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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

새롭게 만나는 경기도 박물관 3

경기 땅에 세워진 첫 국가 '백제'

2020 중부일보 연재 시리즈 〈새롭게 만나는 경기도 박물관〉은 개관 25주년을 맞이하여 전시실 전면 개편을 진행한 경기도박물관이 중부일보와 함께 2020.06.28부터 2020.09.20까지 총 10회 시리즈로 제작한 콘텐츠입니다. 더 자세한 〈새롭게 만나는 경기도 박물관〉을 만나보고 싶으시다면, 중부일보 홈페이지에서 원문으로 즐기실 수 있습니다.



경기 땅에 세운 첫 국가, 백제



큰 독

큰 독의 겉면은 얼룩덜룩해서 젖소 가죽 같지만 원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당시 화재로 집이 무너지면서 항아리가 부서지고 조각이 불에 타면서 표면색이 달라졌다. 발굴되고 복원에만 1년 이상 걸렸다.(포천 자작리 유적 출토품)




큰 항아리와 컵 모양 토기

큰 독이 큰 항아리로 점차 대체되었다. 함께 발굴된 컵 모양 토기로 액체를 따라 사용했던 것으로 생각된다.(화성 소근산성 출토품)


경기 땅의 한성백제


오는 8월 4일, 새롭게 개관하는 경기도박물관의 상설전시는 ‘천년경기千年京畿’의 역사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그러면 ‘경기’가 생기기 전, 삼국시대에는 경기 땅에서 어떤 일이 있었을까? 1996년 개관 이래 경기도박물관은 파주 육계토성, 고양 멱절산성, 화성 소근산성, 포천 자작리 유적 등 경기도의 백제 유적을 발굴하여, 경기 땅에 세워진 첫 국가로 기록된 ‘백제百濟’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삼국시대 경기인의 생활모습을 해석하여 새로운 시각의 상설전시로 풀어내고자 하였다.

경기 땅의 삼국시대는 백제로 시작된다. 백제는 수도의 위치에 따라 서울(한성漢城시기/B.C.18~A.D.475), 충남 공주(웅진熊津시기/475~538년), 충남 부여(사비泗沘시기/538~660년)로 변화하였다. 한성시기 백제의 수도는 한강 남쪽 가까운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에 있었는데, 이곳이 1963년 서울시 송파구에 편입되기 전에는 천년 이상 경기 땅(광주廣州)에 속해 있었다. 그나마 한성의 위치는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하남시 춘궁동 일대가 거론될 정도로 초기 백제 역사는 그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최근의 연구결과를 반영한 한성백제의 역사를 살펴보자.

중국 한漢나라의 침략으로 고조선이 멸망하는 기원전 1세기경, 경기 지역에는 마한에 속한 여러 세력이 있었다. 백제는 고구려에서 온 온조가 한강유역의 하남위례성에 세운 마한의 한 세력에서 시작하여 점차 주변을 통합해 나갔다. 이후 백제 왕실은 관직을 정비하고, 각종 귀금속과 중국산 도자기를 매개로 지방 귀족을 포섭하여 국가 체제를 정비하면서 고대국가의 기틀을 다져나갔다. 또한 전쟁에 대비해 풍납토성을 고쳐 쌓았고, 바닷길로 중국과 교류하는 동시에 고구려가 있는 북쪽으로 영토 확장을 꾀하였다. 백제는 경기 땅에 주요 교통로를 만들고 여러 곳에 성곽을 쌓아 방어체계를 구축하였다. 구릉과 산을 이용하여 쌓은 성벽은 처음에 흙을 다져 쌓다가 점차 돌로 쌓아 방어력을 높였다. 성곽은 전쟁을 목적으로 쌓았지만, 평소에는 각 지역의 행정 중심지로 사용하였다. 이후 백제의 성곽은 한강을 둘러싼 고구려-신라와의 치열한 전투로 다시 쌓거나, 보수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성이 고구려에게 함락되고 수도를 웅진으로 옮긴 후에도, 백제 성곽의 일부는 그 지역을 점령한 고구려나 신라에 의해 재사용되었다. 한성백제의 최전성기는 4세기 근초고왕 재위 때였다. 한강을 이용한 지리적 이점으로 해상활동이 활발하였으며,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강력한 국가로 자리매김하였다. 근초고왕은 중국 황제가 사용했던 황색 깃발을 나부끼며 군대를 진두지휘하였다. 군사를 이끌고 평양성을 공격하였으며, 전투 중에 고구려 고국원왕이 전사하는 장면은 백제 역사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 하다. 이후 두 나라는 황해도 지역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황해도 황주에서 백제토기가 발견되면서 이러한 사실이 증명되었다. 『삼국사기』 기록에는 당시 반걸양 전투(황해도 배천)에서 백제 장수 막고해는 고구려군을 물리친 후 더 이상 쫓지 않으며, 『도덕경』의 문장을 인용한 구절로 군사강국 백제의 면모를 보여준다.


“만족할 줄 알면 욕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知足不辱 知止不殆”




세발 달린 토기

가장 특징적인 백제토기로 중국 고대의 세발 달린 청동기 형태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 주로 제사에 쓰인 것으로 생각된다. (화성 소근산성, 고양 멱절산성 출토품)



한성백제 사람들의 삶과 문화


그러면 한성백제 사람들의 삶과 문화는 어떠했을까? 경기 땅에 살았던 백제 사람은 마을, 무덤, 산성과 같은 유적에서 삶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출입구를 따로 만든 평면 육각형의 집에 살았다. 집 위의 일부분에는 기와를 얹었는데, 만듦새가 토기와 비슷했다. 집 안에는 난방과 조리를 위해 부뚜막 시설을 만들었고, 한쪽에 식량을 저장하는 큰 항아리를 두었다. 생활도구는 토기를 주로 사용하고, 강한 철기로 생산도구와 무기를 만들었다. 백제 사람들은 논밭에서 곡물을 경작하고 과일과 견과류 등을 길러 식량을 얻었다. 곡물로는 쌀·조·콩·팥·보리·밀 등을 길렀으며, 복숭아·밤·박·도토리·호두 등도 먹었다. 여건에 따라 고기·생선·채소도 함께 먹었지만, 매번 배불리 먹을 수는 없었다. 음식 조리는 솥과 시루에 담아 부뚜막 위에 올려 찌거나 삶거나 끓여 먹었다. 남은 식량은 큰 항아리 안에 넣어 복주머니 모양으로 땅을 파서 만든 창고에 보관하였다.

백제 사람이 남긴 유물 중 첫째는 흙으로 빚은 그릇[土器]이다. 모든 사람이 쓰는 생활필수품이었는데, 삼국 토기의 생김새가 서로 달라서 발굴된 유적의 국적國籍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연구자료이다. 삼국시대 토기 중 제일 큰 토기는 높이 1m가 넘는 백제의 큰 독[大甕]이다. 바닥이 둥글고 입이 커서, 마치 둥근 포탄을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겼다. 비슷한 형태의 토기가 전라지역에서는 무덤으로 사용되는데 반해, 경기지역에서는 백제 지방 세력가의 집에서 사용되는 차이가 있다. 항아리 안에서 곡물이 발견되어 곡식을 저장하거나 많은 양의 물을 담는 용도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큰 독의 가치는 단지 저장용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제작기술이 발전하고 이동이 쉽도록 하기 위해 토기의 크기는 절반 정도로 작고 일정해지며 생산량이 증가하였다. 이는 지방에서 세금으로 곡식을 거두어 수도로 옮기거나 지방으로 하사품을 내리는 국가 운영 시스템의 변화 때문으로 이해된다. 쇠로 만든 농기구나 무기도 생산기술이 발달하면서 성능이 좋아지고 규격화 되는 경향을 보인다.


화성 소근산성 성벽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에 위치한 소근산성 성벽 발굴 후 자문회의 모습(2008년). 흙을 다져 쌓은 성곽으로 경기도박물관이 조사하여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한성시기 백제의 방어체계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상과 같이 경기 땅에 살았던 백제 사람은 만족을 알고 실용적이면서도 세련된 문화를 가졌다. 백제는 일찍부터 중국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독자적인 문화로 발전시킨 결과 웅진백제의 무령왕릉이나 사비백제의 금동대향로에서 볼 수 있는 우수한 문화를 만들 수 있었다. 조선시대 실학자인 정약용은 『여유당전서』에서 “삼한 가운데 백제가 가장 강하고 문화가 발달하였다.(三韓之中 百濟最强最文)”라고 하여 후대에도 백제 문화를 높이 평가하였다. 신라에서 많이 발굴된 금동관이나 금동신발과 같은 화려한 유물은 백제의 지방(화성시 요리 무덤)에서만 발견되었는데, 이는 백제 왕실이 지방 세력을 회유하려는 목적으로 내려준 것으로 추측되어진다. 적어도 고고학의 시각에서 유물로서 판단하면, 한성백제의 왕실은 검소하고 절제된 문화를 즐긴 것이 틀림없다. 고려시대 유학자 김부식은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한성백제의 문화를 이렇게 적었다.



새롭게 준비 중인 유물 전시 모습(선사와 고대실)

벽부장 형태의 전통적인 전시에서 탈피하여 수장형의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 儉而不陋 華而不侈”


한준영(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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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새롭게 만나는 경기도박물관〉

    기획 및 발간/ 경기도박물관, 중부일보

    원문 제공/ 중부일보(http://www.joongboo.com)

글쓴이
경기도박물관
자기소개
경기도박물관은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의 전통을 밝히고 계승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박물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