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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화성 제암리 유적과 수촌교회

지지씨가 들려주는 '경기도 근대유산' 이야기

지지씨에서는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한 도서를 한 걸음 더 가까이 살펴보는' 경기학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경기학 시리즈는 [역사문화편], [현대인물편], [역사인물편], [근대유산편] 총 4부로 나누어 진행됩니다.


본 시리즈에서 소개되는 다양한 발간도서는 경기도사이버도서관 및 경기도메모리 홈페이지에서 원문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화성 제암리 유적과 수촌교회


3‧1운동 유적이 된 일제의 양민 학살 현장


종교시설을 넘어 항일운동의 결속 다진 두 교회




▲ 제암리 학살의 참상을 보여주는 당시 사진


1919년 3‧1운동으로 일어난 일제의 만행을 꼽는다면 화성 제암리 학살사건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습니다. 제암리를 비롯한 화성시 전역에서 일어났던 주민들의 독립시위에 앙심을 품었던 일본군은 1919년 4월 15일 제암리 마을주민 30명을 교회당으로 몰아놓은 후 문을 모두 잠그고 집중사격을 퍼부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교회당에 불을 질렀으며 근처 민가까지 불태워 무고한 양민 39명을 학살했습니다.


교회가 있던 자리에는 2001년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이 개관했습니다. 기념관은 화성 지역 3‧1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에 대한 역사적 자료와 생존자의 증언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기념관 야외공원에는 3‧1운동 순국기념탑과 희생자 23인의 합동묘지가 있으며 제암리 사건과 일제의 만행을 외국으로 알린 캐나다 출신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박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외국인 최초로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대한민국 독립유공자인 그는 제암리 뿐만 아니라 수촌리에서 일어난 만행 역시 세상에 알렸습니다.


▲ 제암리 유적의 3.1운동순국기념탑


수촌리 학살사건은 제암리 학살사건보다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제암리 학살 못지않게 잔혹한 사건입니다. 수촌교회는 제암교회와 함께 3‧1운동 당시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던 현장이었습니다. 1919년 4월 3일 화성 장안면과 우정면을 중심으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는 수촌교회 교인들이 다수 참여했습니다.


1905년, 교인 김응태의 주도하에 세워진 수촌교회는 단순히 기독교인의 예배 장소를 넘어 지역사회의 배움터이자 사랑방 역할을 했습니다. 김응태가 지역 계몽사업의 일환으로 장진학교를 설립해 아이들에게는 성경, 국어, 음악, 미술, 체육을 가르쳤으며 어른들에게는 새로운 영농법을 가르친 덕분이었습니다. 화성의 거국적인 독립운동에서도 유독 수촌리 지역의 시위가 극렬했던 이유는 교회를 중심으로 한 지역민들의 결속이 강했기 때문으로 짐작됩니다. 당시 주민들은 장안면사무소와 우정면사무소, 화수리 주재소 등으로 몰려가 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쏜 일본인 순사를 살해하는 등 일본의 식민통치에 격렬하게 저항했습니다.


얼마 후 일본군의 보복 만행이 4월 5일부터 4차에 걸쳐 자행되었습니다. 일본군 수비대는 수촌리를 포위하고 집집마다 불을 지른 후 불길을 피해 뛰쳐나오는 주민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습니다. 마을 전체가 불에 탔고 수촌교회 또한 전소되었습니다. 그들은 살아남은 주민들을 주재소로 끌고 가 악랄한 고문을 가했고 재판에 회부했습니다. 수촌교회 교인 중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차인범은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모진 고문에 의해 22세의 나이로 옥사했습니다. 그의 묘소는 수촌교회에서 400m 떨어진 동산 위에 있습니다.


▲ 복원된 상태의 수촌교회


수촌교회가 자리한 화성시 장안면 수촌큰말길 32번지에서 교회 창립 당시의 초가 교회를 볼 수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십자가도, 교회 표식도 없는 평범한 초가집입니다. 초가 교회 옆에는 현대식 교회가 세워져 있는데, 두 건물의 형태는 대조적이지만 두 곳 모두 규모가 아담한 편이라 의외로 조화로운 풍경을 보여줍니다. 교회가 처음 건립된 1907년에는 초가 15칸의 예배당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때 교인은 100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1919년, 일본군에 의해 전소된 후 1922년에 8칸의 초가로 다시 세웠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 개조를 거듭하다가 1987년 복원을 통해 초기 건물과 가까운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교회 사무실로 사용 중이며 내부 바닥은 긴 널을 깔아 만든 장마루에 천장은 서까래를 노출시킨 연등천장의 구조를 보여줍니다. 수촌교회 구관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6년 화성시 향토유적 제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구관 옆 신관은 고딕양식으로 지은 현대식 교회로 1965년 건립 후 현재까지 본당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한편 수촌리 입구 언덕에는 3‧1운동 당시 독립만세운동의 정황을 새긴 3‧1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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