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30호 | 수업비평은 자기 형성을 위한 교사의 의무

비평의 자격과 문화예술교육


  나는 수업하는 것이 직업인 교사다. 나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만나면서 내가 했던 수업의 좌절과 걱정을 주제로 삼아
부단히 교사로서 나의 삶을 재구성함과 동시에
수업의 변화를 꾀한다. 그 중심에 수업 비평이 있다. 수업비평은 교사인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할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항을 점검하게 해준다.


  수업 비평은 수업 현실을 연구하고 개선하기를 갈망하는 연구자들과 실천자들의 공동노력으로 그동안 많은 발전을 해 왔다. 하지만 비평이 그렇듯이 수업비평에 대한 단일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업비평의 대상이 되는 수업 현상이 엄청난 해석적 잠재성을 내포하고 있는 다의적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수업 현상 내의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수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할 수밖에 없고 동일한 이유에서 수업 비평도 다원적 관점을 갖는다. 나는 수업에 적용하는 모든 기제를 메타적으로 바라보면서 교사의 수업행위를 해석적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수업비평을 정의하고 수업비평을 실천하고 있다. 여기서 수업비평을 해석적 이해로 접근한다는 것은 수업을 분석적 차원에서 관찰하는 것을 넘어서서 수업의 제 요소들이 작동하는 모습을 총체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수업비평을 통해 수업텍스트는 순수한 교육텍스트를 넘어 정치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다의적 텍스트로 전환된다.


  혹자는 교사로서 수업을 잘 하면 되지 왜 수업 비평까지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다. 모든 시인에게 비평이 의무가 아닌 것처럼 수업하는 교사에게 수업 비평이 의무가 아닐 수 있다.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교사에게 수업 비평은 좋은 수업을 위해 필수적이다. 이유는 수업에 대한 교사의 사유가 명확한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거울이 아닌 자기의 육안으로 자기의 전신을 볼 수 없는 것처럼 교사는 수업의 실천을 통해서 만으로 수업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교사는 수업에 대해 깊이 있는 해석적 이해로서 수업비평을 필요로 한다.

  수업하는 교사는 수업하는 데에 전적으로 몰두할 때에만, 수업함은 그 목적을 실현하게 된다. 이 점에서 수업을 놀이에 비유할 수 있다. 놀이의 본질은 놀이를 하는 사람이 자신의 목적에 대한 태도에서 느끼는 긴장감으로부터 해방된다는 사실에 있다. 하지만 놀이하는 사람은 놀이함에서 어떤 태도를 취한다. 이를 주관적 태도의 한 방식이라 표현할 수 있다. 주관의 태도란 참가함, 집중해 있음에 그 성격이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참가함과 집중함은 모두 당사자로서 의미 지평에 참여함을 의미한다. 이처럼 놀이는 놀이하는 사람에게 독립되어 있으나, 또한 그 사람의 참가에 의존되어 있다. 그래서 놀이의 근원적 의미는 중간태 적이다. 놀이가 중간태 적이라는 것은 놀이는 주관에 의존되어 있지는 않으나 주관성으로부터 출발함을 뜻한다. 결론적으로 놀이의 존재 방식은 주관 독립성과 참여함에 있다.



놀이는 주관에 의존된다 하더라도 관객에는 의존되어 있지 않다. 관객 앞에서 행해지는 스포츠 경기와 같은 놀이조차도 관객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것이 보여주기 위한 경기가 될 때, 시합으로서의 본래적인 놀이 성격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 그런데 놀이는 관객에게 말 그대로 잘 보인다는 게 문제다. 놀이는 함께 놀이하지 않고 관람하는 사람에 의해 가장 본래적으로 경험되며, 의미된 그대로 표현된다. 관람하는 사람에게서 놀이는 그 이념성으로 고양된다. 다시 말하자면 놀이의 본래 구성 요소라 볼 수 없는 관객이 놀이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또한 이념적으로 파악할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연극에서 특히 잘 나타난다. 연극은 관객을 위해 존재하며, 이 점에서 관객은 방법상의 우위를 지닌다. 근본적으로 여기에서 연기자와 관객의 구별이 지양된다. 놀이가 연극이 되어 버릴 때, 놀이 그 자체에는 일종의 총체적인 전환이 일어난다. 판 자체가 뿌리 채 바뀌어 방관자의 진리가 당사자의 진리를 대신한다. 관찰하는 자가 실존하는 자를 밀어내는 것이다.



  수업에서 방관자의 진리가 당사자의 진리를 대신해온 대표적인 것이 수업장학, 수업 컨설팅, 수업 평가였다. 수업장학은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교사를 돕고 지원하는 성격으로 변화하였지만 기본적으로 교사의 행동을 높은 곳에서 감시하고 바라본다는 관리적 성격을 강하게 갖고 있다. 또한 수업평가는 교사의 수업계획 및 실행능력을 양적방법으로 평가한다는 의미가 있다. 수업컨설팅은 수업장학에서 파생된 개념으로 교사의 자발성이 존중된다는 측면에서 수업장학과 구분된다. 수업장학과 수업평가 그리고 수업컨설팅은 놀이로서의 수업을 연극으로서의 수업으로 바꾸고, 방관자의 진리가 당사자의 진리를 대신하며, 관찰하는 자가 수업의 실천하는 교사를 밀어낸다. 또한 수업실천가와 수업관찰자가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으며 암묵적으로 관찰자로서 장학사, 평가자, 컨설턴트가 수업 실천가에 비해 우위에 있다는 것을 전제하게 된다. 수업의 이방인을 당사자로 세우는 방법의 채택은 이념적 통일성이 놀이하는 사람의 실제 참여 즉 실존성을 대신하게 한다.

  이에 비해 수업비평에서는 수업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수업에 대한 이해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수업실천가와 관찰자의 명확한 구분과 우위적 관계는 사라진다. 수업비평의 주체는 수업 행위 당사자이기도 하며, 같은 해석공동체 안에 있는 동료이기도 하다. 수업을 실천하는 교사가 스스로의 수업을 성찰하는 수업비평의 주체(관찰자)가 되기도 하고, 비평공동체내에서 상호 수업을 관찰하는 과정이 역동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업교사와 관찰자는 수업비평의 장에서 함께 실천하고 실천결과를 공유하면서 개인적 수준의 자율성을 집합적 수준의 자율성으로 고양된다. 결론적으로 수업 비평은 수업을 통해 쌓아올린 교사 개인의 사변을 파상(破像)시키고 수업 비평의 장에서 수업을 새롭게 상상하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점에서 수업비평은 랑시에르(J. Rancière)의 의견을 빌려 말하자면 현실-되기의 정치를 실현한다고 볼 수 있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미학적 체제에서는 예술의 정치가 두 가지 방식으로 작동한다. 하나는 삶과 분리된 예술임을 부인함으로써 예술을 분리하지 않는 삶을 현실화하려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지배적 삶의 형식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옴으로써 그런 삶에 대한 저항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랑시에르는 삶과 동화되는 삶-되기의 정치와 삶을 거부하는 저항형식의 정치 사이의 긴장이 미학적 체제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수업비평도 삶의 맥락과 분리된 수업을 부인함으로써 삶과 통합된 수업을 현실화하는 것과 지배적 교육의 형식에서 떨어져 나와 그러한 지배적 교육의 양식에 대한 저항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수업 비평이 싸워야 할 대상은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단정을 통해 수업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하지 않는 것, 자기충족적인 해석의 세계를 형성해 그 안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는 것, 좋은 수업에 대한 해석을 독점하고 대화를 차단하는 평가기준, 장학, 컨설팅이다. 수업비평 현장은 비평 스스로 자기폐쇄성을 깨기 위한 분투의 장이며, 좋은 수업에 대한 의미 있는 여러 입장들을 차례로 상대하고 여러 비평적 입장들이 계속해서 부딪치고 갈등하는 속에서 질문의 심화와 논의를 확장시키는 장이다.


  그럼 수업하는 교사가 수업 비평을 할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타자적 시점의 도입이다. 수업은 당사자적 시점을 구현하는 과정인 것과 비교해 수업 비평은 교사가 자신의 수업 실행에 대한 일종의 반성행위로서 항상 거울에 자신을 비추는 과정이 필요하다. 거울을 통해 본다는 것은 '타인의 시점'으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에 대한 은유로, 교사는 거울을 통해 타인의 시점으로 자신을 보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수업에 대한 일종의 불편함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수업 행위에 타자의 겹눈을 도입하는 것은 수업장학, 수업컨설팅, 수업평가의 수업관찰 행위에서 제3자가 교사와 학생의 수업행위를 관찰하는 것과 다르다. 타자의 시선은 당사자의 시선과 분리되지 않고 겹쳐지면서 수업의 의미를 재확인하게 된다.


  수업 비평이 타자의 눈을 도입한다는 것은 역사적 지평을 고려한 자리에서 경계 바깥을 상상하는 일이다. 그것은 수업이 교사 자신을 넘어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유지되기 때문이다. 수업의 과정이란 학습자라는 타자와의 끊임없는 교환의 과정이기 때문에 수업비평은 수업디자인으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간 자리, 일상적 시야가 포착하지 못하는 지점을 보는 눈을 갖게 한다. 수업 비평을 통해 수업은 교육과정을 넘어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한 상상력을 만들어낸다. 정리하자면 수업 비평은 수업과 교육과정 그리고 교육을 어떻게 기억할지를 끊임없이 겨루는 논쟁의 장으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를 음미하고 분석, 판단, 평가하는 반성력이 비평 행위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문화예술비평과 수업 비평은 근대정신의 정수를 공유하고 있음은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수업비평은 시인이 비평을 통해 시의 근육을 키우는 것처럼 교사의 수업에 대한 반성력을 키운다.

  그런데 수업비평은 문화예술비평과 같이 자기가 속해 있는 해석 공동체 혹은 언어 규칙에 속해있으면서도 그러한 공동체와 규칙으로부터 끊임없이 떠나고 헤매고 머물렀다 다시 돌아오는 이동성을 갖는다는 특징이 있다. 수업 비평이 어떤 자리의 외부인 동시에 내부인 장소, 즉 의심을 품은 채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어떤 경계에 머물면서 수업에 대한 가장 놀라운 창조적 사유가 샘솟는다. 수업을 통해 학생과의 만남을 설계하고 실천하는 교사의 행위는 수업비평을 통해 스스로 완전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비로소 수업은 새로운 장으로 도약된다. 김수영의 말처럼 수업은 상대적 완전을 실천하는 것이라면 수업비평은 절대적 완전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진 1> 수업의 실행과 수업비평의 순환체계


  이와 같이 여러 가지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수업 비평이 직면한 문제도 있다. 지금 우리시대에는 성찰적 눈으로서 수업 비평 혹은 수업에 대한 비평정신이 축소되고 있다. 문화예술비평이 현상적으로 겪고 있는 가장 커다란 변화가 어떤 작품에 대한 리뷰수준으로 비평이 전락하고 있는 것처럼 수업 비평도 수업과 교육과정에 대한 총체적이고 거시적인 조망권을 확보하지 못한 채 수업의 소개와 기술적 분석에 주력하고 비평의 미학적 수사에 함몰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문화예술비평이 출판시장에 포섭되어 팬시상품에 가까운 신간의 선전문구를 생산하는 형식으로 변모되는 것처럼, 수업비평도 새로운 수업방식에 대한 소개와 수업에 대한 미화로 축소된다. 이러한 현상은 점점 수업비평의 기반이 되는 해석 공동체의 약화와 연결되고, 해석 공동체의 약화는 모든 가치가 공존하는 미결정성의 상태, 사실상 어떤 가치평가도 불가능한 무가치의 상태를 불러오게 된다. 그래서 점차 해석공동체가 약화되고 다양성만이 강조되어 좋은 수업에 대한 판단과 평가를 배제한 선택과 배치 자체가 수업비평의 전부가 된다.


  수업비평은 수업의 실천과 상호작용하면서 늘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기계적으로 정해진 방식을 고집하며, 역사를 거쳐 오면서 잘 다듬어진 수업의 오솔길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고 같은 수업을 반복하는 것처럼 수업 비평이 오랜 관습의 무게에 눌려 다른 비평을 상상하지 못하고 거기에 갇혀 있게 되면 그것은 수업 비평이 아닌 수업광고 또는 홍보에 다름없다. 살아있는 수업 비평이 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눈의 개입을 허락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 동시에 타인의 눈으로 자신의 심장을 겨누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그래야 수업도 잘 다듬어진 오솔길을 벗어나는 항해를 시작하게 된다. 비평이 자신이 머무는 장소 혹은 지반의 정당성을 묻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존재방식, 새로운 비평언어를 개발하며 적극적으로 그 가능성을 실험하고 탐색할 때 수업도 살아나게 된다. 그래서 수업비평은 수업하는 교사의 자기형성을 위한 의무가 되어야 한다.





<사진 2> 수업의 실천과 공개   / <사진 3> 수업비평 : 자기관찰로서 수업비평













세부정보

  • 웹진 '지지봄봄' /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2012년부터 발행하고 있습니다. ‘지지봄봄’은 경기도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까이 바라보며 찌릿찌릿 세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입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이라면 어디든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다양한 삶과 배움의 이야기와 그 안에 감춰진 의미를 문화, 예술, 교육, 생태, 사회, 마을을 횡단하면서 드러내고 축복하고 지지하며 공유하는 문화예술교육 비평 웹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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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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