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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장이 탄생시킨 백암순대

경기학광장Vol.5 _ Trip & Healing

< 백암장이 탄생시킨 백암순대 >


- 경기학광장Vol.5 _ Trip & Healing -



경기학광장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하는 계간지입니다. 경기도와 31개 시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고자 합니다. 전문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경기학광장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용인시 백암면 백암순대촌을 찾아가는 길은 썰지 않은 순대처럼 꼬불꼬불했다. 천안의 병천순대, 포천의 무봉리순대와 함께 용인의 백암이 순대의 명소이어서일까. 5일장이 서는 백암장터 한 켠에 장꾼들의 허기를 달래줄 순댓국밥집들이 여럿 있다. 가장 성업 중인 식당이 제일식당과 중앙식당인데, 80년 최고(最古)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 <중앙식당>을 찾았다.





순대의 역사


순대 하면 서양의 소시지(Sausage)를 연상하게 된다. 소시지란 돼지·소고기 등 여러 가지 육류를 염장해서 간 다음 동물의 창자 또는 인공 케이싱(casing)에 채워 삶거나 훈연 처리한 가공식품을 말한다. 3천 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소시지는 B.C 1,500년경 바빌로니아에 그 기록이 남아있다. 비엔나소시지, 후랑크소시지, 살라미 등이 워낙 유명한 탓에 서양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 남북조 시대(420~589년)에 편찬된 <제민요술(齊民要術)>에 ‘파,생강,후추,소금,간장 등으로 간한 염소나 양고기를 동물 창자에 충전해 먹었다’는 기록이 있어서 동서양의 공용음식으로 보는 것이 옳다.

우리나라 순대의 역사도 그 연장선에 있다. 몽골어 순타(Sunta)는 ‘동물 창자로 만드는 도시락’으로서 몽골의 전투식량이었다. 고려 때 30년간(1231~1259년)에 걸친 몽골침입이 있었고 이때 한반도로 전래, 우리말 순대의 어원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최초의 한글요리서인 장계향의 『음식디미방』(1670년)에 ‘삶은 개고기를 여러 재료와 섞어 개 창자에 넣어 만든 개장’이 소개되어 있고, 1809년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閨閤叢書)』에도 ‘소의 창자에 고기와 재료를 다져 넣어 쪄먹는 쇠창자찜’이 소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다양한 형태의 순대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요새 먹는 순대라는 말은 1800년대 말에 편찬된 저자 미상의 요리서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도야지순대와 어교순대의 조리법’으로 처음 등장한다.


순대의 종류


순대는 지역과 재료에 따라 명칭이 매우 다양하다. 당면이 많이 들어가 걸지고 담백한 맛의 평안도순대, 주로 대창에 소를 채워 큼지막한 함경도 아바이순대, 찹쌀 대신 돼지고기를 갈아 넣는 개성순대, 많은 재료가 들어가 푸짐하면서도 기름진 맛의 병천순대, 순대 소를 갈아서 부드러운 소시지를 먹는듯한 백암순대, 육류와 채소를 많이 사용하는 경기도순대, 보리·메밀·부추를 넣어 만드는 제주순대, 생태를 내장을 빼 말린 뒤 그 안에 소를 넣고 만드는 명태순대, 찹쌀과 당면을 위주로 한 찹쌀순대, 오징어 몸통에 순대 소를 집어넣어 만드는 오징어순대, 야채와 고기를 다져 두부와 함께 민어 부레에 넣고 찌는 어교순대 등이 대표적이다.




백암순대를 탄생시킨 백암장


천안 병천순대와 쌍벽을 이루는 용인의 백암순대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백암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백암은 원래 행정상 죽산군 근삼면에 속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14년 용인군으로 편입되었으며 지리적으로 경기도의 중심에 자리해서 물자들이 오고 가는 통로였다. 용인을 대표하는 김량장과 두 축을 이룬 백암장은 조선 시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우시장이 서던 곳이라서 장이 서는 엿새하루장(매월 1,6일장)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참고로 조선 시대 15세기 말에 시작된 열흘장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그 수가 증가하여 17세기 후반부터 5일장으로 발전하였다. 이는 보부상들이 시장을 옮겨 다니기에 알맞은 기간이 5일이어서 대개 군 단위로 서너 곳의 장이 번갈아 열렸는데, 용인만 해도 용인장(구 김량장)은 열흘닷새장(매월 5,10일장)으로 열려 같은 군에서 한 달 새 15~20번 정도의 장이 섰던 것이다.

1770년에 간행된 『동국문헌비고』에 의하면 백암의 원래 지명은 배관(排觀)이었다. 50여 년 후 발간된 『임원경제지(1827년)』에는 배감(排甘)으로 표기가 바뀌고 이것이 순우리말 배개미를 거쳐 19세기 초반에 백암(白岩)으로 정착되었다. 1924년 『조선의 시장』에 따르면 당시 매상고로 100만 원이 넘는 수원장, 안성장에는 못 미치지만 30만 원을 능가했던 백암장은 당시 쇠전으로 불리던 전국 655곳의 우시장 중에서도 가장 거래량이 많았던 함북 명천장이나 길주장에 버금갈 정도의 규모를 자랑했다. 쇠전이 커지자 쌀을 파는 싸전뿐만 아니라 의류, 생선, 술, 야채, 과일 등 상인들도 가세하여 정육점, 음식점도 덩달아 흥성했다. 이로써 훗날 ‘백암순대’라는 지역명을 딴 음식이 출현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용인의 전통시장은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1975년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상가와 상설시장이 많이 등장하면서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1963년 6월부터 축협의 가축 직거래가 이루어져 소의 유통망에 변화가 생기면서 백암장 쇠전의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1980년대 들어 우시장이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지역 내 농업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 이곳이라 질 좋은 백옥쌀을 등에 업고 싸전이 융성해지고 4~5월 한 달 동안 모종 시장이 성시를 이루게 되었다.


백암순대의 탄생


백암순대는 경기도 대표 향토음식 중 하나로서 백암장과 관련이 깊다.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풍성옥’을 운영했던 함경도 출신의 이억조가 닷새 단위로 백암장이 설 때마다 순대와 순대국밥을 만들어 판 것이 시초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80년도 더 된 일제강점기 때 백암순대의 원조로 불리는 옛날백암순대가 있었고 그 후손들이 중앙식당, 제일식당 등을 차려 순대촌을 이루었으므로 원조 가리기는 별 의미가 없다. 이들 식당에서는 양배추와 숙주나물, 부추, 양파, 호박 등의 야채를 다듬고 돼지 머릿고기와 뒷다리, 선지, 불린 찹쌀을 갈아 양념한 뒤 돼지 내장 속에 넣고 살짝 삶아 두었다가 손님들이 드나들 때쯤 40분 정도 찜통에 쪄낸다. 백암순대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인공 케이싱이 아닌 순수 돼지 내장에 텁텁하고 비린 선지를 줄여 넣는 대신 여러 채소를 다져 넣어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내기 때문이다. 족보상으로 따지자면 예로부터 특이한 맛을 자랑했던 개성식 순대 맛에 가깝다.

백암장이 ‘순대장’으로 유명해진 또 다른 이유는 백암면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돼지 사육농가를 보유하고 있고 근처에 도축장이 있어서 순대의 주요 재료인 돼지부속물을 구하기가 용이했던 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순대국밥이나 수육에 찰떡궁합인 백암막걸리와 지역특산물인 용인 백옥쌀의 찰진 맛이 백암순대 맛을 한층 살려주는 역할을 해서이다.


영양만점 백암순대


순대는 영양이 풍부한 음식이다. 백암순대의 기본 재료인 돼지의 내장과 선지에는 단백질과 철분 등의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 있어 빈혈과 어지럼증을 예방하고, 내장 속에 넣는 다양한 채소에는 비타민과 섬유소가 풍부하다. 함께 들어가는 찹쌀 등의 재료를 통해 탄수화물도 섭취할 수 있으므로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하다. 모듬순대로 내놓는 머릿고기와 오소리감투도 순대의 맛을 더한다. 머릿고기는 살코기와 달리 특유의 돼지냄새가 적으면서도 쫀득한 맛이 일품이고, 오소리감투는 돼지의 위장 부위인데, 그 양이 적어서 눈 깜짝할 새 오소리처럼 사라지거나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하는 모습이 감투를 쓰려 하는 모습과 흡사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 맛이 쫄깃하고 구수할뿐더러 위의 연동운동을 도와 소화불량에 효과가 있고 위를 따뜻하게 하므로 몸이 차거나 소변이 잦은 사람들에게 특히 좋다.

한편 순댓국은 돼지 뼈를 긴 시간 우려 만든 육수에 순대와 내장, 허파, 간, 염통, 머리고기 등 각종 돼지부속물을 함께 넣어 끓여 먹는 국밥 형태의 음식으로서 핏물을 뺀 돼지 뼈와 대파, 통마늘, 생강 등을 함께 넣어 24시간가량 푹 끓인다. 기호에 따라 양념장을 넣어 얼큰하게 먹기도 하며 부추로 만든 겉절이나 김치, 깍두기를 곁들이면 궁합이 잘 맞는다.

신한대 식품조리과학부 김영성 교수는 “순댓국은 나쁜 병균을 몰아낸다. 납, 수은 등 우리 몸에 유해한 독소를 해독시켜 줄 뿐 아니라 비타민F라 불리는 리놀산(linoleic acid)을 비롯한 많은 종류의 비타민을 다량 함유한 건강식”이라고 말한다. 리놀산은 혈액의 콜레스테롤치를 줄여 동맥경화, 심근경색, 고혈압 예방에 도움을 주고, 순대 국물과 부속고기에 풍부한 단백질은 면역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80년 전통의 중앙식당


취재차 찾아간 8월 31일,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 ‘백암 백중문화제’ 축제 관계로 교통통제를 하고 있어 먼 길가에 차를 세우고 찾아가다 보니 노란색 바탕에 ‘토종순대 중앙식당’, ‘원조백암토종순대’ 등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불과 20여 미터 거리에 있는 제일식당과 마찬가지로 문밖에까지 대기 손님들이 운집해 있다. ‘80년 전통 백암순대’ 문구와 함께 내걸린 백종원의 3대천왕 출연 사진이 눈길을 끄는 중앙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일제 때 옛날백암순대로 문을 열었던 할머니(1대), 어머니 장막달라(2대)의 가업을 이어받아 맏딸(3대)이 운영하고 있는 종가식당이다.

오후 2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었지만 빈자리가 없다. 홀을 분주히 오가는 젊은 청년에게 모듬순대를 포장해달라며 주인과의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바빠서 응할 수 없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 청년은 주인의 아들로서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일하는 중이란다. 곁눈질해 주방 안을 들여다보니 청년의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조리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정말 경황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주방에서 차려 내는 차림상과 손님들이 식사하는 모습, 메뉴판, 홍보 액자 등을 사진에 담고 손님들에게 맛 품평을 듣는 것으로 대신했다. “국물 맛은 묵직하고 순대 맛은 깔끔해요” 실제 사진에 담아 본 순댓국은 뽀얗다 못해 노란 색깔을 띠었다. 돼지 사골을 충분히 우려낸 흔적이다.

포장해 온 모듬순대를 안주로 삼아 저녁때 막걸리를 한 잔 했다. 순대 반, 머릿고기 반. 그런데 순대는 병천순대와 달리 겉모양이 하얗다. 선지 대신 야채를 듬뿍 넣어 흰색이 나는 백순대 소는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일품이고 돼지 냄새나 잡내가 없다. 머릿고기 또한 돼지 내장을 주로 내놓는 인근 제일식당과 차별화된 깔끔한 맛을 보여 아이들이나 여성들이 먹기에도 불편함이 없을 듯 싶었다.






백암 백중문화제


백암장과 관련, 백암순대 외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곳의 백중놀이다. 음력 7월 15일인 백중(百中)은 무더운 여름을 보낸 농부들이 가을 농사를 앞두고 휴식을 취하는 전통 보름 명절로 예부터 다양한 민속놀이를 즐겼는데, 백암에선 매년 백중날 씨름·농악 등을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이곳을 찾아갔던 8월의 마지막 날, 마침 ‘제7회 백암 백중문화제’가 백암장터 일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2011년 백암백중문화보존위원회가 전통풍습을 되살려 매년 문화제로 이어오고 있다. 축제는 백중장사씨름대회와 전국농악경연대회, 백중가요제 등으로 꾸며진다. 축제 기간 내내 품바, 버스킹 등의 길거리공연과 노래자랑, 태권도 시범, 여자장사·남자장사씨름대회 등이 이어지고 다양한 체험마당도 펼쳐진다.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성한 백암장, 단오 때나 백중 때 찾아오면 좋겠다.






위치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로 13

전화 031) 333.7750

영업 09:00~20:00

메뉴 순대국밥 7,000(특 8,000) 순대(소) 10,000 모듬순대(대) 15,000



글 신완섭

경기 군포 거주. K-Geofood Academy 소장. <알아야 제 맛인 우리 먹거리>, <몸에 좋은 행복식품 다이어리> 외 다수의 식품서적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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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경기학광장 Vol.5 _ 2020 여름호

    발행처/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

    발행인/ 강헌

    기획/ 이지훈, 김성태

    발행일/ 202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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