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역사문화유산원

의주길 1구간 벽제관길

고양 삼송역 ~ 벽제관지

[경기옛길 – 의주길]


경기옛길 의주길 1구간 벽제관길



# 경기옛길


경기옛길은 조선시대 한양과 각 지방을 연결했던 옛길을 바탕으로 만든 길입니다. 조선시대 실학자 여암 신경준 선생의 『도로고』의 길을 따라 인근의 문화자원을 연결한 복합문화탐방로이죠.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도로고』의 6대로인 의주로, 경흥로, 평해로, 영남로, 삼남로, 강화로 중 3개의 길을 개통했습니다. 2012년 삼남길을 시작으로 2013년 의주길, 2015년 영남길을 차례로 개통해 도보여행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경기옛길의 가장 큰 특징은 이야기가 있다는 점입니다. 각 구간마다 지역의 문화유산과 민담 설화가 있어 도보와 배움을 동시에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옛 길을 걸어 새 길을 만드는” 경기옛길을 걸어보세요!







# 의주길


         



의주길은 한양에서 의주를 연결하는 대중국 교통로였습니다. 관서대로, 경의대로, 연행로, 서북로라고도 불렀습니다. 신경준 선생의 『도로고』에는 경성서북저의주로제일(京城西北低義州路第一)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즉 의주길을 제1로로 적은 것인데요. 그만큼 조선의 정부의 특별한 관리를 받았다는 뜻으로 알 수 있습니다. 한양 숭례문에서부터 홍제원, 고양, 파주, 장단, 개성, 평양을 거쳐 의주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의주길은 연행로 즉 중국으로 가는 사신단이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연행은 조선이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습니다. 17세기 이후에 유입되는 지동설이나 천주교와 같은 서양의 과학과 사상도 연행을 통해서 도입되었죠.


또한 의주길은 국제 무역의 장이었습니다. 조선은 중국과 일본을 사이에 두고 중계무역을 했습니다. 조선은 일본에 인삼을 팔고 은을 받았는데, 이 은을 다시 중국과의 교역에 이용하는 식이었습니다. 이러한 무역에 사용된 물자의 주 수송로가 바로 의주길이었습니다. 연행과 관련된 의주길의 명소는 벽제관지입니다. 사신들이 왕래하면서 묵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역참이었는데, 특히 벽제관은 조선으로 들어오는 중국 사신이 한양에 들어서기 전에 체제를 재정비하는 곳이었고 조선의 입장에서는 중국에서 오는 사신단을 한양 이전에 환영하고 맞이하는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지금은 터만 남아있으나 의주길이 연행로였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곳입니다.그밖에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외교관이었던 김지남 묘와 율곡 이이 선생이 즐겨 찾아 풍류를 즐겼던 화석정이 의주길에 있습니다.


사실 지금의 의주길은 휴전선으로 인해 그 노선이 원형과 다르게 임진각에서 끝나는데요. 통일이 된다면 의주길은 북한으로 향할수 있는 길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봅니다.



# 1구간 벽제관길


벽제관길은 서울에서 의주와 대륙을 연결하는 첫 길입니다. 벽제관길의 중심인 벽제관은 중국에서 온 사신들이 도성으로 들어오기 전에 하룻밤 쉬어 가던 길이었습니다. 삼송역에서 시작하여 역관 김지남묘, 덕명교비, 벽제교, 벽제관지까지 총 8.7km의 도보길입니다.







# 역관 김지남 묘




역관 김지남은 조선시대 후기에 활약한 인물로 만 18세인 1671년(현종 12) 역과에 급제한 후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활동했습니다. 그의 여러 업적 중 하나는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것 인데요 1712년 청나라와 조선이 국경선을 확정짓기 위해 양국 대표가 회동할 당시, 아들 김경문과 함께 참석했었습니다. 또한 1714년 역관으로 활동한 경험을 참고해 사대와 교린의 외교에 관한 『통문관지』라는 책을 아들과 함께 저술했습니다. 이는 당시 외교 분야에 종사하던 사람들의 필수서가 되었고 일본과 청나라에까지 알려졌습니다. 그의 무덤은 연행사가 지나던 길목에 위치해있습니다. 김지남은 유언으로 자신의 묘를 사신과 역관들이 왕래하는 길에서 잘 보이게 써줄 것을 부탁했고 이에 사신단의 주요 경로인 의주길 옆에 묻혔다고 합니다. 김지남 묘는 현재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 산195-5에 위치해 있으며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덕명교비




덕명교비는 공릉천 위에 다리를 놓으면서 그 자세한 사항을 기록한 비입니다. 비의 건립자는 이한과 당시 고양군수 유후성, 윤민지, 이상식, 홍시우를 대표로 한 760여명의 주민입니다. 특히 수십 명의 인명이 이두문자로 기록되어 있어 이두문자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당시 백성들은 한자로 된 이름이 없어 개똥이, 돌쇠 등의 이름이 많았는데 이두를 사용한 이 비석에 모두 기록했습니다. 비의 건립 연대는 1658년 이며, 고양시 공릉천 일대의 역사가 담긴 비석입니다. 



#고양 벽제관지




1476년 조선시대 성종 시기에 세워진 벽제관은 앞서 언급하였듯 중국을 왕래하던 양국 사신단이 머물던 곳입니다. 또한 임금이 제릉(濟陵)으로 제사를 지내러 갈 때 숙소로 머물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제릉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첫 번째 부인인 신의왕후 한씨의 묘소인데요. 신의왕후는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기 전에 사망했습니다. 후대의 임금들은 제릉에 직접 제사를 지내는 친제(親祭)를 하기 위해 의주길을 통해 제릉으로 행차했다고 합니다. 바로 이때 벽제관에서 숙박을 했습니다. 벽제관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일부 훼손되고 한국 전쟁 당시 대부분 소실되었습니다. 남아있던 삼문까지 1960년대 허물어지고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사적 제144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의주길의 첫 관문 벽제관길에서는 2개의 스탬프함을 볼 수 있는데요. 각각 덕명교비와 벽제관지에 위치해있습니다. 각 구간별 스탬프를 모두 찍으면 의주길 완주 인증서와 뱃지를 받을 수 있으니 도전해보세요! 




세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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