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박물관은 살아 있다

문화 분야 『한국생활사박물관』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생활사박물관』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지음, 사계절, 2000








박물관은 살아 있다


송호정 -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우리는 매일 누군가가 만든 물건을 사용하며 생활을 한다. 우리는 얼굴도 모르는 많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며 삶을 이루고 있다. 사람들의 삶의 흔적인 역사 또한 여러 지역이 서로 교류하는 가운데 영향을 주고받으며 각기 나름의 모습을 이루어낸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다양한 삶의 모습을 통해 생활에 대한 지혜를 얻고자 한다면 과거 사람들의 생활사를 살펴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한국생활사박물관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전문 연구자가 아닌 출판사에서 먼저 인식하고 우리 조상들의 생활사를 생생하게 재현하였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그냥 생활사에 대한 책이라고 하면 될 것을 ‘박물관’이란 말은 왜 붙였을까? 그것은 생생한 유물이 전시돼 있는 ‘박물관’을 책 속으로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박물관 속에 박제된 책이 아니라, 책 속으로 자리를 옮긴 박물관이다. 책의 본문에서는 야외전시, 일반전시실, 특별전시실, 가상체험실 등의 목차를 써서 실제 박물관의 전시실을 통해 우리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바로 두꺼운 유리 너머의 박제화 된 역사가 아니라, 보는 이(읽는 이)가 더 직접적으로, 생생하게 역사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을 만든 의도이자 이 책의 뛰어난 점이다.


이 책에서는 전국의 박물관과 민속관의 이미지를 총망라했으니, 박물관을 집으로 옮겼다고 평가해도 된다. 아니 어쩌면 박물관을 간 것보다 훨씬 더 생생할 수도 있다. 전국의 박물관 전시실을 가 보면 뭔가 경직된 느낌을 받았을 텐데, 이 시리즈는 유물에 대한 생생한 설명까지 담아 박물관 방문 전 참고용으로 일독해 보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아이들 단골 과제인 박물관 관람을 언제든 집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평처럼 한국생활사박물관은 온 가족이 집안에서 24시간 관람할 수 있는 홈 뮤지엄(Home Museum)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이다. 전국의 박물관을 집안에 들이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를 높게 평가하는 점은 그동안 우리가 펴냈던 역사책의 주인공은 왕이나 위인 등 특별한 인물이었는데, 그들 대신 평범한 우리네 삶을 주인공으로 격상시켰다는 점이다. 이것은 박물관의 본래 기능과 역할을 충실히 재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살아온 흔적들은 유물 또는 유적의 형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네들의 기쁨과 분노가 아름다운 그림과 음악 속에, 정복의 야심과 절망이 무너진 성터와 부러진 칼 속에, 일상의 행복과 슬픔이 깨진 찻잔 속에,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이 빛바랜 사진 속에 깃들어 있다. 그동안 대부분의 박물관과 역사책에서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생활상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소외된 기존 주인공들과는 정반대에 있던 인물들을 끌어왔다. 역사책 주인공인 영웅담 없이 평범한 갑남을녀들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전문 연구자들조차 생활사 관련해 제대로 된 연구 성과가 없는데 인문 출판사에서 생활사 책을 펴내는 건 완전히 새로운 ‘창조’의 영역이었다. 새로운 시도, 최초의 발자취에는 늘 많은 노력이 전제된다. 『한국생활사박물관』을 들여다보면, 책의 맨 첫 장에 나오는 것은 각 전시실의 위치도(Museum Map)로, 읽는 이는 이 순서에 따라 과거의 시간으로 안내된다. 1권을 예로 들면, 저자가 처음 안내하는 곳은 구석기실, 신석기실 등 각각의 생활관이다. 그곳에 들어서면 해당 시대의 생활상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함께 이를 생생히 복원해낸 그림과 유물들이 펼쳐진다. 읽는 이는 이렇게 눈앞에 직접적으로 보이는 다양한 그림과 사진을 통해 석기 시대, 그리고 초기 역사 시대 인간 생활의 다양한 면면들(음식, 가족, 주거, 장례, 농사 등)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각각의 생활관을 돌고 난 후 궁금증이 생겼다면 특별 전시실이나 특강실로 들어가도 좋다. 그곳에서는 ‘모권사회는 있었는가’ ‘단군신화 속의 역사 찾기’ 등 그 시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주제를 찬찬히 설명해준다. 또 그 옆의 국제실에서는 한반도의 유산을 외국의 예와 비교해 그 시대를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가상체험관에서는 유적 발굴 과정이나 당시 생활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도 한다. 고려생활관 1권의 국제실에는 ‘세계의 도자기’를 주제로 고려청자는 물론이고 중국의 채회자기, 유럽의 법랑채 식기 등 이미지의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그렇다고 내용을 가볍게 다룬 건 아니다. 심화학습은 특강실에서 다룬다. 이곳은 비주얼을 빼고 텍스트로 채워 미처 못 다룬 역사를 상세히 설명한다. 단순한 사실부터 다양한 관점까지 두루 읽을거리가 많다. 학생들에겐 논술이나 역사 등 학업 보충교재로 꽤 도움이 되는 내용이다.


이렇게 ‘박물관’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통해 선사시대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우리 민족의 생활사를 세밀히 살펴보는 이 책은 역사학·고고학·민속학·인류학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편집진으로 두루 참여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총 12권의 책에는 8600여 매의 원고, 660여 점의 그림, 1770여 컷의 사진 자료가 담겼다. 시리즈의 문을 닫는 12권 남북한생활사는 시리즈 중 가장 많은 500여 점의 사진, 그림 자료를 실어 눈을 사로잡는다.


생활사박물관은 과거 생활을 재현하기 위해 ‘다큐 일러스트레이션’, 일명 ‘다큐 삽화’라는 장르를 새롭게 개척하였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과거의 생활사를 세밀하게 복원하는 미술계의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다. 일단 생활사라는 미시사 영역의 축적된 연구 성과도 부족했고, 사료라는 게 대부분 문헌 위주여서 눈에 확 들어오는 삽화와 그래픽을 구성하는 건 거의 창조에 가까운 작업이었다. 게다가 이건 역사의 영역이라 일일이 ‘고증’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림 하나당 대여섯 차례 고증을 거치는 무한한 노력을 퍼붓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시간이 대여섯 배 더 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작업을 하는 동안 400명이 넘는 사람이 6년 이상 퍼부은 노력의 대가는 허투루 날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생활사박물관 제작 초기에는 축적된 생활사 연구 자료가 거의 없어서 큰 고생을 했다. 화가들은 기획부터 당시 생활사를 토론하고 배우고 연구해 이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린 뒤엔 수차례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수정을 거듭했다. 전문가 역시 구체적인 당시의 실상을 알지는 못했기에 재현된 그림을 보고 출판 디자인팀과 함께 더 실상에 가까운 모습을 재현하고자 노력하였다.


한국생활사박물관 책은 그다지 쉽지 않은 책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용이 삽화와 실물 자료로 제공되고 있어 아이부터 조부모까지 가족 모두 즐길 수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자 손녀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아버지 어머니는 공부가 아닌 재미있는 이야기로 역사를 즐길 수 있고, 학교 공부에 치인 아이들은 집에서도 박물관에 방문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에겐 학교 과제를 위한 보충 자료로도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


한국생활사박물관 총 12권의 박물관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원형들이 총망라돼 있다. 그중에 명장면을 꼽으라면 아래와 같다. 반구대 암각화 복원 작업, 백제 금동대향로 파노라마 촬영, 고구려 고분벽화 복원, 잊었던 발해와 가야사의 부활, 근대화의 역동적인 생활상까지 굵직한 흐름과 이정표를 짚어가며 감상하면 즐거운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수련』

배철현 지음, 21세기북스, 2018


『나무야 나무야』

신영복 지음, 돌베개, 1996


『쟁점 한국사』

배항섭 외 지음, 창비, 2017  




송호정 -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서울대 대학원에서 한국 고대문화의 원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 민족과 한국 고대국가의 형성 과정을 연구해 「고조선 국가 형성과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신대박물관 연구원과 서울대 강사를 거쳐 2000년부터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연구 성과로는 『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단군, 만들어진 신화』『아틀라스 한국사』『처음 읽는 부여사』 등이 있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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