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2021-09-25 ~ 2021-12-26 / 블루메미술관 기획전 《The Sun Is Going Home》

글, 사진 김지연 미술비평가


네 명의 남자가 석판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다. 그곳엔 라틴어로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Et in Arcadia ego.”라는 문장이 쓰여 있다. 니콜라 푸생(1594-1665, 프랑스의 화가)의 대표작 <아르카디아의 목자들>의 장면이다. 아르카디아는 그리스의 지명으로, 신화나 문학 등에서 지상낙원을 상징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아르카디아에 누가 있다는 것일까. 문장의 주어는 ‘죽음’이다. 은유로 가득 찬 이 고전 명화는 낙원에도 죽음은 존재하며, 죽음은 항상 우리와 함께 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예술 작품들은 오래전부터 죽음을 직시하라고 이야기해왔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죽음이 우리의 삶과 멀다고 생각한다. 사실 두렵고 낯선 것은 되도록 멀리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래서 못 본 척하는 마음이다.


게다가 현대사회에서 죽음은 하나의 산업이다. 정확히 말하면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우리의 시야에서 지우는 모든 종류의 일들이 산업으로 성장했다. 죽음을 막는 의학, 죽음에 고운 옷을 입히고 분칠을 해주는 장례 서비스, 죽음이 남긴 흔적을 깨끗이 치워주는 유품정리업,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인 노화부터 애초에 방지해 버리는 각종 미용산업 등은 우리의 두려움을 지워주기 바쁘다. 우리는 그런 산업의 울타리 안에 숨어 눈을 가리고 죽음으로부터 안전하다는 느낌에 안도한다.


하지만 멀리 도망치고 눈을 가려 보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죽음과 만나지 않을 수 있을까? 영화 <굿, 바이>에서, 첼리스트를 그만두고 갑자기 장례지도사가 된 주인공 다이고는 이런 말을 한다. "모두가 죽어, 당신도 나도. 그런 죽음이 일반적인 게 아니라면 뭐가 일반적인 건데?" 우리가 태어나서 숨 쉬며 살아가는 것처럼 너무도 당연하고 일반적인 것이 죽음이다. 누구나 죽음을 만날 수밖에 없다. 타인은 물론 나를 둘러싼 동식물의 죽음, 그리고 마침내 나 자신의 죽음까지도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는 운명이다.



이솝_2001-2020.5.22_사진_520x15cm_2020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블루메미술관의 기획전 《The Sun Is Going Home》은, 해가 ‘지는’ 것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뜻으로, 정원사와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며 죽음에 대한 태도를 재정의한다. 150년 된 굴참나무를 그대로 살리며 건축한 이 미술관은 굴참나무의 학명을 따서 ‘블루메(Blume)’라는 이름을 붙였다. 시작부터 자연 친화적인 이곳은 정원문화를 해석하는 전시 시리즈를 꾸준히 기획해왔는데,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관의 내부 공간과 중정의 작은 정원까지 활용해 작품을 디스플레이했으며, 고양시의 동네 책방 ‘라비브북스’와 협업하여 전시의 주제인 ‘죽음’을 다양하게 읽어내는 책들을 함께 전시했다. 또한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채널 ‘오드 스튜디오 서울’과 협업해 ‘내 장례식장에 와주었으면 하는 뮤지션들의 노래’, ‘내 인생이 한 편의 영화라면 엔딩 크레딧에 흘러나올 노래’ 등 전시의 내용과 연결되는 음악 큐레이션을 제공한다. 시각예술 작품부터 책과 음악까지, 전시의 주제를 폭넓게 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접근 방식으로 관객에게 다가가는 점이 인상적이다.


여다함_내일 부서지는 무덤_이불(코튼에 향을 태운 패턴)_가변크기_2021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이대길 정원사의 작품 <우리는 대지를>이다. 인위적으로 바닥의 흙과 분리되어 공중에 붕 떠 있는 낙엽들은 썩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이는 죽음을 애써 외면하려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닮았다. 또한 그는 조화로 만든 탑을 미술관 정원에 설치했는데, 이 작품 <바벨탑>은 가을을 맞이해 시들어가고 있는 다양한 식물들 사이에서 인공적인 초록빛을 머금고 우뚝 서 있다. 시들지 않고 예쁜 모습 그대로 멈춰 있는 것이 과연 진짜 아름다운 일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한편 이솝 작가는 반려동물이 죽어가는 과정을 기록한 작품 <2001-2020>을 통해 죽음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여다함 작가는 등에 거울을 지고 걷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 <경>을 통해서 내 눈에 보이는 것과 내 삶의 여정이 비추는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전시의 동선상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작품인 여다함 작가의 <향연>에서는 실제로 향을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죽은 자를 위해 피우는 향에서 재가 떨어지며 매번 다른 형상을 남긴다. 흰 좌대 위에 남겨진 재의 형상들은 마치 한 편의 편지처럼 보인다.



여다함_향연_향,연기,조명_450x25x30cm_2021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

죽음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생에서 쥐고 있는 모든 것을 잃어야만 하는 두려운 순간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과정 중 하나다. 전시 서문에서 말했듯 ‘한창 살아가는 중에도 우리는 이미 죽어가고 있다(Media vita in morte sumus).’ 죽음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삶 속에 자연스레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하고 그 흔적을 지우기 위해 애쓰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 순간을 더 충만하게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앞서 이야기한 영화 <굿, 바이>에서는 “죽음은 문이다. 끝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문을 통과해 다음 세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라는 대사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전시를 마무리하는 여다함 작가의 <향연>은 이미 떠난 누군가가 남긴 삶의 기록을 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죽음이 써내려가는 새로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좌)이대길_바벨탑_폐조화,금속구조물_50x50x300cm_2021 (우)이대길_우리는 대지를_알루미늄,모래,낙엽,나뭇가지,열매_900x200x80cm_2021


이즈음에서 《The Sun Is Going Home》이라는 전시 제목을 다시 생각해본다. 태양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고,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집으로 돌아간다는 대목이 아니라 태양이다. 하루 종일 빛난 태양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기 전까지도 찬란하게 빛나며 아름다운 노을을 남긴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주어진 시간에 충실히 빛난다면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에도 길고 아름다운 여운을 남길 수 있다. 물론 하루가 지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태양과 달리 우리는 누구도 언제 집에 도착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집에 돌아가는 길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이왕 돌아가는 길이고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다면, 슬며시 다짐해본다. 조화로 만든 <바벨탑>처럼, 부자유 속에서 위태롭게 애쓰는 대신, 오늘의 햇살 아래 할 수 있는 한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자고, 눈앞에 있는 것들을 힘껏 사랑하자고.


블루메미술관 기획전 《The Sun Is Going Home》

기간  2021년 9월 25일(토)~12월 26일(일)

장소 블루메미술관(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헤이리마을길 59-30)

참여작가  여다함, 이대길, 이솝

문의 블루메미술관 누리집 http://bmoca.or.kr/



김지연 | 미술비평가, 작가. 예술과 도시에 깃든 사람의 마음, 서로 엮이고 변화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범위를 한정 짓지 않는 글을 쓴다.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미술무크지 『그래비티 이펙트』, 기타 여러 매체에 기고하며, 저서로는 퍼포먼스 아티스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에 관한 삶과 예술에 관한 책 『마리나의 눈』, 보통 사람을 위한 현대미술 에세이 『보통의 감상』이 있다.



동네책방 '라비브북스' 인스타그  오드 스튜디오 서울 유튜브 채널 

지지씨 ‘지뮤지엄 : 살아있는 나무를 품은 블루메미술관’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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