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걷고쓰는사람

‘다 지나가리라’ 깊은 산 관세음보살의 위로, 도봉산 망월사

물멍하며 오르는 망월사


‘물멍’하며 걷는 망월사 가는 길

계곡물이 맑디맑다. ‘물멍’을 하느라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물멍은 물을 보고 멍하니 있는 상태를 뜻하는 신조어다. 원도봉 계곡 덕분에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을 보느라 혹사당했던 눈이 모처럼 치유 받는 기분이다. 산사로 가는 길, 감초 역할은 계곡이 다 한다. 물소리에 귀를 닦고 흐르는 물에 눈을 씻으며 덕분에 걱정과 불안의 더께가 앉은 마음까지 청소한다.



원도봉계곡길을 따라 1시간 가량 걸어가면 망월사에 닿는다.


도봉산의 3대 계곡으로 원도봉계곡(망월사계곡), 문사동계곡, 무수골계곡(보문사계곡)이 꼽힌다. 저마다 같은 산, 다른 줄기를 타고 청명한 기운 전하기에 어디가 더 좋다 말할 수는 없고 다만 ‘오늘 내가 곁에 둔 계곡’이 제일의 계곡이다.


원도봉탐방지원센터에서 망월사까지는 1.7km쯤 떨어져 있고 보통의 성인 걸음으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망월사역부터 걷는다면 거의 3km 정도 걷는 거리여서 짧은 산행은 아니다. 의정부를 대표하는 고찰 망월사는 인지도에 비해 산행의 수고로움 때문에 사람들의 방문이 선뜻 이루어지지 않는 절이다. (물론 등산객은 늘 많다.) 그러나 오로지 도보길만 있어 등산을 해야 닿을 수 있는 산사 대부분이 그러하듯, 일단 나서면 절보다 절로 가는 길이 더 좋은 경험을 하곤 한다. 망월사 가는 길이 딱 그렇다. 지난 경기도의 아름다운 사찰 기사에서 소개했던 원효사가 망월사와 가까운 절인데, 두 사찰은 똑같이 원도봉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하지만 가는 길은 다르다. 원효사 코스는 아기자기한 계곡길이고 망월사 코스는 좀더 호쾌하고 정돈된 계곡길이다. 망월사계곡은 마치 ‘화이팅’을 외쳐주는 느낌이랄까. 또한 곳곳의 크고 작은 폭포와 깊고 투명한 웅덩이는 한 폭의 그림과 같아서 걷는 내내 힘이 난다.



망월사는 도봉산의 험준한 암봉들 사이에 자리한다.


엄홍길 대장이 수없이 오르내렸던 산길 따라

원도봉(原道峰)계곡의 원도봉은 원래 도봉이라는 뜻이다. 의정부시의 공식 관광 안내에서는 도봉산을 ‘원도봉산’으로 표기한다. ‘원래 도봉산’이라니 갸우뚱하다. 지금의 도봉산은 나중에 도봉산이 되었단 말인가? 도봉산은 자운봉을 주봉으로 하고 서울과 양주, 의정부에 걸쳐 있는데 망월사계곡 방면의 도봉산을 예로부터 원도봉산이라 불렀다 한다. 의정부시 입장에선 온전히 의정부 안에 소속되어 있고 도봉산의 ‘오리지널리티’도 살려줄 수 있는 원도봉산이라는 명칭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히말라야 8000m 고봉 16좌를 완등한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원도봉계곡에서 3세부터 40세까지 살았다. 의정부시는 그를 의정부시 홍보대사로 임명하고 계곡길 초입에 ‘엄홍길 대장의 집터’ 안내판도 세웠다. 덕분에 처음 원도봉계곡길에 들어선 등산객들은 본인들이 걷는 산길이 유명 산악인이 기본기를 닦은 코스였음에 반가워한다. 엄홍길 대장 그 자신도 원도봉산을 어머니의 산으로 칭한다. 망월사를 제 집처럼 드나들었던 그는 모태 불교 신자기도 하다.



망월사로 가는 길은 중생교, 천중교, 극락교를 차례대로 건넌다.


원도봉계곡을 지나는 ‘중생교’, ‘천중교’, ‘극락교’ 세 개의 다리를 건너고 30분 쯤 더 걸어 오르면 덕재샘이다. 식음수로 안전하다는 안내판이 있고 계곡에서 길어 올린 청정수가 두 개의 수관에서 졸졸 흘러나온다. 보호를 위해 바라만 봤던 시원한 물이 드디어 마른입과 식도를 타고 몸 안을 적신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담겨있다’는 공양게(供養偈)의 구절이 떠오른다. 망월사로 향하는 길은 숨찬 오르막길이나 감사할 것이 이렇게 많은 덕에 고되지 않다. 덕재샘에서 300m만 더 오르면 드디어 망월사다.


험준한 포대능선 암봉 사이 아늑한 불토(佛土)

망월사를 가람 아래에서 마주하면 눈앞에 바짝 선 축대와 지장전의 벽면뿐이라 절의 규모와 생김새를 도통 가늠할 수 없다. 험준한 암봉들 사이에 터를 닦았으니 전각이 들어설 자리를 사람의 뜻대로 다질 수 없었으리라. 산이 내어준 제한적인 평지를 겨우 다듬어 그에 맞게 전각을 세우니, 건물마다 땅의 높낮이가 다르고 부지가 좁아 가람 전체가 수직적일 수밖에 없다. 해탈문을 통과하면 보이는 거대한 바위를 기준으로 왼편 계단은 영산전과 혜거국사부도탑을 향하는 길이고 오른쪽 계단을 오르면 주불당인 낙가보전이다. 먼저 영산전에 올라 절 전체를 굽어본다. 아래선 보이지 않던 망월사 전경은 물론 정면의 수락산과 의정부 일대, 멀리 서울시까지 눈앞에 펼쳐진다.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경내 천중선원의 단정한 풍경도 한눈에 들어온다. 선원 앞엔 깊은 산중에선 보기 드문 잔디마당이 너르게 펼쳐져 있다. 탑 없는 마당에 탑돌이를 한 듯 원형의 길이 나 있는데, 이는 스님들이 좌선 후 경직된 몸을 풀기 위해 포행을 하면서 만들어진 길이라고 한다. 지세 험한 산에 사뿐하게 자리한 망월사 경내를 바라보노라면 평화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그러나 높은 산 천년고찰도 6.25전쟁 때의 화마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망월사에서 500m만 더 오르면 도봉산 포대능선인데 6.25전쟁 때 대공포진지인 포대를 설치했던 능선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망월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영산전과 그 뒤의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오늘날의 망월사는 전쟁의 상흔이 지워진지 오래고 단체 등산객들의 말소리 외엔 그저 스치는 바람 소리가 전부인 그윽한 사찰일 따름이다. 사찰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영산전은 원도봉계곡길의 종점 전망대라 할 수 있다. 영산전 안에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목조불삼존상과 십육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삼존상도, 나한상도 그 만듦새가 작고 표현 방식이 소탈해서 괜히 친근하고 다정한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영산전은 전망이 좋은 이유도 있지만 편안해서 더 오래 머물고픈 공간이다. 영산전 뒤로 100m 정도 내려가면 혜거국사 부도탑이 있다. 고려 초기 대표적인 선승인 혜거국사의 사리를 안치한 탑인데 둥근 공 모양의 탑신과 팔각형 지붕, 3단의 지대석 등의 특징으로 보아 조선 전기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혜거국사는 선종의 한 종파인 법안종을 일으킨 고승이자 망월사와 가까운 회룡사를 중창한 스님이기도 하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2호 망월사 혜거국사부도


중생 괴로움 구제해주는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고찰

올라왔던 계단을 내려가 망월사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전각인 낙가보전으로 향한다. 명칭이 다소 생소한데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으로 관음전과 같다. 낙가보전의 낙가는 관세음보살이 머문다는 인도 남쪽 끝 보타낙가산(寶陀洛伽山)에서 따온 것이다. 관세음보살은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이 있어 중생의 모든 것을 듣고 보며,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왕생의 길로 인도하는 보살이다. 하여 관세음보살님 앞에선 그저 위로 받고 의지하고 싶어지니, 불자가 아니어도 법당에 들어가 인사를 드려야 할 것만 같다. 압도적인 웅장함을 자랑하는 중층의 팔작지붕 전각 내부에는 황금빛 자태가 화려한 관세음보살좌상과 천수천안관세음보살 부조가 모셔져 있다. 영산전의 불상, 나한상들과는 180도 다른 분위기라 새삼 흥미롭다.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낙가보전


낙가보전을 등지고 왼편의 금강문으로 나가면 포대능선으로 오르는 길이고 계단을 조금만 내려가 여여문으로 나가면 범종각이다. 금강문 밖에는 방문객들이 쉴 수 있도록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영산전의 풍경이 일품이다.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을 병풍으로 두르고 홀로 고고하게 절벽 위에 선 전각의 모습은 진경산수화를 보는 듯 환상적이다. 안개 낀 아침이라면 더욱 황홀할 것이다. 이래나 저래나 영산전이 망월사, 나아가 원도봉산의 ‘홍보 모델’임은 확실해 보인다. 가까이 섰을 땐 편안함을, 멀리 섰을 땐 아름다움을 전해주니 망월사 영산전과 같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부처님에게 소원을 빌어 본다.



영산전 앞에서 바라본 수락산과 의정부 시내 일대 전경


구름처럼, 흐르는 물처럼 잠시 머물다 가면 그만

망월사라는 이름은 창건주 해호선사가 신라의 도읍지인 지금의 경주, 서라벌 월성(月城)을 바라보며 왕실의 융성을 기원한 데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또 다른 설로 해호선사가 머물렀던 동대(東臺, 신라시대에 1만 관세음보살의 진신이 나타났다고 하는 산)의 옛 산성 이름이 망월성이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세월이 흘러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비통한 마음을 추스르며 이곳에 은거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신라가 한강을 차지하며 기세를 떨치던 전성기와 패망해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간 마지막 시기가 망월사에 겹쳐 있다. 달이 차고 기울기를 반복하듯 세상만사는 언제나 성(盛)과 쇠(衰)의 사이클로 굴러간다. 영원한 것은 없고 다만 지나갈 뿐이니, 이 단순하고도 당연한 이치를 천년고찰 망월사가 넌지시 알려준다. 태평성대와 전란을 오갔던 자신도 그래왔으니 길어야 백년 남짓 살아갈 중생 또한 그러할 것이라고.

홀로 올라 시종 묵언하면서도 적적함 없이 오래 머물렀다. 망월사에 기댄 마음, 집착이 되기 전에 거두어 이제는 돌아서야 할 때. 열심히 올랐으니 이제 열심히 내려갈 차례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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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석구석을 걷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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