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매일 음악이 흐르는 ‘음악역 1939’

남겨진 것을 위한 최선, 잊지 않기 위한 노력

자라섬재즈페스티벌로 유명한 자라섬에서 1.5km쯤 떨어진 곳에 ‘음악역 1939’라 명명된 가평뮤직빌리지가 있다. 음악을 테마로 다섯 개 동으로 이루어진 복합음악 문화공간이다. 가평군이 ‘음악’, ‘자연’, ‘사람’을 중심에 둔 대한민국 최초의 음악도시를 표방하며 옛 가평역 부지에 2018년 완공해 문을 연 공공시설이다.


서로 다른 디자인의 2~3층 건물들이 산책로를 따라 쭉 늘어서 있고 주변은 광장과 카페, 특산물판매장, 기차 갤러리 등으로 꾸며져 있다. 이중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 M스테이션이다. M스테이션 앞에는 건물 높이만 한 대형 더블베이스가 세워져 있다. 재즈를 상징하는 악기 중 하나다. ‘둥둥둥’하고 현을 튕겨 내는 낮은음이 매우 매력적으로 재즈의 리듬을 살린다. ‘재즈의 도시’다운 조형물이다. M스테이션은 대형 공연을 할 수 있는 공연장, 영화관(1939 시네마), 북카페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가평에 며칠간 머물 때 M스테이션을 자주 들락거렸다. 이곳 북카페에서 원고를 쓸 때 가장 집중이 잘 되었다. 정숙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은은한 조명과 넓은 데스크가 작업 환경으로 안성맞춤이다. 책도 꽤 비치되어 있다. 주로 음악과 문학 분류의 책들이다.


가평에서 열리는 주요 공연이 대부분 이곳의 무대에 올려지는데, 막귀인 나로선 확인할 길이 없지만 음향 면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이라 아티스트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한다. 1939 시네마는 가평의 유일한 영화관이어서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공연이 매일 열리진 않기 때문에 영화관과 북카페가 이곳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M스테이션 옆에 작은 건물 두 동은 각각 녹음 스튜디오와 음악 연습실이다. 주로 가평과 인근에 거주하는 뮤지션들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역시 최상급 시설 덕분에 이용률이 높다. 뮤직빌리지 가장 끄트머리에 뮤즈빌이라 명명된 레지던스가 있어 공연장이나 녹음실을 이용하는 아티스트, 스텝, 교육수강생 등이 숙박을 할 수도 있다. 음악을 생산하는 예술가와 이를 수용하는 일반 소비자들이 두루 이용할 수 있고 나 같은 여행자들도 부담 없이 들러 휴식과 일을 할 수 있으니 인터랙티브한 공간으로 그 효용을 다한다 할 수 있겠다.


1939는 경춘선 가평역이 개통된 해를 의미한다. 뮤직빌리지가 들어선 옛 가평역에는 2010년 12월 20일까지 무궁화호 열차가 오갔다. 바로 다음 날인 12월 21일부터 이곳에서 남쪽으로 1.6km 떨어진 신역으로 새 열차들이 서울과 춘천을 이었다. 신역은 살짝 시내와 벗어나 있어 시내까지 들어오려면 30분쯤 발품을 팔거나 시내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구역 부지가 뮤직빌리지로 재탄생했으니 위치에 대한 아쉬움은 상쇄된다.


M스테이션에서 광장으로 이어지는 길가에는 퇴역한 2량의 무궁화호 열차가 ‘1939’ 팻말을 달고 서 있다. 열차는 이곳에 역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상징이다. 부지에는 옛 역사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지만 ‘청량리발-남춘천행’ 무궁화호 열차 덕분에 가평역과 경춘선의 추억을 더듬는 이들이 많다. 열차 앞에는 장식용으로 놓아둔 공중전화 부스도 있다. 한때는 일상이었던 풍경이 연출된 풍경으로 변하는 세월 동안, 영원할 것 같았던 젊음도 영원한 것은 없음을 인정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늙음이 낡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더 이상 기차가 오가지 않는 경춘선의 폐선 위로는 레일바이크가 달린다. 뮤직빌리지에서 500m만 가면 가평레일파크다. 이곳에서부터 반자동 레일바이크를 타고 춘천의 경강역까지 편도 4km의 구간을 오갈 수 있다. 페달을 굴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철교와 터널에 울려 퍼진다. 가평의 레일바이크가 다른 곳과 견주어 특별한 명소는 아니다. 전국에 폐선을 활용한 레일바이크가 굉장히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마저 천편일률적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폐선이 폐선으로 남지 않으려면 그 위로 바퀴가 굴러야 하는데 그를 위한 최선이 레일바이크라고 생각한다. 발을 굴려 동력을 만드니 친환경적이고 짧지 않은 1시간 30분 동안 주변의 자연경관을 돌아보는 체험 활동이니 단점이랄 게 없다. 기존의 시설물을 활용한 리사이클 관광자원으로 지역 경제도 살린다. 모쪼록 아이들이 있는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는 인기 만점 관광 코스다.


그중에는 ‘나 때는 기차를 타고 지금 이 철길을 달렸어’하고 옛 추억을 회상하는 부모들도 많을 것이다. 그들이 과거에 탔던 무궁화호와 현재 타고 있는 레일바이크 덕분에 철로는 녹슬지 않는다. 나이를 먹는 만큼 경험이 쌓이고 이야깃거리가 많아진다. 나 역시 시나브로 늙어가겠지만 녹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33권 『50만 살의 청춘- 경기 북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가평군 : 청춘이라는 축제>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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