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걷고쓰는사람

사라져가는 풍경, 오일장

성남시 모란오일장에서 만난 풍경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 일명 개 식용 금지법이 2027년부터 시행된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모란시장이었다. 모란시장이 타지 시장과 견줄 때 유난히 토속적인 느낌이 강한 데에는 축산물과 기름 시장이 번성했기 때문이다. 축산물 특화시장에는 흑염소, 개, 가물치, 산토끼, 꿩 등을 파는 가게가 많다. 흔히 ‘건강원’, ‘한약방’ 등에서 볼 수 있는 동물성 보양식 재료들이다. 십수 년을 이어온 ‘개고기 식용’ 논란 때문인지 ‘개고기’라고 쓴 팻말이나 간판은 볼 수 없다. 그러나 매대에는 흐린 눈으로 봐도 개로 보이는 고깃덩어리들이 진열되어 있다. 시장 안팎에는 개고기 수육과 보신탕을 파는 영양탕집도 여러 곳인데 최근 몇 년 동안 폐업하거나 보신탕을 메뉴에서 빼버린 곳들이 제법 많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이따금 마을에서 개를 잡아먹는 어른들을 보아왔기에 수년 전 소위 ‘개고기 거리’를 처음 방문했을 때도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과거 마을의 한 어른은 어렸던 내게 개고기 식용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단백질원이 충분치 않고 개가 반려동물이 아니었던 보릿고개 시절에 대가족이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먹던 개고기 식용 문화가 근근이 이어온 것이다.’ 대체 단백질원이 다양하고 개가 반려동물이 된 오늘날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였지만 일종의 전통으로 굳어진 것이라면 납득할 만한 설명이었다. 개고기 찬반 논쟁에 있어선 ‘내가 먹진 않지만 먹는 사람을 굳이 비난하진 않는다’라는 생각이었다. 다만 식용 개의 사육환경이 비위생적이고 유통과정이 투명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딱히 찬성할 이유는 없다. 주변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반려견을 키우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와 비슷한 생각인 것 같다. 개 식용 금지법이 아니어도 앞으로 보신탕을 찾는 이들은 지금보다 더욱 줄어들 것이 자명하다.




모란가축시장상인회는 이러한 변화를 인정하고 2016년부터 살아있는 개를 진열하거나 보이는 곳에서 도살하는 행위를 중단했고 ‘개고기 거리’가 아닌 흑염소 거리를 조성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개 식용 금지법이 전면 도입되는 현실에 놓이자, 수십 년간 개고기를 팔아 생계를 이어온 상인들은 앞날이 막막하다. 그들이 안타깝지만 누구나 예상했던 일이 조금 더 앞당겨졌다고 생각한다. 이제 ‘개고기 거리’가 있던 모란시장은 이제 시장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모란시장을 부러 찾는 사람 중에는 돼지 부속을 먹으러 가는 이들도 있다. 오일장이 열리는 주차장 부지 끄트머리에는 즉석 음식을 파는 노천식당가가 모여 있다. 이곳에 돼지 부속을 구워 파는 집이 여럿이다. 한 사람당 9천 원을 내면 무제한으로 철판에 구워지는 부속 고기를 먹을 수 있다. 도리창, 지라, 염통, 콩팥, 유통, 돼지껍데기 등 명칭도 생소한 돼지 부속이 한데 뒤섞여 널따란 철판 위에서 끊임없이 구워진다. 둘러앉은 손님들은 자유롭게 철판에 구워진 부속을 집어 먹는다. 사실 처음 먹어본 대부분 사람이 역한 냄새와 느끼한 맛 때문에 많이 먹지 못한다. 그런데 익숙해지면 또 그 나름의 맛이 있는지 별미로 즐기는 이들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먹지 않는 부위지만 오래전 가난했던 시절에 버리기엔 아까워 구워 먹던 것이 그 유래라고 한다. 무제한 돼지 부속구이가 유튜브 영상으로 많이 알려지면서 이제 모란시장하면 돼지 부속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적잖다. 개고기는 사라져도 대중적으로 먹지 않는 돼지 내장이 흥하게 팔리니 모란시장은 내내 거칠고 날 것의 이미지를 유지할 듯싶다.


한편 전국 최대 규모의 오일장으로 꼽히는 모란오일장은 매월 끝자리가 4, 9일에 열린다. 모란개척단의 김창숙이라는 사람이 주도해 1962년에 만든 시장으로 알려졌다. 그는 6.25전쟁 참전용사로 재향군인 개척단으로 활동하다가 단체 이름을 모란개척단으로 바꾸고 모란시장을 열었다고 한다. 모란이란 이름은 그의 고향이 평양이라 모란봉에서 따왔다. 오일장의 기원과 개장을 주도한 인물이 이렇게 확실한 경우는 드물다.




현재 오일장이 서는 부지는 중원구 성남동 일원의 여수 공공주택지구 공영주차장이다. 그래서 보통 길을 따라 양쪽으로 상인들이 좌판을 놓는 오일장 풍경과는 달리 넓은 공터 위에 천막들이 여러 줄로 늘어서 있어 축제장처럼 보인다. 시장 규모가 크다 보니 닷새에 한 번씩 열리는 축제라 해도 과장은 아니다. 원래 시장이 서던 자리는 대원천 하류 복개지였는데 장날이면 무려 10만 명이 몰려 일대가 매우 혼잡해 부지 이전을 십 수년간 논의하고 난항에 부딪히다가 2018년에야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모란 오일장은 김포 북변 오일장, 고양 일산 오일장, 파주 문산 오일장 등과 함께 경기도를 대표하는 오일장으로 꼽히는데 이 중 가장 유명하고 규모가 크다. 이렇게 규모가 커진 데는 근처에 있었던 송파장松坡場이 1963년 없어져 그 기능과 수요를 모란장이 이어받았고 1971년 후술할 광주대단지가 들어서면서 주변 인구가 늘어난 데에 기인한다. 현재 모란시장 상인은 상인회 회원과 노점상을 합쳐 대략 1,500명으로 추산되고 신선식품·청과·육류·잡곡 등 식품과 의류·공산품 등 잡화로 구성된 점포는 약 500개, 16개 품목으로 구획되어 있다.





자루에 쌓아 놓고 되로 파는 양곡, 혈액순환과 피로 해소에 좋다고 써놓은 안마 도구, 끊임없이 당근을 다지며 효과를 증명하는 만능 다지기, 보온과 미끄럼에 강한 방한화, 설탕이 잔뜩 묻은 젤리와 형형색색의 사탕, 사고파는 옛날 지폐와 해외 지폐, 불상과 도자기, 놋쇠 등의 골동품들···. 대체로 재래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이다. 내 눈썰미가 밝지 않아서 일 수도 있지만 모란오일장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물건은 없었다. 판매되는 것들은 골동품을 제외하면 다 ‘새것’들인데 어째서인지 시장의 주 구매층이 중장년층처럼 나이를 먹은 듯하다. 인터넷 쇼핑이 보편화된 세상에 오일장의 주 구매자가 젊은 층이 되기 어렵고 판매 물건 자체도 젊은 층의 소비 욕구와는 거리가 있는 물건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궁금하다. 모란오일장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열릴 수 있을까?




오일장이 십일장으로, 십일장이 한달장으로 주기를 늘려가다가 어느 순간에 기어코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 개장한 모란오일장, 역사의 뒤안길로’ 같은 기사 헤드라인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 지금의 청년들이 나이가 중장년층이 되어서 그들에게 익숙했던 인터넷 쇼핑, 마트 쇼핑이 아닌 오일장 쇼핑을 하게 될 가능성은 작다. 어쩌다 나들이 삼아 나오는 정도일 테다. 가까운 미래에 세대교체가 될 예비 상인들이 현재의 상인 수만큼 되는지도 의문이다. 대기업에서 만든 기름보다는 방앗간에서 짠 기름이 훨씬 고소하고 맛도 좋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우리 세대의 친구들이 ‘단골 기름집’을 드나든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좋은 기름’은 보통 연로한 어머니가 인맥으로 사다 놓은 방앗간 기름을 얻어먹는다. 집마다 제사를 없애거나 간소화하는 추세라 제수용품을 사러 재래시장에 가는 사람들도 크게 줄었다. 부모님이 알아서 하기에 자식들은 그저 돈만 부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연례행사인 김장도, 정월대보름 비빔밥 나물도 예전처럼 일일이 사러 가지 않는다. 시간과 노동력을 들이는 대비 다 만들어져 나온 김치와 밀키트가 저렴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모란시장에서 상인의 날을 기념해 30여 년간 열렸던 체육대회는 회원들의 고령화로 이제 노인잔치로 행사의 형태가 바뀌었다. 상인들과 시장 단골 어르신들이 한데 모여서 서로의 건강을 기원한다. 모란시장과 오일장이 사라질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세상은 반드시 변하겠지만 어떻게 변할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고기가 사라지는 수순을 짚어보며, 어르신들이 장바구니용 손수레를 끌고 모란역과 시장 사이를 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곳에 서 있는 나 또한 향토박물관 액자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45권 『너머의 도시들- 경기 중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성남시 : 도시의 트렌드세터>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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