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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30호 | [서평] '랩걸' - 우정의 공동체를 위하여

비평의 자격과 문화예술교육


일터이자 놀이터 여우(여기·우리)책방

  여우책방협동조합은 올해 개업 6년차를 맞는다. 책방은 낮시간 공간이 비는 별주막에 세 들어 숍인숍 형태로 책과 차 등을 판매하며 각종 모임과 행사를 연다. 에코페미니즘을 중심가치로 삼고 여성주의 외에도 공동체, 환경, 대안적 삶에 관련된 책들과 고전, 문학 등을 취급한다. 에코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와 평등을 강조하는 페미니즘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연과 생태에도 관심을 둔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의 지배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모순을 비판하며 모든 생명이 부여받은 신성(神性)을 살려 억압을 벗고 자립할 것을 주장한다.



여우책방은 오픈 이래 여성주의 공부모임을 시작으로 현재 7개의 모임(여성주의 공부 모임, 고전 읽기 모임, 희곡 낭독 모임, 글쓰기 모임, 시 창작 모임, 책 낭독 모임, 페소아 읽기 모임)을 운영하고 있으며, 여성과 환경에 관련된 행사들을 매년 열고 있다. 여우책방의 활동은 함께 공부하고 함께 어울리는 일이다. 책방 조합원 가운데 세 명이 직원으로서 요일별로 일하고 있으며,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가는 연 2회 조합원 워크숍을 통해 각자의 지향과 책방의 비전을 공유한다.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책방 친구들은 여러 지원사업에 참여하면서 행사를 열거나 발표회를 하기도 하고, 글을 써서 책도 만들고, 낮술을 즐기기도 하며, 매년 책방이 여는 송년회에서 장기자랑을 한다. 일과 놀이를 함께 가져갈 수 있다는 건 대단한 행운일지 모른다. 여우책방에서는 사람들과 책을 매개로 어울린다.




여성 과학자 호프 자런

3년 전 쯤 여성주의 공부모임에서 『랩걸』을 선정해서 읽고, 여우책방 사람들과 함께 만든 책 『여우책방, 들키고 싶은 비밀』(사막여우, 2018)에 ‘여우책방이 읽은 책’ 12권 가운데 하나로 소개한 적이 있다. 그때는 이 책을 호프 자런과 빌과의 우정 이야기로만 생각했는데 다시 읽으니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들어온다. 우정에 기반한 실험실이라는 ‘일 공동체’가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고, 저자의 식물과의 교감과 생태적 관점에 대해서도 주목하게 되었다. 호프 자런의 엄마는 자녀들을 어느 정도 키우고 뒤늦게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막내인 그가 엄마와 함께 공부하고 책을 읽은 영향을 많이 받아서일까 그의 문장과 표현은 문학가라 해도 손색이 없다. 문학적 재능과는 별개로 그는 과학 교수였던 아빠의 실험실에 드나들면서 아빠를 가장 닮은 아이는 바로 자신이며, 자신의 깊은 욕망은 과학자가 되는 것임을 깨닫는다. 호프 자런에게 실험실은 ‘가장 친한 친구와 노는 곳’(35쪽)이며, ‘진짜 나일 수 있는 장소’이고, ‘도피처이자 망명처’였다.(36쪽) 그는 박사학위를 받은 후 조지아 공과대학교에 채용되어 그토록 원하던 자신의 이름을 단 첫 실험실을 갖게 된다. 이후에도 실험실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연구기금을 확보하려고 애쓴 경험담들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실험실에 대한 애착은 한편으로는 그의 과학자로서의 성취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


식물입장의 생명활동

나무의 생태를 연구하는 저자의 식물에 대한 기록도 흥미롭다. 그는 식물들의 고유한 생명 활동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보여준다. 이파리들은 당을 만들며, 살아 있지 않은 무기물에서 당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우주에서 식물이 유일하다고 한다. 모든 것을 제거해도 멀쩡한 뿌리 하나만 있으면 다시 자라나는 식물의 회생 능력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호프 자런은 나무들은 늘 무엇인가 하고 있으며, 나무들이 왜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새로운 방법으로 연구했다.

  그는 식물의 입장이 되어 세상을 식물들의 관점에서 보는 방법을 배우고자 했다. 나무가 되는 것은 긴 여정이며 경험이 굉장히 많은 식물학자라도 나뭇가지나 묘목만을 보고 그 나무가 향후 50년 사이에 어떤 나무로 자라게 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관찰은 인간도 나무처럼 자기 나름의 성장 패턴을 찾아서 자라는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한다. 이미 60년 가까이 자란 나라는 사람은 앞으로 어떤 성장을 더 이룰 수 있을까. 식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지구 위에 서식하는 모든 생명들을 위계지우거나 타자화하지 않고 동등한 개체로 여기는 생태주의자의 관점이다.



실험실 동료 빌
  호프 자런은 연구에 몰입했고 끊임없이 재미를 찾아냈고 결정적으로 그에겐 함께 연구하며 그의 모든 말을 이해하는 동료 빌이 있었다. 두 사람은 20대 초반에 대학교 현장연구 과제를 위해 구덩이 파는 일을 하다가 처음 만났고, 저자가 교수가 되고 몇 군데 학교를 옮겨가면서도 늘 함께 실험실을 운영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버려진 실험실 장비들을 주워 모았고, 유리관을 만들다가 폭발하는 실수를 저지르거나, 미국을 가로질러 학회에 가다가 눈보라에 자동차가 전복되는 등 온갖 사건 사고를 함께 겪었다. 호프 자런은 유달리 긴밀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 관계에 대해 의아해한다. 빌과 나 말이다. 오누이? 영혼이 통하는 친구? 동지? 수사와 수녀 관계? 공범? 거의 매끼 밥을 같이 먹고, 재정적인 문제도 얽혀 있고, 서로에게 모든 것을 말한다. 여행을 같이 가고, 일을 같이 하고, 서로가 시작한 말을 대신 끝내주고, 그리고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걸어왔다.’(392쪽) 뭐라 이름 지을 수 없는 친밀한 ‘우리’에 관심이 간다.


  호프 자런에게 연구는 몰입할 수 있는 놀이였고, 그 일을 해나갈 때 그가 자신답게 행동할 수 있게 하는 동료 빌이 있었다. 몇 군데 저자의 고백을 들어보면 이들은 영혼의 샴쌍둥이가 아닐까 싶다. ‘중요한 것은 나와 빌이고,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일들이다. 나머지는 모두 배경 소음에 지나지 않는 일들이다.’(234쪽) ‘그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를 마침내 완전히 깨달았다.’(236쪽)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된다 하더라도 내 첫 임무는 세상에 구덩이 하나를 파고 빌이 들어가서 괴팍한 자기 모습 그대로 안전하게 살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될 것이다.’(351쪽) ‘나를 선택하면 함께 따라오는 종합 선물세트의 일부, 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형제이다.’(392쪽) 호프 자런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지만 결혼하지 않은 빌을 동료로서 곁에 두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빌의 급여를 책임지고 모든 난관을 헤치며 함께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 결국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지켜내는 용기가 대단하다.



우정의 공동체

일과 놀이를 함께 하는 친구, 늘 곁에 있어주는 친구가 부럽다. 몽테뉴*는 ‘영혼의 합일’이 일어나는 엄청난 우정의 세계를 말했고 여성의 우정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호프 자런과 빌 사이엔 우정이 있다. 로마의 최고 지성이라는 키케로**는 인간사는 덧없고 무상한 까닭에 우리는 늘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지 않을 수 없고 사랑과 호의가 없다면 인생에는 그 어떤 낙도 없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우정의 요체는 공적인 생활에서나 사생활에서나 관심사가 같고, 취향과 목표와 의견도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또 우리가 고르는 친구는 굳건하고 견실하고 의연해야 하는데 그 버팀대는 신뢰라고 한다. 호프 자런과 빌 사이엔 신뢰와 공감이 있다. 그들의 우정이 빛난다.


다행히 호프 자런과 빌의 실험실 못지않게 ‘여기 우리’ 일하면서 노는 책방이 있다.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책을 읽고, 책을 매개로 여러 문화 활동을 하고 있다. 공부로 삶의 중심을 잡고 재미있게 살아나가고자 한다. 호프 자런과 빌이 서로에게 하듯이 무엇을 기대하고 요구하기 보다는 서로 힘들 때 지켜봐주고 언제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들어주는 친구가 있다면 세상은 살 만한 것 아닐까. ‘삶과 사랑은 버터와 같아서, 둘 다 보존이 되질 않기 때문에 날마다 새로 만들어야 한다.’(385쪽)는 마지 피어시의 말처럼 일이든 관계든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멈추지 않았다는 호프 자런의 말을 새긴다. ‘우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문을 두드리는 것도 멈추지 않았고, 언젠가는 그 문들이 열리기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251쪽) 함께 나아가는 우정의 공동체!!





호프 자런, 『랩걸』, 알마, 2017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육문사, 2013

**키케로 외, 『그리스 로마 에세이』, 숲,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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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진 '지지봄봄' /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2012년부터 발행하고 있습니다. ‘지지봄봄’은 경기도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까이 바라보며 찌릿찌릿 세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입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이라면 어디든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다양한 삶과 배움의 이야기와 그 안에 감춰진 의미를 문화, 예술, 교육, 생태, 사회, 마을을 횡단하면서 드러내고 축복하고 지지하며 공유하는 문화예술교육 비평 웹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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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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