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실학박물관

[모종의 발견] ① 이야기가 있는 가게, <모퉁이놀이터> 최은주

2025 실학박물관 지역활동가 아카이브

예쁘다. 예쁜 것이 가득하다.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에는 모퉁이놀이터가 있다. 작은 로컬굿즈 등 예쁜 소품이 가득한 소품샵이다. 두물머리, 흘러가는 강물과 귀여운 오리가 있는 멋진 그림, 심청이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세미원 연꽃 그림, 고개 들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동네 어르신, 깨 털고 콩 털고 콩 찌고 메주 만들고 김장하고 마늘 심는 구수한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들리는 손수건 등. 어떻게 이렇듯 양평의 이야기를 담은 예쁜 가게가 있을까? 모퉁이놀이터의 대표, 작가 최은주 님을 만나보았다.








Q. 정말 예쁜 가게입니다. 어떻게 양평에서 이런 가게를 열게 되셨어요?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양평에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꽤 되었어요. 처음에는 여행 차원으로 많이 왔어요. 서울하고 가까우면서도 자연풍경이 아름답잖아요. 양평의 자연에 매료되어서 자주 왔죠.

그러다 몸이 좀 아팠어요. 도시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졌고 멀리 떠나기에는 병원은 계속 다녀야 해서 양평을 생각했어요. 요양이 필요하고 작게나마 얻어둔 공간이 있었기에 다른 선택지를 생각하지 않고 이 곳에 오게 되었죠.

이곳에서 살면서 만난 곳이 ‘청년공간 딴딴’이에요.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이었어요. 처음 양평에 왔을 때는 몸이 좋지 않았기에 밖에 나와 사람을 만나는데 2~3년? 3~4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렇게 시간을 들여서 유일하게 갈 수 있게 된 곳이라서 ‘딴딴’이라는 공간과 사람이 엄청 소중하게 다가왔죠.

그러던 어느날 더 이상 딴딴 공간이 운영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제 갈 곳이 없다는 것도 힘들었고 이 좋은 사람들이 결국 어딘가로 흩어지게 된다는 것에 많이 속상했죠. 마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모두 사라진 것 같아서 힘들어하다가 어떤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다가 내 상황과 역량이 되는 한도 내에서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 결과가 이곳, 모퉁이놀이터예요.



Q. 그러면 ‘딴딴’ 분들하고 같이 운영하시는 것인가요?


가게 열고 초창기에 그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닙니다. 물론 청년공간 ‘딴딴’을 통해 만나게 된 예술가 분들과 연계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관계를 이어가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나 운영 자체가 어디 단체이거나 지원을 받은 사업체가 아니라 제 개인 자영업소입니다.



Q. 운영하시는 데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크게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일단 손님분들이 다 제 편이에요.

가게 열고 초창기에는 ‘이런 걸로 장사가 되나?’ ‘이런 식으로 1년도 못 버틴다.’ ‘가게 언제 내놓냐?’ ‘터가 아깝다.’ ‘사업 아이템을 잘못 잡았다.’는 등등 듣기 힘든 잔소리, 쓴소리를 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 말을 들으면 괴롭기는 해요. ‘내가 추구하던 가치와 사업 아이템, 스토리로 무언가 연결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이 잘못이었을까?’ 만약 잔소리, 쓴소리를 계속 들어야 했다면 운영적, 재정적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말로 문을 닫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죠.

하지만 저를 키운 건 손님분들이랍니다. 이곳을 예쁘고, 좋게 생각하는 분들, 애정을 갖는 사람들이 또 찾아오거든요. 그분들이 한마디, 한마디씩 해주시는 말들이 무척 고맙고 에너지가 됩니다. 또 의견을 주시면 그게 참고가 될 때도 많고요. 내가 어떤 관계를 맺기 위해, 상품을 팔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하는 게 우선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열고 닫으며 기본기를 닦고, 처음 가게를 하고자 했던 초심을 늘 되새긴다면 곧, 손님분들도 그 마음을 알아줄거라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찾아오셨던 손님분들이 본인의 가게처럼 애정을 갖고 홍보해 주시는 분도 많아요. 또 제가 작가이기도 하니까 팬으로서 오시는 분들도 있고요. 남양주에 사는 어떤 분은 제가 진행한 북토크에서 만났다가 가족분들과 함께 손님으로 오시고, 다음번에 직장동료분과 오시고, 함께 오셨던 동료분이 다음번에 또다른 지인분들과 방문해주시고. 이런 연결관계가 재미있어요. 한두 분이 아니라 일일이 다 말하기는 어렵지만요, 다행히도 쓴소리, 잔소리하는 분들보다 애정어린 마음으로 찾아주신 분들이 많아서 저는 늘 가게 오는 발걸음이 행복하답니다.



Q. 모퉁이놀이터에 주로 오는 고객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오픈하고 초창기 한 6~7개월은 그냥 보다가 나가는 분이 많았어요. 그때가 겨울이라 마스크 쓰고 목도리 두르고 선글라스 끼고 모자 쓰고 다녀가면 누구인지 전혀 모르죠. 감시받는 기분도 들고, 들어오는 손님이 무서운 순간들도 있었죠. 그리고 아이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은 정말 귀여워요. 아이들에게 이곳은 용돈을 모아서 쓰는 곳이에요. 딱! 본인이 갖고 있는 돈만큼 골라서 사 가요. 더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몇 주 지나서 용돈 모아서 사러 오는 경우도 있어요. 서비스로 뭘 더 주려고 해도 받지도 않고요. 가게 내 틀어놓은 음악에 맞춰 춤추다가 “안녕히 계세요, 또 올게요”하며 웃으며 나가는 경우도 있어요. 저만의 놀이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건없이 드나드는 놀이터가 된 것 같아 그럴 땐 기분이 좋아요.

그리고 여행객이 오지요. 여행객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일단은 ‘큰 굿즈숍이나 로컬아트 상품 파는 데보다 이 작은 공간에 야무진 게 무척 많다. 어떻게 이런 걸 다 모았냐!’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하죠. 그러면서 다른 지역 가봐도 이런 곳은 없던데 어떻게 만들었냐고 놀라워하기도 하고 심지어 양평 분인데 양평 어딜 돌아다녀 봐도 이런 곳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걸 하냐고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고요. 전철 시간 때문에 서둘러 사서 나가는 분들도 있고요.

지역주민분들도, 여행객분들도 모두 드나들 수 있는 공간과 매력있는 상품들을 팔고 싶었거든요, 접점을 찾은 것 같아서 기쁘기도 합니다.



Q. 모퉁이놀이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곳 모퉁이놀이터는 오픈한 지 2025년 7월 현재 1년 9개월이 되었어요. 지역사회와 동네 사람들의 스토리를 담고 싶었어요. 보통 로컬굿즈라고 하면 관광상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런 관광상품을 넘어서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것, 같이 얘기하고 만들고 판매도 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스토리가 있으면 재미있는 것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예를 들어서 음식 만드는 셰프님들, 요리사분들의 경우, 그 음식 안에 스토리가 담긴 경우가 많잖아요. 이를테면 어떤 분들이 어떤 씨앗을 흙에 심어서 농사를 짓고 그것이 어떻게 자라나고 어떻게 요리하고 사람들이 얼마나 맛있게 먹게 하느냐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스토리라고 볼 수 있잖아요. 저는 굿즈가 그런 음식, 요리라고 생각했어요. 하나의 물건이 태어나기까지의 스토리로 재미있는 것들을 해보고 싶었어요. 이 굿즈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때, 이 동네의 어떤 것을 설명할 수도 있죠. 그게 저에게는 소통이에요.

지역 사람들이랑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지는 소통의 공간. 약간 다른 사람들이 말할 때는 사랑방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리고 어떤 분들은 글쓰기 방, 만화방, 참새방앗간 이런 것처럼 누구든 와서 잠깐씩 쉬어가도 되고 꼭 물건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더 큰 의미의 어떤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여기서 물건을 팔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과 더 많은 영역으로 다른 것을 확장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곳에서 서로를 알게 되면 예를 들어 강의 섭외도 들어올 수 있는 거고 다른 제안도 가능하고요. 모퉁이놀이터가 단지 하나의 가게이긴 하지만 이곳을 통해서 서로 교류하고 연결될 수 있는 이해가 있는 공간이길 희망하는 거죠. 물론 먹고 살기도 하고요.



지금도 이 공간에 지역과 사람, 동네의 이야기들이 모이고 볼 수 있게 되었잖아요. 보이기도 하지만 스토리를 만드는 공간이기도 한 거죠. 게다가 저 자신이 작가잖아요. 저의 글쓰기와 관련해서도 더 많은 것을 이 공간 안에 담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단순하게는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서 글감을 얻는다에서 시작해서 다양하게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기울이고 더 생각하고 알리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지난 2024년 12월에는 청소년들이 그린 작품으로 굿즈를 판매할 수 있게 되어 기쁘고 즐거웠어요. 마을에서 나고 자란 청소년들의 시선으로 그려서 굿즈로 제작 및 판매가 되고 수익금으로 또다른 누군가를 돕는 경험. 이런 경험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모퉁이놀이터라는 가게를 열면서 ‘맞아, 나 이런 거 하고 싶었어’ 저에게도 큰 경험과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죠.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또 다른 역할은 무엇일까 다시금 떠올려보는 시간이기도 했구요.



Q. 양평 생활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일까요?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제일이죠. 아침 산책길, 정말 상쾌하잖아요. 밤에는 고양이 소리, 풀벌레, 가끔 고라니 소리가 나서 놀라기도 하지만 그것도 좋아요. 제 말을 듣더니 도시 사는 지인이 도시에서는 배달 오토바이 소리만 들린다고 부러워하더라고요.

그리고 도시에서 살 때는 못 느끼던 건데, 음식을 먹을 때도 무척 감사하면서 먹게 돼요. 누가 키운 것인지 다 알고 먹을 수 있잖아요. 사는 물건들은 원산지 표시나 생산자 이름이 있다고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었는데, 여기에서는 그게 확실하니까요. 농부님들이 다 같이 이 공간에 있는 거잖아요. 누가 가꾼 것인지 알고 감사하며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행운이에요.

그리고 여행객들이 오다 보니까 저도 가끔은 여행하는 기분을 느껴요. 여기가 나의 생활하는 마을인데, 이곳에 계속 머물면서도 여행하는 느낌은 정말 특별한 것이에요. 여행하는 분들의 가볍고 활기찬 기운을 받을 수 있는 거죠. 사는 곳에서 여행하며 힐링하는 느낌이랄까요. 단점이라면 밤이 일찍 오는 것이랄까요? 문화생활이 부족하다, 즐길거리가 없다는 말도 다 맞는 말이지만 삼삼오오 모여서 무언가 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도 아쉬워요. 사실 공간은 이미 있어요. 없는 게 아니라 사용이 불가능한 이유들이 있을 뿐이죠.

그리고 교통수단이 별로 없어요. 놀이공간이나 전시공간이 양평에 많지만 차량지원이나 교통수단의 어려움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없는 아이들이 많아요. 몇 해 전 청소년 관련 센터에서 일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았어요. 거주하는 곳과 학교, 도시와 어딘가로 가기 위한 장소들은 차량 없이는 닿지 못하는 곳이 많았구요. 일회성, 단발성 지원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셔틀차량이나 교통수단 지원하는 제도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Q. 앞으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나 해보고 싶은 사업은 어떤 것인가요?




모퉁이놀이터가 제 역할을 잘 하는거요. 온전한 로컬굿즈샵, 더 다양한 로컬굿즈로 여기를 채우는 거죠.

그리고 지역적인 부분을 표현하느라 ‘로컬굿즈샵’이라고 했지만, 이곳은 책을 판매하는 곳이기도 해요. 책 읽는 사람들, 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 공간을 책, 글, 스토리로 전달하고 싶다는 게 저의 중장기 목표입니다. 책과 관련된 사람이나 작가를 초청해서 북토크 같은 것도 해보고 싶고요. 예전에, 이 동네 이사 오기 전에는 공간이 충분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저 좁은 데서 뭘 해?”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요. 다른 분들이 하는 것을 보니까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못할 것도 없겠다고 생각이 변했어요. 뜻만 있으면 지역 사람들과 연계해서 이를테면 실학박물관의 공간을 대여하는 것도 가능하잖아요? 그런 것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제가 꿈꾸는 확장된 의미의 책방, 모퉁이놀이터의 역할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지금은 가게 일에 집중하느라 작가라는 것을 자주 잊고 지내는데요, 규모가 크거나 대상이 많은 프로그램은 좀 어렵지만 다양한 대상에 따라, 컨셉에 따라 글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림책을 많이 보고 다루기 때문에 그림책 중심 컨셉의 수업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고 직접 북바인딩으로 노트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구요. 다양한 분야의 작가, 예술가를 소개하거나 섭외를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동네에 재주꾼이 정말 많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으니까요. 지역 도서관이나 기관들과 여유있게 연계해서 서로 협력할 수 있으면 좋겠고요.



* 2025년 모퉁이놀이터는 몇몇 사업에 참여 예정이다. 프로젝트 등에서 생산한 작품들을 모퉁이놀이터에서 판매할 수도 있고 양평에서 거주하며 활동하는 밴드 ‘삼치와 이기리’의 1집 정규앨범 굿즈 중 일부도 모퉁이놀이터에서 만날 수 있다. 아름답고 흥미로운 양평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최은주 대표의 눈은 반짝인다. 최대표가 발견하는 반짝이는 이야기를 설레며 기다린다.








2025 실학박물관 지역활동가 아카이브 <모종의 발견>


조선 후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고민하던 학자들을 실학자라 불렀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활동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모종의 발견>은 지역 곳곳에서 싹트는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찾아 숨겨진 가능성과 가치를 세상에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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