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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밝히는 선조들의 지혜 등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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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밝히는 선조들의 지혜 등잔 문화


세계 유일 등잔박물관을 찾아서


며칠 전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아파트가 온통 암흑에 빠졌다. 아내가 “갑자기 전기가 나가면 어찌하냐?”며 볼멘소리를 한다. 나 역시 할 수 없이 보던 책을 덮었다. 전기가 없던 옛날을 생각했다. 그때는 등잔이 전깃불 역할을 했다. 필자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 초, 서울 변두리 지역은 호롱불, 남포등을 켜고 살았다. 하지만 전기가 보급되며 등잔은 자취를 감추었고 박물관에서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있는 한국등잔박물관이다.



▲ 용인에 있는 한국등잔박물관 전경 ©이재형


세계 유일의 등기구 박물관


한국등잔박물관은 세계 유일의 등기구 박물관이다. 이름 그대로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 사용되었던 조명 기구들을 모아서 전시하는 등기구 전문 민속박물관이다.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자 조상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등잔, 제등, 촛대 등 한국의 전통 조명기구 일체가 한곳에 모여 있다. 이곳은 1969년 고등기전시관(古燈器展示館, 수원)으로 출발해, 1997년 설립자 故김동휘 관장(1918~2011)이 40여 년간 모은 등잔과 자료를 중심으로 한국등잔박물관으로 정식 개관했다.



▲ 한국등잔박물관에 전시된 각종 등잔과 촛대 ©이재형


한국등잔박물관은 1층, 2층 상설전시장과 3층 다목적공간, 농기구기획전시실, 야외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먼저 야외에 있는 정자와 연못을 중심으로 석탑, 솟대, 장승, 등잔 모양의 조각상 등을 구경한 후 박물관 1층으로 들어섰다.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진귀한 등잔들이 반긴다. 이 등잔들을 보니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간 기분이다. 우리 선조들의 삶에서 등잔들이 어떻게 쓰였는가를 당시 민속품들과 함께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해놓았다. 한옥의 공간인 부엌, 찬방, 사랑방, 안방을 재현해 전시한 곳에서는 안방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 야외전시장에서 어린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다 ©이재형


어둠을 밝힌 빛, 일상을 지키던 빛


등잔은 단순히 어둠을 밝힐 뿐 아니라 집안의 분위기를 돋보이게 하는데도 일조를 해왔다. 그래서 안방, 부엌, 찬방 등 장소에 따라 쓰는 등잔도 달랐다. 안방은 안채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주택의 제일 안쪽에 위치해 큰방으로도 불린다. 이곳은 곳간 열쇠나 귀중품이 보관되는 장소이자 주부의 생활공간이다. 온갖 장식으로 꾸민 장과 농, 화목한 부부 생활을 상징하는 화조도(花鳥圖) 병풍이 방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나비 모양의 등잔이 화려함을 더해준다.



▲ 안방에 놓인 화려한 모양의 나비 등잔 ©이재형


부엌은 가족의 식생활을 담당하던 장소다. 다른 공간에 비해 여성의 활동 중심이 되는 곳이다. 벽에는 새벽이나 저녁에 가족들을 위한 음식을 준비할 때 어둠을 밝히던 등불이 붙어 있다. 음식에 머리카락 등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밥을 하던 가마솥 옆에 등잔을 놓아 조명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부엌 벽에 걸어서 사용하는 벽걸이 등잔은 벽에 걸어도 거추장스럽지 않도록 만들어졌다.


▲ 부엌 벽에 걸어서 사용하는 벽걸이 등잔 ©이재형


사랑방은 바깥주인이 거처하던 곳이다. 손님을 접대하고 집안의 중대사를 결정지으며 자녀의 교육은 물론 취미, 오락과 더불어 학문 연마가 이루어졌다. 가문의 위세와 주인의 안목, 품격의 정도에 따라 가구와 장식은 물론 등잔 또한 가풍이나 위세를 알리는 중요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사랑방에서 쓰던 등잔은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



▲ 사랑방에서 쓰던 검소하면서도 세련된 등잔 ©이재형


예를 밝히던 빛


1층을 본 후 2층 전시실로 올라가봤다. 2층은 삼국시대 주로 사용하던 토기등잔부터 조선시대까지 시대별로 등잔을 분류해놓았다. 등기구 중 가장 많이 사용됐고 현재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목등잔, 유기(鍮器)로 만든 촛대, 뚜껑에 심지꽂이가 따로 붙은 백자호형 서등(白磁壺形書燈), 밤에 다닐 때나 의·예식에 사용되던 휴대용 조명 기구 제등이 눈길을 끈다.촛대는 주로 왕실이나 상류계층에서 사용했는데, 이는 초의 원료가 워낙 귀하고 만드는 방법도 까다로워 대량생산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촛대는 제례와 혼례 등에 사용되었던 의례용 촛대와 일상용 촛대로 구분된다. 고려시대 청동기로 만든 촛대와 조선시대 나무, 청동, 유기, 옥으로 만든 촛대가 있다.


▲ 조선시대 순라꾼이 야경을 돌 때 사용하던 조족등(照足燈) ©이재형


등잔박물관의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한국등잔박물관은 상설교육을 통해 우리 고유의 등잔 문화 전파에 힘쓰고 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상설교육은 아래와 같다. 문화체육부와 한국박물관협회가 4월부터 11월까지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은 인류문화유산을 통해 문화시민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인문학 체험프로그램이다. 한국등잔박물관도 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알면 신비로운 선조들의 삶 이야기’ 등 다양한 체험교육을 진행 중이다. 또한 ‘춘하추동 민속놀이’는 세시풍속을 바탕으로 민속놀이를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풀각시를 만들고 윷점 놀이를 통해 올해의 운세를 점쳐보는 3월의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연등 만들기, 창포 비녀와 단오 부채 만들기, 봉선화 물들이기, 연 만들어 날리기 등 재미있는 교육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고이 닦은 천 년 얼이 큰 빛으로 다시 살았네


한국등잔박물관은 1999년 문화재단을 설립했다. 박물관이 설립자(故 김동휘) 개인의 것이 아니고 사회에 환원되어 국민의 것이 되어야 하며 역사가 깃든 등잔 유물들을 후세에 물려줘야 한다는 취지다. 1999년 등잔 유물과 건물, 대지 등 당시 시가로 약 100억에 이르는 재산을 재단법인 설립과 함께 사회에 환원했다. 만약 한국등잔박물관이 없었다면 우리 선조들이 쓰던 등잔 유물들은 골동품 수집가들 손에 넘어가 구경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설립자가 하나둘 모은 등잔들이 한자리에 모여 볼 수 있게 되어 여간 다행이 아니다.



▲ 한국등잔박물관 설립자 3대(좌측이 현 관장 김형구) ©이재형


우리는 인생의 반을 어둠 속에서 산다. 우리 조상들이 어둠을 밝히던 불빛은 남녀, 신분, 귀천을 따지지 않고 공평했다. 그 어둠을 밝히던 등잔은 이제는 과거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박물관 차지가 됐다. 편리한 전기가 있으니 등잔문화는 아예 외면해버릴지 모르지만 우리 조상들의 애환이 담긴 소중한 유물이다.일부 사람들은 등잔이 골동품이 되면 돈을 벌어다 줄지 모른다며 사서 모았다. 하지만 故 김동휘 선생은 사라져가는 등잔의 미래 가치를 내다보고 모았다. 이런 혜안이 있었기에 지금의 세계 유일의 등잔박물관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침대를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나며 등잔문화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하지만 등잔을 만들었던 선조들의 지혜와 그 문화는 반드시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잔문화는 우리 고유의 불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 은은하고 멋스럽게 어둠을 밝히던 우리의 등잔문화 ©이재형


등잔 위에 촛불은 마지막에 불빛을 가장 환히 밝힌다. 지금 폭염이 한창이지만 이는 머지않아 가을이 오리라는 신호다. 이번 가을에는 선조들이 쓰던 그 등잔불은 아니더라도 촛불을 켜고 시를 한 편 읽고 싶다. “주여,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마리아나 릴케)


“등잔박물관이 앞으로 1000년 이상 유지됐으면 좋겠어요”



▲ 한국등잔박물관 관장 김형구(한국재단법인 뮤지엄협회 회장) ©이재형


Q: 한국등잔박물관은 독특한 테마박물관인데요, 이런 박물관을 개관한 특별한 배경이 있나요?

A: 약 100여 년 전에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등잔을 “이제 필요 없다”며 내다 버렸지요. 당시 등잔은 골동품 살 때 덤으로 주기까지 했어요. 그만큼 구질구질하고 쓸모없는 물건으로 전락했지만 부친(故 김동휘, 산부인과 의사)이 하나둘 모아서 처음에는 병원 건물 2층에 전시했지요. 그러다가 박물관을 지어서 따로 전시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1969년 처음 고등기전시관으로 출발해 1997년 한국등잔박물관으로 정식 개관하게 된 겁니다.


Q: 등잔박물관은 왜 한국에만 있나요? 외국에도 등잔문화가 있을 텐데요?

A: 외국과 달리 한국은 독특한 온돌문화가 있잖아요. 온돌방은 앉아서 생활하는 곳이지요. 방바닥에 앉으면 그 눈높이에 맞는 조명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받침이 있는 등잔을 만들어서 사용한 겁니다. 생활양식에 맞게 가장 빛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위아래로 조절할 수 있는 대를 만들어서 썼지요. 일본은 다다미문화(짚을 겹쳐 방바닥에 쌓은 형태)라 화재 위험 때문에 방바닥에 등잔을 놓지 못하고 천장에 줄을 매달아서 썼잖아요. 등잔은 온돌문화가 발달한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문화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만 등잔박물관이 있는 거죠.


Q: 등잔박물관이 향후에도 계속 유지될 수 있는 비전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A: 등잔박물관을 개관한 후 2년 뒤에 조부와 부친께서 이룬 재산과 건물 등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며 재단법인을 만들었어요. 그 이유는 박물관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가의 소유로 오래도록 유지, 보존돼야 한다는 뜻에서였지요. 만약 개인 소유라면 언제든지 팔 수도 있기 때문에 오래가기 힘듭니다. 세계에서 유일한 등잔박물관을 만든 것은 우리 조부와 부친이지만 이제 앞으로는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해서 자랑스러운 우리의 등잔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100년 아니 1000년 이상 유지됐으면 하는 것이 제 유일한 바람입니다.



사진=이재형

* 관람안내 및 연락처 <한국등잔박물관>

장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곡로 56번길 8(능원리)

관람시간: 매주 수~일(관람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4월~9월 오전 10:00 ~ 오후 5시 10월~3월 오전 10:00 ~ 오후 5시30분

휴관일: 매주 월, 화요일(단, 공휴일인 경우 제외), 1월1일, 설날과 추석 당일

관람료: 성인 5천원/중·고·대학생 및 어린이 3천원/미취학아동 무료

☎ 031 334-0797(학예부)

홈페이지: www.deungjan.org

2018.08.07




성남 이재형


이재형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16년째 살고 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생활을 했고 34년간의 공직생활을 끝낸 후 요즘은 무작정 어디론가 여행 떠나기를 좋아한다. ‘열심히 일한자 떠나라!’는 말처럼. 인생 2모작을 인문쟁이와 함께 하면서 여행과 인문 예술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떠나고 싶어 한다. 그 세계에서 새로운 하늘, 새로운 땅,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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