 정주를 결심했다고 받아들이는 것 같고요. 그래서 오히려 너무 생각 없이 집을 샀다고 반성하게 됐어요.
한편으로는 ‘진짜 내가 뿌리 내려버려?’ 이런 마음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여전히 안타깝게도 그건 아니에요. 반반인 것 같아요. 진짜로 반은 떠나야 되면 팔면 되지, 안 팔리면 세 주면 되지. 약간 이런 마음이 있고 나머지 반은 어쩌면 계속 이 동네에서 살아가게 될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이에요. 여기서 생겨난 관계들 덕분에 20대 이후로 10년을 한 동네에서 처음 살았으니까요. 저도 모르겠어요. 내일이 없이 40년을 살다가 갑자기 자꾸 내일 생각을 하려니까 힘들어요. 상상이 잘 안 돼요.

Q.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매력적이라고 느낀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친구들이 가끔 저에게 물어요. “왜 우리들이야?” 저는 ‘빈집’에서 만난 친구도 있고 고등학교 친구도 많은데 왜 자신들과 같이 살아가자는 것인지 묻는 거죠. 말하자면 저의 내적 동기를 묻는 것인데 반 농담 반 진담으로 “사랑에 빠지는 데 이유 있어? 그냥 그렇게 됐어.” 이렇게 대답해요.
그렇지만 이렇게 된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어요. 사람한테 매력을 느끼는 지점이 사람마다 다를 텐데 저는 그 사람의 태도, 기본적인 마음을 봐요. 열려 있고 타인을 판단하지 않고 수용해 주는, 품이 아주 넓은 점이 정말 좋아요. 그런 점을 저도 정말 배우고 싶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좋은 사람들이고 저랑 정서가 비슷한 사람들이에요. 일단 물질세계와는 조금 동떨어져 있어서 다들 돈이 없고, 물론 그래서 지금 굉장한 문제가 있지만요. 저로서는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난 기분이었어요. 저는 가끔 정신 잃고 혼란스러워 하면서 막 휩쓸려 다니는데, 이 친구들은 정말 심지 굳건하게 버티고 서서 크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멋있었어요. 근데 이 친구들이 태도까지 너무너무 좋은 거예요. 상대방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일도 없어서 친구 관계가 정말 잘 맺어졌어요.
농지보존투쟁이 끝난 다음에 그렇게 연결된 친구들 중에 일부가 모여 ‘유랑농악단’을 지속했어요. 농악단 활동이 생각보다 또 진해서, 서로 많이 좋아하니까 다들 활동을 열심히 한 거겠죠. 일주일에 한 번씩 연습실에 모여서 2~3시간씩 연습하고 연습 끝나면 뒤풀이 꼭꼭 2~3시간씩도 하고 직장 다니는 친구, 자영업하는 친구, 예술가 친구, 모두들 그 연습을 몇 년을 같이 했어요. 또 가끔 투쟁하는 현장에 연대해서 악기 치고 공연하고요. 우리끼리 1년에 한 번씩은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꼭꼭 전수를 가서 공동생활도 해요. 같이 밥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연습하고 같이 놀고. 그게 결속력을 잘 다져가게 해주었어요.
하긴 이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애증이 겹치는 순간들이 생겨나요. 물론 여전히 정말 좋고 매번 만날 때마다 엄청 감동이에요. 10년을 만났는데 어떻게 10년 동안 이렇게 매번 수다가 끊이지를 않는지! 서로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지만 아직도 “어머, 너 그랬어?” 계속 놀라고 계속 새로운 게 샘솟아요. 여전히 새로 발견되는 것이 있어서 진짜 재미있어요. 하지만 서로 잘 알게 됐다고 믿는 순간부터 조금씩 조금씩 틀어지는 일도 있어요. 안다고 믿는 순간 ‘어? 쟤가 이럴 애가 아닌데 왜 저래?’ 뭐 이런 것도 생기고 서로 많이 좋아하니까 서운한 것도 생기고요. 예를 들면 “왜 나는 커피 안 주고 너만 먹어?” 이런 비슷한 일들이에요. 좀 소소하고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그런 순간이 생기더라고요. 너무 좋아서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일까요.

Q. 지역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요?
예전에 임기제 공무원으로 2년 동안 양서면사무소에서 일했어요. 그때 양서면 이장님들, 부녀회장님들 다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사실 지금 저한테 유랑농악단이나 농지보존투쟁 때 만난 친구들이 모르는 관계도 살짝 있어요.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유랑농악단하고 파트타임으로 하는 일, 두 가지가 메인이에요. 그리고 그동안에 해온 일에서 나온 관계와 활동도 있고요. 예를 들면 ‘농부시장’에서 일종의 기획팀으로 참여한 적이 있어요. ‘농부시장’에서 작년에는 알바를 많이 했고 올해는 헌책 셀러로 참여했죠. 예전에 두물머리 농지보존투쟁 때 맺은 인연으로 ‘마당장’이나 부용리의 일들, 예를 들면 아직 한 번도 참여는 해본 적이 없지만 부용리에서 대보름에 마당밟기를 한다면 제가 같이 악기를 치거나 할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주민으로서 일종의 포지션이 생긴 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지금은 실학박물관의 실‧실‧실 프로젝트를 만나서 스탭으로 일하고 있고요.
농지보존투쟁 때 오셨던 분들이나 예술가분들은 이 지역의 생활 세계를 잘 모르시고 지역 에 사시는 분들도 나중에 이주해 오신 분들을 잘 모르시는데 저는 양쪽의 네트워크를 다 갖고 있기는 해요. 사실 두 축을 연결할 계기나 소통 창구가 필요한 경우는 아직 없었지만요. 저에게 아주 잘 대해주셨던 이장님들이 계시는데, 그런 이장님들한테 동네에 이런 젊은이들도 있다고 소개하는 역할을 해볼 수도 있을 같기는 해요. 아쉽게도 아직 그런 일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만한 계기는 없었어요.

Q. 지역에 장단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지역에 큰 애정도, 관이나 공공에 기대도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면사무소에서 직원으로 2년간 일했을 때 많이 배웠어요. 공공기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공무원들이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하는지 알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까 지금은 지역에 애정이 살짝 생겼어요.
그런데 워낙 원주민분들의 텃새랄까, 감정적인 간극이 있어요. 땅값이 오르면서 지역 주민들의 정서가 좀 딴딴하다고 해야 할까요? 시골 인심, 그런 정서는 아니에요. 그런데 행정은 너무 시골처럼 운영이 돼요. 그래서 혼란스러워요. 작년에 탄핵 집회 같은 것을 양평에서 시도해보고 친구들이랑 같이 많은 분들하고 연대하고 참여해보면서 공공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더 많이 배우고 싶었어요. 면에서 일을 해봐서 민원이라는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사실 사람이 자신감이 있어야 하죠. 어디 가서 저한테 혹은 우리 동네에 뭘 좋게 하겠다고 따지고 뭘 받아내고 이런 성격이 못 되니까요. 집회에 참여하고 경험이 더 많이 쌓이면서 행정에 주민들의 이야기가 직접 전달될 수 있는 방법들을 알고 싶고 힘을 기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이 지역이 서울에서 가깝다는 건 무한한 잠재력이죠. 두물머리만 해도 이번 가을 주말에 관광객들의 방문이 엄청 많았어요. 1년에 200만 명 정도나 된대요. 그 정도로 사람들이 서울 근교 콧바람 쐴 만한 공간에 대해 목이 말라 있는데, 친환경적인 방문 문화, 관광 문화를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럴 수 있다면 이 동네에 정체성도 되고 다른 지역에 파급되는 효과도 클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러면 땅값, 집값은 내려가지 않겠지요. 땅값, 집값이 좀 내렸으면 좋겠어요. 저희 같이 흘러 들어온 사람들이 정착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안 보이니까 안타까워요. 농사짓는 친구들도 자기 땅을 가질 수가 없고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요. 뭐 가질 수 없더라도 안정적으로 빌릴 수라도 있으면 좋은데…. 양평이 인구 소멸 지역이라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문제의식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타지에서 오는 청년층, 장년층을 이렇게 홀대해서 되겠나 이런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
Q. 실학박물관의 실‧실‧실 프로젝트는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언제나 부업이 필요한 삶을 살고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대뜸 한번 해보자고 시작한 거긴 한데 생각보다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잘했는지 못했는지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요.
제 삶은 누가 봐도 활동가의 삶 같은데 실제로는 제가 뭘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투쟁 현장을 계속 기웃거리고 공동체 실험도 쫓아다녔는데 저한테 활동가냐고 누가 물어보면 되게 민망해요. 단체에서 일한 것도 “월급 받고 일한 거지, 뭐.” 이런 식으로 대답하게 되고요.
그런데 실학박물관 프로젝트 참여하면서 약간 지역 활동가 느낌이 나서 좋았어요. 동네 사람들 이야기를 인터뷰했는데 익히 알던 얘기들도 많았어요. 물론 낯선 이야기는 굉장히 재밌게 들었고요. 알던 얘기를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어딘가에 펼쳐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게 재밌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 “유튜브? 유튜브 한번 해볼까?” “무슨 유튜브 할 건데?” 저는 <가능한 시도들>이라는 제목의 유튜브를 해보고 싶어요. 친구들한테 그렇게 얘기한 적도 있어요. 많은 사례를 알려주고 싶은 거예요. 우리가 그동안 듣고 보고 배운 것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자기 길을 찾아서 취업해서 안정된 삶을 꾸려 가는 삶이 중심이었잖아요. 그렇지만 제가 살면서 만나온 많은 친구들은 다른 시도를 하고 있었어요. 이런 것이 가능하다는 걸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다른 선택을 조금 더 일찍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나도 다른 시도를 좀 더 많이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더 나아가서는 일찍이거나 늦게거나 상관없이 그냥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알면 누군가는 숨쉬고 사는 게 좀 더 쉬워지지 않을까. 그래서 나름 알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유튜브에 담아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살아도 돼!’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어!’ ‘이런 방법도 있어!’ 이런 거를 많이 알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실‧실‧실 프로젝트가 뭔가 그 일말을 이뤄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정말 고마웠어요, 저한테도 되게 좋은 기회였어요.
한편으로 저는 같이 했던 팀이 굉장히 좋았어요. 라군, 진아, 이제, 해빛 모두가 저한테 에너지를 주었고 배울 점들이 있었어요. 알게 된 것 자체가 고마운 인연들이어서 이 좋은 사람들하고 같이 뭔가를 쿵짝쿵짝 해나가는 재미도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이제랑 저랑 거의 동시에 얘기한 것이 있어요. 원래 이렇게 하기로 했던 게 아닌데 일이 자꾸 점점 커지는 것 같다, 그래도 재미가 있으니 우리가 알아서 스스로 하게 된다는 거였어요. 그런 의미에서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요?
앞서 얘기한 것처럼 주민들의 이야기를 공공에 전달할 수 있는 방법, 그러니까 민주주의 공부를 좀 하고 싶어요. ‘숙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부를 좀 해서 나 스스로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지역 주민들하고 같이 나눠보고 싶어요.
지역에서 나무들을 다 베어버리는 공사를 하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친구들이 나무를 지키려고 작은 투쟁을 한 적이 있었어요. 마을 안에서 공사에 찬성하는 동네 주민분들하고 마찰이 생기니까 관계에 어려움도 생겼었는데 그래도 투쟁을 해서 아름드리 큰 나무 몇 그루를 지켰어요. 그런데 면장님 바뀌고 면사무소 이사 가니까 어느 날 예고도 없이 그 나무들 몇 그루가 싹 베어진 거예요. 이런 터무니없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독일 어느 지역에서는 공공기관 앞에 게시판이 크게 있어서 주민이 각자 이것저것 제안을 써서 게시판에 붙일 수가 있어요. 그러면 그 제안을 올리고, 올리고, 올려서 마을에 조례를 만든다거나 정책을 만든다거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거나 하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놀랍죠? 말하자면 그런 걸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주민들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어떤 정책들을 다 받아내는 게 아니라 정책 등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자각을 좀 가질 수 있는 그런 계기들을 스스로부터 갖고 싶어요. 그런 민주주의를 공부하고 싶습니다.
** 언제든 마음먹으면 이전과는 다르게 살 수 있는 연두의 삶에 숙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모순적인 세상 속에서 연두 님과 친구들이 만들어낼 신명 속에서 크게 한판 놀아볼 날을 고대한다.
2025 실학박물관 지역활동가 아카이브 <모종의 발견>
조선 후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고민하던 학자들을 실학자라 불렀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활동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모종의 발견>은 지역 곳곳에서 싹트는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찾아 숨겨진 가능성과 가치를 세상에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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